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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19일 금요일

리게티: 아방튀르 & 누벨 아방튀르

죄르지 리게티: 아방튀르 & 누벨 아방튀르

루치아노 베리오는 사람의 말소리에서 언어적 의미를 제거하고 음성학적 요소만으로 음악에 본격적으로 활용한 여러 작품으로 현대음악 작곡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베리오의 대표작 중 하나이자 2023 통영국제음악제 첫날에 공연되는 ‹신포니아›(1968)에서도 그러한 특징이 나타난다.

리게티의 ‹아방튀르›(1962)와 그 후속작인 ‹누벨 아방튀르›(1962-1965) 또한 ’언어가 아닌 언어’를 활용한 작품으로, 이들 작품에서는 언어적 의미 대신에 목소리에 담긴 다양한 감정을 만화경처럼 전달함으로써 부조리극을 연상시키는 서사를 만들어 낸다.

사람의 말소리는 언어적 의미가 제거된 뒤에도 여전히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아방튀르›와 ‹누벨 아방튀르›에서 리게티는 사람의 다양한 감정을 독창적인 폴리포니 음악 언어와 결합하고 있으며, 작곡가이자 음악학자 에르키 살멘하라는 이 작품이 “정서의 폴리포니”라고도 했다. 음악학자 이희경은 “(이들 작품의) 감정변화가 너무나 갑작스러워, 마치 거대한 역 광장이나 정신병원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라고 했다.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은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 마지막 장면에서 ‹아방튀르›를 전자적으로 변조해 사용하기도 했다. 큐브릭은 또한 이 영화에서 ‹아트모스페르›(1961), ‹론타노›(1967), ‹룩스 에테르나›(1966), ‹레퀴엠›(1963-65) 등 리게티의 다른 작품을 사용했는데, 사실은 작곡가의 허락 없이 무단으로 사용한 것이었다.

György Ligeti: Aventures (1962) & Nouvelles Aventures (1962-1965)

Luciano Berio was a pioneer in removing linguistic meaning from human speech and using the remaining phonetic elements in his music. One of his notable works, ‹Sinfonia› (1968), which will be performed on the opening day of the Tongyeong International Music Festival 2023, also displays such characteristics.

Ligeti’s ‹Aventures› (1962) and ‹Nouvelles Aventures› (1962-1965) also use ‘pseudo-language’, creating an absurdist narrative and conveying it like a kaleidoscope.

Human speech still effectively conveys emotion even after the linguistic meaning has been removed. In ‹Aventures› and ‹Nouvelle Aventures›, Ligeti combines various human emotions with his original polyphonic musical language. The composer and musicologist Erkki Salmenhaara called it “a polyphony of emotions”. Musicologist Heekyung Lee says: “The emotional changes are so sudden that you feel like you are in a huge railway station square or a mental hospital.

Film director Stanley Kubrick used an electronically filtered version of ‹Aventures› in the final scene of ‹2001: A Space Odyssey›. Kubrick also used other works by Ligeti in the film, including ‹Atmosphères› (1961), ‹Lontano› (1967), ‹Lux Aeterna› (1966) and ‹Requiem› (1963-65), but without the composer’s permission.

2023년 5월 16일 화요일

리게티 첼로 소나타 / 코다이 첼로 소나타

죄르지 리게티: 첼로 독주를 위한 소나타

부다페스트 음악원 학생이었던 1948년의 리게티는 남몰래 짝사랑하던 첼로 전공 여학생을 위해 첼로 독주를 위한 ‹대화›(Dialogo)를 작곡했다. 이것은 음악으로 쓴 연애편지였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작품에 담긴 리게티의 마음을 알아채지 못했으며 이 곡이 공개 연주된 일도 없다고 전해진다. 1953년이 되어 첼리스트 베러 데네시(Vera Dénes)로부터 작품 위촉을 받았을 때, 리게티는 ‹대화›와 쌍을 이루는 ‹카프리치오›를 작곡했다. 그리고 이 둘을 묶어 ‹첼로 독주를 위한 소나타›라 이름 붙였다. 그러나 공산주의 국가였던 당시의 헝가리에서는 작품 발표에 앞서 ’작곡가 연맹’의 검열을 받아야 했는데, 이 작품은 2악장 ‹카프리치오›가 너무 현대적이라는 이유로 검열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 작품은 1983년 파리에서 초연되었고, 악보가 출판된 것은 1990년이다.

헝가리에서 활동하던 시기의 리게티는 코다이와 버르토크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고 있었다. 이 작품의 1악장 ‹대화›에서는 코다이의 영향이, 2악장 ‹카프리치오›에서는 버르토크의 영향이 두드러진다. 1악장은 제목처럼 ‘대화하는’ 남녀의 말소리가 음악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코다이 첼로 소나타가 그렇듯 ’목소리’에 담긴 감정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2악장 ‹카프리치오›는 그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매우 빠르게 쏟아지는 음들과 그 속에 담긴 불꽃 테크닉이 특징이다. 공산주의 헝가리가 용납하지 못했던 것과 달리, 오늘날의 눈높이로는 ‹카프리치오›가 본격 현대음악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György Ligeti: Sonata for Solo Cello (1948/53)

In 1948, while a student at the Budapest Conservatory, Ligeti composed ‹Dialogo› for Solo Cello as a secret love letter to a cello student. But unfortunately, it is said that she did not notice Ligeti’s heart in this piece, and it was never performed in public. In 1953, when cellist Vera Dénes commissioned him a new work, Ligeti composed the ‹Capriccio› paired with the ‹Dialogo› to form the ‹Sonata for Solo Cello›. However, in Hungary, a communist country at the time, the music had to be censored by the Composers’ Union prior to its release. It was not approved by the censorship board due to its modern nature of the second movement, ‹Capriccio›. The premiere of the Sonata did not take place until 1983 in Paris and the score was not published until 1990.

Ligeti’s music during his time in Hungary was heavily influenced by Kodaly and Bartók, with Kodaly’s influence being evident in the first movement, ‹Dialogo›, and Bartók’s influence being prominent in the second movement, ‹Capriccio›. The first movement expresses the voices of a man and woman in conversation, and as in the case of Kodály’s Cello Sonata, the role of emotions in the ‘voice’ is important. The second movement features fast, pouring notes and sparkling techniques typical of a capriccio. In contrast to the communist Hungary, the ‹Capriccio› is not considered as too modern today.

코다이: 첼로 독주를 위한 소나타

“다른 어떤 작곡가도 이 작품과 비슷한 곡을 쓴 일이 없다. […] 목소리를 닮은 놀라운 효과로 독창적이고 독특한 양식을 창조[…] 그런 효과가 아니더라도 이 작품의 가치는 눈부실 만큼 명백하다.” (벨러 버르토크)

오페라의 레치타티보를 기악에 응용한 사례는 드물지 않다. 파를란도(parlando), 즉 말하듯이 연주하라는 나타냄말 또한 기악 음악에 때때로 나온다. 그러나 코다이의 첼로 독주를 위한 소나타에서는 ’말소리’가 음악에 극적 효과를 더하는 ’양념’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말소리’가 그 자체로 음악을 지배한다. 3악장을 빼고 나면 이 곡에서 리듬의 규칙성은 없다시피 하고, 첼로는 마치 배우가 독백하듯 말한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첼로라는 배우가 출연하는 일인극이다.

첼로가 하는 말을 사람이 알아들을 수는 없다. 이때 관객에게 필요한 것은 ’목소리’에 실린 감정에 귀 기울이는 일이다. 1악장에서 때때로 음산한 음형이 마치 효과음향처럼 반복되는 가운데 첼로는 분노하고 절규하며 통곡한다. 2악장에서는 탄식하고 흐느낀다. 3악장에서는 뜬금없이 헝가리 민속 음악을 닮은 음형이 나온다. 반복되는 신나는 리듬과 함께 관객은 처음으로 ’말소리’가 아닌 ’음악’을 듣게 된다. 그러나 처음 나온 음형이 변형되면서 음악에 다시금 말소리가 끼어든다. 웃음을 잃지 않는 저항을 말하는 것일까?

Z. Kodály: Sonata for Solo Cello

“No other composer has written music that is at all similar to this type of work […] creating an original and unusual style, with its surprising effects of vocal type; though quite apart from these effects the musical value of the work is brilliantly apparent.” (Béla Bartók)

The use of opera recitatives in instrumental music is not uncommon, and the term “parlando,” meaning to play as if speaking, also appears occasionally in instrumental music. However, in Kodaly’s ‹Sonata for Solo Cello›, the “speaking sound” dominates the music, rather than being used as a dramatic effect. With the exception of the third movement, there is almost no regularity of rhythm in this piece, and the cello speaks as if it were a stage actor reciting a monologue. In other words, this work is a monodrama featuring an actor named Cello.

While a human cannot understand what the cello is saying, what the audience needs is to listen to the emotions in the ‘voice.’ In the first movement, the cello becomes angry, screams, and weeps, while the occasional gloomy motif repeats like shadows. In the second movement, it sighs and weeps. In the third movement, a sound pattern resembling Hungarian folk music appears out of nowhere. With the recurrent exciting rhythm, the audience for the first time hears ‘music,’ not ‘voice.’ However, as the first motif is transformed, the sound of speech intervenes again in the music. Did Kodály want to express a sense of resistance that nevertheless always maintains laughter?

2021년 6월 11일 금요일

다차원적 폴리포니와 음악의 공간감, 그리고 돌비 애트모스 오디오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선율이 흐르면서 음색이 계속 바뀌게끔 하는 작곡 기법을 안톤 베베른의 용어로 ’음색선율(Klangfarbenmelodie)’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전자음악 작곡가들은 컴퓨터 조작으로 간단하게 음색을 바꿀 수 있지요. 그러나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베베른은 ’음색선율’을 위해 일일이 악기와 연주법을 바꾸는 식으로 작곡했습니다. 베베른은 음색을 선율·리듬·화성과 동등한 위치로 끌어올려 음악을 이루는 핵심 요소로 활용한 최초의 작곡가라 할 수 있습니다.

베베른이 1911년부터 1913년에 걸쳐 작곡한 ‘관현악을 위한 5개의 소품 Op.10’은 하프와 약음기 낀 트롬본, 하프와 첼레스타, 하프와 플루트가 차례로 한 음씩 연주하며 음악을 시작하고, 이때 플루트는 혀나 목젖을 떨어 ’아르르’ 하는 소리를 내는 이른바 ‘플러터 텅잉(flutter-tonguing)’ 주법을 씁니다. 이렇게 음이 바뀔 때마다 악기가 달라지지만 선율은 이어지는 식으로 음악이 흐르지요.

이 작품은 이른바 ’12음 기법’을 사용한 무조음악(無調音樂)입니다. 이런 음악은 그냥 편하게 들어서는 음악이 아닌 소음으로 들리기 쉽지요. 또 베베른은 음 하나하나에 음악적 의미를 고농도로 압축하는 음악 어법을 사용했는데, 워낙 고농도로 응축되어 있어서 길이가 짧다는 것이 이 작품의 장점 아닌 장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곡을 처음 익힐 때 그냥 악보를 통째로 외워버렸습니다. 길이가 짧아서 외우는 데 오래 걸리지 않던데요.

그러나 제가 이 작품의 진정한 매력을 깨달은 것은 공연장에서 실연을 들었을 때였습니다. 음이 바뀔 때마다 악기가 달라지면, 그냥 음색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소리가 나는 ’위치’가 계속 바뀌게 되지요. 집에서 오디오로 들을 때에는 경험하지 못한 3차원 공간 속 소리 알갱이의 ’운동 궤적’을 제가 생생하게 느꼈을 때, 그 음악은 제가 악보로 익힌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 되었습니다. 마치 요정이 빛을 뿌리면서 무대 위를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듯했습니다!

헝가리 작곡가 죄르지 리게티는 윤이상,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 등과 함께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거장 작곡가로 손꼽히지요. 리게티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같은 대작의 악보를 보면 정교하고 장대한 짜임새에 압도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리게티 작품세계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은 의외로 메조소프라노와 타악기 앙상블을 위한 14분짜리 작품 ‘피리, 북, 깽깽이로’(Síppal, dobbal, nádihegedüvel)를 최고 걸작으로 꼽더군요.

리게티 후기 양식을 설명하는 말로 ‘다차원적 폴리포니’라는 것이 있습니다. 짧은 글에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은 아닌데, 다만 음악학자 이희경 선생의 표현을 짧게 빌리자면 “상이한 리듬층을 상상의 음향 공간 속에 다양하게 배치”하는 기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이올린 협주곡(1993)과 ’피리, 북, 깽깽이로’(2000) 모두 이런 양식으로 되어 있지요.

제가 실연으로 들어본 ’피리, 북, 깽깽이로’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상이한 리듬층’이 타악기 앙상블의 연주로 무대 위에서 실제로 구현되었을 때, ’상상의 음향 공간 속에 다양하게 배치’된 그 리듬층은 무대 위라는 3차원 공간이 초현실적인 음향 공간으로 확장된 마법의 시공간 속에서 저마다의 색깔로 반짝이는 듯했습니다. 그런 초월적인 경험을 하고 나니 어째서 이 작품이 바이올린 협주곡과 같은 대작보다 더 위대한지 알 것 같기도 했습니다.

가정용 2채널(스테레오) 오디오는 기본적으로 좌우로 펼쳐지는 1차원적 공간감을 재현할 수 있고, 좌우 스피커의 음상을 잘 맞추면 무대 앞뒤로도 펼쳐지는 2차원적 공간감을 제한적으로 재현할 수 있지요. 멀티채널 오디오로 구현되는 홈시어터는 2차원적 공간감을 좀 더 본격적으로 재현할 수 있고, 소리를 개별 단위로 객체화해서 위치 및 이동시키는 최신 기술 ‘돌비 애트모스’(Dolby Atmos)는 소리의 공간감을 더욱 정교하게 재현할 수 있게 해줍니다.

어쩌면 언젠가는 리게티 음악의 다차원적 공간감을 정말로 제대로 재생할 수 있는 대중화된 오디오 기술이 나올까요? 돌비 애트모스 오디오로 녹음된 음악을 듣고 깜짝 놀라서 베베른과 리게티를 불러 내 가며 호들갑을 떨어 봅니다.

2017년 8월 20일 일요일

리게티: 론타노(Lontano) / 윤이상: 무악(舞樂)

리게티: 론타노(Lontano)


선율과 리듬과 화성은 전통적으로 서양음악을 이루는 3요소로 꼽혀 왔다. 그런데 20세기 들어서 '음색'이 그 못지않게 중요해졌고, 1960년대에는 전통적인 화음 개념을 확장한 이른바 음 덩어리(cluster)로 선율 · 리듬 · 화성을 사실상 무력화하고 음색 또는 '음향'을 전면에 내세운 음악이 나타난다. 리게티 〈아트모스페르〉와 펜데레츠키 〈히로시마 희생자를 위한 애가〉가 대표적인 예이다.

1967년 작품 〈론타노〉(Lontano)는 음을 덩어리로 쌓아 만든 '음향'을 앞세웠다는 점에서 1961년 작품 〈아트모스페르〉와 비슷하다. 이 곡에서 선율과 리듬은 조각조각 나뉘어 카오스 속에 녹아버리고, 화음은 음 덩어리가 되어 '음'과 '소음' 사이를 넘나든다. 그러나 선율과 화음 일부가 여전히 살아남아 때때로 음악의 표면에 떠오른다는 점에서 〈론타노〉는 〈아트모스페르〉와 차이가 있다. 음악학자 이희경의 말을 빌리자면, 〈아트모스페르〉가 화성적 색채 면에서 잿빛이었음에 비해, 〈론타노〉는 화성적으로 훨씬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이 곡에서 음 덩어리(또는 음향복합체)가 순간순간 이루는 '형상'에 집중해 보자. 이 형상은 멈춰 있기도 하고 움직이기도 하며, 자라거나 줄어들고 뭉치거나 흩어지기도 한다. 작곡가는 마치 구름 사이로 한 줄기 빛이 흘러나오는 듯한 심상을 곡 중간에 담기도 했다. 이희경은 '론타노'라는 제목이 공간적으로 '먼 곳'에서, 시간적으로 오랜 과거로부터 울려 나오는 소리를 이중적으로 뜻한다고 보았다. 어쩌면 시간적으로 '먼 곳'이 과거가 아닌 미래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곳에서 시간은 공간으로 화한다.

윤이상: 무악(舞樂)


윤이상은 음을 덩어리로 쌓아 만든 '음향복합체'로 음악을 만든다는 리게티 등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음 덩어리를 이루는 개별음을 '살아있는 음'으로 바꾸었다. 서양음악에서 개별음은 고정되어 있어 다른 음과 관계를 맺으면서 음악적 의미가 만들어지지만, 동아시아 음악에서는 개별음이 그 자체로 살아 움직이며 음악을 이룬다. 살아있는 음이 모여 살아있는 화음, 살아있는 음향층을 이루는 것이 윤이상 음악 어법의 핵심이며, 이로써 작곡가는 동아시아 음악의 음향을 서양 악기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무악〉은 동서양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춤으로 소통하는 환상을 담은 작품이다. 윤이상은 궁중무용 〈춘앵무〉(春鶯舞)를 생각하면서 곡을 썼다고 한다. 춘앵무의 반주로 쓰였던 음악은 영산회상, 정확히는 평조회상(平調會相)이다. 〈무악〉에서 작곡가는 평조회상을 직접 인용하지 않으며, 다만 오보에를 중심으로 조선시대 궁중음악의 음향적 인상을 표현한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유럽적인 음형이 정적이고 명상적인 '평조회상'과 대비된다. 음악학자 볼프강 슈파러는 '서양춤'에 해당하는 음형이 스트라빈스키 발레 음악을 닮았다고도 했다.

〈예악〉(禮樂)으로 대표되는 1960년대 윤이상 음악과 견주면, 1978년 작품인 〈무악〉은 더 한국적인 울림을 담아내는 방향으로 변화한 양식을 보여 준다. 살아있는 음은 더 활발하게 살아 움직이고, 때로는 1960년대의 첨단 아방가르드 음악 양식을 벗어나려는 듯 뚜렷한 선율과 협화음을 앞세우기도 한다. 이 시기에 작곡가는 음악 외적인 '메시지'를 음악에 담기 시작했고, 때로는 정치적인 신념을 담거나 음악으로 해탈을 추구하기도 했다. 〈무악〉이 전하는 메시지는 동서양이 화합하는 이상적인 세계이다.

2017년 5월 8일 월요일

리게티: 현악사중주 1번, 윤이상: 클라리넷 퀸텟 1번

통영국제음악당 공연 프로그램북에 사용할 글입니다.


리게티: 현악사중주 1번 (1953/1954)

리게티가 헝가리 시절에 쓴 곡이다. 리게티가 존경했던 작곡가 버르토크의 영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한편으로는 작곡가가 이후 서유럽에서 활동하면서 보여줄 독자적인 음악 양식, 특히 무지갯빛으로 분광하는 음향의 씨앗을 이 작품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곡은 17부분으로 된 단악장 짜임새이다. 중기 이후 작품과 달리 비교적 쉽게 즐길 수 있으며, 특히 민속적이고 해학적인 선율과 리듬, 그리고 독특한 음향적 흐름이 매력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의 부제인 '야상적 변용'(Métamorphoses nocturnes)에서 '변용'이란, 음악학자 이희경의 견해를 따르자면 "변주되어야 할 '테마'가 없을 뿐 기본적인 음악적 아이디어가 항상 새로운 형태로 등장하는 일종의 변주 형태라 할 수 있다." C-D-C♯-D♯ 네 음을 "원형 세포"로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형태는 제각각이라는 점에서 전통적인 변주와는 다르다.

윤이상: 클라리넷 퀸텟 1번 (1984)

윤이상은 불교와 도교의 가르침을 서양음악의 틀 안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작곡가다. 음양오행, 정중동, 제행무상 등이 윤이상 음악 언어를 이루는 핵심 요소로서 서양 현대음악 어법 속에 녹아 있고, 윤이상은 '해탈'의 순간과 그에 앞선 고행, 또는 해탈을 거쳐 다다른 도(道)의 세계 등을 음악으로 표현하곤 했다.

윤이상 클라리넷 퀸텟은 마치 클라리넷이 현악기 넷에게 가르침을 내리는 듯한 짜임새로 되어 있으며, 음악학자 볼프강 슈파러는 클라리넷이 앞서가다가 때때로 현악기가 따라올 수 있도록 걸음을 늦추는 듯한 모습을 이 작품에서 읽어내기도 했다. 가르침의 내용이 도(道)의 세계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말하자면 영산회상(靈山會相)과 닮은 데가 있다.

볼프강 슈파러는 이 작품이 네 부분으로 되어 있으며, 첫째와 둘째 부분에서 클라리넷이 각각 위아래로 볼록한 반원을 그림으로써 하늘과 땅을 표현했다고 분석한다. 슈파러는 또한 세 번째 부분을 하늘과 땅의 논쟁으로, 네 번째 부분에서 평형으로 돌아오는 짜임새로 보았다. 이것은 결국 천天-지地-인人-도道 짜임새로 요약할 수 있겠다.

이 곡을 초연했던 클라리네티스트 에두아르트 브루너(Eduard Brunner)는 지난 4월 17일 향년 77세로 별세했다.

2016년 10월 13일 목요일

리게티 실내협주곡

통영국제음악당 공연 프로그램북에 실릴 글입니다.


리게티는 선율 · 리듬 · 화성 등에 곁딸린 요소로 여겨지던 음색과 음향 등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으로 1960년대 초에 스타 작곡가가 되었다. 음악학자 이희경의 분석에 따르면 1980년대 이후 리게티는 중앙아프리카 음악과 14세기 말 다성음악(아르스 숩틸료아), 존 낸캐로우의 음악 등에 영향받아 리듬적으로 매우 자유로운 음악을 쓰게 되는데, 《실내협주곡》은 이러한 리게티 후기 음악 양식이 형성되기에 앞서 음을 조직하는 방법의 변화를 꾀하던 시기를 대표하는 걸작이다.

1악장은 리게티가 그때까지 발전시켜온 음악 어법의 연장선에 있다. 단순한 패턴으로 빠르게 반복되는 음들의 '덩어리'(cluster)가 음향적 '형상'을 만들어 내고, 덩어리를 이루는 음들이 엄격한 규칙에 따라 변화하면서 분광한다. 2악장에서는 음 덩어리가 분광하는 양상이 달라진다. 음들이 길게 늘어지면서 '호모포닉한' 느낌을 주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두드러지는 '선율'이 나타난다. 중반 이후에는 마치 절규하는 듯한 선율이 갑자기 튀어나온다.

3악장에서는 모든 악기가 마치 타악기처럼 때리거나 튕기는 음들을 각자 다른 빠르기로 쏟아내고, 음들의 '두드림'이 모여 독특한 음향적 쾌감을 전달한다. 이것은 현악사중주 2번 3악장 등에서 시도한 기법을 앙상블 규모로 확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4악장에서는 빠르게 움직이는 '선율'들이 촘촘하게 얽혀 끊임없이 이어진다. 음 덩어리를 지배하는 규칙은 1악장에서 3악장으로 갈수록 느슨해지는 경향을 보이며, 4악장에서 마침내 선율들로 이루어진 새로운 '형상'으로 귀결된다.

2010년 2월 22일 월요일

2010.01.28 김도윤 《디베르티멘토》 / 김정길 《올래, 오름, 그리고 백록담》 / 리게티 《라미피카시옹》 ― 이병욱 / TIMF앙상블

TIMF앙상블 ‘사통팔달[四通八達] 시리즈 1’ 《메타모르포젠》

2010년 1월 28일(목) 오후 8시 00분
호암아트홀

이병욱 지휘
TIMF 앙상블

김도윤 Doyun Kim, 《디베르티멘토》 Divertimento for 13 strings
펜데레츠키 K. Penderecki, 《샤콘느》 Chaconne
김정길 Chung-Gil Kim, 현악합주를 위한 《올래, 오름, 그리고 백록담》, TIMF앙상블 위촉
- 휴식 -
리게티 G. Ligeti, 《라미피카시옹》 Ramification (version for 12 solo strings)
R. 슈트라우스 R. Strauss, 《메타모르포젠》 Metamorphosen for 23 strings


※ 이 글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공연예술창작기금지원사업으로 기획한 국민평가단 평가 자료를 겸하는 글이며, 평가서 항목에 맞추어 썼음을 밝힙니다.

▶ 공연작품의 예술적 수월성

TIMF 앙상블은 다른 악단과 견주어 압도적인 실력을 자랑했으며 연주회 프로그램도 매우 훌륭했다. 창작곡 또한 다른 공연에서 연주된 작품보다 예술적으로 훨씬 뛰어났다.

▶ 공연계획 실행의 충실성

호암아트홀이 현대음악과 어울리는 연주회장인지는 의심스러우나, 이날 프로그램은 호암아트홀 실내음향과 썩 잘 어울리는 작품으로 이루어졌다. 다만, 김도윤 작품은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처럼 잔향이 좀 더 짧은 곳에서 연주되었다면 느낌이 사뭇 다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창작곡은 전체 공연과 조화를 이루는 본격 현대음악이었다.

공연 시작에 앞서 TIMF 앙상블 예술감독 최우정이 연주회 해설 강연을 열었는데, 내용은 훌륭했으나 사전 공지가 없었고 연주회장 밖에서 어수선한 분위기로 진행되어 아쉬움을 남겼다.

▶ 공연성과 및 해당분야 발전에의 기여도

TIMF 앙상블은 본격 현대음악 전문 연주 단체로, 그것만으로도 예술위원회가 공연창작기금을 지원할 가치가 높다. 연주 실력 또한 매우 뛰어나고 창작곡 또한 훌륭하므로 지원 가치는 더욱 높다.

▶ 총평


※ 공연 관계자와 김원철의 친분 관계 요약

작곡가 김정길은 서울대학교 작곡과 교수였다가 퇴임했고, TIMF 앙상블 예술감독 최우정은 현재 같은 과 교수이며, 작곡가 김도윤은 같은 과 학생이다. 김원철은 같은 과 이론 전공 석사이나 이들과 개인적인 친분은 없으며, 이론 전공은 작곡 전공과는 사실상 학과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김도윤은 이날 처음 알았고, 최우정은 서로 얼굴 알아보고 인사할 만한 친분은 있으며 서울시향이 최우정에게 위촉한 첼로 협주곡 초연 리뷰를 김원철이 서울시향 월간지 『SPO』에 기고한 일도 있다. 김정길은 작곡과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컸으므로 그 사실만으로 김원철이 완벽하게 객관적인 평을 하지 못하리라 의심하더라도 반박하기 어렵다.

김도윤 《디베르티멘토》는 팸플릿에 있는 작품 설명이 어렵다. 그러나 음 소재를 조각내고 비틀어 음악을 이끌어 간다는 아이디어는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멀리는 브람스나 베토벤까지도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고, 요즘 작곡가 가운데에는 크리스 폴 하르만(Chris Paul Harman) 같은 사람도 김도윤과 닮은꼴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어떤 맥락에서 어떤 짜임새로 나타나는가이며, 무엇보다 이론적인 장난질에 그치지 않고 감상자에게 듣는 재미를 주느냐이다.

김도윤 《디베르티멘토》는 '듣기 좋은' 작품이었다. 현대음악인 만큼 아름다운 선율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는 뜻은 아니다. 현대음악치고 그다지 어렵지 않고 뭔가 엉뚱한 연주법을 쓰지도 않으면서도 어딘가 귀를 즐겁게 하는 곳이 있었는데, 좁은 공간에서 진동하는 듯한 화음 또는 음 덩어리(Cluster)가 조성감을 얼핏 드러내면서도 현대적인 긴장감을 이룬 대목이나 콘트라베이스가 피치카토 음형으로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흥미로운 (악보를 보면 생각보다 머리를 쥐어뜯게끔 하는) 리듬을 이끌어가며 만들어 내는 박진감 따위가 멋졌다. 무엇보다 작곡가가 '변주곡의 원리'를 말한 만큼 음 소재를 짜임새 있게 이끌어 가는 솜씨가 훌륭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작곡가가 1984년생이란다. 이 '어린놈'이 이토록 멋진 곡을 썼다니, 나는 질투가 나서 견딜 수가 없어 이렇게 외쳐주었다. "브라보!"

고백하건대 나는 김정길 작품을 이날 처음 들었다. 현대음악에 거부감은 없으나 국내 작곡가 작품을 일부러 찾아 들을 정도는 아니다 보니 이름은 익히 들어온 작곡가라도 작품은 모르는 일이 더러 있다. 이날 연주된 《올래, 오름, 그리고 백록담》을 들어보니 김정길이 윤이상 제자였다는 사실이 곧바로 떠올랐다. 윤이상 수제자로 보통 호소카와 도시오(細川俊夫)를 꼽는데, 이제 보니 음악 양식만 따지자면 김정길이야말로 윤이상에게서 가장 많은 것을 물려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슈파러(Walter-Wolfgang Sparrer)를 비롯한 음악학자들은 윤이상 음악을 가리켜 "동양의 사상과 음악 기법을 서양음악 어법과 결합시켜 완벽하게 표현한 최초의 작곡가"이며 "동아시아적인 것을 서구적인 것과, 국제적인 것을 자국적 전통과 융합시키면서 그 본질에 있어서는 한국적"이라 했다. 그러나 윤신향은 윤이상 음악이 동서양 음악의 융화가 아니라 "이주민 고유의 전통적 특색들이 서구 사회에 동화해가는 과정 속에서 변화하고 상실되는 원리가 윤이상에게도 적용"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두 세계 사이의 진정한 융화는 작곡자의 삶이 음악어휘를 결정할 때마다 그늘처럼 은폐되는 한국적 정신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그곳에서만 가능하다." (윤신향, 『윤이상, 경계선상의 음악』 파주: 한길사, 2005.)

윤이상 음악이 동서양 '융화'가 아니라 '동화'인 까닭은 음악을 이루는 두 세계가 대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정길 《올래, 오름, 그리고 백록담》은 화음과 장식음 따위가 윤이상과 닮은꼴이면서도 음계와 리듬 등에 한국적인 요소가 조금 늘어서 '두 세계' 사이가 좀 더 균형 잡힌 음악이었다. 20세기 서양음악사와 온몸으로 부대껴야 했던 윤이상과는 여러모로 처지가 달랐으리라.

리게티는 《라미피카시옹》(Ramification)에서 악단을 둘로 나누어 첫째 그룹이 표준 조율법보다 4분음 높게 연주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또한 둘이 섞여 있어서 안개처럼 흐릿한 소리가 되게끔 했는데, 리게티는 두 그룹이 따로 연습한 다음 마지막 연습 때에는 무대에서 따로 앉아 연주하고, 실제 공연에서는 섞여 앉도록 제안했다. 그런데 이날 TIMF 앙상블은 지휘자를 중심으로 두 그룹이 나뉘어 있어 아쉬움을 남겼다. 섞여 앉았다면 연주자끼리 서로 영향을 주면서 오히려 소리가 엉망이 될까 걱정한 탓이 아닐까 싶은데, 어쨌거나 '안개' 음향은 제법 그럴싸하게 살아나서 다행이었다.

전체적으로 연주는 매우 훌륭했으며, 딱 한 군데 아쉬웠던 곳을 말하자면 마디 101에서 콘트라베이스가 악보에서 지시한 만큼 '위협적이고 잔인하게'(minaccioso brutale) 연주하지 못한 대목이었다. 이곳에서 콘트라베이스는 활을 지판 쪽에서 매우 여리고 부드럽게 연주하다가 갑자기 매우 세게 ― ffff에서 ffffff로 크레셴도 ― 폭발하듯 박박 긁어대야 한다. 곧이어 활이 줄받침(bridge)과 지판을 오가며 꾸준히 음색을 바꾸면서 길게 연주해야 하는데, 마디 106에서 바이올린 하모닉스 음형이 더해질 때까지 다른 모든 악기는 침묵하면서 이 대목이 자연스럽게 곡 전체의 클라이맥스가 된다. 그러나 이날은 콘트라베이스 한 대로 이 대목을 연주하느라 음량이 크게 모자랐고, 그 한 사람이 온 힘을 다해 긁어대지도 않았다.

2009년 8월 22일 토요일

2007.03.22, 25. 진은숙의 아르스 노바 - 리게티 추모 연주회

진은숙의 Ars Nova 1
2007년 3월 22일(목) 오후 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Pascal Rophé
협연자 : 강혜선(바이올린)

Unsuk Chin: Allegro ma non troppo for percussion and tape (13')
György Ligeti: Atmosphères (9')
Conlon Nancarrow (1912-1997) Tango
Claude Debussy (1862-1918) Le matin d’un jour de fête [The morning of the festival day] (from: Ibéria; 1905-1908)
Igor Stravinsky (1882-1971) Quatre Etudes
György Ligeti (1923-2006) Violin Concerto
 
진은숙의 Ars Nova 2
2007년 3월 25일(일) 오후 6시
세종 체임버 홀
    
지휘자 : Pascal Rophé
 
Conlon Nancarrow : Toccata for xylophone, marimba, piano and violin (1935)
György Ligeti: Chamber Concerto (19'15")
Hans Abrahamsen: Märchenbilder (Fairy Tale Pictures) (14')
Chris Paul Harman: Theme and Variations for eight musicians (18')
György Ligeti: Poème symphonique for 100 metronomes (20')



리게티(Ligeti György Sándor, 1923-2006)는 20세기 후반 서양음악을 대표하는 거장이다. 그가 작년에 타계했으니 추모의 물결이 이는 것이 마땅하지만, 사실 진은숙이 서울시향의 상임작곡가가 되지 않았다면 이번 추모 음악회는 아마 없었을 것이다. 한국 음악계의 역량이 아직 현대음악 작곡가를 추모할 정도가 되지 못하는 까닭이다. 여러 가지 의미로 '진은숙의 아르스 노바' 시리즈는 한국 음악계에 복이다.

'현대음악'이라는 말은 대중에게 '이해불가'와 같은 뜻으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그 뿌리깊은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진은숙의 아르스 노바' 시리즈에서 사용하는 장치는 일종의 당의정(糖衣錠)이다. 드뷔시, 스트라빈스키 등 대중에게 비교적 익숙한 작곡가들의 작품으로 현대음악의 뿌리를 엿볼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리고 이날 첫 곡으로 연주된 진은숙의 타악기 주자와 테이프를 위한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Allegro ma non troppo>는 한발 더 나아가 대중이 가진 고정관념의 근본을 뒤흔들어줄 한 수로 적절했다. 이 작품은 구체음악(musique concrète)으로 분류되는데, 그 원류는 1948년 셰퍼(Pierre Schaeffer)에서 찾을 수 있지만 소음도 음악이 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1913년 루솔로(Luigi Russolo)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미 100년 가까이 지난 낡은 생각이고 대중음악에서도 종종 '새로운 시도'로 소개되어온 아이디어이지만, 현대음악에 익숙지 않은 사람에게 이것은 여전히 새롭다. 그러나 고정관념을 한 꺼풀 벗겨내고 나면 사실은 새로울 것도 없다. 우리는 물소리, 바람소리, 새 소리 등을 가리켜 '자연의 음악'이라 말하곤 한다. 작곡가는 이런 소리를 입맛에 맞게 모아놓고 '음악'이라고 부를 수 있으며, 그것이 작곡가의 의도대로 조직되었다면 피아노 등의 '보통' 악기를 사용한 음악과 다를 것도 없다. 음악 별거 있나.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는 '빠르지만 지나치지 않게'라는 뜻으로 고전-낭만주의 시대 교향곡 등에서 즐겨 쓰이던 나타냄 말이다. 진은숙은 왜 이 작품에 이런 엉뚱한 제목을 붙였을까? 각종 타악기와 소음이 어우러진 이 작품도 알고 보면 '보통' 교향곡과 다를 것도 없다는 뜻은 아닐까? 아닌 게 아니라 이 작품은 종이를 바스락거리는 등의 퍼포먼스에 의해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으니 이것을 그대로 소나타 형식에 대입시켜 생각할 수도 있겠다. '발전부'에 해당하는 가운데 부분에서는 특히 동굴에 들어온 듯한 음향과 그에 어울리는 탐탐(tam-tam) 소리 등이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각종 타악기가 한꺼번에 '쾅' 하고 바로 이어 들리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특히 짜릿했다.

리게티의 <아트모스페르 Atmosphères>는 '대기(大氣)'와 '분위기'의 이중적인 의미가 있으며, 이른바 클러스터(cluster) 기법을 사용한 '미크로폴리포니(micropolyphony)'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클러스터 기법은 12 음 음악이 청자에게 지각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비판에 기초하면서 선율, 화성, 리듬의 구조를 모두 해체하여 순수한 음향으로 이루어진 음악을 작곡할 수 있는 기법으로 '소음의 해방'과 비슷한 시기에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아트모스페르>를 이루는 선율과 리듬과 화성은 미립자(微粒子)처럼 존재하며 실제로 귀에 들리는 소리는 각각이 덩어리, 즉 클러스터가 되어 '얼어붙은 시간'(리게티의 용어) 속에서 정지한 듯 흘러간다. 지휘자 파르칼 로페(Pascal Rophé)는 '나무'와 '숲' 가운데 나무를 살리는 데 좀 더 치중하는 듯했으며, 미시적인 움직임 속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음색을 전율할 만큼 섬세하게 살려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미세한 소리는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이 감당하기 어려워 보였으며, 뒷자리에 앉은 수많은 청중에게는 단지 흐리멍덩하게 뭉쳐진 지루한 음향의 연속일 따름이었을 것이다.

낸캐로우(Conlon Nancarrow)의 작품은 복잡하고 비주기적인 박절과 리듬 구조를 사용하는 이른바 '폴리리듬(polyrhythm)'과 '폴리템포(polytempo)' 등을 특징으로 한다. 이것은 '미크로폴리포니' 이후에 리게티가 추구하던 '다차원적 폴리포니'(이희경)와도 통하며, 리게티는 낸캐로우의 양식이 "베베른과 아이브스 이후의 가장 위대한 발견"이라 했다. <탱고?>는 낸캐로우가 리게티에 의해 유명해진 이후인 1983년 작품인데, 그의 다른 작품보다 텍스처가 상당히 엷으면서도 폴리리듬적 특징이 살아있는 것이 흥미롭다. 이 곡은 원래 자동 피아노를 위한 작품으로 이날 연주된 것은 Yvar Mikhashoff의 앙상블 편곡 작품이었는데, 작품 제목의 물음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얼핏 들으면 탱고라기보다는 래그타임(ragtime)처럼 들렸으며, 폴리리듬적 반주 음형 속에 탱고 음악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드뷔시와 스트라빈스키가 리게티의 선배 작곡가로서 가지는 공통점은 계몽주의 사상과 기능화성 작법에 기초한 음악 구성의 목표지향적인 발전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생장하지만 발전하지 않는 유동적인 짜임새(드뷔시)와 순환을 통한 갱신, "선(線)적인 시간이 아니라, 순환하는 그리고 무(無)시간적이고 신화적인 시간 안에서 선조의 음악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것"(스트라빈스키; C. Kaden의 표현)은 "고난을 거쳐 별들의 나라로 per aspera ad astra"라는 경구로 대변되는 베토벤적 가치관에 반대되는 특징이다. 이 부동의 가치는 20세기 초 쇤베르크 등에 의해 "일종의 역사의 완성이라 할 수 있는 비약적인 발전"(C. Kaden)을 맞았는데, 그 때문에 특히 스트라빈스키가 사회 각계로부터 받은 비난은 격렬했다. "그는 지붕을 뜯어내 버렸고, 그래서 이제 그의 대머리 위로 빗물이 흐른다"(아도르노), "진실성 없는 음악" "속이 비어 있는 것으로는 피리를 불기 쉽다"(E. 블로흐), "근심이 없는 작곡가"(A. 베르크) 등이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게 하는 말이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시대 작곡가이자 영원한 타자(他者)였던 리게티에게는 오히려 이런 점이 창조적 자극이 되었으니 드뷔시와 스트라빈스키는 얼마나 시대를 앞서간 것인가.

음악학자 이희경에 따르면 리게티는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에서 특히 관현악법에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파스칼 로페는 이날 연주에서 <아트모스페르>에서와 마찬가지로 작품 곳곳에 숨어있는 다양한 음색을 생생하게 살려내어 작년 10월에 뤼디거 본이 들려준 모더니즘의 무기질적 특징과는 또 다른 현대성을 보여주었다. 드뷔시의 "축젯날 아침 Le matin d'un jour de fête"은 악보의 지시(♩= 112)보다 훨씬 느린 템포(대략♩= 85)를 사용하여 마디 11 이후의 아첼레란도 등의 템포 변화의 폭을 크게 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그 때문인지 가끔 앙상블이 어긋나곤 했던 것은 옥에 티였다.

리게티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1989년에서 1993년 사이에 작곡되었으며, 낸캐로우의 음악과 중앙아프리카 음악, 14세기 말의 다성음악(Ars subtilior) 등 다양한 양식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다차원적 폴리포니'의 정수가 담긴 작품이다. 여전히 클러스터 기법을 응용하면서도 <아트모스페르>에서 나타난 미크로폴리포니와는 달리 선율과 리듬의 윤곽이 뚜렷하게 존재하며, "상이한 리듬층을 상상의 음향 공간 속에 다양하게 배치"(이희경)한 결과 "리듬적으로 얽매이지 않는 진정한 폴리포니"(신인선)가 되었다. 현란한 기교를 보여준 강혜선의 연주는 훌륭했지만, 다채로운 음색을 연주회장이 감당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은 아쉬웠다. 특히 1악장에서 피아니시모 또는 그보다 여린 소리를 낼 때에는 앞자리에 앉았는데도 소리가 너무 작아서 심심한 연주로 둔갑해버렸다. 2악장 이후부터는 조금 나아졌으며, 특히 호케투스(Hoquetus) 부분에서 셋잇단음 리듬으로 텍스처를 치고 나오는 바이올린 소리(마디 84 이후)가 짜릿했다. 카덴차는 이 곡의 초연자인 가브릴로프(Saschko Gawriloff)의 것을 사용했으며, 앙코르로 3악장을 다시 한 번 연주했다.

세종문화회관 체임버 홀에서 연주된 리게티의 <실내 협주곡>은 1969년에서 1970년 사이에 작곡되었으며, 그의 작품세계에서 60년대의 미크로폴리포니가 80년대 이후의 다차원적 폴리포니로 변화해가는 과정을 이 작품에서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적인 설명들은 이제 잊어버려도 좋다. 아니, 음악에 대한 일체의 편견을 버리고 낯설지만 신비로운 소리 그 자체를 즐길 준비가 되어있다면 이런 것은 애초에 몰랐어도 좋다. 리게티의 음악은 엄격한 구성과는 별개로 감성과 직관에 호소하는 음악이며, 이론적 설명보다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서울시향의 연주는 편하게 들어도 귀가 즐거웠으며, 특히 모든 악기가 스타카토 및 피치카토 음형으로 타악기 같은 소리를 내는 3악장에서는 전율을 느꼈다. 5악장에서는 화학반응으로 미립자들이 활발히 움직이듯 촘촘하고도 빠르게, 또 다양한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음형이 오묘했다. 2악장에서 목관악기의 절규하는 듯한 마르카토 음형(마디 40)은 악기별 어택(attack)이 잘 맞아떨어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낸캐로우의 <토카타>는 1935년 작품으로 낸캐로우 음악의 일반적인 특징인 빠르고 기계적인 리듬이 잘 살아있는 작품이다. 바이올린을 연주한 박제희는 기술적으로는 나무랄 데 없었지만, 특유의 점잖은 '양반 보잉'은 <토카타>처럼 신나고 어떤 면에서는 경박한(?) 곡에는 단점이 되는 것 같다. 무엇보다 음량이 너무 작았으며, 그에 비하면 마림바와 실로폰 소리는 너무 컸다.

아브라함센(Hans Abrahamsen)의 <동화 그림 Märchenbilder>은 슈만의 <동화 그림>에서 소재를 빌렸다는데, 슈만의 작품이 19세기 동화를 그린 회화 같다면 아브라함센의 작품은 차라리 3D 컴퓨터 그래픽이 난무하는 SF 또는 판타지 영화처럼 느껴졌다. 또한, 다차원적이면서도 그물망같이 연결된 성부 진행에서는 리게티의 영향을 찾을 수 있었다.

하만(Chris Paul Harman)의 <행렬 풍자극 Procession Burlesque>은 4종 대위법(fourth species counterpoint)을 연상시키는 피아노 음의 배음(harmonics)이 만들어내는 야릇한 음향과 그것을 오케스트라가 흉내 내는 것이 신선했는데, 이것은 마치 악보에는 존재하지 않는 배음끼리의 클러스터 같았다. 그리고 이것이 나중에는 여러 층위를 이루면서 폴리포니 아닌 폴리포니를 이루는 것이 리게티와 닮았으면서도 또 달랐다. 변화무쌍하면서도 뒤로 갈수록 묘하게 선동적인 리듬과 다이내믹 또한 흥미진진했다.

리게티의 <100개의 메트로놈을 위한 교향시>는 '해프닝' 성격이 강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연주 그 자체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으며, 폴리리듬과 폴리템포에 대한 리게티의 화두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를 가진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다만, 이날 벌어진 고유한 사건들은 그 나름의 가치가 있겠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마지막까지 작동을 멈추지 않고 남아있던 두어 개의 메트로놈이 도무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진은숙이 그 끈질긴 녀석들을 손으로 멈춘 다음 태엽을 4번 감아야 할 것을 한 번 더 감았던 모양이라며 사과의 말씀을 전했다. '연주자'들은 예닐곱 명의 어린이들이었으며, 아마도 역사상 최연소 리게티 연주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새로움에 대한 화두는 예술가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겠지만, 리게티에게는 이것이 다양한 문화 양태가 "접속과 횡단"(이희경)을 통해 전혀 새로운 속성을 획득하는 식으로 구현되었다. 그는 평생 어느 한 곳에 소속되기를 거부하고 항상 외부를 향해 열려있었으며, 이방인의 시선을 대상의 새로운 측면을 조명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삼았다. 이것이 단순한 '혼혈'과는 다른 까닭은 "손에 잡히는 듯한 섬세한 음향 감각과 자신이 원하는 소리를 아주 명료하게 형상화하는 탁월한 형식 감각"(이희경)을 바탕으로 철저한 자기비판을 거쳐 탄생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장은 죽어서 숙제를 남겼다. 이제 음악은 어떤 식으로 변해갈 것인가?

정보공유라이선스

김원철. 2007.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9년 6월 1일 월요일

오디오쟁이에게 뽐뿌질하는 현대음악 ― 리게티 《아트모스페르》


☞ 오디오쟁이에게 뽐뿌질하는 현대음악 ― 들어가며
☞ 오디오쟁이에게 뽐뿌질하는 현대음악 ― 베베른 Op.10



음색(音色)이란 무엇인가? 영어로는 'timbre'라 하고 독일어로는 'Klangfarbe'라 부르는 이 말은 무슨 뜻인가? '소리의 색깔'처럼 말만 바꾼 수준을 벗어난 뜻풀이를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 음을 만드는 구성 요소의 차이로 생기는, 소리의 감각적 특색. 소리의 높낮이, 크기가 같더라도 진동체나 발음체, 진동 방법에 따라 음이 갖는 감각적 성질에는 차이가 생긴다. ≒소리맵시ㆍ음빛깔. (표준국어대사전)

- 악기 소리나 목소리가 발성이나 악기에 따라 (음높이 및 세기와 달리) 띄는 특징으로... (옥스포드 영어사전 The Oxford English Dictionary)

- 세기(loudness)와 높이(pitch)가 같은 두 소리를 듣는이가 다르다고 느끼게끔 하는 감각 속성 (미국표준협회 ANSI, 1960)

- 음높이, 음량, 음길이와는 다른 기준을 사용하여 두 소리가 다르다고 판단하게끔 하는 청감각 속성 (Pratt & Doak, 1976)

서로 다른 뜻풀이에 한 가지 닮은 곳이 있다. '음색은 무엇이다'가 아니라 '음색은 무엇 무엇이 아니다'라며 이른바 부정적 정의(negative definition)를 내린 대목이다. 음색을 결정하는 요인이 여럿이기 때문이다. 음색은 배음(harmonics) 스펙트럼, 포만트(formant), 위상(phase), 엔벨로프(envelope), 비브라토 주기 및 진폭 등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 글은 음향학 개론이 아니므로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다. 다만, 소리를 이루는 모든 것이 음색과 엮여 있으며 위에서 음색과 구분한 음높이, 음량, 음길이 또한 음색을 결정하는 요인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자.

20세기 들어 서양음악에서 음색이 선율과 리듬과 화성 못지않게 중요해졌다는 얘기는 이미 한 바 있다. 그런데 1950년대 말부터는 음색을 뺀 나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음악마저 나타났다. 앞글에서 짧게 소개한 총열주의 음악에서 '음' 하나하나가 중요한 역할을 하며 논리와 질서를 이루었다면, 그 반발로 나타난 이른바 음향음악(Klangkomposition)에서는 음들이 모여 이룬 '음향층' 또는 '덩어리 Cluster'가 음악이 된다. 선율과 리듬은 조각조각 나뉘어 카오스 속에서 녹아버리고, 화음은 음 덩어리가 되어 '음'과 '소음' 사이를 넘나든다. 이를테면 피아노 건반을 주먹이나 팔꿈치로 '쿵' 내려쳤을 때 들을 수 있는 소리로 된 '덩어리'가 음악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리게티(Ligeti György Sándor, 1923-2006, 헝가리계 루마니아 사람으로 성을 앞에 쓴다)는 총열주의 음악을 비판하며 들리지 않는 '구조'가 아니라 들리는 '형상'을 음악에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1961년 작품 《아트모스페르》(Atmosphères)를 들어보자. 이 작품의 '구조'는 귀로 듣고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악보를 들여다보아도 음표의 카오스 속에서 정신을 잃기 쉽다. 그러나 예쁜 여자를 알아보는데 피부세포를 분석할 필요는 없는 법. 굳이 악보를 분석할 사람은 먼저 돋보기를 준비한 다음 음표가 아무리 많아도 '떡실신'하지 않도록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라. 그리고 나서 악보를 본다면 작곡가의 위대한 '노동'에 존경을 바치게 되리라.
《아트모스페르》 마디 88-92. © Universal Edition

그러면 이 곡의 '형상'은 무엇인가? 소리 또는 '음향'이 덩어리를 이루어 흘러가는 게 느껴지는가? 이 덩어리는 멈춰 있기도 하고 움직이기도 하며, 자라거나 줄어들고 뭉치거나 흩어지기도 한다. 이 곡은 스탠리 큐브릭이 감독한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처음과 마지막에 쓰이기도 했는데(마지막 장면에서는 리게티의 다른 작품과 함께 편집), 소리로 된 '형상'이 화면과 어떻게 어우러지는지를 살펴보면 흥미롭다. (여기서 잠깐! 큐브릭은 리게티 허락 없이 멋대로 이 음악을 썼으며, 리게티는 6년 동안 법정싸움을 한 끝에 고작 3,500달러만을 보상금으로 받았다고 한다. 거대자본의 횡포를 잠시 규탄해 주자.)

그런가 하면 이렇게 물을 수도 있겠다. 소리가 흘러가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움직인다'라고 할 수 있는가? 전체적으로 보면 이 음악은 멈춰 있지 않은가? 맞다. 강물이 흘러가는 모습이 멀리서는 잘 보이지 않는 것처럼 이 곡은 멈춰 있는 듯 느껴진다. 리게티는 이를 두고 "얼어붙은 시간"이라 했으며, 이것은 리게티가 오랫동안 품어왔던 판타지이자 초기 작품을 대표하는 특징이기도 하다. 다만, 이른바 클러스터(덩어리) 기법을 쓴 작품이 모두 그렇지는 않으며 작곡가에 따라 또 작곡 시기에 따라 모두 느낌이 다르다. 그러나 같은 해 발표된 펜데레츠키 《히로시마 희생자를 위한 애가》는 어찌 들으면 《아트모스페르》와 제법 닮았다.
'노동'을 줄이려고 꾀를 낸 펜데레츠키 《히로시마 희생자를 위한 애가》 마디 18.
© Schott Music

'아트모스페르'는 대기(大氣)를 뜻하기도 하고 '분위기'를 뜻하기도 한다. 이 곡 제목은 두 가지 뜻 모두를 아우른다 하겠는데, 음반을 들어보면 둘 가운데 어느 쪽에 무게를 싣느냐에 따라, 또 '숲'과 '나뭇잎 위 하루살이' 가운데 어느 쪽을 더 살리느냐에 따라 해석이 조금씩 달라지는 듯하다. 당신이 오디오쟁이라면 '형상'이 차지하는 3차원 공간이 때때로 바뀌는 모습을 살펴보는 재미 또한 놓치지 마시라.

《아트모스페르》는 오디오쟁이에게 특별한 쓰임새가 있다. 당신이 오디오쟁이라면 이 곡을 듣고 바로 느낌이 와야 한다. 오디오를 길들일 때 쓰는 이른바 '오디오 에이징 음악'과 비슷하지 않은가! 당신이 'XLO Burn-in CD'를 구하지 못했다면 《아트모스페르》로 오디오를 길들여 보면 어떨까? 자꾸 듣다 보면 좋아질지도 모른다! 오디오를 길들이는 당신을 가족이 한심해한다면 현대음악이라며 으스댈 수도 있겠다. '에헴! 들어나 봤나 리게티?'

오디오 길들이기가 목적이라면 《아트모스페르》 말고도 좋은 현대음악이 많다. '전자음악'으로 분류되는 음악 대부분이 오디오의 한계를 박박 긁어댄다. 파이프 오르간 음악 또한 마찬가지인데, 따지고 보면 '클러스터 기법'의 유래를 바로크 시대 오르간 음악에서 찾을 수도 있다. 이왕이면 오르간 음악 또한 바흐보다는 메시앙이나 뒤뤼플레(Duruflé)같은 현대 작곡가를 들어보면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겠다.

다음 시간에는 클러스터 기법을 '한국적으로' 활용한 윤이상 음악을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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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9.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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