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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19일 수요일

베를리오즈 로마의 사육제 서곡,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통영국제음악당 공연 책자에 실릴 프로그램 노트입니다. 헛소리가 있다거나 맞춤법이 틀렸다거나 등등 마구 지적해 주세요. ^^


베를리오즈: 로마의 사육제 서곡

이 곡은 오페라 〈벤베누토 첼리니〉에 나오는 사육제 길거리 장면과 사랑의 이중창 등을 따와 쓴 관현악곡입니다. 오페라에서 사람들이 "아! 트럼펫 분다, 백파이프 분다, 탬버린 두드린다." 광대들이 "재주꾼 보러 오세요!" 하고 외치는 대목이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지요. 이 대목의 리듬은 이탈리아 춤곡 리듬인 살타렐로(Saltarello), 림스키코르사코프 〈셰에라자드〉 4악장에 나오는 그 광란의 리듬입니다.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와 더불어 특히 "재주꾼 보러 오세요!" 할 때 저음 하행 음형이 매력적이고, "베네 부아, 베네 부아, 라빌 옴므!"(Venez voir, venez voir, l’habile homme!) 하는 원어 가사와도 기막히게 어울리지요.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차이콥스키는 랄로의 〈스페인 교향곡〉에 영감을 받아 이 곡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스페인 교향곡〉은 제목과 달리 바이올린 협주곡이라 할 수 있는데, 차이콥스키는 무엇보다 랄로가 "심오함을 담으려 집착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뻔한 곡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고, 새로운 형식을 추구하며, 독일 사람처럼 확립된 전통을 답습하는 대신에 음악적인 아름다움을 더 많이 생각한다"고 평가했습니다.

통영국제음악당에 자주 오시는 분이라면 제가 다른 글에서 몇 차례 설명한 이른바 '베토벤 딜레마'를 기억하실 겁니다. 베토벤이 고전주의를 해체하고 낭만주의 시대를 열어젖혔지만, 베토벤이 남긴 음악적 유산이 낭만주의 시대정신과 썩 잘 들어맞지는 않았다고요. 베토벤의 '논리적'이고 심오한 음악 어법과 '어둠에서 광명으로' 패러다임이 체질적으로 맞지 않았던 차이콥스키에게 이 딜레마는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였지요. 차이콥스키가 '독일 전통'에 반감을 보인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차이콥스키가 '베토벤 패러다임'을 극복하고 대안을 제시하려 애썼던 사정을 헤아릴 때, 그가 남긴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바로 이 곡을 꼽을 만합니다. 차이콥스키가 〈스페인 교향곡〉을 칭찬한 말을 이 작품에 그대로 돌려줄 수 있을 듯해요. 1악장에서 3악장까지 쉼 없이 이어지며 처음부터 끝까지 귀에 쏙쏙 들어오는 선율과 리듬으로 가득한 이 곡은, 그래서 그냥 음악에 몸을 맡기고 연주자의 화려한 불꽃 테크닉을 즐기는 것이 가장 훌륭한 감상법이 아닐까 합니다.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드보르자크 '신세계 교향곡' 4악장의 저 유명한 주제는 클래식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도 익숙하다고 느낄 만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를테면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4악장에 나오는 이른바 '환희의 송가'와 견줄 수 있겠고요. 곡 제목만 보고 갸우뚱할 사람이라도 스포츠 경기장에서 자주 들을 수 있고 이종범 선수 응원가로도 유명한 바로 그 선율, 또 386세대는 '전대협 팡파르'(?!)로 기억한다는 바로 그 선율을 듣는 순간 바로 알아챌 수 있을 테지요.

"신세계로부터"(From the New World)라는 표제는 당시에 '신대륙'이라 불리던 아메리카를 말합니다. 이 곡을 쓸 때 드보르자크는 뉴욕에 있던 아메리카 국립음악원 원장이었는데, 그 전에 프라하 음악원 작곡과 교수로 있다가 파격적인 조건으로 음악원장 자리를 제의받아 미국에 갔고, 덕분에 '신대륙' 문물과 자연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메리카 국립음악원은 안타깝게도 드보르자크 퇴임 이후 쇠퇴하다가 대공황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네요.)

한편, 이 작품은 롱펠로 서사시 『하이아와사의 노래』(The Song of Hiawatha)를 원작으로 하는 오페라 또는 칸타타를 쓰기 위한 실험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하이아와사는 아메리카 토착민 부족(국가) 연합체인 이로쿼이 연맹(Iroquois League)을 만들어 이끌었다는 사람이지요. 그리고 저넷 서버(Jeanette Thurber)가 드보르자크를 국립음악원장으로 초빙하면서 미국 오페라 부흥에 힘쓸 것과 특히 『하이아와사의 노래』에 바탕을 둔 작품을 쓸 것을 조건으로 달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끝내 오페라/칸타타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작곡가가 밝히기를, 3악장은 『하이아와사의 노래』에 나오는 축제 장면을 소재로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악장의 강렬한 리듬은 '인디언의 춤'을 상상하면서 썼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음악학자 마이클 베커만의 의견을 좇자면, 저 유명한 2악장 잉글리시 호른 선율은 하이아와사의 구애 장면 또는 신부로 맞이한 '민네하하'와 함께 여행하는 장면에 해당합니다. 2악장이 구슬프게 바뀌는 중간 대목은 민네하하의 죽음 및 장례와 관련 있고, 음악학자 리처드 타루스킨은 2악장 선율이 중간에 살짝 끊겼다 이어지곤 하는 대목을 베토벤 교향곡 3번 2악장 '장송행진곡' 끝 부분과 견주기도 했습니다.

'신세계 교향곡'은 클래식 음악 초심자용으로 곧잘 추천되지요. 선율과 리듬이 귀에 쏙쏙 들어오고 형식 또한 깔끔하기 때문입니다. 1악장과 4악장은 소나타 형식, 2악장은 겹세도막 형식, 3악장은 스케르초와 트리오 형식이고, 관련 지식이 있는 분은 머릿속으로 짜임새를 그려 가면서 감상하시면 좋습니다. 잘 모르는 사람은 그냥 편하게 들어도 좋아요.

2010년 1월 26일 화요일

2009.12.22. 라벨 피아노 협주곡 / 《스페인 랩소디》 /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 ― 조성진 / 정명훈 / 서울시향

2009년 12월 22일(화) 오후 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지휘 : 정명훈
협연 : 조성진

Ravel, Rapsodie espagnole
Ravel, Piano Concerto in G major
Berlioz, Symphonie Fantastique, Op.14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 ㅡ,.ㅡa


조성진은 지난 11월에 만 열다섯 나이로 하마마쓰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한 천재다. 이 콩쿠르는 생긴지 얼마 안 되었으나 지난 우승자가 가브륄리크, 블레하치 등 매우 화려해서 이번 우승은 대단한 사건이다. 덕분에 많은 기대를 모은 이날 연주회에서 조성진은 앳된 얼굴과는 너무도 다른 훌륭한 라벨 피아노 협주곡을 들려주었다.

조성진이 천재인 까닭은 자연스러운 프레이징과 루바토, 세련된 셈여림 따위로 음악을 다스릴 줄 알기 때문이다. 이것은 작품 구조와 흐름을 이해하고 음 하나하나가 그 흐름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판단할 줄 알아야 할 수 있는 일이다. 테크닉만 앞세우면 기계처럼 딱딱해지게 마련이고, 흐름에 어울리지 않는 루바토를 써 봐야 유치해질 뿐이다. 그러나 조성진은 음악에 끌려가지 않고 다스릴 줄 아는 경지에 벌써 올랐다. 그 '다스림'은 19세기 음악 패러다임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했는데, 덕분에 이날 2악장이 참으로 멋졌다. 다만, 1·3악장에서는 좀 더 현대음악 느낌을 살렸으면 하는 욕심이 들 때도 더러 있었다. 음색을 제법 다채롭게 쓸 줄은 아는 듯했으니 오케스트라 협연 경험이 더 쌓이면 음색을 빚어내는 솜씨도 같이 늘어나리라 기대된다.

라벨 《스페인 랩소디》는 화려한 음향효과로 가득해서 지휘자가 소리를 얼마나 멋지게 다듬느냐와 오케스트라가 지휘자를 얼마나 따라가느냐가 중요한 곡이다. 이날 연주는 정명훈서울시향 이름에 걸맞게 참으로 멋졌다. 무엇보다 트럼펫 수석이 눈에 번쩍 띄었는데, '트럼펫' 하면 생각나는 금빛 눈부시게 번쩍이는 바로 그 소리에 소름이 돋는 듯했다. 옛 수석이었던 가레스 플라워스가 떠난 자리가 제법 커 보이던 마당이라 이 연주자가 더욱 반가웠으며, 음색만큼은 플라워스보다 나은 듯해서 베를리오즈를 기대하게 했다.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은 영화에 빗대자면 B급 영화라 할 수 있다. 기괴한 4·5악장이 아니더라도 악보를 보면 음표 하나하나가 신경질을 부리는 듯한 느낌이 들며, 길고도 처절하게 궁상맞은 ― 차마 속된 말을 쓰지 못함을 양해 바란다 ― 3악장은 이어지는 악장을 헤아리게끔 한다. 이러한 'B급' 정서는 음반으로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을 때가 잦은데, 정명훈은 바스티유 오페라와 함께 녹음한 음반에서 아예 불편한 정서를 싹 발라내고 세련된 음악으로 만들었으며 4·5악장은 사악한 느낌이 없으면서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화끈하다.

이날 서울시향 연주 또한 음반과 비슷했다. 클라리넷이 연주하는 첫 음을 살짝 늘여서 티 나지 않게 아첼레란도를 쓴 듯한 효과를 노렸으며, 첫 템포는 악보에서 지시한 ♩= 56보다 훨씬 느린 ♩= 36쯤으로 꿈처럼 어른어른한 느낌을 살렸다. 마디 17을 비롯해 이 곡에서 자주 나오는 지시어인 'animando'(생기있게)는 맥락을 보면 아첼레란도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명훈은 제대로 살리면 매우 신경질적인 이 지시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자연스러우나 무디지 않은 템포 변화를 주었다. 2악장 마디 43 등에 나오는 기괴한 바이올린 글리산도는 포르타멘토처럼 살짝만 미끄러져서 세련된 분위기를 잃지 않았다. 3악장에서는 이 악장이 얼마나 사랑스럽게 들릴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맑고 잔잔한 프레이징이 돋보였다.

4·5악장에서는 코넷과 트럼펫 따위를 너무 앞세우지 않고 모든 성부가 또렷이 들리게끔 균형을 맞추었다. 음반을 들어보면 무엇보다 5악장 '마녀의 론도'(Ronde du Sabbat)에서 정명훈만큼 음 하나하나를 잘 살린 녹음도 없는 듯한데, 이날은 튜바 따위가 좀 더 힘을 내었으나 코넷·트럼펫과 균형이 제법 잘 맞으면서도 좀 더 화끈했다. 4악장 코넷·트럼펫 선율은 보통 음 하나하나를 끊어(마르카토) 연주하나 정명훈은 제법 부드러운 논 레가토(non legato)로 다스렸다. 그러나 큰북과 팀파니 등이 힘껏 두드려대어서 화끈함을 잃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음반과 뚜렷하게 다른 곳도 있었다. 이를테면 2악장에서 음반에서는 썼던 코넷을 이날은 쓰지 않았다. (2악장 코넷 성부는 베를리오즈가 나중에 자필 악보에 덧붙였으나 그냥 빼고 연주할 때가 잦다.) 1악장 마디 167에 있는 도돌이표 또한 음반과 달리 생략했다. 1악장 마디 198에서는 악보에 없는 아첼레란도를 썼는데, 이날은 음반처럼 가파르지 않고 아주 살짝만 빨라졌다.

라벨 《스페인 랩소디》에서 멋진 트럼펫 연주를 들려주었던 수석 연주자가 이번에는 코넷을 야무지게 연주했고, 클라리넷 수석 채재일은 장식음과 트릴로 가득해서 어렵기로 소문난 5악장 독주부를 음반과 거의 같은 빠른 템포로 나무랄 데 없이 연주했다. 3악장에서는 제임스 버튼이 연주한 잉글리시 호른과 이미성이 무대 밖에서 연주한 오보에가 마치 《라 트라비아타》 1막처럼 사랑스러운 선율을 주고받았다.

2009년 9월 2일 수요일

2008.11.25. 베를리오즈 로마의 사육제 서곡 / 모차르트 플루트 협주곡 2번 K314 / 드보르자크 교향곡 6번 - 샤론 베잘리 / 조앤 팔레타 / 서울시향

2008년 11월 25일(화)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JoAnn Falletta
협연자 : Sharon Bezaly

Berlioz, Le carnaval romain Overture
Mozart, Flute Concerto No. 2 in D, K. 314
Dvorak, Symphony No. 6 in D, Op. 60



콘트라베이스는 다른 악기 뒤에서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느라 눈길을 많이 받지 못하는 악기다. 더군다나 옛날에는 제 선율을 갖지도 못하고 첼로 선율을 한 옥타브 밑에서 따라가면서 힘을 보태는 일만 하다가 베토벤이 처음으로 콘트라베이스에 따로 선율을 붙여주었다. 19세기 후반 즈음에는 드물게 콘트라베이스가 '주인공' 노릇을 하는 일도 생겼는데 베를리오즈 <로마의 사육제> 서곡이 바로 그렇다.

선율 구조와 관현악법 따위를 머리 아프게 따지는 대신 원작 오페라 <벤베누토 첼리니>에 기대어 쉽게 살펴보자. 사육제로 떠들썩한 광장에서 "재주꾼 보러 오세요! Venez voir l’habile homme!" 하면서 '나발'을 불며 눈길을 끄는 사람들이 있다. 이 재주꾼들이 묵직한 저음으로 노래하고 구경꾼들은 남녀노소로 재주꾼과는 음색이 뚜렷이 구분된다. 게다가 재주꾼이 "베네 봐, 베네 봐 Venez voir, Venez voir" 하는 말소리가 주는 느낌도 어딘가 묵직하다. <로마의 사육제> 서곡에서는 재주꾼이 부르는 노래가 주로 저음 현으로 나타나고 나머지 악기가 구경꾼 떠드는 소리로 주거니 받거니 한다.

서울시향의 연주는 제법 훌륭했으나 콘트라베이스가 '구경꾼' 떠드는 소리에 살짝 묻힌 점이 아쉬웠다. 그나마 마디 132 등에서 디미누엔도를 뚜렷하게 해주어 뒤이어 터져 나오는 '베네 봐' 하행 선율을 상대적으로 두드러지게 한 것은 좋았다. 그러나 마디 128에서 '쾅!' 할 때부터 다른 악기에 밀리지 않고 앞으로 튀어나오는 게 좋다고 본다. 카라얀은 아예 콘트라베이스를 맨 앞에 내세워 19세기 록 음악(?)처럼 다루지 않았던가!

플루트 연주자는 외모와 상관없이 모두 공주병 환자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사람이 악기를 닮는다는 속설도 있거니와 플루트가 주는 느낌이 어딘가 '공주님스럽기' 때문이다. 모차르트 플루트 협주곡 2번을 협연한 샤론 베잘리는 인형처럼 예뻐서 더욱 공주님 같았으나 막상 연주를 들어보니 어째 말괄량이 같았다. 혀 튕기는 소리가 크고 비브라토 진폭이 커서 플루트다운(?) 맑고 은은한 소리를 해치곤 했다. 그러나 '공주님 환상'에서 깨고 나니 다른 게 보였다. 이 작품에 이렇게 다양한 표정을 담아낼 수 있다니! 실연이라 그런지도 모르지만 프레이즈마다 소리가 이리저리 바뀌는 것이 매우 또렷하게 느껴졌다. 악보에 없는 장식음도 쓰고 1악장 카덴차 앞뒤 트릴은 악보에 있는 음보다 한 옥타브 높게 연주하기도 했다. 카덴차에서는 마치 모차르트 자신이 플루트로 장난을 치는 듯했다. 그런가 하면 2악장 카덴차에서는 얌전 빼는 소리를 못 내는 게 아니라는 듯 은가루 똑똑 떨어지는 듯한 고운 소리를 자랑하기도 했다.

드보르자크 교향곡 6번 연주는 모난 데 없이 깔끔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듣는 이를 홀리는 색다른 맛이 없고 평범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지휘자 조앤 팔레타는 2악장 템포를 느리게 잡은 것 빼고는 대부분 메트로놈 지시를 꼼꼼하게 지켰다. 그러나 현이 마르카토로 두터운 화음을 잇달아 연주하는 마디 498에서는 템포가 꽤 빨라서 화음이 주는 무거운 느낌에 비해 너무 서두른다 싶었으며 4악장을 시작할 때에는 더욱 그랬다.

3악장 시작할 때에는 5도 상행 음형을 되풀이하면서 살짝 아첼레란도를 쓰다가 이어지는 총주에서 원래 템포로 돌아가는 듯했는데, 크레셴도 지시와 맞물려 참신하기는 했지만 베를린필 같은 특급 악단이 아니면 감당하기 어려울 듯싶었으며, 서울시향은 아첼레란도를 썼는지 잠시 템포가 흐트러졌는지 헷갈렸고 살짝 어수선한 느낌도 들었다.

이 작품에서 가장 멋있는 곳을 말하라면 나는 3악장 트리오에 나오는 피콜로 선율(마디 159)을 꼽겠다. 단순한 선율이지만 이보다 더 피콜로를 돋보이게 하는 곡이 또 있을까? 긴장감 넘치는 주요 주제와 뚜렷이 대비되고 가늘고 맑은 피콜로 음색이 더해져 마치 어둠 속에서 한 줄기 환한 빛이 솟아나는 듯하다. 그런데 이날 피콜로 연주는 매우 아름다웠지만 템포가 갑자기 두 배나 느려져서 오히려 반짝반짝하는 느낌을 해치고 조금 유치해져 버려서 아쉬웠다. 눈치를 보아하니 피콜로 연주자가 하는 대로 지휘자가 맞춰준 듯한데, '조금 끌듯이 poco sostenuto'라는 지시어가 갑자기 템포를 두 배나 늦추라는 뜻은 아님을 되새길 일이다.

베를리오즈 <로마의 사육제>를 들으면서 마디 262에서 트럼펫 소리가 좀 더 컸으면 싶었는데, 드보르자크 교향곡 6번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트럼펫 파트가 튼튼하지 못한 듯했다. 특히 4악장에서 뒤로 갈수록 더해서 트롬본이 대신 빈자리를 메우느라 밸런스가 깨지곤 했다. 이것은 서울시향 개편 초기에 나타나던 문제인데 가만 보니 지난 정기연주회에서 돋보이던 트럼펫 수석이 자리에 없더라.

요즘 서울시향 객원지휘자로 '나이 어린 여자'와 '휠체어 탄 흑인' 등이 잇달아 나와서 재미있다. 그만큼 차별이 줄어든 탓일 텐데, 언젠가 마린 앨솝이 지휘하는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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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8.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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