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바흐 이전의 침묵’은 페레 포르타베야 감독의 2007년 작품입니다. 2009년에 서울에서 상영되면서 음악 애호가에게 제법 알려진 영화이지요. 저는 그동안 제목만 알고 있다가 이제서야 이걸 보게 되었네요. 영화가 기대했던 것과 달라서 처음에는 헛웃음을 지었다가, 영화 내용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서 글로 감상을 남겨 봅니다.
이 영화는 상업영화가 아니라 예술영화입니다. 그냥 편한 마음으로 봐서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지루해할 수 있는 작품이고, 영화를 보면서 졸았다는 사람도 제법 있었던 모양이더군요. 또 청소년이 보면 곤란할 듯한 장면이 나오기도 하니 ’음악 교육 영화’로 착각해서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셔야 할 듯합니다.
이 작품에는 트럭 운전수, 악기 판매업자, 첼리스트, 라이프치히 토마스 교회의 영화 제작 당시 칸토르(지휘자), 그리고 ’바흐 본인’과 가족, 멘델스존 등이 나옵니다. 이들이 바흐 음악을 대하는 에피소드를 영화는 진지하게, 그러나 불친절하게 툭툭 던지듯 보여줍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바흐 음악의 대위법에 비유했고, 또 어떤 사람은 발터 벤야민에 견주기도 하더군요.
그런데 어딘가 이상한 것들이 계속 나와서 영화의 진지한 분위기와 자꾸만 충돌합니다. 그래서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헷갈려요. 독일식 농담이 이런 걸까요? 감독은 에스파냐 사람인데, 설마 그 흥 많은 에스파냐 사람들의 농담이 이렇진 않겠죠?
이런 얘기를 하려면 농담을 풀어서 설명하는 촌스러운 짓을 해야 하고, 또 결과적으로 미리니름(스포일링)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심지어 뉴욕타임스에서도 영화를 진지하게만 소개하고 있던데요. ’글자 풍경’을 쓰신 베스트셀러 작가 유지원 선생은 한국어판 포스터의 광고 문구야말로 농담의 절정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몰랐던 위대한 음악가의 비밀” “음악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발견” “올 가을, 격조 넘치는 클래식 선율이 스크린에 펼쳐진다!”
유지원 선생이 쓴 글을 보고서야 알게된 것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영화에서 바흐가 연주한 파이프오르간은 21세기에 신축된(또는 개축된) 것입니다. 또 바흐는 독일 사람이 아님이 분명해 보이는 독일어를 구사합니다. (영화에서 바흐로 분한 크리스티안 브렘베크는 독일의 건반악기 연주자이자 지휘자입니다.) 그리고 멘델스존 시대 시장에서 왁자지껄한 장면에서는 에스파냐 사람들이 어색한 독일어로 연기합니다.
독일어 실력이 엉터리인 저는 영화가 농담임을 알려주는 이런 깨알같은 단서를 다 놓쳤습니다. 그랬던 저도 뒤늦게 눈치를 챘던 순간이 있었어요. 하인이 사온 고기 포장지에서 멘델스존이 바흐 ’마태수난곡’을 발견하는 장면입니다. 아직도 믿는 사람이 제법 있는 유명한 거짓말이지요. (멘델스존은 사실 할머니한테서 마태수난곡 필사 악보를 받았습니다.)
심지어 이때 어떤 하녀가 빨래를 널면서 멘델스존의 ‘노래의 날개 위에’ 가사를 이렇게 바꿔 노래합니다. “…이 발견을 둘러싸고 항간에선 전설이 만들어졌지 […] 푸줏간 주인은 마태수난곡 악보를 고기를 포장하는 데 쓰고 있었다네.”
유지원 선생은 이 노래를 ’얼레리 꼴레리, 그런 걸 진지하게 믿는 저 역사적 신화화의 우스꽝스러움을 보라지’로 설명하며 “농담임을 너무 티를 낸 바람에 좀 세련되지 못했다”라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저만 해도 이쯤 돼서야 웃기 시작했으니, 너무 티 나는 농담이라는 말에는 동의하기 어렵네요.
영화에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관한 낭설도 마치 진짜인 것처럼 나옵니다. 작센의 러시아 대사가 불면증을 치유하기 위해 바흐에게 작품을 의뢰했다는 설이지요. 바흐는 편지와 금화를 받고 감사의 말을 (외국인 말씨로!) 전하고, 21세기 엘베 강의 유람선에서는 그 일화를 전하는 안내방송이 들립니다. 그러나 농담에 속으면 안 돼요!
영화에는 마음이 불편해지는 ’농담’도 나옵니다. 첼리스트인 여자에게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이 수상한 눈빛을 보내고 지저분한 독백을 한다거나, 카메라의 ’시선’이 어딘가 음흉하다거나 하지요. 바흐를 사랑하는 그 남자와 대화하는 서점 주인은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책을 소개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음악이 항상 자넬 구원한다고 말하지? […] 사령관이 시몽 락스에게 병원에 수용된 여자들을 위해 독일과 폴란드의 캐롤을 연주하라고 명령하지. 폴란드 여자들은 울기 시작해. 그 흐느낌은 곧 음악보다 더 커지고[…] 음악이 고통을 준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