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7일 수요일

드뷔시: 바다

예전에 썼던 글의 문체를 바꿔서 새로 쓰고 영문 번역을 추가함.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서양음악은, 마치 극(drama)이 기승전결 구조를 따르는 것처럼 어떤 ‘방향성’을 따라 ’발전’하는 짜임새를 갖는다. 그 바탕이 되는 화성 진행 원리를 작곡가이자 이론가 장필리프 라모는 뉴턴의 중력이론에 빗대기도 했다. 여기에 계몽주의 사상이 결합하면, 베토벤 교향곡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둠에서 광명으로’ 짜임새가 된다.

드뷔시 음악은 이러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있다. 드뷔시 음악은 목표를 향해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방향성 없이 그저 흘러간다. 이것은 드뷔시 음악을 설명할 때 흔히 거론되는 ’인상주의’의 일면으로, 특히 교향시 ‹바다›에서는 마치 그림을 보는 듯 음악이 정지해 있는 느낌이 든다. 음악학자 리처드 타루스킨이 했던 말을 빌리자면, 이것은 시간예술과 공간예술의 차이점을 메우는 장치라 할 수 있다.

1악장 ‘바다의 새벽부터 정오까지’를 들어보면, 새벽에 해가 떠서 수평선을 붉게 물들이고, 마침내 해가 높이 떠올라 눈부신 한낮의 햇살을 쏟아내는 모습이 환상적으로 느껴진다. 음악이 너무나 멋있어서 자세한 설명은 차라리 군더더기가 될 것이다. 그런데 2악장 ’파도의 희롱’과 3악장 ’바람과 바다의 대화’를 들으면서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다. 이 음악이 어딘가 안정감이 없어서 불편한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발전하는’ 음악에 너무 익숙한 탓일지도 모른다.

드뷔시 음악을 듣고 갸우뚱하게 하는 또 다른 원인은 모네, 르누아르 등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이다. 드뷔시 음악이 오해와 달리 모네 등의 그림과 그다지 닮은꼴이 아닌 까닭이다. 이것은 음악과 미술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사실은 드뷔시가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들에게서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리처드 타루스킨이 지적한 것처럼, 드뷔시 음악에 진정 큰 영향을 끼쳤던 사람들은 인상파 화가 중에서도 빛을 묘사하는 획기적인 표현 기법을 개발한 영국 화가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그리고 전체적인 ’분위기’를 어른어른한 색채로 그림에 담았던 미국 화가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James Abbott McNeill Whistler) 등이다.

▲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 北斎), 가나가와 앞바다 파도 뒤(冨嶽三十六景 神奈川沖浪裏)

드뷔시는 또한 일본 에도시대 풍속화에서 영감을 얻기도 했다. 우키요에(浮世絵)라 불리는 이것은 인상주의 미술 사조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드뷔시는 그 가운데 호쿠사이의 판화 ‹가나가와 앞바다 파도 뒤›를 보고 ‹바다›를 작곡했고, 이 판화가 ‹바다› 초판 악보 표지로도 쓰였다. ‹바다›에서 어딘가 동아시아 느낌을 받는다면 그것은 이 판화의 영향 때문일 수도 있다.

C. Debussy: La mer

Classical Western music, represented by classicism and romanticism, has a structure that follows a “direction” and “development” akin to the plot structure of a drama. The underlying principles of harmonic progression, as explained by composer and theorist Jean-Philippe Rameau, have been likened to Newton’s theory of gravity. When combined with the Enlightenment philosophy, it becomes a structure that can be commonly seen in Beethoven’s symphonies, where there is a transition “Per Aspera, Ad Astra” (through hardships to the stars).

Debussy’s music, however, deviates from this paradigm. His compositions do not progress towards a specific goal; instead, they flow without a distinct direction. This aspect is often referred to as an aspect of Impressionism when describing Debussy’s music. Particularly in the symphonic poem ‹La mer›, it feels like the music is standing still, as if looking at a painting. To quote musicologist Richard Taruskin, this can be seen as a device that bridges the difference between time-based art and space-based art.

The first movement of ‹La mer›, titled “From Dawn to Noon on the Sea,” creates a fantastic sensation of the sunrise, with the sun gradually illuminating the horizon. It’s an experience that may be better felt than described in detail. But listening to the second movement, “Play of the Waves,” and the third movement, “Dialogue of the Wind and the Sea,” one might find it perplexing. If the music feels unsettling or lacks a sense of stability, it could be due to being too accustomed to music that follows a developmental structure.

Another reason why Debussy’s music can be confusing is because of the works of Impressionist painters such as Monet and Renoir. Debussy’s music is not very similar to Monet’s paintings, contrary to popular misunderstanding. This may be due to the difference between music and art, but in fact, it is also because Debussy was not particularly influenced by the typical Impressionist painters.

As Richard Taruskin pointed out, those who truly influenced Debussy’s music include British painter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known for his groundbreaking portrayal of light, and American painter James Abbott McNeill Whistler, who depicted overall atmospheres with subtle coloration.

▲ Hokusai Katsushika, The Great Wave off Kanagawa

Debussy also found inspiration in Japanese Ukiyo-e woodblock prints from the Edo period, a movement that profoundly influenced Impressionist art. Influenced by Hokusai’s print ‹The Great Wave off Kanagawa›, Debussy composed ‹La mer›, with the same print gracing the cover of the initial score edition. If you perceive an East Asian undertone in ‹La mer›, it could be traced back to the impact of this particular woodblock pr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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