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12음 음악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12음 음악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09년 7월 29일 수요일

현대음악의 '모더니티' - 아래 글에 이어

아래 글에 이어 씁니다:

http://blog.goclassic.co.kr/fishtail/1248785425
http://blog.goclassic.co.kr/fishtail/1248852994


▶ 모더니즘 음악, 양식이 아닌 시대 구분

먼저, 제가 '모더니즘'을 너무 좁은 뜻으로 가두려고 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네요. 다른 사람도 아닌 달하우스가 말러와 슈트라우스와 드뷔시를 가리켜 '프로그레시비스트(progressivist)'도 아니고 '모더니스트(Modernist)'라고 했다니 말이에요.

더군다나 1890년을 "역사적 단절 시기"라 한 대목이나 대표작으로 슈트라우스 <돈 후안>을 집어 말한 대목을 보면 여기서 달하우스가 말한 '모더니티'란 제가 말한 조성 및 화성의 해체가 아닌 현대적인 관현악법에 더 쏠려 있다고 보아야 하며, 여기에 '헤겔스러운' 생각을 갖다 붙이기 어렵습니다. 또 다른 문헌을 읽어보면 달하우스는 이 대목에서 '모더니즘'을 음악 양식이 아닌 단순 시대 구분으로만 쓴 듯합니다.

더 나아가 생각해 보면, 제가 '모더니즘'과 상대적인 개념으로 썼던 '포스트모더니즘' 또한 모더니즘으로 이루고자 했던 유토피아적 이상마저 버리지는 않았으므로 어찌 보면 모더니즘의 후예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모더니즘 음악과 관련한 문헌을 여러 가지 읽어 봤는데, 이 말을 둘러싼 '층'이 세 가지쯤 되는 듯합니다. 첫째, 단순 시대 구분. 둘째, fishtail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이념. 셋째, 역사의 발전과 진보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특정 음악 양식.

그러나 곁가지로 몇 군데 반론을 펴지 않을 수 없네요.


▶ 근대 화성 이론과 모더니즘

먼저, '역사의 완성'이라는 말은 카덴이 썼던 레토릭(rhetoric)임을 분명히 밝혀둡니다. 제가 부분 인용하면서 조금 무리하게 느껴질 수 있는 주장을 했는데, '근대 화성 이론'과 '표현주의'를 나누어 더 자세하게 써야겠네요. 먼저 fishtail님이 인용하신 Karol Berger를 살펴보지요.

Karol Berger(2005)는 시기를 더 앞당겨 베토벤의 소나타가 바흐의 푸가를 대체한 시기, 즉 순환적 시간관이 직선적 시간관으로 교체한 18세기에 모더니티가 태동했고 18세기말에 이것이 첨예해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말은 제가 처음에 했던 주장과 어긋나지 않습니다. 18세기 음악을 '모더니즘'과 곧바로 이어 말하는 일이 옳은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으나 "순환적 시간관이 직선적 시간관으로 교체한 18세기에 모더니티가 태동했"다는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듯합니다. 제가 라모 얘기를 갖다 붙인 까닭이 여기에 있기도 하고요. 다시 말하면 18세기에 "순환적 시간관이 직선적 시간관으로 교체"된 바탕이 바로 18세기 화성 이론입니다.

근대 화성 이론이 '목표지향적'인 까닭은 화성 이론을 이해하고 나면 너무나 당연해서 오히려 설명하기 곤란하군요. 자세한 내용은 아래 논문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용정희, "라모의 화성이론에 나타난 음악사상과 배경." 『음악이론연구』(서울: 서울대학교 서양음악연구소, 2005), 제10권, pp.112-129.

fishtail님은 "12음 기법의 옹호자들과 그들의 후예들만을 모더니스트로 보는 관점"을 비판하고자 Berger를 인용하셨는데 저는 그런 주장을 한 일이 없어요. "콕 집어 말하자면 12음 음악과 그 자식들"이라는 말이 그런 오해를 부른 듯한데, 이 말은 모더니즘을 12음 음악에만 배타적으로 붙여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12음 음악을 뒷받침하는 '헤겔스러운' 생각에 바탕을 둔 음악만을 일컬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제가 바로 위에서 인정해버렸으니 이 얘기는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 '발전사관'과 "역사의 완성"

"역사의 완성"이라는 말은 무조성 또는 범조성이 역사의 완성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헤겔스러운' 생각, Berger가 했던 말을 빌자면 18세기에 태동한 "직선적 시간관"이 "일종의 역사의 완성이라 할 수 있는 비약적인 발전을 맞기까지 했다."(C. 카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쇤베르크와 그 제자들이 '발전사관'을 믿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니 이상하네요. 쇤베르크가 앞으로 몇십 년만 지나면 가게 점원이 12음렬로 된 휘파람을 흥얼거릴 것이라 예언한 일은 매우 잘 알려졌는데요. 청중이 '발전'하고 '진보'하리라 믿지 않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또 쇤베르크는 무조음악이 역사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이며 자신은 그 흐름에 발맞추었을 뿐이라는 주장을 이곳저곳에서 했으니 관련 문헌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백 번 양보해 쇤베르크와 그 제자들이 '발전사관'을 믿지 않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음악 언어가 이미 18세기부터 이어온 '발전론적'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 패러다임을 적극적으로 '발전'시키기까지 했기 때문입니다. 모차르트를 고전주의 음악가라 부르거나 바흐를 바로크 음악가로 부르는데 굳이 작곡가가 동의할 필요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그리고 fishtail님이 인용하신 쇤베르크 말은 다른 글을 인용하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그러나 쇤베르크가 추구한 모든 변화가 과거의 전통으로부터 발전된 형태이고 또 그 변화과정이 점진적이었다는 점, 즉 그의 모든 행위들이 그로서는 자연스러운 인과관계를 지닌 귀결이었다는 점 때문에 쇤베르크의 선택이 그 당시의 '유일한 해결책'이었다는 당위성을 띤 것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 예컨대 쇤베르크가 아니라면 다른 작곡가에 의해 무조음악이 시작되었을 터이지만, 그 음악양식은 쇤베르크의 것과는 사뭇 다른 양식의 무조음악이 탄생했을 것이다.

- 이석원, "아르놀트 쇤베르크." 『20세기 작곡가 연구 I』(서울: 음악세계, 2003), 303쪽.


▶ 표현주의와 모더니즘

'표현주의'라는 말은 쇤베르크 음악 양식이 미술 사조에 종속되는 듯한 잘못된 인상을 주므로 여기서는 '주관성과 내면성' 쯤으로 고쳐 말하기로 하겠습니다. 쇤베르크의 '주관성과 내면성'은 쇤베르크가 어쩌다 갖게 된 예술 '취향'이 아닙니다. 무조음악이 "역사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인 것과 마찬가지로 '주관성과 내면성' 또한 "그로서는 자연스러운 인과관계를 지닌 귀결"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쇤베르크의 표현주의 음악에서 뚜렷하게 드러나듯이 예술의 의미와 정당성은 인습과 타협하지 않는 내면성의 표출에서 가름되었다. 이러한 주관성의 강조는 낭만주의의 연장선에서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낭만주의보다 더욱 극단적으로 드러난 인간의 주관성의 강조는 "예술적 자의식"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낭만주의에서의 주관적 감정 표출이 초월적·종교적 세계와 맥을 잇는다면, 모더니즘에서의 주관성은 인간의 의식과 심리와 관계를 맺으면서 구별된다.

- 오희숙, 『20세기 음악 I 미학』(서울: 심설당, 2004), 378쪽.

아도르노는 인간의 내면에 관심을 보이며 주관성을 강조한다. 이는 표현주의에 대한 정당화에도 나타난다. "예술에까지 펼쳐지는 생명 중 주관은 유일하게 비기계적인 측면이다. 예술 작품은 다른 아무 곳에서도 생명을 얻을 수 없다. 음악은 주관을 닮지 않아야 하지만, 주관을 전혀 닮지 않아서도 안 된다. 그렇지 않다면 음악은 존재이유가 없는 절대적 변질(소외)이나 마찬가지이다."(『콰지 우나 판타지아』, 417쪽). 음악을 통해 반영된 사회 또한 주관을 통해 파악된 사회이다. 예술은 주관 없이 예술에 이르지 못한다. 사회와 관계가 없는 순수 주관 또한 생명을 가진 예술이 아니다. 이것이 주관적이면서도 동시에 사회적인 아도르노의 예술론이다.

- 오희숙, 386쪽.


현대음악의 '모더니티'

아래 글을 읽고 씀:
http://blog.goclassic.co.kr/fishtail/1248785425

사람마다 '민주주의'에 대한 관점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모더니즘'에 대한 관점 또한 다를 수 있지요. 그러나 '민주주의'를 믿는 사람이라면 합의에 이를 수 있는 지점은 있게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모더니즘'에 대한 생각이 저마다 다르더라도 '발전' '진보' '구조' 같은 개념들은 '모더니즘'이라는 대명제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습니다.

fishtail님이 말씀하신 "서양음악의 하모니와 주제의 기초를 뒤흔들려는 표현주의적인 충동"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19세기 기능화성을 버리더라도 다른 맥락에서나마 '화음'은 남게 마련이며, 그 바탕에 깔린 '질서'와 '구조'는 오히려 더욱 탄탄해질 뿐입니다. 음악에 정치적 사상을 담아야만 "진보사관"과 엮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음악을 이루는 얼개에 이미 모더니즘이 녹아들어 갔다는 말이에요. 음악학자 크리스티안 카덴은 이를 두고 "역사의 완성"이라고까지 했습니다.

스트라빈스키는 그의 음악 활동과 작품들을 통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반화되어 있는 역사모델, 즉 헤겔의 세계정신에 기인하며 인류의 발전과 진보를 계산에 두는, 그리고 선(線)적인 시간 개념에 사로잡혀 있고 사회의 자율적 움직임과 음악 재료들의 자율적 움직임에 의거하는 역사모델을 훼손했다. (...) 그는 아주 분명하고 도발적으로 서양문화의 터부에 대항했다. 표현예술과 표현수단으로서의 음악 개념에 대항한 것이다. 적어도 계몽주의시대부터 이 개념은 (극진한 보호를 받는) 상투어가 되었고 문화 진열장에서 부동의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이 개념은 음악의 표현주의와 20세기 초 무렵의 음악에서의 일종의 역사의 완성이라 할 수 있는 비약적인 발전을 맞기까지 했다. 쇤베르크와 그의 제자들이, 또 프란츠 슈레커(Franz Schrecker)의 오페라가 이에 한 몫을 했다.

- Christian Kaden, 나주리 옮김, "20세기의 음악과 세계관: 스트라빈스키의 경우." 『음악이론연구』(서울: 서울대학교 서양음악연구소, 2006), 제11권, pp.209-230.

'근대적인' 화성 이론에 이미 '발전'이나 '목표 지향' 같은 개념이 깔렸고, 그것이 더 튼튼한 질서에 따라 거듭나고 '표현주의'가 이에 더해진 20세기 양식이 '역사의 완성'이라는 말입니다. 무조 음악이 전통의 '단절'이 아니라 거꾸로 전통의 '완성'이며 '필연'이라는 관점에는 수많은 음악학자가 동의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화성 이론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장 필리프 라모에 이르게 되지요. 라모는 화성 이론을 설명하면서 뉴튼의 중력 이론에 빗대기도 했습니다. 제가 위에 '베토벤스러운'이라는 말을 했으나 참된 뿌리는 '라모'에서부터 비롯합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아래 링크를 참고하되 '음모론'은 빼고 읽으세요.

http://wagnerian.textcube.com/428

그런가 하면, 쇤베르크가 스트라빈스키를 옹호한 일은 사상가와 예술가의 온도차 정도로 받아들여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위에 제가 인용한 말을 보아도 사상가(아도르노, 블로흐)와 예술가(베르크)가 뚜렷한 온도차를 보이고 있습니다. 쇤베르크는 예술가인 만큼 사상을 가지고 예술의 자유를 깎아내리려는 행동을 경계하는 게 당연하다는 말이지요.

2008년 12월 16일 화요일

오디오쟁이에게 뽐뿌질하는 현대음악 ― 베베른 Op.10


☞ 오디오쟁이에게 뽐뿌질하는 현대음악 ― 들어가며



동요 선율은 단순하다. 왜 그럴까? 〈학교 종〉을 계명창으로 불러보자. 솔솔라라솔솔미 솔솔미미레 솔솔라라솔솔미 솔미레미도. 선율을 이루는 음을 순서대로 나열해 보자. 도레미솔라. 다섯 음으로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다섯 음은 모두 피아노 흰 건반에 들어맞는다. '솔'이 열한 번 나오고 '미'가 여섯 번, '라'가 네 번, '레'가 두 번 나온다. '도'는 딱 한 번 나오지만 맨 마지막에 나와서 곡을 끝맺으므로 알고 보면 매우 중요하다.

이 곡은 C 장조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해 C 음, 즉 '도'를 '으뜸음'으로 하는 음계인 '도레미파솔라시'로 선율이 이루어져 있다. 이 곡에 가장 자주 나온 '솔'은 C 장조에서 '딸림음'이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도미넌트(dominant)이다. 말 그대로 선율을 다스리는 음이다. 으뜸음이 주인공이라면 딸림음은 악당이다. 원래 주인공보다 악당이 더 멋있는 법이지만 끝내는 주인공이 이긴다. 썩 좋은 비유는 아니고 오류도 있지만 여기서는 이렇게만 하고 넘어가자.

이처럼 선율을 이루는 음들이 맺는 관계는 평등하지 않으며, '조성(調性; tonality)'이라 부르는 위계질서를 따른다. 그리고 위계질서가 잘 잡힌 선율일수록 듣기에 편안하지만 그만큼 단순하기도 하다. 단순한 선율은 그만큼 흥미를 잃기 쉬우며 적절한 일탈은 선율을 더욱 넉넉하고 재미있게 만든다. 서양음악에 오늘날과 같은 조성이 생겨난 것은 17세기 즈음인데(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조성'이라는 개념은 19세기에 와서 생겼고 그전에는 C 장조, a 단조 하는 '조(調; key)' 개념이 있었다.) 그 뒤로 점차 '일탈'이 잦아져 조성 구조는 복잡해지고 화음도 그만큼 복잡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다가 20세기에 와서는 '일탈'이 넘쳐나다 못해 '위계질서' 자체가 무너지고 선율을 이루는 음들이 평등해졌다. 바로 조성이 없는 음악, 무조음악이다. (조성이 생겨나기 전에도 음악이 있었지만 '선법'이라는 비슷한 위계질서가 있었으므로 '무조음악'이라는 용어를 쓸 때 헷갈리지 말자.) 서양음악사에 처음 나타난 무조음악은 1908년 세계초연된 쇤베르크 현악사중주 2번 3, 4악장이며, 4악장에 나오는 '나는 다른 행성의 공기를 느낀다.'라는 의미심장한 노랫말로 이름 높다.

쇤베르크는 무조음악을 손쉽게 작곡하려고 1921년에 이른바 '12음 기법'을 만들어냈다. (12음 기법이 나오기 전에도 무조음악이 있었으며, 쇤베르크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달에 홀린 피에로》는 1912년 작품으로 무조음악이되 12음 기법으로 쓴 작품이 아니다.) 12음 기법은 한 옥타브를 이루는 음 열두 개를 수열처럼 음렬(音列)로 만들어 쓴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으며 그 때문에 '음렬주의(Serialism)'라는 말도 생겨났다. 더 나중에는 리듬과 셈여림 따위를 마찬가지로 잘게 나누어 음렬처럼 쓰는 이른바 '총열주의(Total Serialism)'도 나타났는데, 유럽에서는 영미권과는 언어 관습이 달라서 '음렬주의'라 하면 보통 '총열주의'를 가리킨다.

현대음악이 어렵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람은 현대음악은 곧 12음 음악이라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12음 음악은 현대음악의 한 갈래일 뿐이며, 어찌 보면 12음 음악이 20세기 서양음악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니 처음부터 12음 음악을 들을 생각은 버려도 좋다. 베베른의 《관현악을 위한 5개의 소품 Op.10》은 베베른이 1911년부터 1913년에 걸쳐 작곡했으며, 12음 기법을 쓰지는 않았지만 조성이 없는 음악이다. 그러나 〈오디오쟁이에게 뽐뿌질하는 현대음악〉에서 이런 음악을 소개하는 일은 아마도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다.

이 작품을 익히기 가장 좋은 방법은 악보를 보고 직접 분석해 보는 것이다. 5악장 작품인데 4악장은 길이가 고작 여섯 마디밖에 안 될 만큼 작품 길이가 터무니없이 짧으므로 악보를 통째로 외워버려도 좋다. 짧다는 것은 어쩌면 베베른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일지도 모른다.

악보를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은 선율을 들으려 하지 말고 음색에 주의를 기울여 보라. 알고 보면 오디오 테스트용 음악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하프와 약음기 낀 트롬본, 하프와 첼레스타, 하프와 플루트가 차례로 한 음씩 연주하며 음악이 시작되는데 이때 음색이 어떻게 바뀌는지 들어보라. 이때 플루트는 혀나 목젖을 떨어 '아르르' 하는 소리를 내는 이른바 '플러터 텅잉(flutter-tonguing)' 주법을 쓴다. 이처럼 선율이 흐를 때 음색이 계속 바뀌게 하는 작곡 기법을 '음색선율(Klangfarbenmelodie)'이라고 하며, 베베른은 음색과 함께 길이, 셈여림, 그리고 음높이에 따라 달라지는 색깔까지 12음 기법 속에서 짜임새 있게 사용하여 훗날 총열주의자들에게 커다란 영감을 주었다.

선율이 흐르면서 음색이 바뀌니 악기 또한 계속 바뀌고 그때마다 소리가 나는 위치도 바뀐다. 당신이 오디오쟁이라면 이때 음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잘 들어보라. 소리가 나는 곳이 앞뒤, 왼쪽 오른쪽, 위아래로 계속 움직이는데 마치 요정이 빛을 뿌리며 무대 위를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어, 뭔가 이상하다. 2채널 스피커로 음상이 아래위로도 맺히게 할 수 있는가? 특수 녹음을 하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이제껏 들어본 음반 가운데 그런 녹음은 없었으며 연주회장에서 실제 연주를 들어보고서야 나는 이제까지 음반으로 들은 것은 제대로 된 감상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베베른 음반을 내놓은 레코딩 엔지니어들은 반성하시라.

3악장에서는 큰북과 차임벨(Tubular bell)이 낮고 여린 소리로 '우르릉'하는데 오디오 저음 재생 능력을 시험하기에 좋다. 악보에는 '들릴 듯 말 듯하게 kaum hörbar'라고 써놨는데 아예 안 들리면 곤란하다. 글쓴이 오디오는 소리는 다 나는데 음색이 진짜 악기 소리와는 좀 다르다. 그런데 최고급 오디오로 들어보니 진짜 악기 소리가 나더라.

20세기 서양음악의 중요한 특징으로 음색을 꼽는다면, 무조음악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쇤베르크는 그저 낭만주의자였을 뿐 현대음악 작곡가가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불레즈는 "쇤베르크는 죽었다"라는 악명 높은 글에서 이처럼 쇤베르크를 헐뜯으며 베베른에게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현대음악에서 음색은 이토록 중요하다. 다음 시간에는 음색을 뺀 나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음악을 소개하겠다.

음반을 살 때 주의할 점. 《관현악을 위한 5개의 소품》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Op.10이며 다른 하나는 작품 번호가 없다. 둘은 다른 작품이니 헷갈리지 않도록 하자.

마지막으로 참고할 점. '베베른'은 'Webern'을 외래어 표기법에 맞게 쓴 것인데 실제 발음은 '베번'에 가깝다.



정보공유라이선스

김원철. 2008.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글타래:

오디오쟁이에게 뽐뿌질하는 현대음악 - 리게티 <아트모스페르>


글 찾기

글 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