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Pathétique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Pathétique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5년 1월 30일 금요일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g단조,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b단조 '비창'(Pathétique)

2014년 12월 통영국제음악당 공연 프로그램북에 실렸던 글입니다. 잊어버리고 있다가 생각나서 올립니다.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g단조

모차르트는 시대를 앞서간 '프리랜서' 음악가였습니다. 예술가를 후원했던 권력자들이 그때만 해도 예술가를 하인 취급했고, 모차르트는 그것을 참지 못했거든요. 심지어 대주교한테 대들고는 "엉덩이를 걷어차여" 쫓겨나기까지 했다지요.

성공한 프리랜서 음악가였던 베토벤과 달리, 모차르트는 헤픈 씀씀이만큼 수입이 따르지 않아 고생했습니다. 겨울에 난방을 못 해서 밤새 아내와 함께 춤을 췄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예요. 모차르트가 겪었던 가난과 관련해 과장도 있지만, 모차르트의 삶이 평탄치 않았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모차르트 작품은 이러한 속사정과 달리 대부분 티 없이 해맑지요. 교향곡 40번은 모차르트가 죽기 약 3년 전에 쓴 곡으로 모차르트 작품치고는 비교적 슬픔이 겉으로 드러나는 편인데, 그러나 그마저도 조금 내비치다 말지요. 고전주의 시대 음악은 베토벤 이전까지 이랬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모차르트를 사랑하는 사람은 알 겁니다. 해맑은 음악 속에 커다란 슬픔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요. 이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실 분도 음악을 듣다 보면 깨달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더군다나 이번 공연은 모차르트 교향곡이 차이콥스키 비창 교향곡과 함께 묶였으니, 이번 공연의 숨은 주제는 '슬픔'이라 할 수 있습니다.

1악장, 2악장, 4악장은 소나타 형식이고, 3악장은 세도막 형식의 일종인 '미뉴엣과 트리오' 형식입니다. 고전적인 교향곡 짜임새를 깔끔하게 따르고 있어서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지는 않을 듯합니다. 소나타 형식을 모르시는 분을 위해 아주 간단하게만 설명할게요.

소나타 형식은 크게 보아 제시부―발전부―재현부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시부는 제1 주제, 그와 대비되는 제2 주제, 그리고 경과구 따위로 이루어져 있고, 발전부는 제시부 주제가 자유롭게 '발전'하는 곳입니다. 재현부는 제시부를 그대로 또는 비슷하게 되새기는 곳이고요. 때로는 앞뒤로 서주(intro)와 종결구(coda)가 덧붙을 수도 있습니다.

잘 모르겠으면 다 잊어버리고 그냥 들으셔도 됩니다. 모차르트 음악은 듣기 좋은 선율과 리듬이 계속 이어지니까, 소나타 형식을 모르고 그냥 들어도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을 거예요.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b단조 '비창'(Pathétique)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은 차이콥스키의 마지막 작품으로 작곡가가 죽기 9일 전에 작곡가 자신의 지휘로 초연되었습니다. 그리고 초연 21일 만에 열린 두 번째 연주회는 차이콥스키 추모 공연이 되었지요. 두 번째 공연 이후 차이콥스키 자살설이 나돌았고, 차이콥스키가 사실은 동성애자였으며 명예를 지키라는 강권에 따라 자살했다는 설도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을 차이콥스키의 유서로 보는 시각이 힘을 얻었습니다. 곡 전체에 흐르는 비극적인 정서와 1악장 절정 부분에서 인용한 러시아 정교회 레퀴엠 음형, 그리고 무엇보다 작곡가의 죽음이라는 결정적인 정황 때문이지요. 그러나 리처드 타루스킨을 비롯한 저명한 음악학자들은 이 작품을 유서로 보는 관점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습니다. 여러 정황 때문에 사람들이 음악에서 듣고싶은 것을 들었을 뿐이라고요.

'비창'(Pathétique; Патетическая)이라는 표제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c단조 '비창'에서 따온 듯합니다. 차이콥스키에게 '비창'이라는 표제를 제안한 사람은 작곡가의 동생이자 극작가였던 모데스트였지만, 차이콥스키가 '비창 소나타' 도입부 음형을 살짝 바꾸어 '비창 교향곡' 도입부에서 인용하고 작품의 주요 주제로 사용했다는 사실에서 작곡가 자신이 '비창 소나타'를 어느 정도 의식했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c단조 Op. 13 '비창' 1악장 도입부


▲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b단조 '비창' 1악장 도입부 (바순 독주)

차이콥스키의 다른 작품처럼, 이 곡은 구조를 분석하기보다는 작품 속에 숨은 '이야기'에 집중하면 좋습니다. 마음씨 여린 작곡가가 폭력적인 현실 앞에서 괴로워하는 듯한 1악장, 슬픔을 애써 감추고 춤을 추는 듯한 2악장, 거짓 승리에 도취되어 현실에서 눈 돌리는 3악장, 그리고 '죽어가듯이'(morendo)라는 나타냄말과 더불어 절망과 체념 속으로 침잠하는 4악장. 음악을 들으면 슬픈 이야기가 머릿속에 떠오를 듯합니다.

그런데 3악장이 워낙 화려하고 과장되게 뿜빰거리면서 끝나기 때문에, 대개 3악장이 끝나자 마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오곤 합니다. 교향곡이 다 끝난 줄 알고 손뼉을 치는 사람도 있지만, 아닌 줄 알면서 일부러 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예요. 개인적으로는 악장 사이에 손뼉을 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관객의 박수가 3악장에 가득한 반어적 음악 어법의 일부라 볼 수도 있을 듯해요.

진짜 문제는 4악장입니다. 흐느끼듯 시작해서 목놓아 울부짖다가, 나중에는 죽어가듯이 천천히 여리게 끝나는 짜임새 때문이지요. 그래서 연주가 끝난 뒤에도 여운을 즐길 수 있게끔 하는 '침묵 악장'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성급한 박수가 이 '침묵 악장'을 망쳐놓곤 하지요. 지난 2008년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이 곡을 연주했을때, 서울시향 월간지 『SPO』에 기고한 글에서 저는 이렇게 썼습니다:

이날은 잔향이 미처 가시기도 전에 박수가 터져 나오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었으나 잔향이 없어지고 채 5초가 지나지 않아 끝내 성급한 박수가 나왔다. 그때까지 지휘봉을 높이 들고 있던 정명훈은 김 샜다는 듯이 팔을 내리고 말았다. 잔향이 없어지기에 앞서 치는 손뼉을 '안다 박수'라고 하여 비꼬아 말하기도 하는데, 이날 박수는 '안다 박수'는 아니고 '깬다 박수'라고 하더라.

이날 공연은 서울시향 역사에 중요한 이정표로 꼽을 수 있을 만큼 훌륭했습니다. 이후로 '비창 교향곡'은 서울시향이 외국에 나가서도 즐겨 연주할 만큼 서울시향의 대표곡이 되기도 했지요. 정명훈 지휘자의 충격적인 작품 해석으로도 유명한 이 작품을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어떻게 연주할지, 이번 통영 공연을 기대해 주세요!

2014년 11월 22일 토요일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

통영국제음악당 공연 책자에 실린 글입니다.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g단조

모차르트는 시대를 앞서간 '프리랜서' 음악가였습니다. 예술가를 후원했던 권력자들이 그때만 해도 예술가를 하인 취급했고, 모차르트는 그것을 참지 못했거든요. 심지어 대주교한테 대들고는 "엉덩이를 걷어차여" 쫓겨나기까지 했다지요.

성공한 프리랜서 음악가였던 베토벤과 달리, 모차르트는 헤픈 씀씀이만큼 수입이 따르지 않아 고생했습니다. 겨울에 난방을 못 해서 밤새 아내와 함께 춤을 췄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예요. 모차르트가 겪었던 가난과 관련해 과장도 있지만, 모차르트의 삶이 평탄치 않았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모차르트 작품은 이러한 속사정과 달리 대부분 티 없이 해맑지요. 교향곡 40번은 모차르트가 죽기 약 3년 전에 쓴 곡으로 모차르트 작품치고는 비교적 슬픔이 겉으로 드러나는 편인데, 그러나 그마저도 조금 내비치다 말지요. 고전주의 시대 음악은 베토벤 이전까지 이랬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모차르트를 사랑하는 사람은 알 겁니다. 해맑은 음악 속에 커다란 슬픔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요. 이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실 분도 음악을 듣다 보면 깨달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더군다나 이번 공연은 모차르트 교향곡이 차이콥스키 비창 교향곡과 함께 묶였으니, 이번 공연의 숨은 주제는 '슬픔'이라 할 수 있습니다.

1악장, 2악장, 4악장은 소나타 형식이고, 3악장은 세도막 형식의 일종인 '미뉴엣과 트리오' 형식입니다. 고전적인 교향곡 짜임새를 깔끔하게 따르고 있어서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지는 않을 듯합니다. 소나타 형식을 모르시는 분을 위해 아주 간단하게만 설명할게요.

소나타 형식은 크게 보아 제시부―발전부―재현부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시부는 제1 주제, 그와 대비되는 제2 주제, 그리고 경과구 따위로 이루어져 있고, 발전부는 제시부 주제가 자유롭게 '발전'하는 곳입니다. 재현부는 제시부를 그대로 또는 비슷하게 되새기는 곳이고요. 때로는 앞뒤로 서주(intro)와 종결구(coda)가 덧붙을 수도 있습니다.

잘 모르겠으면 다 잊어버리고 그냥 들으셔도 됩니다. 모차르트 음악은 듣기 좋은 선율과 리듬이 계속 이어지니까, 소나타 형식을 모르고 그냥 들어도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을 거예요.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b단조 '비창'(Pathétique)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은 차이콥스키의 마지막 작품으로 작곡가가 죽기 9일 전에 작곡가 자신의 지휘로 초연되었습니다. 그리고 초연 21일 만에 열린 두 번째 연주회는 차이콥스키 추모 공연이 되었지요. 두 번째 공연 이후 차이콥스키 자살설이 나돌았고, 차이콥스키가 사실은 동성애자였으며 명예를 지키라는 강권에 따라 자살했다는 설도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을 차이콥스키의 유서로 보는 시각이 힘을 얻었습니다. 곡 전체에 흐르는 비극적인 정서와 1악장 절정 부분에서 인용한 러시아 정교회 레퀴엠 음형, 그리고 무엇보다 작곡가의 죽음이라는 결정적인 정황 때문이지요. 그러나 리처드 타루스킨을 비롯한 저명한 음악학자들은 이 작품을 유서로 보는 관점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습니다. 여러 정황 때문에 사람들이 음악에서 듣고싶은 것을 들었을 뿐이라고요.

'비창'(Pathétique; Патетическая)이라는 표제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c단조 '비창'에서 따온 듯합니다. 차이콥스키에게 '비창'이라는 표제를 제안한 사람은 작곡가의 동생이자 극작가였던 모데스트였지만, 차이콥스키가 '비창 소나타' 도입부 음형을 살짝 바꾸어 '비창 교향곡' 도입부에서 인용하고 작품의 주요 주제로 사용했다는 사실에서 작곡가 자신이 '비창 소나타'를 어느 정도 의식했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c단조 Op. 13 '비창' 1악장 도입부


▲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b단조 '비창' 1악장 도입부 (바순 독주)

차이콥스키의 다른 작품처럼, 이 곡은 구조를 분석하기보다는 작품 속에 숨은 '이야기'에 집중하면 좋습니다. 마음씨 여린 작곡가가 폭력적인 현실 앞에서 괴로워하는 듯한 1악장, 슬픔을 애써 감추고 춤을 추는 듯한 2악장, 거짓 승리에 도취되어 현실에서 눈 돌리는 3악장, 그리고 '죽어가듯이'(morendo)라는 나타냄말과 더불어 절망과 체념 속으로 침잠하는 4악장. 음악을 들으면 슬픈 이야기가 머릿속에 떠오를 듯합니다.

그런데 3악장이 워낙 화려하고 과장되게 뿜빰거리면서 끝나기 때문에, 대개 3악장이 끝나자 마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오곤 합니다. 교향곡이 다 끝난 줄 알고 손뼉을 치는 사람도 있지만, 아닌 줄 알면서 일부러 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예요. 개인적으로는 악장 사이에 손뼉을 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관객의 박수가 3악장에 가득한 반어적 음악 어법의 일부라 볼 수도 있을 듯해요.

진짜 문제는 4악장입니다. 흐느끼듯 시작해서 목놓아 울부짖다가, 나중에는 죽어가듯이 천천히 여리게 끝나는 짜임새 때문이지요. 그래서 연주가 끝난 뒤에도 여운을 즐길 수 있게끔 하는 '침묵 악장'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성급한 박수가 이 '침묵 악장'을 망쳐놓곤 하지요. 지난 2008년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이 곡을 연주했을때, 서울시향 월간지 『SPO』에 기고한 글에서 저는 이렇게 썼습니다:

이날은 잔향이 미처 가시기도 전에 박수가 터져 나오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었으나 잔향이 없어지고 채 5초가 지나지 않아 끝내 성급한 박수가 나왔다. 그때까지 지휘봉을 높이 들고 있던 정명훈은 김 샜다는 듯이 팔을 내리고 말았다. 잔향이 없어지기에 앞서 치는 손뼉을 '안다 박수'라고 하여 비꼬아 말하기도 하는데, 이날 박수는 '안다 박수'는 아니고 '깬다 박수'라고 하더라.

이날 공연은 서울시향 역사에 중요한 이정표로 꼽을 수 있을 만큼 훌륭했습니다. 이후로 '비창 교향곡'은 서울시향이 외국에 나가서도 즐겨 연주할 만큼 서울시향의 대표곡이 되기도 했지요. 정명훈 지휘자의 충격적인 작품 해석으로도 유명한 이 작품을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어떻게 연주할지, 이번 통영 공연을 기대해 주세요!

2011년 8월 25일 목요일

지친 여름이 애수에 잠기는 9월, 《가을, 그리고 저녁》 연주회

정원이 탄식하고 있다.
차가운 빗방울이 꽃잎 속으로 떨어진다.
자신의 마지막을 향하여
여름은 조용히 몸서리친다.

황금빛으로 물든 잎 위에 또다른 잎이
높다란 아카시아 나무에서 떨어진다.
여름은 놀라고 지친 표정으로
한때 정원이었던 죽어가는 꿈을 향해 미소짓는다.

오랫동안 장미꽃 옆에 우두커니 머물러선 채로
여름은 휴식을 그리워한다.
여름은 지친 두 눈을
천천히 내려감는다.

― 헤르만 헤세, 「9월」 (장철환 옮김)

여름이 지나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9월, 헤르만 헤세는 죽음을 노래했습니다. 독일의 9월은 한국보다 좀 더 춥고 쓸쓸하다지만, 9월 24일이면 한국에서도 제법 찬바람이 불어오고 낙엽이 지겠지요. 이런 날, 라흐마니노프와 차이콥스키를 들으며 애수에 잠겨 보면 어떨까요?

이번 《가을, 그리고 저녁》 연주회에서는 대중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을 연주합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과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이 연주되는 이번 음악회는 가을을 맞아 애수에 잠길 수 있는 좋은 자리가 될 것입니다.

서곡으로 장식될 ‘클라우스 아르프(Klaus Arp) ― 《추억》(Mémoire)’ 역시 멜랑콜리한 가을 저녁의 정서에 어울리는 작품이며 현대곡이면서도 대중들에게 쉽게 어필될 수 있는 아름다운 곡입니다. 작곡자 ‘클라우스 아르프’는 구자범 지휘자의 스승이기도 하며 《추억》(Mémoire)은 국내초연으로서 몽환적인 분위기의 선율 속에서 화려한 플롯 솔로가 돋보이는 곡입니다.

"가을, 그리고 저녁"

  • 2011년 9월 24일 토요일
  •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 만 7세 이상 입장가
  • 입장권: VIP 6만원 / R석 4만원 / S석 3만원 / A석 2만원 / B석 1만원
  • 할인: 장애우, 국가유공자, 학생 50% / Art plus 골드회원 40% / Art plus 일반회원, i-Plus카드 30% / KB, BC, 신한, 현대, 삼성카드, 고양문화재단, 인터파크 유료회원 20% / ‘문화 데이트’ 신청은 경기필 사무실에 문의

프로그램

  • 아르프, »Mémoire (추억)« für Flöte und Orchester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c단조 작품 18 (협연: 박종훈)
  •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b단조 작품 74, 《비창》 »Pathétique«

아르프 ― »Mémoire (추억)« für Flöte und Orchester

클라우스 아르프(Klaus Arp)는 독일 작곡가 · 지휘자이며 구자범 지휘자의 스승이기도 하다. 이번 연주회에서 국내 초연되는 《추억》(Mémoire)은 감성적인 미니멀리즘 기법을 사용한 몽환적인 작품으로, 넘실거리는 오케스트라와 화려한 플루트 독주 선율이 돋보이는 곡이다. 김일지 플루트 수석이 독주 선율을 연주한다.

라흐마니노프 ― 피아노 협주곡 2번 c단조 작품 18

라흐마니노프 작품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이며, 이 가운데 2악장은 에릭 카멘(Eric Carmen)이 부른 〈All by Myself〉에 인용되는 등 대중음악에도 곧잘 쓰였다. 또한 권형진 감독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에서 피아니스트 김정원이 이 곡을 연주하는 장면이 나오고, 일본 TV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 제6화에서는 주인공 치아키가 이 곡을 연주한다.

라흐마니노프는 교향곡 1번 초연 때 혹평을 받고 나서 우울증과 슬럼프에 시달리다가 완쾌한 뒤인 1900년부터 1901년 사이에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작곡했으며, 치료를 맡은 니콜라이 달(Nikolai Dahl) 박사에게 작품을 헌정했다.

이 곡은 애수 가득한 분위기와는 달리 연주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곡이며, 한 손으로 온음 9개 간격을 눌러야 하는 등 손이 작은 사람은 연주할 수 없는 곡으로 악명 높다. 이번 연주회에서는 피아니스트 박종훈이 협연을 맡는다.

차이콥스키 ― 교향곡 6번 b단조 작품 74, "비창"

차이콥스키가 마지막으로 작곡한 교향곡이며, 그가 사망하기 9일 앞선 1893년 10월 28일 초연되었다. 이 곡은 앞서 발표된 교향곡과 달리 절망과 체념, 죽음의 정서로 가득한 가운데 쓸쓸히 끝난다. 차이콥스키는 이 곡에 표제가 있다고 밝힌 바 있으나 실제로 알려진 것은 없으며, 음악학자 리처드 타루스킨(Richard Taruskin, b1945)은 이것을 "자살 유서와 같은 교향곡"("symphony as suicide note")이라 했다. (차이콥스키 공식 사인은 콜레라이다.)

이 곡에 '숨은 표제'의 의미와 관련해서는 세 가지 설이 있다. 첫째, 차이콥스키는 동성애 의혹이 있었고, 이것이 문제가 되자 명예로운 자살을 강요받았다는 정황증거가 있다. 이 곡은 동성애 의혹과 관련 있는 조카 블라디미르 다비도프에게 헌정되었다.

둘째, 차이콥스키가 죽기 세 해 앞서 여동생이 죽고, 후원자인 폰 메크 부인과 서신 교류와 경제적 지원이 끊겼다. 폰 메크 부인은 장남이 불치병에 걸린데다 부인 자신도 건강이 악화되어 프랑스로 요양을 났는데, 차이콥스키는 그러한 사정을 몰라 큰 상실감을 느꼈다.

셋째, 당시 러시아 사람들이 비참한 생활을 이어가던 사회상과 관련이 있다는 설이 있다. 차이콥스키는 "오늘날 우리가 겪는 이 비참한 시대에는 오직 예술만이 이 무겁고 숨막히는 현실에서 주의를 돌려줄 수 있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협연자 : 피아니스트 박종훈

이탈리아 산레모 클래식 국제 피아노 콩쿨에서 우승(2000년)하며 세계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한 박종훈은 이후 산레모 심포니와 협연한 갈라 콘서트, 첼리스트 비토리오 체칸티와 함께 한 베토벤 콘서트(로마)가 RAI 이탈리아 국영 방송국에 의해 이탈리아 전국 생방송되기도 하였다. 서울시향, KBS 교향악단을 비롯해서 국내 최고의 오케스트라와 정기적으로 협연 무대를 가져 왔으며 상 페테르부르그 심포니, 브루노 심포니, 슬로박 필하모닉, 아카데미아 필라르모니치 디 베로나 등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협연 하였다. 세계 50여 개의 도시에서 독주, 실내악 연주를 해 왔으며 뉴욕 타임즈의 버나드 홀란드는 그의 연주에 대해 "놀라운 개성, 우아한 음악성" 이라고 평한 바 있다.

2010년 10월 현재, 총 5장의 클래식 앨범과 9장의 재즈/크로스오버 앨범을 발표하였으며 많은 음반에 프로듀서로도 참여해왔다. 2008년 클래식&재즈 레이블 <루비스폴카>를 설립, 실력있는 국내/외 아티스트들의 음반과 공연을 기획/제작하고 있다. 2009년 한국인 연주자 최초로‘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 전곡 연주회’를 예술의전당에서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2010년에도 예술의전당 크로스오버 페스티벌(1월), 호암아트홀 박종훈의 러브레터(3월), 친절한 금희씨:모차르트에 빠지다(11월) 등 활발히 활동 중이다. 2009년 4월부터 1년간 KBS-1FM의 'FM가정음악'을 진행하였고 올 5월에는 아내인 피아니스트‘치하루 아이자와’와 함께 피아노 듀오 음반을 발표하였고, 12월에는 크리스 바가(드럼), 이순용(베이스)와 함께 크로스오버 음반과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노영심과‘크로스 더 피아노’공연을 열었다. 2011년 9월에는 리스트 앨범과 공연(서울LG아트센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연세대 음대에서 이경숙, 줄리어드에서 세이모르 립킨, 이탈리아 이몰라 피아노 아카데미에서 거장 라자르 베르만을 사사하였다.

지휘자 : 구자범

연세대학교 철학과 졸업 후 동 대학원 철학과 재학 중 도독
독일 만하임 음대 대학원 지휘과 졸업
독일 하겐 시립 오페라 극장, 다름슈타트 국립 오페라 극장 지휘자
하노버 국립 오페라 극장 수석 지휘자
광주 시립교향악단 지휘자
현,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 지휘자

― 티켓 예매 ―

고양아람누리
http://www.artgy.or.kr/PF/PF0201V.aspx?showid=0000003323

인터파크
http://ticket.interpark.com/Ticket/Goods/GoodsInfo.asp?MN=Y&GoodsCode=11010067

2009년 8월 31일 월요일

2008.07.05.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 니콜라스 안겔리치 / 정명훈 / 서울시향

서울시향 클라리넷 수석 채재일이 무대를 휘어잡아 《비창 교향곡》 바순 독주를 빛바래게 해버린 연주회. 어마어마한 '포스'를 뿜어내는 진줏빛 소토 보체(sotto voce)에 깜짝 놀랐으나 정명훈이 뿜어내는 존재감이 이날따라 워낙 대단해서 채재일한테 논점을 모아주기 어려웠다. 이 일이 못내 아쉬워서 다음 연주회 때 맘먹고 칭찬한다는 게 고작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4악장 2주제... -_-; 이날 숨은 주인공은 채재일이었다. 완소 채재일 씨 짱 드셈. >_<


2008년 7월 5일(토)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정명훈
협연자 : 니콜라스 안겔리치(피아노)

Beethoven, Piano Concerto No. 5 in E-flat, Op. 73 "Emperor"
Tchaikovksy, Symphony No. 6 in b, Op. 74 "Pathetique"


정명훈이 서울시향을 지휘할 때면 앙상블이 갑자기 크게 좋아지곤 한다. 정명훈이 지휘를 잘하기도 하고 대가의 존재감 때문에 단원들이 열심히 연주하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이름난 외국 악단에서 객원 연주자를 데려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객원 덕에 앙상블이 좋아졌으니 진짜 서울시향 실력이 아니라고 나쁘게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꼭 그렇지만도 않다. 객원 연주자의 수준 높은 연주를 시향 단원들이 듣고 배울 테니 말이다. 서울시향은 그 뒤로도 '찾아가는 연주회' 등으로 같은 곡을 '복습'하면서 배운 것을 바로 써먹을 수 있다. 또 객원으로 왔다가 단원으로 눌러앉는 사람도 더러 있다. 악장 스베틀린 루세브나 팀파니 수석 아드리앙 페루숑이 그렇다. 옛날에는 시향 단원이 객원 연주자를 따라가지 못해서 객원들만 두드러질 때가 잦았지만, 요즘은 크게 나아져서 오케스트라 전체가 함께 성장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날 연주는 그 가운데서도 손꼽을 만큼 훌륭했다.

니콜라스 안겔리치가 협연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은 무척 낯설게 들렸다. 서울시향은 대편성으로 묵직하게 밀어붙였지만 안겔리치는 오케스트라에 팽팽하게 맞서지 않고 살짝 흘리면서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연주했다. 또 마치 쇼팽을 연주하듯 루바토를 과장해서 쓰고 곳곳에서 소토 보체(sotto voce)로 연주하는가 하면 페달을 너무한다 싶을 만큼 잔뜩 써댔다. 무대로 걸어나올 때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던 생각이 겹치면서 협연자가 몸이 아프지는 않은가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아무래도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았다. 엉터리 연주라고 화를 내야 할까. 생각 끝에 나는 참신한 해석이라고 좋게 여기기로 했다.

우리는 어쩌면 '황제'라는 표제 때문에 생각이 틀에 박혀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표제는 악보 출판업자가 장삿속으로 붙였을 뿐 작품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 작품은 그저 피아노 협주곡일 뿐이며 '황제'와 관련한 상상을 보태어 그에 걸맞은 웅장함을 바라는 것은 잘못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이봐, 그래도 안겔리치는 너무하지 않아? 저게 쇼팽이지 어딜 봐서 베토벤이라는 거야?" 그 말대로 안겔리치가 한 연주는 베토벤답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꼭 베토벤다워야 할 까닭이 있는가? 움베르토 에코는 '작품을 내놓고 나면 작가는 죽어야 한다.'라고 했다. 작가가 의도한 것만을 고이 받들어 모실 게 아니라 누구나 자유롭게 열린 해석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제까지 알고 있던 '황제 협주곡'은 잠시 잊어버리고 연주자가 내놓은 색다른 해석을 기꺼이 받아들여 보면 어떨까?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연주는 오늘따라 더욱 뛰어난 서울시향의 앙상블과 '다크 포스' 넘치는 정명훈의 해석이 맞물린 명연주였다. 1악장에서 음악에 긴장감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거대한 크레셴도를 만드는 솜씨가 훌륭했고 바순과 클라리넷 독주 또한 표정이 잘 살아있는 뛰어난 연주였다. 마디 161에서 터져 나온 총주는 어찌나 사나운지 바로 앞에서 울다 지쳐 잠드는 듯하던 클라리넷 소리를 갈가리 찢어발기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일부 러시아 지휘자가 남긴 녹음과는 달리 트럼펫을 앞세워 귀 따갑게 으르렁거리지 않고 악기 사이에 균형을 잘 맞췄다.

3악장에서는 빠른 템포로 달리면서도 앙상블이 흐트러지지 않은 점이 매우 훌륭했다. 긴장감을 조금씩 쌓아올리다 마디 229에서 크게 터트릴 때에는 특히 현이 몹시 날카롭게 끊어 긁어대며 섬뜩한 소노리티를 만들어내었다. 차갑게 비웃는 듯한 행진곡 리듬이 내가 이제껏 들어본 그 어떤 연주보다도 폭력적이고 무시무시했다. 마치 나치 시대 독일군 사열식을 보는 것처럼, 또는 스탈린 시대 러시아 군대처럼, 또는….

4악장은 슬프고도 슬펐지만 어딘가 이상했다. 현이 울부짖지 않고 왠지 차갑게 가라앉은 것 같았고, 절망 속에서 처절하게 허우적거리는 대신 차분히 관조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디 81에서는 게네랄파우제(Generalpause)를 생각보다 가볍게 다루어 바로 뒤이어 목놓아 울어대는 바이올린과 첼로에 무게를 실어주지 않았다. 곡이 끝날 때 콘트라베이스가 연주하는 셋잇단음 리듬은 심장이 조금씩 느려지다가 멈추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이날 연주는 여기에서도 생각보다 담담했다. 정명훈이 표현하는 절망이 이만큼밖에 깊지 않다고 믿기는 어렵다. 정명훈은 왜 그랬을까?

답은 앙코르에서 드러났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 4악장을 앙코르로 연주한 것이다! (4악장을 통째로 연주하지는 않고 마디 60부터 148까지를 건너뛰었다.) 정명훈은 차이콥스키가 교향곡 5번 4악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가짜 승리'라도 억지로 '5악장'으로 덧붙여 절망과 체념 속에 주저앉지 않으려고 했나 보다. 심벌즈를 세 대나 그러모아 요란하게 쳐댄 것은 더더욱 교향곡 5번 4악장 같은 역설을 만들어내었다. 그러고 보니 '앞선 악장'에서 정명훈이 절망과 체념 대신 담으려고 했던 것은 커다란 분노가 아니었을까. 정명훈이 옛날부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아니면 요즘 들어 무슨 일을 겪었는지 궁금하다.

이날 연주가 끝나고 누리꾼 사이에 박수 예절을 놓고 논란이 되었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3악장이야 워낙 '뿜빰빰'하고 법석을 피우며 끝나니 박수가 터져 나오는 일은 이제 당연한 일(?)이기도 하며 더군다나 알면서 일부러 박수를 보내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4악장은 죽어가듯이 천천히 여리게 끝나기 때문에 여운을 주는 '침묵 악장'이 매우 중요하다. 이날은 잔향이 미처 가시기도 전에 박수가 터져 나오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었으나 잔향이 없어지고 채 5초가 지나지 않아 끝내 성급한 박수가 나왔다. 그때까지 지휘봉을 높이 들고 있던 정명훈은 김 샜다는 듯이 팔을 내리고 말았다. 잔향이 없어지기에 앞서 치는 손뼉을 '안다 박수'라고 하여 비꼬아 말하기도 하는데, 이날 박수는 '안다 박수'는 아니고 '깬다 박수'라고 하더라. 성급한 박수는 여운을 즐기려는 다른 관객에게 피해를 주니 곡이 조용히 끝날수록 조심하자.

정보공유라이선스

김원철. 2008.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글 찾기

글 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