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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1일 토요일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

예전에 썼던 글을 내용을 보충해 완전히 새로 씀.


세자르 프랑크는 독일 음악의 영향에서 벗어나 프랑스 음악의 자부심을 되찾으려는 ‘아르스 갈리카’(Ars gallica) 운동을 이끈 작곡가다. 프랑스가 보불전쟁에서 패한 뒤 독일 문화에 저항감이 높아진 현실이 배경이었다. 그러나 프랑크가 독일 음악 전통을 무조건 배격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바흐와 베토벤의 음악 유산을 계승하려 했고, 오페라가 지배하던 당시 프랑스 음악계에서 관현악과 실내악의 지위를 격상시켜 독일을 넘어서는 프랑스 기악 전통을 확립하고자 했다.

그러나 음악학자 리처드 타루스킨은 프랑크가 ‘아르스 갈리카’의 큰 스승으로 존경받으면서도 바그너 음악에 “무력하게 예속된” 작곡가였다고 분석한다. 프랑크가 프랑스 기악의 독자성을 추구했으나, 바그너라는 동시대 현실을 극복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바그너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특히 매혹된 프랑크는 무의식적으로 그를 표절하지 않도록 몹시 경계했다. 그럼에도 ‘바그너 전염병’의 일부라며 공격당하는 수모를 피하지 못했다. 타루스킨은 특히 프랑크 음악의 화성 진행이 바그너적(Tristanesque)이라고 평가했다.

프랑크가 겪은 ‘바그너 딜레마’는 사실 ‘베토벤 딜레마’이기도 했다. 음악학자 카를 달하우스는 19세기 서양음악의 중심에 “베토벤이라는 압도적인 신화”가 있었으며, 그 신화 자체가 역사의 일부가 되었다고 통찰한다. 베토벤은 고전주의 음악 양식을 확장, 완성하고 그 한계를 깨트려 낭만주의로 가는 길을 열었으나, 문제는 그 유산이 낭만주의 시대정신과 맞지 않았다는 점이다. 핵심 문제는 베토벤의 모티프 발전 기법을 낭만주의 음악 어법 안에서 어떻게 녹여낼 것인가였다.

“[…] 오케스트라 전체를 감싸는 촘촘한 그물을 형성하며 매 순간 그 구조를 결정한다. […] 이러한 그물은 베토벤이 주제를 다루는 방식과 한 가지 근본적인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즉 균형 잡힌 선율적 악절보다는 모티프의 논리에 의해 음악 형식이 이루어진다.”

이것은 달하우스가 바그너의 라이트모티프(Leitmotiv)를 설명한 말이다. 라이트모티프는 특정 음악으로 인물·사건·감정 등을 떠올리게 하는 기법을 뜻한다. 달하우스는 이 기법의 표상적 기능 이면에 자리한 구조적 원리, 즉 모티프를 지속적으로 변형 및 재배치하는 기능을 설명했다.

이러한 구조적 기능은 프랑크에게도 중요했다. 사실 프랑크와 바그너 모두 프란츠 리스트가 내놓은 ‘베토벤 딜레마’ 해답에 의존했다. 주제 선율의 원형을 중심에 놓고 주변 요소를 그물망처럼 엮어 바꿔나가면, 듣는 사람이 인지할 만큼 적당히 달라진 선율과 리듬이 되풀이되면서 음악의 뼈대를 형성한다. 이것이 리스트가 내놓은 해답이었다.

바그너와 프랑크는 이를 받아들여 각자의 음악 언어를 개발했다. 바그너의 ‘라이트모티프’에 대응하는 프랑크의 해답은 ‘순환형식’(Cyclic Form)이라 부르는데, 이는 사실 라이트모티프에서 ‘드라마’를 뺀 것이나 다름없다. 다만, 프랑크 초기 작품에 나타나는 ‘해답’이 오히려 리스트보다 앞선다는 소수 의견도 있다.

프랑크가 순환형식 작곡 원리를 가장 원숙하게 구현한 작품이 바로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다. 서늘하고 쓸쓸한 바이올린의 독백이 피아노의 반음계적 화성과 어우러지고, 이것이 리듬과 화성, 음색을 달리하며 새로운 맥락 속에 새로워진 표정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 반복과 변형이 작품 전체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골격을 이룬다. 제1악장은 환상곡풍 소나타 형식, 제2악장은 소나타 형식, 제3악장은 환상곡풍 자유 형식이며, 마지막 제4악장은 론도 형식이다.

2016년 12월 29일 목요일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K. 304, 윤이상 바이올린 소나타,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2번,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

통영국제음악당 공연 프로그램북에 실릴 글입니다.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21번 e단조 K. 304

"강요하지 않는 슬픔이 우리 귀를 휘감습니다. 태연한 얼굴로 가슴 아프게 하기, 바로 모차르트의 특기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 인용할 만한 문구가 있을까 싶어 검색했더니, 중앙일보 김효은 기자님이 이렇게 쓰셨네요. 모차르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많이들 공감할 말이지요. 모차르트 음악은 밝으면서 이상하게 슬픈 느낌이 들고, 슬픈 듯하면서 또 밝아요. 때로는 슬프지 않은 척하는 표정이 눈에 보이는 듯해서 더욱 슬프기도 합니다.

모차르트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1778년에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e단조 소나타를 썼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에는 슬픔이 겉으로 제법 드러나는 편이지만, 슬픔을 감추려는 억지웃음 또한 음악에 가득한 점이 역시 모차르트답습니다.

윤이상: 바이올린 소나타

윤이상 음악 양식은 1975/76년부터 큰 변화를 맞이합니다. 이른바 '동베를린 사건'과 그에 따른 후유증이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고들 하지요. 이때부터 작곡가는 추상적인 구조보다는 음악 외적인 '메시지'를 음악에 담고자 했고, 그에 따라 더 자유로운 짜임새로 더 감성적인 음악을 쓰고자 했습니다. 바이올린 소나타는 작곡가가 죽기 4년 앞선 1991년에 남긴 작품입니다.

음악학자 볼프강 슈파러는 이 곡에서 바이올린이 작곡가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분석합니다. 그렇다면 바이올린 소리를 사람 목소리라 생각하고 음악을 들어 보세요. 바이올린이 무언가를 말하고 있어도 가사를 알아들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목소리에 실린 감정만큼은 생생하게 느껴질 거예요. 이 곡에서 바이올린은 울고, 웃고, 고통받고, 절규하고, 탄식하고, 저항합니다.

곡 전체의 클라이맥스라 할 만한 곳에서 바이올린은 자꾸만 높은 음으로 노래하다가 끝내 '해탈'에 이릅니다. 그러나 여기서 느껴지는 감정은 깨달음을 얻은 환희가 아닙니다. 그냥 세상 번뇌를 다 놓아버리는 것이 '해탈'의 실체인 듯해요. 그렇게 슬픈 카타르시스가 가장 높은 음에서 별빛처럼 아름답게 반짝입니다. 그리고 속세에 찌꺼기처럼 남은 먹먹함이 천천히 음악을 끝맺습니다.

2024. 9. 26. 수정 텍스트:

윤이상은 더 한국적인 (또는 동아시아적인) 울림을 담아내는 방향으로 자신의 음악 양식을 꾸준히 변화시켰다. 이른바 '동베를린 사건'을 겪고 그 후유증에 시달리던 1975/76년 이후의 변화는 특히 뚜렷하다. 이때부터 작곡가는 추상적인 구조보다는 음악 외적인 메시지를 작품에 담고자 했고, 음악을 통한 '해탈'을 추구했으며, 그에 따라 더 자유로운 짜임새로 더 감성적인 음악을 쓰고자 했다.

유럽인의 시각으로 본 윤이상은 1970년대 중반 이후 더 많은 '협화음'을 작품에 허용하고 있었고, 이것은 최첨단 현대음악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음악에 담긴 동아시아적 요소를 서양인들은 그다지 섬세하게 이해하지 못했고, 일본이나 중국과 다른 한국적 요소에 관한 서양인의 이해는 더욱 얕을 수밖에 없었다. 윤이상의 음악은 더 쉬워지는 동시에 더 어려워졌다. 바이올린 소나타는 작곡가가 죽기 4년 앞선 1991년에 남긴 작품이다.

음악학자 볼프강 슈파러는 이 곡에서 바이올린이 작곡가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분석한다. 그렇다면 바이올린 소리를 사람 목소리라 생각하고 음악을 들어 보면 어떨까. 바이올린이 무언가를 말하고 있어도 가사를 알아들을 수는 없다. 그러나 목소리에 실린 감정만큼은 생생하게 느껴질 것이다. 이 곡에서 바이올린은 울고, 웃고, 고통받고, 절규하고, 탄식하고, 저항한다.

곡 전체의 클라이맥스라 할 만한 곳에서 바이올린은 자꾸만 높은 음으로 노래하다가 끝내 '해탈'에 이른다. 그러나 여기서 느껴지는 감정은 깨달음을 얻은 환희가 아니며, 세상 번뇌를 다 놓아버리는 것이 '해탈'의 실체인 듯하다. 그렇게 슬픈 카타르시스가 가장 높은 음에서 별빛처럼 아름답게 반짝인다. 그리고 속세에 찌꺼기처럼 남은 먹먹함이 천천히 음악을 끝맺는다.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2번 A장조 Op. 100

이 작품은 브람스가 교향곡 4번을 초연한 이듬해인 1886년, 작곡가로서 명성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남긴 걸작입니다. 브람스는 적어도 형식적인 측면에서 베토벤을 가장 훌륭하게 계승한 19세기 작곡가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베토벤이 음악 유산으로 남긴 작곡 기법이 낭만주의 시대의 '노래하는 선율'과 맞지 않았던 딜레마를 브람스는 정면 돌파해 해결했지요.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2번은 정교한 구조 속에서 주제를 변화 · 발전시키는 일이 노래를 닮은 아름다운 선율로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탁월하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브람스 작품이 흔히 그렇듯, 이 곡은 그래서 악보를 분석할수록 그 짜임새에 탄복하게 됩니다. 브람스는 실제로 비슷한 시기에 쓴 가곡들을 이 작품에 슬쩍 인용하기도 했는데, 얼핏 들어서는 알아채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편, 1악장 첫 세 음과 그에 딸린 화음이 바그너 오페라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 중 '발터'가 부르는 노래 "Morgenlich leuchtend im rosigen Schein"(아침 햇살 장밋빛으로 빛나네)과 같다는 사실은 흥미롭습니다. 브람스가 이것을 일부러 인용한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제 생각에 브람스가 모르고 그랬다고 믿기는 어려워요. 브람스와 바그너 중 베토벤의 진정한 후계자가 누구인가를 놓고 유럽 음악계 전체가 '패싸움'을 벌인 역사적 사실까지 헤아리면 더욱 재미있죠.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

"[…] 오케스트라 전체를 감싸는 촘촘한 그물을 형성하며 매 순간 그 구조를 결정한다. […] 이러한 그물은 베토벤이 주제를 다루는 방식과 한 가지 근본적인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즉 균형 잡힌 선율적 악절보다는 모티프의 논리에 의해 음악 형식이 이루어진다."

음악학자 카를 달하우스가 바그너의 라이트모티프(Leitmotiv)를 설명한 말입니다. 특정한 음악으로 인물 · 사건 · 감정 등을 떠올리게 하는 기법은 요즘에는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도 곧잘 쓰이지요. 이것을 흔히 '라이트포티프'라고 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연상작용만으로 라이트모티프라 할 수는 없어요. 달하우스가 설명한 것은 주제를 발전시키는 방법이고, 결국 베토벤 음악 어법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엮여 있습니다.

라이트모티프에서 '드라마'를 빼고 나면 세자르 프랑크가 사용한 주제 발전 기법이 됩니다. 주제 선율의 원형을 중심에 놓고 주변 요소를 그물망처럼 엮어 바꿔나가면, 듣는 사람이 인지할 수 있을 만큼 적당히 달라진 선율과 리듬이 자꾸만 되풀이되면서 음악의 뼈대가 형성되지요. 바그너는 사실 리스트가 사용한 기법을 받아들였고, 프랑크는 리스트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기법을 개발했습니다. 소수 의견이지만 리스트보다 프랑크가 먼저라는 주장도 있어요.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는 이런 음악 어법이 원숙한 형태로 나타나는 작품입니다. 1악장에 나오는 주제 선율이 다른 악장에서 달라진 모습으로 되풀이되지요. 서늘하고 쓸쓸한 바이올린 소리와 두텁게 쌓인 화음으로 신비롭게 들리는 피아노 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마지막 악장의 즐거운 돌림노래가 백미입니다.

2009년 9월 6일 일요일

2009.06.05. 라벨 어릿광대의 새벽노래 / 히그던 타악기 협주곡 / 프랑크 교향곡 d단조 - 콜린 커리 / 성시연 / 서울시향

2009년 6월 5일(금) 오후 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성시연
협연자 : Colin Currie (percussion)

Ravel, Alborada del Gracioso
Higdon, Percussion Concerto
Franck, Symphony in d minor, Op. 48



성시연은 이미 여러 차례 서울시향을 객원 지휘했으며, 이번에 마침내 서울시향 부지휘자가 되어 이날 첫선을 보였다. 글쓴이는 지난 2월 19일 연주회 때부터 성시연이 참된 솜씨를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쓴 바 있는데, 이날 라벨 <어릿광대의 새벽 노래>를 듣고 나서 내 생각이 맞았다는 믿음이 생겼다. 연주회 첫 곡을 이만큼 다듬었다면 시향 부지휘자로 모자람이 없다.

히그던 타악기 협주곡은 협주곡답지 않게 타악기와 오케스트라가 나란하지 않게 느껴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타악기가 음악을 이끌어가는 동안 오케스트라는 '반주' 노릇에 그치며, 그 때문에 협주곡이라기보다는 '타악기를 위한 오페라 아리아'에 가까워 보였다. 더군다나 카덴차에 이르니 이제까지는 카덴차를 맞이하는 전주곡이었을 따름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작곡가가 뒤로 물러난 만큼 협연자를 앞세우고 있으니 콜린 커리에게는 더없이 훌륭한 곡이라 하겠다. 콜린 커리는 지난 2007년 5월 24일에 제임스 맥밀런 <베니, 베니, 엠마누엘>을 협연하여 큰 박수를 받았는데, 이날도 현대음악치고는 듣기 어렵지 않고 음 소재가 적당히 신기한 곡으로 객석을 뜨겁게 달구어 놓았다.

프랑크 D 단조 교향곡이 초연된 1889년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돈 후안>과 말러 교향곡 1번이 초연된 해이기도 하며, 두 해 앞서 브루크너는 교향곡 9번 밑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바그너가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내놓은 지는 스무 해도 넘었다. 20세기 음악이 얼추 이 무렵부터 비롯하였음을 생각할 때 이 작품은 몹시 보수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프랑크는 브람스만큼 꼼꼼한 논리를 이 곡에 담아내지도 못했다. 차이콥스키처럼 귀에 쏙쏙 들어오는 선율도 없다. 그럼에도 프랑크 교향곡이 훌륭한 곡임은 틀림없다. 다만, 곡이 여러모로 무뚝뚝한 만큼 연주마저 어정쩡하면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글쓴이는 또한 지난 글에서 성시연이 '노력파 모범생'같은 지휘자라 여러 차례 쓴 바 있다. 이 말은 성시연이 잔꾀를 쓰기보다는 정직하게 음악을 풀어나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이날 프랑크 교향곡이 자칫 너무 맨송맨송할까 걱정했다. 그러나 웬걸, 잔꾀 없이 올곧은 해석만으로도 음악은 너무나 훌륨했다. 지휘자나 악단이나 기초 '내공'이 탄탄하여 소리를 야무지게 다듬어 풀어냈는데다가 연주회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생동감 또한 적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성시연의 정직함이 드러난 곳, 거꾸로 말하면 '꼼수'를 쓰기 좋은 곳을 몇 군데 살펴보자. 1악장 느린 도입부에서는 악보에 없는 아첼레란도를 크레셴도에 얹어서 '베토벤스러운' 도움닫기를 할 수 있으며 푸르트벵글러가 바로 그렇게 했다. 첫째 주제가 나타나는 마디 29에서는 도입부가 사나울수록 마르카토에 가깝게 박박 긁어댈 수 있다. 그러나 성시연은 넉넉하되 사납지 않은 크레셴도와 가파르지 않은 템포로 처음부터 '발작'하지는 않겠다는 마음가짐을 보여주었다. 첫째 주제를 연주할 때에는 활놀림을 눈여겨보았더니 내림-내림-올림으로 모나지 않고 부드럽게 연주했다. 트롬본과 트럼펫 및 코넷이 선율을 되풀이해 주고받는 마디 331에서는 울부짖듯이 사납게 연주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서울시향은 떠벌리지 않고 알맞은 파토스를 뿜어냈다.

2악장 첫머리에서는 현 소리를 줄이고 하프를 앞세우면 맑은 하프 음색에 달콤쌉쌀한 감화음이 어우러져 '게르만스러운' 무뚝뚝함을 한결 부드럽게 녹여낼 수 있으며 첼리비다케와 몽퇴가 바로 그렇게 했다. 그러나 성시연은 하프와 현이 딱 알맞게 어울리도록 했다. 음반을 들어 봐도 이 대목에서 이토록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고른 소리를 내는 연주는 드문 듯한데 어쩌면 음반으로는 살리기 어려운 현장감 때문이었을까.

이 곡은 대위법이 썩 훌륭하다고 말하기 어려워서 부선율이나 장식음 따위를 잘못 살리면 그야말로 얕은꾀가 되기 쉽다. 그러나 이를테면 2악장 마디 49 같은 곳에서 제2 바이올린과 비올라 16분음 음형을 잘 살리면 음악이 더욱 다채로워지기도 하며 몽퇴가 바로 그렇게 했다. 그러나 성시연은 제1 바이올린 주선율을 뚜렷이 살리고 16분음 음형은 뒤에서 어른어른하게 다스렸다.

딱 한 군데 갸우뚱했던 곳이 있다. 3악장 마디 227에는 늘임표가 있는데, 그 앞서 몇 차례 나오는 늘임표와는 달리 "매우 길게 très long"라는 나타냄말이 더 붙어 있다. 마지막 음을 매우 길게 늘일 수도 있겠고, 숨이 모자란다면 브루크너 음악에 곧잘 나오는 모두쉼표처럼 멈췄다 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성시연은 앞서 나오는 다른 늘임표와 그다지 다르지 않게 적당히 늘여주고 넘어갔다.

화장은 한 듯 안 한 듯 티 나지 않게 하기가 어렵다 했던가. 성시연의 올곧은 마음가짐은 나이를 생각하면 매우 알맞으나 또한 피 끓는 나이에는 지키기 어렵기도 하다. 경험을 쌓을수록 융통성이 늘어날 테고, 그럴수록 성시연은 '화장발'에도 마음을 쏟을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 일구어놓은 바탕을 잊지만 않는다면 그 또한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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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9.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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