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4일 금요일

2009.03.05.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4번 - 피닌 콜린즈 / 정명훈 / 서울시향

2009년 3월 5일(목)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휘자 : 정명훈
협연자 : Finghin Collins (Pf)

Borodin, Polovtsian Dances
Mozart, Piano Concerto No.24 in C minor, K.491
Stravinsky, The Rite of Spring (Le Sacre du Printemps)



스트라빈스키는 음악에 감정이 드러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으며, 어둠을 뚫고 빛을 찾아가는 '베토벤스러운' 믿음과 그 얼개를 이루는 낭만주의 기능화성을 싫어했다. 스트라빈스키 음악에 조성이 없거나 희미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얼핏 보면 쇤베르크로 대표되는 12음 음악과 닮았으나 바탕에 깔린 마음가짐은 거꾸로다. 쇤베르크 음악은 조성과 화성이 발전 끝에 해체하고서 맺은 열매이지만, 스트라빈스키 음악은 목표를 향해 발전한다는 오랜 가치관을 뿌리째 뽑아낸 자리에서 자라난 새싹이다. 요즘 눈으로 보면 모더니즘이 꽃피기에 앞서 포스트모던한 생각을 한 셈인데, 그 때문에 스트라빈스키는 모더니스트들에게 모진 말을 들어야 했으며, 이를테면 아도르노는 "그는 지붕을 뜯어내 버렸고, 그래서 이제 그의 대머리 위로 빗물이 흐른다."라고 했다.

낭만주의를 물리치면서도 모더니즘과도 거리를 둔 음악은 어떠해야 할까? <봄의 제전>에서는 현대적인 음향과 원시적인 울림이라는 '남남'을 얄궂게 엮어놓은 엉뚱함과 그 안에 담긴 비선형성(non-linearity)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또 스트라빈스키가 직접 지휘한 녹음이 남아 있어 이 작품을 어떻게 연주해야 할지 낱낱이 알 수 있다. 러시아 교회 종소리를 닮아 이곳저곳에서 두서없이 튀어나오는 스트라빈스키 폴리포니, 비브라토를 되도록 쓰지 않아 몹시 메마른 음색, 원시 부족이 멋대로 노래하는 듯 고약한 선율과 화음이 연주에서 잘 살아난다.

그러나 작품을 내놓고 나면 작가는 죽어야 한다고 했다. 많은 지휘자가 스트라빈스키를 배신해 왔으며 그것이 옳지 않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카라얀은 두텁고 기름진 비브라토로 잔뜩 멋을 내어 낭만주의와 닿아 있는 녹음을 남겼고(스트라빈스키는 몹시 화를 냈다고 한다.), 불레즈는 마치 총열주의 음악인 양 차갑고 딱딱한 질서를 연주에 담아냈다. 정명훈은 이럴 때 보통 중용을 지키는데, 카라얀을 '우파'라 하고 불레즈를 '좌파'라 한다면 정명훈은 중도우파이며 아바도와 살로넨 사이 어딘가에 있다.

정명훈이 지휘한 서울시향은 '스트라빈스키 폴리포니'를 날것 그대로 살리기보다는 주선율을 뚜렷이 살려 쏟아지는 선율과 리듬 속에서 관객이 어지럼증을 느끼지 않도록 했다. 현악기는 이를테면 1부 4곡 '봄의 론도'나 2부 2곡 '젊은이의 신비한 모임'에서도 음색이 너무 까슬까슬하지 않도록 비브라토를 알맞게 썼고, 1부 4곡 마디 331에서 비올라가 비브라토를 아낀 일처럼 드물게 메마른 음색을 살렸다. 2부 서곡에서는 제2 바이올린 플래절렛(개방현 하모닉스) 화음이 너무 고약하게 들리지 않게끔 소리를 줄였고, 하모닉스 주법으로 연주하는 독주 바이올린은 글리산도를 되도록 얌전하게 갈무리했다.

타악기는 너무 앞으로 나서지 않고 다른 악기 소리에 감칠맛을 더할 때가 잦았고, 이를테면 살로넨 녹음에서 큰북이 매우 큰 소리를 내는 1부 5곡 '적대관계에 있는 부족들의 의식' 마디 439에서도 악보에서 지시한 '메조포르테'를 넘어서지 않았다. 그러나 꼭 필요한 곳에서는 연주회장이 무너질 듯한 소리를 터트리기도 했다. 1부 마지막 네 마디에서는 큰북이 무시무시한 크레셴도를 들려주었고, 2부 3곡 '선택된 처녀에게 영광을'에 들어서기 바로 앞서 나오는 4분음 11연타 때에는 큰북과 팀파니가 현 소리를 누르고 마구 두드려댔다. 2부 끝 곡 '희생의 춤'에서는 타악기끼리 어질어질한 폴리리듬을 주고받았다.

관악기 연주자들도 저마다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었으며, 자주 보기 어려운 악기인 알토 플루트와 베이스 클라리넷 따위도 곳곳에서 돋보였다. 베이스 클라리넷은 이 곡에서 은근히 멋있게 나와서 이를테면 1부 서곡에서 좀 더 튀는 연주를 들려주었으면 싶었으나 그냥 다른 악기와 알맞게 어울려서 조금은 아쉬웠다. 바순은 다른 악기와 쉽게 섞여버리는 악기 특성 탓에 좀처럼 눈길을 얻기 어려운데 이날 곡 첫머리부터 곽정선 수석대행이 멋진 독주를 들려주었다. 문득 시향 수석 연주자들만 놓고 보면 이제는 웬만한 유럽 악단과 견주어도 크게 뒤지지 않으리라는 생각도 들었으며, 유럽으로 연주 여행을 가겠다더니 그럴 만도 하다 싶었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4번을 협연한 피닌 콜린스는 모차르트치고는 페달을 제법 많이 쓰는 듯했고, 모차르트보다는 초기 베토벤 같은 느낌이 들었다. 카덴차는 아예 19세기 음악이라 해도 믿길 만했다. 이 작품이 모차르트 작품 가운데서도 파토스를 꽤 겉으로 들어내는 까닭에 이런 연주도 그럴싸하다 싶었다. 그런가 하면 연주자 나이에 어울리는 풋풋한 젊음과 조금 나쁘게 말하면 치기가 이곳저곳에서 느껴지기도 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3악장 세 번째 변주(마디 65)였는데, 첫머리에 나오는 뒤집힌 c단조 화음을 사납게 풀어낼 줄 알았더니 뜻밖에 화음보다 선율선을 살려 여린 느낌으로 가다가 마디 81에 이르면서 좀 더 화음을 살렸다. 앙코르로 슈만 곡을 듣고 나니 모차르트베토벤도 아닌 슈만에 가장 어울리는 연주자라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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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9.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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