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통영국제음악당 공연 프로그램북에 실렸던 글입니다. 잊어버리고 있다가 생각나서 올립니다.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g단조
모차르트는 시대를 앞서간 '프리랜서' 음악가였습니다. 예술가를 후원했던 권력자들이 그때만 해도 예술가를 하인 취급했고, 모차르트는 그것을 참지 못했거든요. 심지어 대주교한테 대들고는 "엉덩이를 걷어차여" 쫓겨나기까지 했다지요.
성공한 프리랜서 음악가였던 베토벤과 달리, 모차르트는 헤픈 씀씀이만큼 수입이 따르지 않아 고생했습니다. 겨울에 난방을 못 해서 밤새 아내와 함께 춤을 췄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예요. 모차르트가 겪었던 가난과 관련해 과장도 있지만, 모차르트의 삶이 평탄치 않았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모차르트 작품은 이러한 속사정과 달리 대부분 티 없이 해맑지요. 교향곡 40번은 모차르트가 죽기 약 3년 전에 쓴 곡으로 모차르트 작품치고는 비교적 슬픔이 겉으로 드러나는 편인데, 그러나 그마저도 조금 내비치다 말지요. 고전주의 시대 음악은 베토벤 이전까지 이랬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모차르트를 사랑하는 사람은 알 겁니다. 해맑은 음악 속에 커다란 슬픔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요. 이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실 분도 음악을 듣다 보면 깨달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더군다나 이번 공연은 모차르트 교향곡이 차이콥스키 비창 교향곡과 함께 묶였으니, 이번 공연의 숨은 주제는 '슬픔'이라 할 수 있습니다.
1악장, 2악장, 4악장은 소나타 형식이고, 3악장은 세도막 형식의 일종인 '미뉴엣과 트리오' 형식입니다. 고전적인 교향곡 짜임새를 깔끔하게 따르고 있어서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지는 않을 듯합니다. 소나타 형식을 모르시는 분을 위해 아주 간단하게만 설명할게요.
소나타 형식은 크게 보아 제시부―발전부―재현부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시부는 제1 주제, 그와 대비되는 제2 주제, 그리고 경과구 따위로 이루어져 있고, 발전부는 제시부 주제가 자유롭게 '발전'하는 곳입니다. 재현부는 제시부를 그대로 또는 비슷하게 되새기는 곳이고요. 때로는 앞뒤로 서주(intro)와 종결구(coda)가 덧붙을 수도 있습니다.
잘 모르겠으면 다 잊어버리고 그냥 들으셔도 됩니다. 모차르트 음악은 듣기 좋은 선율과 리듬이 계속 이어지니까, 소나타 형식을 모르고 그냥 들어도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을 거예요.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b단조 '비창'(Pathétique)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은 차이콥스키의 마지막 작품으로 작곡가가 죽기 9일 전에 작곡가 자신의 지휘로 초연되었습니다. 그리고 초연 21일 만에 열린 두 번째 연주회는 차이콥스키 추모 공연이 되었지요. 두 번째 공연 이후 차이콥스키 자살설이 나돌았고, 차이콥스키가 사실은 동성애자였으며 명예를 지키라는 강권에 따라 자살했다는 설도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을 차이콥스키의 유서로 보는 시각이 힘을 얻었습니다. 곡 전체에 흐르는 비극적인 정서와 1악장 절정 부분에서 인용한 러시아 정교회 레퀴엠 음형, 그리고 무엇보다 작곡가의 죽음이라는 결정적인 정황 때문이지요. 그러나 리처드 타루스킨을 비롯한 저명한 음악학자들은 이 작품을 유서로 보는 관점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습니다. 여러 정황 때문에 사람들이 음악에서 듣고싶은 것을 들었을 뿐이라고요.
'비창'(Pathétique; Патетическая)이라는 표제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c단조 '비창'에서 따온 듯합니다. 차이콥스키에게 '비창'이라는 표제를 제안한 사람은 작곡가의 동생이자 극작가였던 모데스트였지만, 차이콥스키가 '비창 소나타' 도입부 음형을 살짝 바꾸어 '비창 교향곡' 도입부에서 인용하고 작품의 주요 주제로 사용했다는 사실에서 작곡가 자신이 '비창 소나타'를 어느 정도 의식했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c단조 Op. 13 '비창' 1악장 도입부
▲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b단조 '비창' 1악장 도입부 (바순 독주)
차이콥스키의 다른 작품처럼, 이 곡은 구조를 분석하기보다는 작품 속에 숨은 '이야기'에 집중하면 좋습니다. 마음씨 여린 작곡가가 폭력적인 현실 앞에서 괴로워하는 듯한 1악장, 슬픔을 애써 감추고 춤을 추는 듯한 2악장, 거짓 승리에 도취되어 현실에서 눈 돌리는 3악장, 그리고 '죽어가듯이'(morendo)라는 나타냄말과 더불어 절망과 체념 속으로 침잠하는 4악장. 음악을 들으면 슬픈 이야기가 머릿속에 떠오를 듯합니다.
그런데 3악장이 워낙 화려하고 과장되게 뿜빰거리면서 끝나기 때문에, 대개 3악장이 끝나자 마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오곤 합니다. 교향곡이 다 끝난 줄 알고 손뼉을 치는 사람도 있지만, 아닌 줄 알면서 일부러 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예요. 개인적으로는 악장 사이에 손뼉을 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관객의 박수가 3악장에 가득한 반어적 음악 어법의 일부라 볼 수도 있을 듯해요.
진짜 문제는 4악장입니다. 흐느끼듯 시작해서 목놓아 울부짖다가, 나중에는 죽어가듯이 천천히 여리게 끝나는 짜임새 때문이지요. 그래서 연주가 끝난 뒤에도 여운을 즐길 수 있게끔 하는 '침묵 악장'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성급한 박수가 이 '침묵 악장'을 망쳐놓곤 하지요. 지난 2008년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이 곡을 연주했을때, 서울시향 월간지 『SPO』에 기고한 글에서 저는 이렇게 썼습니다:
이날은 잔향이 미처 가시기도 전에 박수가 터져 나오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었으나 잔향이 없어지고 채 5초가 지나지 않아 끝내 성급한 박수가 나왔다. 그때까지 지휘봉을 높이 들고 있던 정명훈은 김 샜다는 듯이 팔을 내리고 말았다. 잔향이 없어지기에 앞서 치는 손뼉을 '안다 박수'라고 하여 비꼬아 말하기도 하는데, 이날 박수는 '안다 박수'는 아니고 '깬다 박수'라고 하더라.
이날 공연은 서울시향 역사에 중요한 이정표로 꼽을 수 있을 만큼 훌륭했습니다. 이후로 '비창 교향곡'은 서울시향이 외국에 나가서도 즐겨 연주할 만큼 서울시향의 대표곡이 되기도 했지요. 정명훈 지휘자의 충격적인 작품 해석으로도 유명한 이 작품을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어떻게 연주할지, 이번 통영 공연을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