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23일 금요일

지휘자, 카펠마이스터, 마에스트로 디 카펠라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카펠라(Cappella)는 새끼 염소를 뜻하는 라틴어입니다. ‘목자의 별’이라 불리던 별 이름이기도 하지요. ’목자’가 종교적인 의미로 이어지면서 카펠라는 ’예배’ 또는 ’예배드리는 곳’을 뜻하게 되었고, 음악과 관련해서는 성가대 음악가를 뜻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근대 시민사회가 형성되고 근대적인 오케스트라가 만들어지면서, 카펠라는 오케스트라를 일컫는 말이 되었습니다.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와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는 현존하는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이지요.

카펠라를 이끄는 사람을 이탈리아어로 ’마에스트로 디 카펠라’라고 합니다. 지휘자를 높여 부르는 말인 ’마에스트로’가 이 말에서 나왔지요. 독일에서는 카펠마이스터(Kapellmeister)라고 해요.

우리나라에서는 음악을 꽤 잘 아는 사람도 ‘카펠마이스터’ 개념을 올바로 이해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웃지 못할 일화도 있는데요. 독일 대도시의 오페라 극장에서 수석 카펠마이스터를 역임한 어떤 한국인 지휘자는 독일 활동을 접고 국내에서 활동하면서, 프로필에 ’수석객원지휘자’와 구분되는 뜻으로 ’수석상임지휘자’라고 썼다가 마치 극장의 일인자인 듯한 오해를 부른다는 비판과 함께 국내 오케스트라 부지휘자 정도 위치로 폄하 당하는 굴욕을 겪은 일도 있어요.

오늘날 독일 대도시를 대표하는 오페라 극장에서는 보통 한 해에 300회 이상 공연합니다. 시즌 사이의 휴식기를 빼고 나면 사실상 거의 매일 공연을 하는 셈이고, 의상을 입고 연기를 해야 하는 공연 특성상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는 사실까지 헤아리면 무시무시한 일정이지요. 그래서 독일 오페라 극장은 보통 상근직 지휘자를 여럿 고용합니다. 콘서트 오케스트라에서는 대개 카펠마이스터가 악단의 일인자를 뜻하지만, 오페라 극장에서는 음악감독(게네랄무지크디렉토어) 또는 줄여서 GMD(게엠데)가 악단의 일인자입니다. 카펠마이스터는 자신이 맡은 작품(프로젝트)에 한해서 일인자가 되지요. 음악감독은 사실 지휘자가 아닐 수도 있고, 또 극장의 일인자는 아니에요.

오페라 극장에서 국내 오케스트라 부지휘자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사람은 레페티토어(Répétiteur) 또는 코레페티토어(Korrepetitor)라고 합니다. 우리말로는 흔히 ‘음악 코치’ 또는 ’오페라 코치’로 번역하지요. 음악 코치는 사실 가수들의 리허설을 돕는 피아니스트를 말하는데, 전문 피아니스트일 수도 있지만 지휘자가 처음 커리어를 시작할 때 흔히 맡는 역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음악 코치는 많은 경우 지휘자의 리허설을 돕는 보조지휘자 역할을 겸하고, 보조지휘자로 경력이 쌓이면 지휘자로서 일회성 공연을 맡아 한 시즌에 한두 번 정도 무대에 오르기도 하지요.

한국인 지휘자 가운데 유럽 오페라 극장에서 카펠마이스터 급 이상의 경력을 쌓은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정명훈 선생이 파리 국립오페라(당시에는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 음악감독을 지내셨고, 김은선 선생이 현재 미국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음악감독이시죠. 그밖에 구자범, 최희준, 지중배, 홍석원, 송안훈, 정찬민 등이 독일어권 오페라 극장에서 카펠마이스터로 활동하셨거나 현재 활동 중인 지휘자입니다. 이 가운데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분도 있지만, 유럽 오페라 극장에서 카펠마이스터 직책을 얻었다면 실력이 대단한 지휘자라고 믿을 수 있어요.

이 가운데 홍석원 선생이 이끄는 광주시립교향악단이 오는 10월 8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공연할 예정입니다. 홍석원 지휘자는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 있는 티롤 주립 오페라 극장에서 수석 카펠마이스터를 지내셨고, ‘모차르트의 나라’ 오스트리아에서 한국인 최초로 카펠마이스터가 되신 분이지요. 지난해부터 광주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으로 활동 중입니다. 광주시향의 통영 공연은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와 미국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스타로 급부상한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협연할 예정이라서 티켓이 순식간에 매진됐는데요. 임윤찬 못지않게 홍석원 지휘자도 주목받아 마땅하지 않나 싶어서 카펠마이스터에 관해 설명하는 글을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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