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28일 수요일

임윤찬-광주시향의 통영 공연 실황 음반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홍석원 지휘 광주시립교향악단과 협연한 실황 음반이 최근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발매됐습니다. 지난 10월 8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있었던 공연 실황으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과 윤이상 '광주여 영원히' 등이 실려 있지요.

15살 임윤찬이 2019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 저는 한산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15살 조성진이 하마마쓰 콩쿠르에서 우승했던 일과 견주며 임윤찬의 10년 뒤가 기대된다고 썼습니다. 그런데 임윤찬은 10년은커녕 3년이 채 되지 않아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스타 연주자가 됐습니다. 통영국제음악당 무대에 다시 선 모습을 보니 어찌나 반갑던지요!

저는 사실 2019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때부터 임윤찬의 연주를 백스테이지 아니면 실황 영상으로만 들어 봤습니다. 임윤찬의 '진짜 연주'를 지난 10월 공연에서 처음 들어본 것이죠. 그 공연 실황이 음반으로 나왔으니 감회가 더욱 새롭습니다.

공연 때 저는 임윤찬이 페달을 적게 쓰는 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베토벤 당시의 피아노 느낌이 살짝 난다고도 느꼈고요. 그런데 음반을 들으면서 했던 생각은 공연장에서 들었던 소리보다 잔향이 조금 더 과장되게 느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객석에 따라서 소리가 다르다는 점까지 헤아리면, 제가 그날 있었던 1층 맨 뒤쪽이 아니라 평소에 2층 객석에서 경험한 소리와 비슷하던데요. 

페달을 적게 써서 음 하나하나가 또랑또랑해진 타건 느낌과 실제보다 풍성해진 잔향이 더해진 결과는 마치 페달을 적게 쓸 때와 많이 쓸 때의 장점이 합쳐진 듯했습니다. 국내 최고의 클래식 음악 톤마이스터로 소문이 자자하신 최진 선생이 녹음을 맡으셨지요. 최신 기술인 돌비 애트모스가 적용된 점 또한 장점입니다.

음반에서 살짝 과장된 잔향은 베토벤 협주곡 5번과 어울리기도 합니다. 임윤찬은 기자간담회에서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베토벤 협주곡 중 '황제'는 너무 화려하게만 느껴져 애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 그러다 최근 인류에게 코로나라는 큰 시련이 닥치고 저도 매일 방에서 연습하다 보니 베토벤이 꿈꾼 유토피아와 우주가 느껴지며 인식이 달라졌다"라고도 했지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은 출판업자가 붙인 표제가 오해를 부르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곡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표제가 아니라 'E♭'장조라는 조성입니다. 저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이 교향곡 3번 E♭장조와 쌍을 이루는 '후속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베토벤이 꿈꾼 유토피아와 우주"라는 임윤찬의 말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요.

이런 맥락에서 가장 멋졌던 순간은 임윤찬이 눈부신 E♭장조 화음을 날개처럼 달고 하늘을 나는 듯한 3악장이었습니다. 그야말로 휘황찬란하던데요. 그 와중에 (론도-소나타 형식의) '발전부'라 할 만한 곳에서 날짝 난기류를 만나는 순간, 임윤찬의 호쾌한 음악적 활극이 펼쳐진 것도 멋있었습니다.

제가 앞서 임윤찬을 조성진과 견주기도 했는데요. 제 생각에 조성진의 연주가 모든 면에서 완벽에 가깝다면, 임윤찬의 연주는 좀 더 야성적인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호쾌한 음악적 활극'이 그런 뜻에서 한 말이지요. 그러나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야성이 아니라 정교하게 계산되고 통제된 야성이라는 점에서, 임윤찬의 연주는 또 다른 의미로 완벽에 가깝기도 합니다.

이 음반에서는 윤이상의 1981년 작품 '광주여 영원히' 또한 빼놓을 수 없습니다. '광주여 영원히'는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음반이 아마 김병화 선생 지휘 조선국립교향악단 1987년 녹음(CPO) 정도일 텐데, 북한 녹음 기술이 조악해서 음질은 엉망이지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음반으로는 김홍재 지휘 도쿄 심포니 오케스트라 1989년 녹음(신나라)과 임원식 지휘 서울시향 녹음(아마도 1994년, 월간객석) 등이 있지만, 음질은 다들 별로예요. 

그러니까 '광주여 영원히'를 정말로 제대로 된 음질로 녹음해서 정식으로 발매한 음반은 제가 아는 한 이번에 나온 것이 최초입니다. 연주 자체의 완성도 또한 훌륭합니다. 음질과 연주의 완성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현재까지 나온 '광주여 영원히' 음반 중에서 홍석원 지휘 광주시향 녹음이 가장 훌륭하다고 단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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