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연주가 어정쩡하게 멈춰버린 순간, 한 연주자가 동전을 던집니다. 무대 위에 떨어진 동전이 적막을 깨트립니다. 객석에 있던 한 남자가 무대로 올라와 동전을 확인한 다음 주머니에 넣습니다. 무대 위 조명이 그 남자를 비추고, 남자는 객석을 등진 채로 종이 가방에서 과자를 꺼내 봉지를 ‘부욱’ 뜯습니다. 과자를 ‘와구와구’ 먹습니다. 캔 음료를 ‘딸깍’ 따서 ‘후후룩’ 마시고 다시 과자를 먹습니다. 남자는 객석을 향해 얼굴을 돌리고는, 씩 웃으면서 과자를 ‘와사삭’ 씹습니다. 조명이 꺼집니다.
라재혁 작곡가의 ‘귀머거리의’(taub) 아시아초연이었습니다. 작품 제목에는 취소선이 그어져야 하는데, 그래서 누가 귀머거리라는 것인지 아니라는 것인지 알쏭달쏭합니다. 깜깜한 무대 위에 얼굴만 흐릿하게 비추는 조명이 연주자들을 유령처럼 보이게끔 했던 점이 특이했고, 더블베이스 상행 음계로 시작했던 음악 또한 심령현상이라도 일어날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의 ’과자 퍼포먼스’가 다른 모든 것을 압도했습니다.
작곡가가 쓴 프로그램 노트는 단 두 문장입니다. “곡이 끝났을 때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나요? 우리는 자극을 받고 그 자극은 다른 자극들로 덮어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현대음악을 듣고 나면 곧잘 이렇지 않던까요? 어쩌면 라재혁 선생은 새로운 작품이 공연되고 나서 너무 쉽게 잊혀 버리는 것이 속상해서 음악으로 자학 개그를 했던 것일까요?
통영국제음악당에서는 10월 7일과 8일에 걸쳐 신작 다섯 곡이 세계초연, 두 곡이 아시아초연되었습니다. 작곡 부문으로 열린 2021 TIMF아카데미를 위한 작품 공모를 거쳐 위촉작곡가로 선정된 작곡가들의 작품이었지요. 그 일곱 작품이 너무 쉽게 잊힐까 아쉬운 마음에 제 소박한 감상이나마 글로 써봤습니다. 쓰다 보니 길어져서 일단 첫째 날 공연 얘기부터 할게요.
첫째 날인 10월 7일에는 국악기와 서양 악기를 혼용한 작품 위주로 공연되었습니다. 전통과 현대에 관한 작곡가들의 다양한 관점이 흥미롭더군요.
양영광의 소리(Sŏnus)는 객석에서 봤을 때 무대 왼쪽에 장구, 생황, 양금, 대금이 있고 오른쪽에 바이올린, 비올라, 플루트, 호른, 더블베이스가 있고, 무대 뒤에 타악기가 있는 배치가 특이했습니다. 또 한국 전통 악기가 서양 현대음악 어법을 사용했던 것, 귀로 듣기로는 동서양이 딱히 구분되지 않으며 총체적인 덩어리(클러스터)를 형성한 것 등이 기억에 남습니다. 작곡가는 “이 모든 소리에 대한 현상이 나만의 공간 안에서 나의 눈과 귀에 의해서만 존재하게 되는” 환각적 현상으로서 동서양의 융화를 시도했다고 하네요.
양승원의 ‘낙차’(落差)는 여창가객이 현대음악 앙상블과 협연하는 작품으로 여창가곡 우조 이수대엽 ’버들은’을 차용했다고 합니다. 여창가객 박민희 선생이 무대가 아닌 객석 쪽에서 노래하다가, 중간에 무대 위로 올라갔다가, 나중에는 다시 무대 구석으로 물러나 소외되는 과정이 마치 한국 전통문화가 서양 문화에 밀려나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듯했으며, 그와 맞아떨어지는 음악의 짜임새가 인상 깊었습니다.
작곡가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계절이 변해 봄이 와도 꽃을 피우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피륙을 짜내는 화자의 한탄 섞인 독백은 마치 현대에 시대적 격차를 이겨내지 못하고 […] 시간적인 대립의 격차 속에 여창가객은 정체성을 잃어가고, 주기적으로 변하는 맥락 안에 지속적으로 들려지는 원곡의 조각들은 공명되어 잔향으로 남아 끊임없이 메아리친다.”
박선영의 2018년 작품 ’절반의 고요’는 일종의 대금 협주곡이라 할 수 있는 작품으로 이번이 아시아초연이었습니다. 유홍 선생이 협연한 대금이 전통 연주법과 현대음악 어법을 아우르는 모습을 보여준 반면 나머지 서양 악기는 그냥 현대음악 어법을 사용했는데, 다만 곡 처음에 타악기를 사용한 방식에서 수제천이나 영산회상이 떠올랐습니다. 시조시인 유재영의 현대시조 ’절반의 고요’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라네요.
구본우의 ‘보카 키우사와 멜리스마의 노래’(Canti di bocca chiusa e melisma)는 신작이 아닌 기성 작품이었고, 여창가객이 협연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양승원의 신작과 비슷하면서도 느낌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 작품에서 구본우 선생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습니다. “동서양 음악은 원래 이질적이야. 다른 것은 다른 대로 둬도 괜찮아. 보라고! 그래도 상생은 가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