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글입니다.
윤이상 관현악곡 ‘낙동강의 시(詩)’는 1956년에 완성되었지만 2017년에 자필 악보가 발견되어 2018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세계초연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의 2악장 ’낙동강의 저녁’에는 뱃노래처럼 들리기도 하고 또 어찌 들으면 상엿소리처럼 들리는 선율이 나옵니다. 또 3악장 ’舞曲’(춤곡)에는 굿거리장단이 느껴지는 민요풍 선율이 나옵니다.
‘낙동강의 시’ 세계초연을 앞둔 리허설 때 있었던 일입니다. 몇몇 프로 연주자를 제외하면 청소년이 다수인 하노버 체임버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특히 2악장의 구슬픈 리듬을 잘 못 살리고 마치 교과서 읽듯이 딱딱하게 연주하는 걸 듣고 있자니 괴롭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연주자들에게 한국의 ’장단’에 관해 설명하고 민요 한 소절을 불러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리듬의 특징을 좀 과장되게 설명해 봤습니다. 그랬더니 ‘뱃노래’ 리듬이 주제선율의 논리적 일관성을 파괴해버리는 괴상한 연주가 되어버리더군요. 저는 결국 제가 했던 말을 모두 취소했습니다. 제가 지휘자가 아니라서 설명을 잘 못 하겠다고 사과하면서요. 독일인 지휘자를 두고 제가 더 나서는 일이 주제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세계 정상급 바이올리니스트·지휘자·교육자인 핀커스 주커만이 최근 온라인 바이올린 마스터클래스에서 인종주의적 편견을 드러낸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습니다. 그것을 온라인 생중계로 본 사람이 자세한 맥락을 재구성한 글을 봤더니 과연 욕먹을 만한 망언을 했더군요.
한 자매의 바이올린 듀오 연주를 들은 주커만은, 그들의 연주가 기술적으로 완벽하지만 너무 딱딱하니 즐기듯 연주해라, 양념을 좀 쳐라, 바이올린은 현악기가 아니라 노래하는 악기다, 등등 처음에는 좋은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문제가 된 발언이 나왔습니다.
“노래하듯 연주하는 법이 궁금할 수 있겠는데, 내가 알기로 한국인은 노래를 안 해요.”
“한국인 아닌데요.”
“그럼 어느 나라? (미국인인데 부모님 중 한 분이 일본인이라고 대답) 일본인도 노래 안 하기는 마찬가지예요. (아시아인들이 노래하는 걸 흉내) 이건 노래가 아니에요. 바이올린은 기계가 아니에요.” (자매 얼굴 굳음)
질문과 대답 시간에 그 얘기가 다시 나왔을 때, 주커만은 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한국인은 노래하지 않아요. 디엔에이(DNA)에 없어요.”
이쯤 되면 누가 들어도 망언입니다. 편견을 그대로 뒤집으면 저는 ‘낙동강의 시’를 연주하는 독일인 연주자에게 이렇게 말했어야 할지 모릅니다. ’독일인은 노래하지 않아요. 디엔에이에 없어요.’ 주커만은 이 일로 공개적인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주커만의 지적은 표현이 잘못되었을 뿐 사실 일리는 있는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 서양음악을 배우는 아시아인은 춤곡 리듬이 나올 때 마치 교과서 읽듯이 딱딱하게 연주하는 일이 더러 있는 것 같아요. 서양 춤곡 리듬을 몸으로 익히지 못해서 그 요체를 음악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죠. 서양인이 한국적인 리듬을 연주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쉬운 예로, 서양 사람들은 ‘짝짝짝 짝짝, 대~한민국!’ 리듬을 어려워하던데요.
이 문제는 서양 춤을 따로 익히고 그 리듬을 분석한 다음 몸에 익히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해결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서양 언어의 리듬을 몸에 익히는 과정도 필요하겠고요. 이를테면 빈 왈츠의 미묘하게 독특한 리듬은 빈 출신이 아니면 표현하기 어렵다고들 하지만, 다름 아닌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 가운데 동양인을 포함한 외국인들이 요즘에는 꽤 있거든요. 그 사람들도 빈 왈츠를 얼마든지 잘 연주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피자에 굴과 멍게, 심지어 김치를 넣는다면 이탈리아 사람들이 그건 피자가 아니라며 괴로워할 겁니다. 반대로 김치에 치즈와 아보카도, 심지어 요거트를 넣는다면(실제 사례) 한국인들이 그건 김치가 아니라며 괴로워할 겁니다. 그런데 그게 꼭 잘못된 일일까요? 그게 피자가 아니라고, 김치가 아니라고 말하는 건 편견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