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국제음악당 공연 프로그램북에 실릴 글입니다.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21번 e단조 K. 304
"강요하지 않는 슬픔이 우리 귀를 휘감습니다. 태연한 얼굴로 가슴 아프게 하기, 바로 모차르트의 특기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 인용할 만한 문구가 있을까 싶어 검색했더니, 중앙일보 김효은 기자님이 이렇게 쓰셨네요. 모차르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많이들 공감할 말이지요. 모차르트 음악은 밝으면서 이상하게 슬픈 느낌이 들고, 슬픈 듯하면서 또 밝아요. 때로는 슬프지 않은 척하는 표정이 눈에 보이는 듯해서 더욱 슬프기도 합니다.
모차르트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1778년에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e단조 소나타를 썼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에는 슬픔이 겉으로 제법 드러나는 편이지만, 슬픔을 감추려는 억지웃음 또한 음악에 가득한 점이 역시 모차르트답습니다.
윤이상: 바이올린 소나타
윤이상 음악 양식은 1975/76년부터 큰 변화를 맞이합니다. 이른바 '동베를린 사건'과 그에 따른 후유증이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고들 하지요. 이때부터 작곡가는 추상적인 구조보다는 음악 외적인 '메시지'를 음악에 담고자 했고, 그에 따라 더 자유로운 짜임새로 더 감성적인 음악을 쓰고자 했습니다. 바이올린 소나타는 작곡가가 죽기 4년 앞선 1991년에 남긴 작품입니다.
음악학자 볼프강 슈파러는 이 곡에서 바이올린이 작곡가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분석합니다. 그렇다면 바이올린 소리를 사람 목소리라 생각하고 음악을 들어 보세요. 바이올린이 무언가를 말하고 있어도 가사를 알아들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목소리에 실린 감정만큼은 생생하게 느껴질 거예요. 이 곡에서 바이올린은 울고, 웃고, 고통받고, 절규하고, 탄식하고, 저항합니다.
곡 전체의 클라이맥스라 할 만한 곳에서 바이올린은 자꾸만 높은 음으로 노래하다가 끝내 '해탈'에 이릅니다. 그러나 여기서 느껴지는 감정은 깨달음을 얻은 환희가 아닙니다. 그냥 세상 번뇌를 다 놓아버리는 것이 '해탈'의 실체인 듯해요. 그렇게 슬픈 카타르시스가 가장 높은 음에서 별빛처럼 아름답게 반짝입니다. 그리고 속세에 찌꺼기처럼 남은 먹먹함이 천천히 음악을 끝맺습니다.
2024. 9. 26. 수정 텍스트:
윤이상은 더 한국적인 (또는 동아시아적인) 울림을 담아내는 방향으로 자신의 음악 양식을 꾸준히 변화시켰다. 이른바 '동베를린 사건'을 겪고 그 후유증에 시달리던 1975/76년 이후의 변화는 특히 뚜렷하다. 이때부터 작곡가는 추상적인 구조보다는 음악 외적인 메시지를 작품에 담고자 했고, 음악을 통한 '해탈'을 추구했으며, 그에 따라 더 자유로운 짜임새로 더 감성적인 음악을 쓰고자 했다.
유럽인의 시각으로 본 윤이상은 1970년대 중반 이후 더 많은 '협화음'을 작품에 허용하고 있었고, 이것은 최첨단 현대음악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음악에 담긴 동아시아적 요소를 서양인들은 그다지 섬세하게 이해하지 못했고, 일본이나 중국과 다른 한국적 요소에 관한 서양인의 이해는 더욱 얕을 수밖에 없었다. 윤이상의 음악은 더 쉬워지는 동시에 더 어려워졌다. 바이올린 소나타는 작곡가가 죽기 4년 앞선 1991년에 남긴 작품이다.
음악학자 볼프강 슈파러는 이 곡에서 바이올린이 작곡가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분석한다. 그렇다면 바이올린 소리를 사람 목소리라 생각하고 음악을 들어 보면 어떨까. 바이올린이 무언가를 말하고 있어도 가사를 알아들을 수는 없다. 그러나 목소리에 실린 감정만큼은 생생하게 느껴질 것이다. 이 곡에서 바이올린은 울고, 웃고, 고통받고, 절규하고, 탄식하고, 저항한다.
곡 전체의 클라이맥스라 할 만한 곳에서 바이올린은 자꾸만 높은 음으로 노래하다가 끝내 '해탈'에 이른다. 그러나 여기서 느껴지는 감정은 깨달음을 얻은 환희가 아니며, 세상 번뇌를 다 놓아버리는 것이 '해탈'의 실체인 듯하다. 그렇게 슬픈 카타르시스가 가장 높은 음에서 별빛처럼 아름답게 반짝인다. 그리고 속세에 찌꺼기처럼 남은 먹먹함이 천천히 음악을 끝맺는다.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2번 A장조 Op. 100
이 작품은 브람스가 교향곡 4번을 초연한 이듬해인 1886년, 작곡가로서 명성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남긴 걸작입니다. 브람스는 적어도 형식적인 측면에서 베토벤을 가장 훌륭하게 계승한 19세기 작곡가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베토벤이 음악 유산으로 남긴 작곡 기법이 낭만주의 시대의 '노래하는 선율'과 맞지 않았던 딜레마를 브람스는 정면 돌파해 해결했지요.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2번은 정교한 구조 속에서 주제를 변화 · 발전시키는 일이 노래를 닮은 아름다운 선율로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탁월하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브람스 작품이 흔히 그렇듯, 이 곡은 그래서 악보를 분석할수록 그 짜임새에 탄복하게 됩니다. 브람스는 실제로 비슷한 시기에 쓴 가곡들을 이 작품에 슬쩍 인용하기도 했는데, 얼핏 들어서는 알아채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편, 1악장 첫 세 음과 그에 딸린 화음이 바그너 오페라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 중 '발터'가 부르는 노래 "Morgenlich leuchtend im rosigen Schein"(아침 햇살 장밋빛으로 빛나네)과 같다는 사실은 흥미롭습니다. 브람스가 이것을 일부러 인용한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제 생각에 브람스가 모르고 그랬다고 믿기는 어려워요. 브람스와 바그너 중 베토벤의 진정한 후계자가 누구인가를 놓고 유럽 음악계 전체가 '패싸움'을 벌인 역사적 사실까지 헤아리면 더욱 재미있죠.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
"[…] 오케스트라 전체를 감싸는 촘촘한 그물을 형성하며 매 순간 그 구조를 결정한다. […] 이러한 그물은 베토벤이 주제를 다루는 방식과 한 가지 근본적인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즉 균형 잡힌 선율적 악절보다는 모티프의 논리에 의해 음악 형식이 이루어진다."
음악학자 카를 달하우스가 바그너의 라이트모티프(Leitmotiv)를 설명한 말입니다. 특정한 음악으로 인물 · 사건 · 감정 등을 떠올리게 하는 기법은 요즘에는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도 곧잘 쓰이지요. 이것을 흔히 '라이트포티프'라고 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연상작용만으로 라이트모티프라 할 수는 없어요. 달하우스가 설명한 것은 주제를 발전시키는 방법이고, 결국 베토벤 음악 어법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엮여 있습니다.
라이트모티프에서 '드라마'를 빼고 나면 세자르 프랑크가 사용한 주제 발전 기법이 됩니다. 주제 선율의 원형을 중심에 놓고 주변 요소를 그물망처럼 엮어 바꿔나가면, 듣는 사람이 인지할 수 있을 만큼 적당히 달라진 선율과 리듬이 자꾸만 되풀이되면서 음악의 뼈대가 형성되지요. 바그너는 사실 리스트가 사용한 기법을 받아들였고, 프랑크는 리스트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기법을 개발했습니다. 소수 의견이지만 리스트보다 프랑크가 먼저라는 주장도 있어요.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는 이런 음악 어법이 원숙한 형태로 나타나는 작품입니다. 1악장에 나오는 주제 선율이 다른 악장에서 달라진 모습으로 되풀이되지요. 서늘하고 쓸쓸한 바이올린 소리와 두텁게 쌓인 화음으로 신비롭게 들리는 피아노 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마지막 악장의 즐거운 돌림노래가 백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