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14일 금요일

구스타보 두다멜의 말러 교향곡 8번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말러 교향곡 8번은 초연 당시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합쳐 1,000명이 조금 넘는 인원이 출연했다고 해서 ’천인교향곡’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지요. 오늘날에는 그렇게까지 하는 일은 잘 없고, 이를테면 지난 2011년 서울시향이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했을 때는 474명이 출연했습니다. 거대편성만큼이나 기술적으로도 까다롭기로 악명 높은 이 작품은 공연장에서 감상할 기회가 흔치 않습니다. 리카르도 샤이가 지휘하는 이 곡을 들으려고 스위스 루체른까지 갔던 얘기를 제가 2016년에 칼럼으로 썼던 생각도 나네요.

지난해 발매된 음반 가운데 구스타보 두다멜이 지휘한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말러 교향곡 8번이 있습니다. 기존 명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훌륭한 연주더군요. 도입부의 파이프 오르간 소리는 하늘에서 무지개 빛이 쏟아지는 듯했고, “Accende lumen sensibus”(우리 감각에 광명을 비추시고)와 “Gloria Patri Domino”(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에서 쏟아지는 음들은 화끈했고, 마지막에 나오는 ’신비의 합창’에서는 거대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이 음반은 또한 다이내믹 레인지가 생각 이상으로 넓어서 작품의 거대한 규모가 생생하게 느껴졌고, 녹음에 돌비 애트모스 기술이 사용되어 공간감이 탁월했으며, 마침 제가 이용하는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돌비 애트모스 음원을 도입한 시기와 맞물려서 이 연주가 말러 교향곡 8번 음반의 새로운 이정표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실연으로 듣기 어려운 작품을 이제 이런 음질로 감상할 수 있다니, 기술 발전이 참 놀라워요.

두다멜의 작품 해석과 관련해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작품의 2부에서 테너(마리아를 숭배하는 박사)가 성모 마리아를 절절하게 찬양하고 나면, 하늘에서 영광의 성모(제3소프라노)가 말없이 천천히 내려옵니다. 하프 소리와 더불어 느리고 달콤한 바이올린 선율이 성모와 함께합니다. 이 선율을 특히 달콤하게 연주한 녹음으로 이를테면 리카르도 샤이 지휘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음반이 있지요. 두다멜은 여기서 템포를 매우 크게 떨어트리며 샤이를 능가하는 달콤한 선율을 빚어냅니다. 달콤함이 지나쳐서 남미 남자의 느끼함이 이런 것인가 싶기도 하던데요!

그리고 성모 마리아 앞에 그레트헨(제2소프라노)과 참회하는 여인들이 나타나 파우스트가 지은 죄를 사면해 달라고 간청하면, 마치 그들의 간절한 기도가 빛으로 둘러싸여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음형이 나타납니다. 이때 첼레스타와 하프 등이 마치 ’천상을 향하는 모르스 신호’처럼 들리지요. 이 소리가 다른 악기 소리에 묻히는 음반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이것을 크게 부풀려서 과장된 효과를 담아낸 음반들도 있는데요. 두다멜-LA필 음반에서는 무대 구석에 위치한 첼레스타와 하프 소리가 매우 사실적으로 들려오는 점이 신기합니다.

이 음반에서 한 가지 단점으로 느껴진 것은 테너 사이먼 오닐입니다. 바그너 오페라에서 강력한 목소리를 들려준 바 있는 이 가수의 목소리는 너무 세속적(?)이어서 ’마리아를 숭배하는 박사’라는 캐릭터와는 안 맞는 데가 있었고, 목소리가 너무 커서 시끄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Accende lumen sensibus”(우리 감각에 광명을 비추시고) 직전의 암울한 분위기에서 마치 선지자처럼 “Lumen!”(빛이여!) 하는 대목에서는 불필요한 포르타멘토를 사용해서 간절함이 빛바래더군요.

이 작품은 제1소프라노에게 강력한 목소리와 함께 이른바 ‘하이 C’ 고음을 매우 여리게(!) 불러야 하는 양립하기 어려운 능력을 요구합니다. 음반의 1부 코다에서 전율이 느껴지는 목소리를 들려줬던 강성 소프라노 타마라 윌슨은 2부 피날레에서는 매우 여린 고음을 꽤 훌륭하게 소화했습니다. 이때 가사는 (영원한 여성성이) “우리를 끌어올린다”(zieht uns hinan)인데, 타마라 윌슨의 선율을 이어받은 제2소프라노 레아 크로세토가 그걸 충분히 살리지 못한 것은 살짝 아쉬웠습니다. 메조소프라노 후지무라 미호코, 베이스바리톤 라이언 맥키니, 베이스 모리스 로빈슨 등은 훌륭했습니다.

2021년을 떠나보내며 한 해를 돌이켜 보다가 이 음반이 생각나서 감상을 써 보았습니다. 구원받은 파우스트처럼 복된 일이 올 한 해 여러분에게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글 찾기

글 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