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정명훈
협연자 : Aleksandar Madzar (Pf)
Mozart, Piano Concerto No.27 in B flat, K.595
Bruckner, Symphony No. 7 in E (Ed. Nowak)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연주한 서울시향은 유럽 악단 수준에 조금씩 다가가는 요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으며 무엇보다 금관악기가 깔끔한 연주를 해주어 반가웠다. 편성은 현악기를 크게 늘여 여섯 짝씩이었고 콘트라베이스도 열두 대를 썼다. 관악기는 호른과 트럼펫을 하나씩 더블링한 것을 빼면 악보 지시를 따랐다.
트럼펫이 가장 인상깊었으며 트럼펫 수석 가레스 플라워스가 이날도 돋보였다. 음량이 튀지 않고 다른 악기와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도 선율선과 부점리듬을 깔끔하게 살려주었다. 3악장 처음에 나오는 독주는 음반을 들으면서도 마음에 안 들 때가 잦아 이날 연주를 귀담아들었는데, 플라워스는 악센트를 또렷이 살리면서도 그 때문에 소리가 뚝뚝 끊어지는 일 없이 딱 알맞은 논레가토를 들려주었다.
바그너튜바는 우리나라에 전문 연주자가 없어서 제대로 된 연주를 듣기가 여간 어렵지 않으며, 이 때문에 음색을 희생해 바그너튜바 대신 호른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이날은 웬일인가 싶을 만큼 큰 실수 없이 깔끔하게 잘해서 놀랐다. 옥에 티를 하나 말하자면 2악장 클라이맥스를 지나 마디 184에서 테너 바그너튜바 둘 가운데 하나가 티 나게 비브라토를 썼다. 이곳은 바그너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애달픈 마음을 나타낸 곳이라 비브라토는 '장송곡' 분위기와 맞지 않았으며 '오르간 소리'와도 어울리지 않았다.
탄탄하게 중심을 잡아준 호른 또한 매우 훌륭했다. 1악장 마디 114부터 트롬본 및 튜바와 함께 부점 리듬을 주고받는 대목에서도 아귀가 딱딱 맞았고, 국내 악단이라면 반드시 실수를 하는 마디 163 호른 합주에서도 어택이 완벽하게 들어맞지는 않았으나 제법 깔끔하게 잘했다. 2악장 마디 190부터 f에서 fff로 가파르게 커졌다가 마지막 울부짖음이 pp로 재빨리 사그라진 대목에서는 브루크너가 목놓아 우는 모습이 눈에 보일 듯했으며, 호른 네 대를 쓰면서도 한 악기처럼 잘 맞았다.
트롬본 또한 큰 소리를 내는 곳에서도 사납게 으르렁거리지 않고 화음을 살려 깊은 울림을 내주었으며, 국내 악단이 마치 관행처럼 얼렁뚱땅 넘어가곤 하는 부점리듬도 잘 살렸다. 4악장에서 트롬본, 호른, 바그너튜바, 콘트라베이스튜바가 유니슨으로 나오는 마디 267에서는 세 겹 부점 리듬이 몹시 까다롭기도 하거니와 대충 2분음표로 연주해도 그다지 티 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날 어떻게 하는지 조금은 짓궂은 마음으로 귀담아들었더니 트롬본은 나무랄 데 없었고, 호른과 바그너튜바는 아리송하고, 콘트라베이스튜바는 트롬본에 슬쩍 묻어가더라. 그래도 주선율은 트롬본에 있었으므로 전체적으로는 썩 좋았다.
이날 주인공은 금관악기였으나 목관악기도 훌륭했다. 무엇보다 2악장 클라이맥스와 장송곡에 이어 나오는 플루트 독주가 마치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듯 너무나 애달팠으며, 말러 교향곡 10번 5악장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작지만 안타까운 실수도 있었는데, 1악장 제2주제 전위형이 나오는 마디 185에서 저음 현이 갑자기 치고 나오도록 지휘자가 첼로 쪽으로 예비박을 세게 주었더니 플루트 연주자가 잘못 알아듣고 마지막에 얼버무리는 바람에 느닷없이 울음이 터지는 듯한 효과가 멋질 뻔하다 말았다.
정명훈은 3, 4악장 템포를 조금 빠르게 잡아 전체적으로 밝고 희망찬 브루크너를 연출했으며 4악장에서 템포를 자연스럽게 조였다 풀었다 하는 대목이 돋보였다. 1악장 마디 391부터 팀파니를 앞세운 크레셴도도 멋졌고 이어지는 코다에서 크레셴도와 아첼레란도를 같이 쓴 대목도 제법 그럴싸했다. 4악장 코다에서는 '처음 빠르기로'와 호른에 붙은 '경건하게'라는 나타냄말이 서로 어울리지 못할까 봐 귀담아들었더니 정명훈은 템포를 살짝 늦추었다가 조금씩 조이며 고양감을 높이는 솜씨를 보여주었다.
1악장 스트레토(마디 233)에서는 금관이 너무 나서지 않고 균형을 잘 맞춘 대목은 참 좋았으나 그 때문에 '마르텔라토'가 죽어버려 안타까웠다. 현이 테누토 지시를 너무 곧이곧대로 지킨 탓이다. 이 테누토는 마르텔라토를 살리느라 소리가 너무 딱딱 끊어지면 안 된다는 뜻일 뿐 금관 텍스처와 따로 놀라는 뜻이라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서울시향은 현이 레가토에 가깝게 연주하면서 금관과 나란히 음악을 이끌어버려 앙상블이 훌륭했는데도 어정쩡한 스트레토가 되고 말았다.
2악장 처음에는 저음 현이 바그너튜바 소리를 묻어버려 아쉬웠고 처음부터 음량이 너무 커서 조금 부담스러웠다. 마디 4에서는 메조포르테가 아니라 포르티시모에 가까웠다. 바이올린 여섯잇단음 오스티나토가 나오는 마디 157부터 긴장감을 쌓아가는 대목이 훌륭했으며 클라이맥스에서도 총주를 뚫고 나오는 바이올린 소리가 매우 멋있었다. 다만, 마디 169와 마디 171 넷째 박 포르타토는 너무 레가토에 가까워서 조금 어색했다.
3악장 마디 52에서는 c단조로 넘어가기에 앞서 스타카티시모 음형이 치고 나오는 대목이 멋지다. 그러나 독일6화음을 살려야 제맛이 나므로 트롬본 등이 너무 큰 소리를 내면 좋지 않은데, 서울시향 금관은 이곳에서 딱 알맞은 소리를 내었으나 현이 좀 더 튀어나오지 않아 살짝 아쉬웠다.
알렉산다르 마자르가 협연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7번은 맑고 부드럽고 달콤한 모차르트였으며 들을수록 마냥 행복해지는 연주였다.
김원철. 2009.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