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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7일 금요일

안톤 브루크너, 광막한 우주의 신 앞에 선 단독자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까마득한 날에 / 하늘이 처음 열리고 /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많이들 아실 듯한 이 시는 이육사 선생의 ‹광야›입니다. 시에 담긴 '스케일'이 참 대단하지요. 음악 중에서도 이렇게 거대한 시공간을 담아낸 작품이 더러 있지만, 오스트리아 작곡가 안톤 브루크너만큼 어마어마하게 광대한 세계를 담아낸 작곡가는 없을 듯합니다.

브루크너는 본디 교회 오르간 연주자이자 성가대 지휘자였습니다. 그래서 브루크너가 쓴 교향곡에서도 오르간 느낌이 물씬 나지요. 음악학자 리처드 타루스킨은 브루크너 교향곡의 느린 악장에서 긴 호흡으로 끌고 가는 방식, 그리고 빠른 악장에서 규칙적인 리듬으로 반복음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 등을 오르간의 영향으로 분석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두텁고 대담한 화성 진행과 관현악법 등에서 오는 음향 효과 또한 오르간 느낌을 만들어 내는 중요한 요인일 겁니다. 그 대담함이 얼마나 시대를 앞서 갔는지는 한 가지 사실을 알고 나면 분명해 집니다. 브루크너는 브람스보다 9년 먼저 태어나 1년 먼저 죽었습니다. 브람스의 후대 작곡가가 아니에요!

브루크너의 음악 어법이 너무나 시대를 앞서갔던 까닭에, 그의 제자들은 브루크너 교향곡 악보를 출판하면서 동시대인의 눈높이에 맞게끔 악보의 세부 지시를 고치려고 했습니다. 성격이 똑부러지지 못했던 브루크너는 그걸 허락하고 말았지요. 그 결과로 브루크너 악보는 판본 문제가 매우 복잡합니다.

지휘자 지크문트 폰 하우제거는 1932년에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을 두 차례 잇따라 연주하는 특이한 공연을 열었습니다. 한 번은 페르디난트 뢰베가 1903년에 출판한 악보를 사용했고, 다른 한 번은 브루크너의 자필 악보에 충실했지요. 이 공연은 음악계에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때까지 브루크너의 의도가 얼마나 심각하게 왜곡되어 왔는지를 사람들이 똑똑히 알게 됐거든요.

브루크너 악보의 판본 문제에 가장 먼저 관심 가졌던 사람은 음악학자 로베르트 하스(Robert Haas)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하스가 수정한 판본마저도 작곡가의 의도를 왜곡했다는 평가를 받곤 합니다.

"(로베르트 하스는) 소리를 좀 더 명료하게 하고자 의도적으로 브루크너의 아이디어를 바꿔 놓았다. 하지만 브루크너는 당대의 혁신적인 작곡가였고, 나는 브루크너가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하스가 했던 것과 달리, 악보에는 어떠한 수정도 필요하지 않다고 믿는다."

지휘자 파비오 루이지가 브루크너 교향곡 9번 판본에 관해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루이지가 말한 '하스 판본'은 지크문트 폰 하우제거가 파란을 일으켰던 그 판본이 1934년에 출판된 것이며, 알프레드 오렐(Alfred Orel) 이 출판을 이끌었다고 해서 '오렐' 판본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음악학자 레오폴트 노박(Leopold Nowak)은 하스-오렐 판본의 오류를 고쳐서 1951년에 새로운 브루크너 교향곡 9번 악보를 출판했습니다. 파비오 루이지가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함께 녹음한 유명한 음반이 이 판본을 사용했지요. 루이지는 오는 10월 14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KBS교향악단과 함께 '노박 판본'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을 연주할 예정이기도 합니다.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세르지우 첼리비다케, 귄터 반트 등 옛 거장 지휘자들이 브루크너 교향곡 9번 음반에서 저음을 중첩시켜 압도적인 스케일을 만들었다면, 파비오 루이지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를 이끌며 엄청난 다이내믹 레인지뿐 아니라 고음부의 총천연색을 살리는 일에 상당한 비중을 두어 독특한 음향의 건축물을 만들었습니다.

음악평론가 황진규 씨가 "대다수 지휘자가 3악장에서 시나이 산 꼭대기에 머무는 반면, 루이지는 '약속의 땅'에 과감하게 한 발을 들여놓는다."라고 극찬한 바 있는 파비오 루이지의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을 통영에서 실연으로 들어볼 기회가 기대 됩니다!

2009년 9월 3일 목요일

2009.01.22. 브루크너 교향곡 7번 /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7번 - 알렉산다르 마자르 / 정명훈 / 서울시향

2009년 1월 22일(목)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정명훈
협연자 : Aleksandar Madzar (Pf)

Mozart, Piano Concerto No.27 in B flat, K.595
Bruckner, Symphony No. 7 in E (Ed. Nowak)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연주한 서울시향은 유럽 악단 수준에 조금씩 다가가는 요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으며 무엇보다 금관악기가 깔끔한 연주를 해주어 반가웠다. 편성은 현악기를 크게 늘여 여섯 짝씩이었고 콘트라베이스도 열두 대를 썼다. 관악기는 호른과 트럼펫을 하나씩 더블링한 것을 빼면 악보 지시를 따랐다.

트럼펫이 가장 인상깊었으며 트럼펫 수석 가레스 플라워스가 이날도 돋보였다. 음량이 튀지 않고 다른 악기와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도 선율선과 부점리듬을 깔끔하게 살려주었다. 3악장 처음에 나오는 독주는 음반을 들으면서도 마음에 안 들 때가 잦아 이날 연주를 귀담아들었는데, 플라워스는 악센트를 또렷이 살리면서도 그 때문에 소리가 뚝뚝 끊어지는 일 없이 딱 알맞은 논레가토를 들려주었다.

바그너튜바는 우리나라에 전문 연주자가 없어서 제대로 된 연주를 듣기가 여간 어렵지 않으며, 이 때문에 음색을 희생해 바그너튜바 대신 호른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이날은 웬일인가 싶을 만큼 큰 실수 없이 깔끔하게 잘해서 놀랐다. 옥에 티를 하나 말하자면 2악장 클라이맥스를 지나 마디 184에서 테너 바그너튜바 둘 가운데 하나가 티 나게 비브라토를 썼다. 이곳은 바그너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애달픈 마음을 나타낸 곳이라 비브라토는 '장송곡' 분위기와 맞지 않았으며 '오르간 소리'와도 어울리지 않았다.

탄탄하게 중심을 잡아준 호른 또한 매우 훌륭했다. 1악장 마디 114부터 트롬본 및 튜바와 함께 부점 리듬을 주고받는 대목에서도 아귀가 딱딱 맞았고, 국내 악단이라면 반드시 실수를 하는 마디 163 호른 합주에서도 어택이 완벽하게 들어맞지는 않았으나 제법 깔끔하게 잘했다. 2악장 마디 190부터 f에서 fff로 가파르게 커졌다가 마지막 울부짖음이 pp로 재빨리 사그라진 대목에서는 브루크너가 목놓아 우는 모습이 눈에 보일 듯했으며, 호른 네 대를 쓰면서도 한 악기처럼 잘 맞았다.

트롬본 또한 큰 소리를 내는 곳에서도 사납게 으르렁거리지 않고 화음을 살려 깊은 울림을 내주었으며, 국내 악단이 마치 관행처럼 얼렁뚱땅 넘어가곤 하는 부점리듬도 잘 살렸다. 4악장에서 트롬본, 호른, 바그너튜바, 콘트라베이스튜바가 유니슨으로 나오는 마디 267에서는 세 겹 부점 리듬이 몹시 까다롭기도 하거니와 대충 2분음표로 연주해도 그다지 티 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날 어떻게 하는지 조금은 짓궂은 마음으로 귀담아들었더니 트롬본은 나무랄 데 없었고, 호른과 바그너튜바는 아리송하고, 콘트라베이스튜바는 트롬본에 슬쩍 묻어가더라. 그래도 주선율은 트롬본에 있었으므로 전체적으로는 썩 좋았다.

이날 주인공은 금관악기였으나 목관악기도 훌륭했다. 무엇보다 2악장 클라이맥스와 장송곡에 이어 나오는 플루트 독주가 마치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듯 너무나 애달팠으며, 말러 교향곡 10번 5악장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작지만 안타까운 실수도 있었는데, 1악장 제2주제 전위형이 나오는 마디 185에서 저음 현이 갑자기 치고 나오도록 지휘자가 첼로 쪽으로 예비박을 세게 주었더니 플루트 연주자가 잘못 알아듣고 마지막에 얼버무리는 바람에 느닷없이 울음이 터지는 듯한 효과가 멋질 뻔하다 말았다.

정명훈은 3, 4악장 템포를 조금 빠르게 잡아 전체적으로 밝고 희망찬 브루크너를 연출했으며 4악장에서 템포를 자연스럽게 조였다 풀었다 하는 대목이 돋보였다. 1악장 마디 391부터 팀파니를 앞세운 크레셴도도 멋졌고 이어지는 코다에서 크레셴도와 아첼레란도를 같이 쓴 대목도 제법 그럴싸했다. 4악장 코다에서는 '처음 빠르기로'와 호른에 붙은 '경건하게'라는 나타냄말이 서로 어울리지 못할까 봐 귀담아들었더니 정명훈은 템포를 살짝 늦추었다가 조금씩 조이며 고양감을 높이는 솜씨를 보여주었다.

1악장 스트레토(마디 233)에서는 금관이 너무 나서지 않고 균형을 잘 맞춘 대목은 참 좋았으나 그 때문에 '마르텔라토'가 죽어버려 안타까웠다. 현이 테누토 지시를 너무 곧이곧대로 지킨 탓이다. 이 테누토는 마르텔라토를 살리느라 소리가 너무 딱딱 끊어지면 안 된다는 뜻일 뿐 금관 텍스처와 따로 놀라는 뜻이라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서울시향은 현이 레가토에 가깝게 연주하면서 금관과 나란히 음악을 이끌어버려 앙상블이 훌륭했는데도 어정쩡한 스트레토가 되고 말았다.

2악장 처음에는 저음 현이 바그너튜바 소리를 묻어버려 아쉬웠고 처음부터 음량이 너무 커서 조금 부담스러웠다. 마디 4에서는 메조포르테가 아니라 포르티시모에 가까웠다. 바이올린 여섯잇단음 오스티나토가 나오는 마디 157부터 긴장감을 쌓아가는 대목이 훌륭했으며 클라이맥스에서도 총주를 뚫고 나오는 바이올린 소리가 매우 멋있었다. 다만, 마디 169와 마디 171 넷째 박 포르타토는 너무 레가토에 가까워서 조금 어색했다.

3악장 마디 52에서는 c단조로 넘어가기에 앞서 스타카티시모 음형이 치고 나오는 대목이 멋지다. 그러나 독일6화음을 살려야 제맛이 나므로 트롬본 등이 너무 큰 소리를 내면 좋지 않은데, 서울시향 금관은 이곳에서 딱 알맞은 소리를 내었으나 현이 좀 더 튀어나오지 않아 살짝 아쉬웠다.

알렉산다르 마자르가 협연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7번은 맑고 부드럽고 달콤한 모차르트였으며 들을수록 마냥 행복해지는 연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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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5일 화요일

2007.07.13. 아르보 패르트 '라멘타테' / 브루크너 교향곡 4번 - 루비모프 / 보레이코 / 서울시향

2007년 7월 13일(금) 오후 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Andrey Boreyko
협연자 : Alexeï Lubimov, pf.

Arvo Pärt: Lamentate (37')
Bruckner: Symphony No.4 in E flat Major, “Romantic”(70')



서양음악사에서 1945년 이후는 그 어느 때보다도 새로움에 대한 요구가 강하던 시기였다. 제2차 세계대전과 나치의 전횡 등은 서양 중심의 인류 문명 자체에 대한 처절한 회의와 반성을 불러일으켰으며, 그 이전 시대로부터의 철저한 단절이 진보적인 작곡가들의 모토가 되었다. 그러나 이른바 '총열주의(Total Serialism)'로 대표되는 이 시기의 음악은 또한 그 어느 때보다도 대중과의 괴리가 심했던 측면도 있으며, 음악학자 타루스킨(Richard Taruskin)의 말처럼 "특허청으로 달려가는" 음악은 그 자체가 단절의 대상이 되어버린 아이러니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에 대한 대립적 경향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중반부터이며, 그 가운데 미니멀리즘과 '새로운 단순성(Neue Einfachheit)'이 대표적이다. '새로운 단순성' 그룹의 작곡가들은 조성이 해체된 음악에 반대하며 과감히 조성을 다시 사용하여 청중에게 다가가고자 하였으며, 무조 음악의 모토인 '불협화음의 해방'과 대비되는 '협화음의 해방'이라는 말로 역사적 의의를 찾기도 한다. 아르보 패르트(Arvo Pärt, 1935~)는 '새로운 단순성' 그룹으로 활동하지 않았으면서도 전통 지향적인 음악 양식과 미학관 등을 근거로 림(Wolfgang Rihm)과 함께 이 그룹의 대표적 작곡가로 평가되고 있다.

'새로운 단순성(Neue Einfachheit)'은 영어 표현인 "New Simplicity"와 혼동할 여지가 있는데 후자는 바로 미니멀리즘 음악을 가리키며, 조성을 받아들이면서도 전통과 거리를 둔다는 점에서 독일어 표현과는 구분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패르트의 음악을 후기 미니멀리즘 양식의 일종으로 설명하기도 하는데, 최소한으로 절제된 음 소재를 변형, 반복하는 특징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패르트 자신의 용어로는 "종소리 양식(Tintinnabuli-Stil)"이라고도 하며, 단순한 화음과 중세 음악의 선법 구조, 종교적 내면성과 '침묵'의 적극적 활용 등을 특징으로 한다.

<라멘타테 Lamentate>는 2002년 작품으로 패르트 음악의 이러한 특징이 잘 나타나 있어 현대음악치고는 상당히 듣기 쉽다. 또한 이 작품은 러시아 정교의 기도문이 음악의 흐름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진노의 날'이나 '사후심판' 부분에서는 금관 악기와 타악기가 난무하여 너무 오래 이어지는 종교적 고요함이 관객의 수면을 유발하지 않도록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리 쉬워도 현대음악이라 낯설었던지 관객의 반응은 산만한 편이었다. 패르트의 작품에 담긴 것과 같은 '여백의 미'는 원래 한국이 원조라 하겠으나 삶의 여유를 잃어버린 현대인에게는 빛바랜 감이 있는 듯싶다.

패르트의 '종소리'에는 교회의 풍부한 울림이 제격이겠지만 예술의 전당의 음향은 이날따라 건조하게 느껴졌다. 서울시향의 연주가 다소 뻣뻣하게 들렸던 것은 합주력 부족도 원인이겠으나 연주회장의 음향 특성이 작품과 맞지 않았던 탓이 컸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알렉세이 루비모프(Alexeï Lubimov)의 피아노 연주는 오케스트라의 안개에 묻히지 않고 투명하면서도 몽환적인 울림으로 무대를 감싸며 악곡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는 데 성공했다. 이는 그랜드 피아노의 악기 특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루비모프의 섬세한 터치가 마법의 힘을 발휘한 결과이기도 하다.

아르보 패르트와 안톤 브루크너를 관통하는 이날 연주회의 키워드는 '종교'다. 그러나 <라멘타테>가 우주 속에 홀로 던져진 패르트의 처절한 고독과 구원에 대한 갈망을 담았다면, 교향곡 4번의 브루크너는 번뇌 끝에 신의 광휘를 찾아냈다. 또는, 적어도 그렇게 착각하고 있다.

브루크너의 신앙의 언어는 파이프 오르간이다. 그는 교회 오르간 연주자였으며 그가 작곡한 관현악곡에도 오르간의 특성이 묻어나온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는 연주자들에게 재앙으로 다가온다. 오르간의 긴 울림을 표현하느라 관악기 주자들은 하늘 대신 무대가 노래지고, 현악기 주자들은 거대한 울림 속에서 끊임없이 물결치는 파도를 만들어내느라 팔이 빠진다. 그 와중에서도 파이프 오르간의 울림을 재현하느라 엄정한 악기 간 밸런스를 유지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휘자 안드레이 보레이코(Andrey Boreyko)는 그래서인지 독창적인 표현에 매달리기보다는 무난한 해석으로 '오르간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데 주력한 듯하다. 결과는 매우 훌륭했다. 앙상블이 종종 흐트러지는 가운데서도 두터운 화성에 의한 '오르간 사운드'만큼은 내가 이제껏 들어본 국내악단의 브루크너 중 단연 최고였다. 이날따라 금관 악기의 활약이 유난히 돋보였으며, 특히 호른과 트롬본이 몇몇 티 나는 실수를 했음에도 전체적으로 깊은 인상을 주었다.

현악기 또한 국내 악단에 기대할 수 있는 브루크너로는 최상급의 연주였으며, 금관의 강력한 소리에 지지 않고 당당하게 어우러지곤 했다. 그러나 외국 유수 악단과 비교하자면 특히 현이 좀 더 분발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여전히 남는다. 전체적으로 현의 음량이 금관에 약간은 밀리는 듯했으며, 가끔은 금관 소리에 묻혀버리는 일도 있었다. 이를테면 2악장 마디 107에서 제1 바이올린의 스타카토 음형이 호른과 트롬본 소리에 가려서 주선율의 역할을 잃어버린 것이 옥에 티였다.

4악장 마디 358에서는 바이올린이 활 끝으로 연주하도록 지시하고 있는데, 이것은 가늘고 날렵한 데타셰(détaché) 주법을 의도한 것으로 판단되며 실제로 대부분 음반에서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향은 레가토 위주로 부드럽게 넘어가 버렸으며, 보잉을 미처 눈여겨보지는 못했으나 활 끝으로 연주했는지도 의심스럽다. 그 결과 마치 사람들이 소곤거리는 듯 산만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느낌은 전혀 살지 않았고 단지 무표정하게 지나가는 선율이 되었다.

이날 연주는 꽤 훌륭했지만 연주회장 주변에 소문난 마니아들의 모습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은 유감이다. 정명훈 없는 서울시향은 별 볼 일 없을 것이라는 편견이 그들에게 생긴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그러나 서울시향의 정기연주회는 생각보다 수준이 높으며 또 나날이 발전해가고 있다. 직접 확인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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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7.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5년 7월 12일 화요일

브람스와 말러: 논리력과 상상력

고클래식에 있는 어떤 글을 읽고 드는 생각이 있어 씁니다. 글에 나타난 세 개의 논점을 대변하는 문장을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말꼬리 잡는 방식과 비슷해 보여서 썩 마음에 들지는 않군요. 원문을 읽지 않으신 분은 꼭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브루크너의 문제는'방법론'에 있어서의 다양성이 베토벤이나 브람스에 비해 현격히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 브루크너의 음악이 형식 논리로 보면 좀 엉성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음악을 판단하려는 태도는 좋지 않습니다.


서울과 의정부시가 맞붙은 곳에
자리잡은 이 집은 가난한 집이다
그래도 뜰은 볼 만하다
감나무와
버드나무와
무궁화꽃이 피며
이름도 모를 잡나무가 있다

장모님과
여고 삼 년인 영진과
마누라 그리고 셋방 든 홍씨와
합해서 일곱 명이 살고 있는 이 집은
뜰로서 부끄럽지 않다.

언제나 푸르고 녹색인 뜰
맑고 곱고 아담한 뜰

나는 생각나면
이 뜰에서 쉰다
그 포근함이며
깨끗한 공기여


이 시 어떻습니까? 뭔가 좀 엉성하다고요? 맞습니다. 제 집 뜰이 "언제나 푸르고 녹색"이라는데, 언제부터 감나무, 버드나무, 무궁화 따위가 상록수였습니까? 그리고 버드나무까지 있는 뜰이 아담하기는 뭐가 아담합니까? 그리고 시에 나타난 인물은 주인공까지 합해 다섯 명인데 엉뚱하게도 일곱 명이라고 우깁니다. 시를 쓴 사람은 간단한 산수도 할 줄 모른답니까? 뭐 이따위 엉터리 시를 인용했느냐고요? 네, 이야기 형태의 시에서 앞뒤 매무새가 맞지 않다면 문제가 됩니다. 그런데 약간의 상상력을 보태볼까요?


"(…) 시인은 실제 뜰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니다! 2연을 보면 그것은 더욱 분명해진다. 감나무는 장모님과 대응되고(감나무의 이미지, 특히 노인의 피부와 감나무 껍질의 질감의 유사성을 생각해 보라), 버드나무와 여고 삼 년생인 영진이 대응되고(버드나무는 옛부터 나긋나긋한 젊은 여자에 대한 비유로 흔히 사용된다), 무궁화꽃과 마누라가 대응되고(시인에게 꽃의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식구는 마누라뿐이다. 그리고 나이든 마누라는 무궁화처럼 오래 된 꽃이다), 이름도 모를 잡나무는 셋방 식구들과 대응된다(셋방 식구들의 이름은 잘 모른다).

이러한 대응을 잘 살펴볼 때, 시인이 정말로 자랑하고자 하는 것은 꽃나무로 이루어진 정원이 아니라 사랑스런 가족들로 이루어진 가정의 뜰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인은 셋방 식구들까지 잘 어울려 사는 훈훈한 가정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3연에서 언제나 푸르고 밝고 곱고 아담한 집안의 분위기가 다시 한 번 강조되고, 시인은 삶에 지치면 가족의 포근한 품안에서 쉰다고 말한다. 마지막 구절 "그 포근함이여 / 깨끗한 공기여"에서는 실제 포근함과 깨끗함에 언어의 껍질을 깨고 독자의 마음에까지 그대로 전달되는 것 같다. 변두리의 가난한 집이지만 그 집안의 분위기는 천금으로도 바꿀 수 없는 포근함과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 (이남호)

- 오탁번., "둥근 과일과 떠오르는 달", [현대시의 이해]. 서울: 나남신서 (1998). 40-41쪽.

참고로 위 시는 천상병의 <우리집 뜰>입니다. <귀천>은 다들 아시죠?

음악의 아름다움을 말할 때 형식논리를 잣대로 삼을 수도 있지만 상상력도 훌륭한 잣대가 될 수 있습니다. 둘 가운데 어느 것을 중요시할 것인지는 각자의 가치판단에 따를 일입니다만, 한 가지만을 절대시하려는 태도는 곤란하겠지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음악 전공자들이 기교는 뛰어나지만 음악적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곧잘 듣습니다.

*

"말러의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구성력'입니다. 쉽게 말해 그의 곡은 '웅장하고 멋지게 쓰여진 여러 조각조각들의 모임'이죠."

--> 브루크너와는 달리 말러의 '구성력'과 관련해서는 위 주장에 쉽게 동의하기 힘듭니다. 말러의 음악을 악식론적으로 분석하려면 곤란한 점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분석의 기준이 베토벤과 브람스가 되기 때문입니다. (브루크너는 너무 단순해서 탈이고 말러는 너무 변화가 커서 탈이니 적당한 것이 좋겠다면, 그 '적당함'의 기준은?) 왜 그래야 할까요? 바흐를 기준으로 하면 안 될까요? 옳거니, 바흐를 기준으로 하면 베토벤도 브람스도 뛰어난 작곡가입니다만, 말러를 그보다 못한 작곡가라 말하기는 힘들어집니다. 말러는 특히 교향곡 9번 3악장을 작곡하면서 말러의 작곡기법을 깔보는 사람을 조롱하려는 의도를 담았다고 합니다. 대위법으로 말러 교향곡 9번 3악장과 견줄 작품은 과연?

베토벤을 절대 기준으로 놓고 보더라도 여전히 논란거리는 남습니다. 악식론적으로 따져서 곤란한 것은 말러 뿐 아니라 베토벤도 마찬가지거든요. 이를테면 "템페스트" 소나타 1악장에서 제시부의 경계는 어디일까요? 이에 대해 학자들이 일치된 의견을 내는 것을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화 하나:

김원철: 마디 20까지가 인트로(intro)이면서 그 속에 제시부에 사용된 주제가 다 들어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선생님: 나름대로 그럴 듯하기는 한데, 참 파격적인 악식론이로구나. 그렇다면 이것을 소나타 형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김원철: 모르겠네요. ㅡ,.ㅡ (까짓 거 소나타 형식이 아니라고 해도 그만이죠, 뭐. ㅡㅡ;)

"템페스트" 소나타 악보 보기

*

"즉, 필요한 최소한의 소리를 쓰는게 아니라 그의 곡 특유의 '표현력'을 위한다는 목적 아래 가급적 많은 악기(쓸데없지 않은 이상인 부분이 더 많긴 하지만..)가 매 순간 사용되죠."

--> 역시 기준점의 문제입니다. 말러의 관현악법에 낭비가 있다면 그 기준은? (아아, 여기서 말러의 초기 교향곡을 예로 들지는 마세요. 젊은 작곡가는 누구나 허영심이 있기 마련입니다. 허영심을 따지자면 바그너의 <리엔치>야 말로.. ^^;)

*

마지막으로 한 가지 근본적인 문제제기. 서양음악의 형식론은 음악에 유기성이 필요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그런데 꼭 그래야만 할까요? 길게 쓰기 귀찮으니 예전에 썼던 글 하나만 링크 걸고 도망갑니다. 음악의 눈 (樂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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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5.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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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eidias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고클의 그 글을 봤었는데, 교향곡이라는 측면에서만 본다면 교향곡이 내포하는 것이 어떤것이던 결국 형식과 구조라는 것과 씨름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고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교향곡을 기준으로 바라본다면 브루크너와 말러에 대해서 그런 결론에 도달하는것도 어느정도 일리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은 됩니다... 물론 그런 측면에서 그들의 작품의 우열을 평가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됩니다만... 교향곡이라는 음악을 담는 그릇에대해 가지고 있는 각 작곡가의 생각자체가 다르다고 할수 있으니..

특 히 그 글에서 말러의 관현악법의 낭비라는 것과 말러의 구성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동의할수 없군요...^^ 님의 말대로 말러의 초기작이야 그렇다해도 후기 교향곡의 스코어를 보고도 그런 말을 할수 있을지... 그리고 말러의 대위법적 자질을 접어두고라도 3번 교향곡 1악장 같은곡을, 정말 중구난방의 음악조각들을 소나타 형식(?)에 담아낸 능력은 어찌 보는지...

간만에 좋은 글을 읽어 쓸데없는 말 남긴것 같습니다...^^
2005/07/12 19:04


김원철 앗, 블로그질 사흘 만에 첫 덧글입니다! 고맙습니다~~ >_< 2005/07/12 20:25
schnittke: 글을 참 맛나게 쓰셨네요.
^ㅡ^
05/07/13 08:04
tpch3: 상당히 깊은 생각을 하고 계시는 군요^^ 제가 나름대로 짧게 간단한 반박을 다시 해보자면 일단 저는 브루크너와 말러의 '교향곡'을 재료로 해서 말을 한 것입니다. 이는 앞글의 내용을 보시면 잘 알것입니다. 최소한 '교향곡'이란 장르의 특성과 그것이 '절대음악'이란 것을 생각한다면 과연 상상력과 논리력 중 어느것이 선택되어야 할지는 금방 분명해 질 것입니다. 반대로 '판타지'를 쓰는데 논리력을 논할 사람은 거의 없겠지요. 가곡 등 기타 양식을 논할때 말러와 브람스의의 가곡 중 누가 더 뛰어나냐는 정말로 힘든 논쟁거리가 될 것입니다. 또하나, 형식의 명확성을 말하고 계시는데 저는 그 명확성을 논한것이 아닙니다^^ 작곡가라면 그 의도에 따라 각 부분부분의 구분을 명확히 할 수도,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도록 오버랩해서 다소 모호하도록 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 부분부분관의 논리적인 관계가 잘 설명되지 않는다, 또는 앞과 뒤에 있어서 그 이유가 불분명하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관현악법 낭비에 대한 문제는 저도 사실 매우 조심스러운 것인데 실은 님처럼 후기보단 초기의 곡을 노린 것이 더 크다고 고백합니다. 그 분야의 최고자(?)는 역시 님의 말씀처럼 바그너가 되겠지요^^ 05/07/13 11:25
김원철 (wagnerian): 제가 원래 글에서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곽태평님께서 말씀하시는 '교향곡'이라는 개념 자체가 베토벤 등의 음악적 유산에 종속되어 있음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러한 '전통적' 교향곡 개념을 고수한다면 말러의 교향곡은 더 이상 '교향곡'일 수 없습니다. 말러는 단지 'Symphonie'라는 말의 어원적 개념을 빌어 자신의 작품을 '교향곡(Symphonie)'이라고 했을 뿐이지요. 그리고 '절대음악'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습니다만(저는 바그네리안입니다. 한슬릭 즐~ ^^), '전통적' 교향곡의 개념을 버리고 나면 꼭 그것이 '절대음악'이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참고로 저는 순수한 의미의 '절대음악'은 하나의 지향점이 될 수는 있을지라도 실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05/07/13 15:09
김원철 (wagnerian): 또한, '판타지'의 세계에서도 내부적인 논리는 필요합니다. 제가 예로 든 천상병의 시를 보더라도 상상력을 보태고 난 뒤에는 앞뒤가 잘 맞아떨어집니다. 즉, 객관성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나면(그 '객관성'의 기준 자체가 베토벤-브람스인 것이 불만이라는 것은 이미 얘기했지요?) 언뜻 모호해 보이는 부분 부분의 관계가 분명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물론 감상자(또는 해석자)의 상상력입니다. (사실은 '판타지'를 끌어들이지 않고도 기존의 틀에서 자유로워지면 이론적 분석이 가능해질 수도 있습니다.) 지휘자는 자신의 판타지를 다른 사람에게 잘 전달할 수 있거나 또는 각자의 판타지를 이끌어내어 하나로 융합해내기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이러한 점에서 천재적이라는 얘기를 모 연주자에게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05/07/13 15:09
tpch3: 유감스럽게도 저 개인적인 견해로는 '교향곡'이란 개념 자체를 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베토벤의 것에 종속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는 음악사적으로봐도 분명히 드러나거니와 '하이든'이 틀을 형성하고 '베토벤'에 의하여 일단 완성된 것이기 때문에 그 뒤에 나오는 '브루크너'나 '말러' 내지는 '브람스'는 이에 대한 변형 등으로 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말 한정시켜 말을 한다면 말씀처럼 말러의 것은 '교향곡'이라 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음악에 있어서 '형식' 내지는 '악식'에 관한 문제는 그렇게 쉽게 왈가왈부 할 만한것도, 쉽게 여러 본질중 몇 개를 제외하고 폭넓게 받아들일 만한 것이 못됩니다. '절대음악'의 개념을 싫어하시는 듯 한데 이는 님의 취향이지 일반적인 정의나 통용되는 생각은 아닌 듯 합니다. 저는 가급적 객관적으로 보기를 원하기 때문에 역시 한쪽이 명백히 맞다고 생각하기를 원치는 않으나 이 부분에 대해선 별 수 없다 생각할 정도로 저 주변과의 논의에서도 결정이 났고 스스로도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판타지'의 예를 든 것은 그곳에 논리가 없다는 게 아니라 '교향곡'과의 비교를 위한 것입니다. '객관성'에 대한 집착을 버린다 하셨는데05/07/13 17:05
tpch3: 그렇다면 이 세상에 모든 음악이 표제 음악이 되어버리겠군요^^ 음악사상 가장 완벽한 형식이라 하는 '소나타'와 '푸가'를 생각해보십시요. 어느 범주에 들어가는지 판단은 쉽게 내리실 수 있으리라 봅니다. 05/07/13 17:41
김원철 (wagnerian): '교향곡'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했으니 대충 상황정리가 된 것이지요? ^^05/07/13 18:05
김원철 (wagnerian): 저는 '절대음악'을 싫어한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말러의 음악을 최대한 절대음악의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논지는 절대음악-표제음악 이분법은 낡은 흑백논리라는 것입니다. 제가 '한슬릭 즐~'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했습니다만, 사실 한슬릭의 논리는 당시에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편의상 좌익-우익의 비유를 하자면, 당시에는 극우파가 판치는 세상이었기 때문에 추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극좌파의 이데올로기가 필요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좌우의 이념 대립이 언제까지나 흑아니면 백 식의 일차원적인 대결 양상이 되면 곤란합니다. '객관성'에 대한 집착을 버린다고 모든 음악이 표제음악이 된다는 생각은 마치 우파가 정권을 잃으니 한반도가 빨갱이 천지가 된다는 발상과도 같습니다. (어째 정치 얘기를 하자니 뉘앙스가 좀 이상해지는 것도 같습니다. 그냥 편의상 비유로만 받아들여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결국 하고싶은 주장은 절대음악-표제음악 이분법은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근본적인 문제제기: 세상에 절대적인 객관 또는 절대적인 주관이 있을 수 있습니까? 어떤 수학자는 수학 논리 체계 또한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합니다. (누구더라..--a)05/07/13 18:07
ashkenazy7: 제가 괜히 끼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어떤 잣대에서 보는가에 따라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고 봅니다. 제가 아는 미국에서 음악학으로 박사를 하신 분 이야기 들어보면 우리가 요즘 그렇게 흥분하며 연주가 많이 되고 있는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은 사실 서구의 음악학에서는 그리 비중을 차지 못하고 그냥 슬쩍 언급만하는 정도라네요. 그리고 작곡을 전공하시는 분도 형식을 중요시하는 서구, 특히 독일 음악 쪽에서 관점에서 보자면 그리 높이 평가될 수 없으며, 러시아 음악의 특징인 서사적인 흐름 안에서 평가된다면 달라질 수 있지 않겠냐고 말씀하시더군요. 사실 러시아에서는 쇼스타코비치가 러시아의 베토벤 아닙니까?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현재 교향곡은 소멸되고 있는 장르라고 알고 있습니다. 20세기 초.중반에도 하르트만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교향곡을 작곡하신 분들은 대체로 보수적인 경향의 작곡가였고요.
그래서 해체되기 일보직전의 후기 낭만주의 교향곡을 브람스나 베토벤 교향곡의 잣대에서 평가하기보다는 그 시대의 관점에 맞추어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싶네요
05/07/13 20:20
tpch3: 두 분의 의견 잘 읽었습니다. 자꾸만 저의 의견이 넓게 확대 해석되는 것 같아 조금 안타까운데 저는 최소한 같은 '장르'의 곡들에 비해서 시대를 초월하여 비교를 할 수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곡이쓰여질 때 단순히 그 곡뿐만 아니라 그 시대상황, 작곡가의 상태 등이 곡의 여러 중요 요소가 되겠지만 곡 자체의 완성도 등을 논할 때 분명 시대와 상관없는 '음악적 절대성'이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저는 '곡 그 자체'만을 상대로 하였으며 그 밖의 시대관점이랄지 작곡가만의 특색은 가능한 배제하고자 하였습니다. 절대음악에 관한 이야기는 원 글과 상관없이 확대되어 나온 이야기 같으므로 더이상 논하지 않겠습니다. 김원철님의 말씀도 제가 읽기에도 일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뜻하지 않게 제 글이 논란의 대상이 된 것을 매우 아쉽게 생각하며 이쯤에서 논의를 마치고자 합니다. 저도 더이상 제 생각을 끝까지 맞는 것이라 주장할 뜻도 없고(애초에 그걸 원한 것이 아니였으니까요) 같이 음악을 사랑하는 입장에서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서로 왈가왈부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봅니다. 어쨋든 서로의 입장과 생각을 확인했으니 그것으로 족하다고 봅니다. 저 뿐만 아니라 모든 고클인들이 자신의 생각을 재정리하며05/07/14 01:33
tpch3: 또한 다른 많은 의견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도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많은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이만 ㅡ05/07/14 01:33
scherzo: 역사성을 배제한 '음악적 절대성'이란 게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부터 생각해 보아야 것 같은데요?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평가하고 싶어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고 그런 시도도 어느 정도는 확실히 가치 있는 것일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때의 '객관성'이라는 개념조차 이미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개념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를 테면, '교향곡'이라는 장르의 의미가 이미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 개념인데, 그것에 절대적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애시당초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베토벤의 교향곡과 말러의 교향곡은 같은 장르이면서도 같은 장르가 아닌 것이죠. 그리고 '곡 그 자체' 안에도 이미 많은 역사성이 숨어 있습니다. 그것을 배제하는 순간 그 음악은 절름발이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영원히 통용되는 예술사도, '객관적' 음악사도 존재하지 않는다. 음악사는 새로운 것, 살아있는 감수성, 시대의 정신적 요구에 따라 끊임없이 움직이고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언젠가 객관적 음악사라는 것이 있게 된다면, 그때는 음악 자체가 죽었다고 추측해도 된다." (알프레드 아인슈타인)
05/07/14 19:21
김원철 (wagnerian): 역사성을 배제한 '음악적 절대성'이 존재한다고 굳게 믿고 있는 음악학자를 본 적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한 전제는 음악사적 발전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지더군요. 즉 바흐-모차르트-베토벤-브람스로 이어지는 조성 시대가 서양음악의 황금기였고, 그 이전의 음악은 미개하며, 그 이후의 음악은 사양길이라는 식입니다. 미국의 꽤 유명한 학자인데, 내한 강연회에서 그 말을 듣고 황당해 했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가 훗날 수업시간에 그에 대한 저의 의견을 말한 적이 있습니다. "아아, 저놈이 미친놈이구나!" (일동 쓰러짐)05/07/14 21:50
김원철 (wagnerian): 역사성을 배제한 '음악적 절대성'이 있는지 없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만, 만약 있다면 그것을 함부로 정의하려는 태도는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도를 도라 하면 이미 도가 아니라 했던가요?05/07/14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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