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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16일 월요일

드뷔시 《목신의 오후 전주곡》 /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 스트라빈스키 《불새 모음곡》 ― 스베틀린 루세브 / 리오 후세인 / 서울시향

2011-03-24 오후 08: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리오 후세인
협연: 스베틀린 루세브

드뷔시, 목신의 오후 전주곡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스트라빈스키, 불새 모음곡 (1945년판)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 ㅡ,.ㅡa
어라? 그런데 이번에는 잘린 곳이 없는 듯? 으허허허! >_<


예술 사조를 구분 짓는 잣대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들이대는 오류를 무릅쓴다면, 드뷔시스트라빈스키모더니즘이 미처 꽃피기에 앞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씨앗을 뿌린 작곡가라 할 수 있다. 이 말을 설명하려면 20세기 모더니즘 음악을 대표할 만한 이른바 '12음 음악'의 뿌리를 캐 봐야 한다.

18세기 화성 이론을 세운 작곡가이자 이론가 장필리프 라모는 화성 진행 원리를 뉴턴 중력 이론에 빗대어 설명하며 음악이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는 생각을 퍼트렸다. 이에 따라 음악 이론과 계몽주의 사상이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이것이 베토벤에 이르러 "고난을 거쳐 별들의 나라로"(per aspera ad astra)라는 말과 더불어 인류가 끝없이 발전하고 진보하리라는 믿음으로 발전했다.

12음 음악 또한 이러한 음악관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며, 서양음악이 '발전'하던 방향으로 미루어 볼 때 12음 음악이 나타난 일은 필연이라는 주장에 수많은 음악학자가 동의한다. 따라서 12음 음악은 오해와 달리 전통과 단절한 것이 아니라 거꾸로 전통을 완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드뷔시스트라빈스키야말로 뿌리 깊은 전통을 거부한 혁명가이다. 조성을 버리지는 않았으나 기능 화성 작법에서 벗어나 음악이 '발전'하지 않고 그저 흐르고 자라고 되돌아오게끔 했기 때문이다. 드뷔시는 이단아 취급을 받은 정도였지만, 스트라빈스키모더니즘이 힘을 얻던 때를 만나 모진 비난을 견뎌야 했다. 이를테면 아도르노는 스트라빈스키가 "지붕을 뜯어내 버렸고, 그래서 이제 그의 대머리 위로 빗물이 흐른다"라며 비꼬았다.

모더니즘이 절정에 이르며 조금씩 한계를 드러내던 때에 불레즈는 「쇤베르크는 죽었다」라는 악명 높은 글을 내놓았다. 이 글에서 불레즈는 19세기 음악을 확장·완성했을 뿐인 쇤베르크가 아니라 음색을 현대적으로 다루는 법을 알려준 베베른을 작곡가들이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음색이 중요해지면서 드뷔시스트라빈스키말러 등과 함께 재조명 받았다.

오늘날 드뷔시스트라빈스키 곡을 연주하려면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까? 무엇보다 《불새》는 스트라빈스키 자신이 지휘해 남긴 음반이 있어서 작품을 어찌 해석해야 할지 낱낱이 알 수 있는데, 이 작품을 새로 연주하려면 그것을 그대로 따라야 할까? 스트라빈스키가 의도한 바를 멋지게 '배신'하려면 어찌해야 할까?

불레즈는 음 하나하나가 낭비 없이 드러나도록 하며 베베른 음악에서 볼 수 있는 이른바 '음색선율'(Klangfarbenmelodie)을 《불새》에서도 연상하게끔 했다. 리카르도 샤이는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라는 특급 악단의 기능성을 살리며 세련되고 균형 잘 잡힌 음색을 뽑아냈다.

서울시향을 지휘한 리오 후세인은 조금 느린 템포로 소리를 꼼꼼하게 풀어냈으며, 때때로 연주가 너무 차분해서 긴장감이 떨어진 대목은 옥에 티였다. 현 소리에 비브라토로 멋을 내어 낭만주의 냄새를 풍긴 대목은 음악에 감정이 드러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스트라빈스키가 들었다면 싫어했을 법하다. 그러나 예술의 전당이라는 대형 연주회장과 그에 걸맞은 대편성 악단이 연주할 때 이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닌데다가 스트라빈스키가 뜻한 바를 곧이곧대로 살리는 일이 반드시 옳지도 않다.

지휘자가 보인 작품 해석은 무난했으며, 서울시향 실력에 걸맞은 깔끔한 앙상블과 다채로운 음색을 이끌어낸 대목은 칭찬할 만했다. 도입부가 끝날 무렵 나오는 변주에서 플루트와 피콜로가 새 소리를 흉내 내고 다른 악기가 그것을 따라 하는 대목이 가장 훌륭했고, 신 나게 두드려 대는 〈코시체이 왕의 사악한 춤〉도 멋졌다. 크게 부풀어 오르며 '브라보'를 부르는 〈피날레〉도 좋았다.

첫 곡으로 연주한 드뷔시 《목신의 오후 전주곡》에서도 모범적인 해석에 깔끔한 앙상블이 돋보였으며, 무엇보다 목관악기 연주자들이 아름다운 음색을 뽐냈다.

드뷔시는 프랑스 작곡가이고, 스트라빈스키는 러시아 작곡가이나 《불새》는 목관악기 비중을 높이는 등 프랑스 청중을 고려해 작곡했다. 멘델스존은 독일 작곡가이지만, 이날 협연자가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악장인 스베틀린 루세브였다. 서울시향 악장이기도 한 스베틀린 루세브는 사실 국적은 불가리아이나 연주에서 프랑스 느낌이 많이 묻어났다. 다른 연주자가 끊어 연주하는 곳도 웬만하면 매끄럽게 이어 연주했으며, 반드시 스타카토로 연주해야 하는 곳만 너무 거칠지 않게 끊어 연주했다. 포르타멘토는 프랑스식 포르타멘토라 불리는 B-포르타멘토를 썼다.

스베틀린 루세브는 지난 2008년 12월에 베토벤 협주곡을 협연하기도 했는데, 그때와 견주면 연주법은 비슷했으나 베토벤보다는 멘델스존이 루세브와 더 잘 맞는 듯했다. 서울시향과 함께한 시간이 더 쌓인 만큼 오케스트라와 더욱 한 몸처럼 어우러진 탓도 있겠다.

2009년 9월 2일 수요일

2008.12.30.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교향곡 9번 - 스베틀린 루세브 / 정명훈 / 서울시향

※ 나중에 고침: 니키친 → 니키틴(Никитин)

원래 ☞《파르지팔》 2막이었다가 프로그램이 바뀌어버린 연주회. 실바스티, 네메스, 니키틴이 각각 파르지팔, 쿤드리, 클링조르였는데 뒤늦게 인드라 토마스가 끼어들어 앙상블을 망쳐놓은, 그러나 그것만 빼면 참 좋았던 연주회.


2008년 12월 30일(화)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정명훈
협연자 : Svetlin Roussev/vn, Indra Thomas/sop, Judit Nemeth/mez, Jorma Silvasti/ten, Evgeny Nikitin/bar, 서울시합창단, 국립합창단, 서울모테트합창단

Beethoven,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 61
Beethoven, Symphony No. 9 in d minor, Op. 125 "Choral"


정명훈 지휘자는 서울시향을 맡고서 그 이듬해부터 악단 기본기를 닦겠다며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연주했다. 그리고 2년 만에 다시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연주하게 되었으니 그때와 지금은 무엇이 같고 또 무엇이 다를까. 먼저 단원들이 저마다 더 나은 솜씨를 길렀고 악장 스베틀린 루세브와 클라리넷 수석 채재일 등 훌륭한 연주자를 새로 뽑기도 했다. 악단이 함께 만들어내는 소리도 더욱 좋아졌다. 또 지지난해와는 달리 연주회장이 세종문화회관이 아니라 예술의 전당이라 더욱 듣기 좋은 소리가 되었다.

정명훈의 해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대편성 악단을 쓰고 템포를 대체로 느리게 잡으면서도 금관을 뒤로 물려서 소리에 기름기를 빼는 등 역사주의 연주 경향을 중용적으로 받아들였다. 이 때문에 옛날 녹음에만 익숙한 사람에게는 맥빠진 연주라고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특히 4악장 도입부에서는 트럼펫이 주선율을 연주하는 옛 관습을 버리고 악보 그대로 연주하는 유행을 따랐으며, 그 때문에 목관악기가 주선율을 연주하고 트럼펫은 목관악기를 살짝 거들기만 하면서 투명한 소리를 내었다. 지지난해에는 연주회장이 저 거대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라 이 대목에서 마치 앙상블이 갑자기 와르르 무너진 것처럼 들렸으나 올해에는 제법 그럴싸한 소리가 났다. 2악장 둘째 주제(마디 93)에서도 마찬가지로 호른이 주선율을 이끄는 대신 뒤로 물러나 악보대로 연주했다.

1악장 종결구 저음 오스티나토(ostinato)가 시작되는 마디 513에서 템포를 크게 늦춘 다음 1악장이 끝날 때까지 속도를 높인 것도 여전했다. 3악장 마디 133에서는 제2 바이올린이 피아니시모로 연주해야 하지만 서울시향은 일부러 포르티시모에 마르카토로 꾹꾹 눌러 마치 비올라처럼 들리게 했다. 시향이 연주한 3악장은 밝고 포근했으나 이 대목만큼은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느낌을 올해에도 받았다. 그래, 따듯한 위로를 받았으니 한 번쯤 목놓아 울기도 해야겠지.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연주하면서 독창자들이 연주를 망치지 않는 일은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없다. 가수들이 오페라 아리아를 부를 때에는 잘해도 교향곡에서 다른 악기에 녹아드는 데에는 익숙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외국에서 제법 잘 나가는 가수들을 모셔와서 기대했는데 소프라노만 아니었으면 참 좋았을 뻔했다. 소프라노 인드라 토마스가 노래할 때마다 목소리가 너무 커서 화음이 망가지곤 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고음 처리가 까다로운 마디 841에서는 억지로 소리를 쥐어짜느라 리듬엔블루스처럼 되어버렸다. 연주가 끝나고 누리꾼들 사이에서 소프라노를 탓하는 소리가 컸다. '오 벗이여, 이 소리가 아니야!'

가수들이 무대 앞으로 나오지 않고 금관악기와 나란히 서서 노래한 탓도 있었을 것이다. 목소리가 다른 악기와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하려면 이렇게 하는 게 좋으며 지지난해에도 그렇게 했다. 그러나 금관악기와 타악기 소리 때문에 가수들이 제 목소리를 듣기 어려워지는 게 문제다. 게다가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은 무대 위 음향이 매우 나쁘다고 한다. 가수 바로 뒤에 투명한 반사판을 두었으나 그것만으로는 한참 모자랐던 모양이라 베이스바리톤 예프게니 니키틴은 노래할 때마다 오른손을 귀에 갖다대기도 했다. 나는 그래도 가수를 뒤에 두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대에 적응할 시간을 좀 더 주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예프게니 니키틴은 지난 2005년 바그너 <니벨룽의 반지> 국내 초연 때 보탄(방랑자)을 맡았던 가수다. 그때는 목소리가 꽤 단단했는데 3년 만에 다시 보니 조금 부드러워진 대신 깊은 소리로 바뀌었다. 그러나 작품 성격이 다른 만큼 고약한 독일어 발음이 더 자주 발목을 잡았고 이것이 좋지 않은 루바토로 이어져 선율이 느슨해지곤 했다. 특히 /r/ 발음에 굳이 모음 하나 음표 하나를 더 넣어 부르는 게 마음에 안 들었으며, "Wo dein sanfter Flügel weilt" 할 때 엉뚱하게도 "Wo" 바로 뒤에 숨을 쉬어버려 가사 전달과 선율 흐름을 모두 망치기도 했다. 다만, 중창 때에는 다른 가수와 어울려 훌륭한 앙상블을 이루었다.

테너 요르마 실바스티는 경력을 보면 상대적으로 다른 가수들에 밀리는 듯싶지만 이날 노래를 들어보니 오히려 가장 뛰어났다. 맑고 탱글탱글하면서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로 자연스럽게 악단과 하나가 되었고 딕션 또한 나무랄 데 없었다. 메조소프라노 유디트 네메스는 비중이 작아서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으나 테너와 함께 화음에 탄탄한 기둥을 만들어 내는 솜씨가 매우 훌륭했으며 딕션도 좋았다.

합창단은 이날 진짜 주인공이었다 할 만큼 멋졌다. 우리나라 합창단 어려운 사정은 안 봐도 뻔한데 이렇게 좋은 연주를 해내다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한 시향 악장 스베틀린 루세브는 부드럽고 우아한 '프랑스풍' 연주를 들려주었다. 베토벤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싫어할 사람도 있을 듯싶지만, 편견을 버리고 들으면 매우 훌륭한 연주였다.

정보공유라이선스

김원철. 2008.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9년 8월 23일 일요일

2007.04.29. 첸이 '모멘텀' / 로드리고 아랑후에즈 협주곡 /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 시엔 장 / 서울시향

2007년 4월 29일(일) 오후 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Xian Zhang
협연자 : Xuefei Yang(Guitar)

Chen Yi: Momentum (13')
Joaquin Rodrigo: Concierto de Aranjuez (21')
Tchaikovsky: Symphony No. 5 in e minor, Op.64 (50')



나중에 붙임:

'张弦'은 '장셴'
'陈怡'는 '천이'
'杨雪霏'는 '양쉐페이'가 올바른 외래어 표기법인 듯.



첸이(Chen Yi; 陈怡; 1953-)는 중국 음악의 유산을 서양음악 어법과 결합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윤이상과 비교될 수 있는 작곡가다. <모멘텀>은 만리장성으로 대변되는 거대한 이미지와 중국음악 특유의 '앵~' 하는 선율적 특성, 그리고 부분적으로 사용된 클러스터 기법 등이 특징적이었는데, 중국적인 음 소재가 서양 사람들에게 어필할지는 모르지만 기법적 측면에서 그다지 새로운 점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은 아쉬웠다. 특히 중국적 특징이 선율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점은 장점보다는 단점으로 느껴졌으며, 중국 민속 선율을 노골적으로 사용한 부분은 유치하기까지 했다면 이는 과문한 나의 편견 탓일까, 아니면 윤이상이라는 거장과 나란히 비교한 탓일까. 외람되지만 민족적 정체성에 너무 집착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냥 한 명의 예술가로서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통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작곡가도 있지 않던가? 진은숙 말이다.

로드리고의 <아랑후에즈 협주곡>을 연주한 쉬에페이 양(Xuefei Yang; 杨雪霏; 1977-)은 '양설비'라는 한국식 발음이 예쁜데, 외모 또한 늘씬한 것이 매력적이었다. 그녀의 기타 연주는 정열적이라기보다는 단단하고 또랑또랑했으며, 선이 가늘면서도 시원시원했다. 잘 다듬어져 세련된 음색은 어떤 면에서는 지난 1월에 내한했던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와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재미있게도 두 사람 다 앙코르로 타레가(Francisco Tárrega)의 알함브라의 추억을 연주했다. 쉬에페이 양은 첫 번째 앙코르로 로드리게스(Gerardo Matos Rodríguez)의 라쿰파르시타(La Cumparsita)를 들려주었다.

이번 연주회의 키워드가 '중국 여성'이라면, 이날 소개된 작곡가와 독주자와 지휘자 중에 가장 돋보인 중국 여성은 지휘자 시앤 장(Xian Zhang; 张弦)이었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연주는 감정 변화의 폭이 상당히 큰 편이었는데, 그러면서도 일부 러시아 지휘자들처럼 광포한 금관이 다른 성부를 압도해버리는 식이 아니라 템포와 다이내믹의 계산된 변화를 통해 그러한 효과를 불러왔다. 고백하건대 나는 차이콥스키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슬라브 풍의 감상주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날 팀파니 주자가 앞장서서 오케스트라의 전체 음색을 묵직하게 이끌어나가곤 했던 것은 매우 마음에 들었다. 말하자면 팀파니는 이날 연주를 '러시아 음악'이 아닌 '유럽 음악'으로 만드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으며, 연주가 끝난 다음 지휘자가 팀파니 주자를 일으켜 세우지 않은 것으로 보아 팀파니에 대한 나의 찬사는 지휘자가 아닌 팀파니 주자에게 돌아가는 것이 마땅해 보인다.

템포는 다소 빠른 편이었으며, 특히 2악장 마디 39(Poco più animato)에서 경사가 가파른 아첼레란도를 사용하여 클라이맥스로 가는 강한 흥분을 유도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2악장 마디 128(Più mosso)에서 콘트라베이스의 '뽕짝 리듬'을 강조한 것은 이날 보여준 해석 가운데 가장 참신하다고 느꼈다. 말러적인 반어법을 생각나게 하는 이 부분은 사실 악보에 뻔히 있는 지시를 따른 것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내가 그동안 음반으로 접해본 연주들에서는 이 부분의 베이스 리듬을 이렇게까지 강조하지 않았던 것은 신기하다. 지휘자는 이 부분에서 콘트라베이스 쪽으로 완전히 몸을 돌린 채로 지휘하여 시각적인 효과도 훌륭했다.

3악장에서 중간의 그로테스크한 면을 부각시키지 않고 세련되게만 연주한 것은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었다. 바순의 헤미올라(hemiola) 리듬에 의한 독주(마디 56)는 시작 부분에서 템포를 일시적으로 살짝 늦추었고, 피아노(p)에서 포르테(f)로 가는 크레셴도의 폭이 약했으며, A# 음의 악센트는 하행 도약으로 말미암아 소리가 작아지는 것을 막는 정도로만 처리하는 등, 왈츠 리듬 사이에 마치 파티의 불청객처럼 갑자기 끼어든 이질성을 중화시키기 위한 장치를 사용했다. 이어지는 현악기군의 스피카토 음형 또한 세련되고 유쾌한 해석으로 일관했다. 1악장 마디 119와 135 등의 옥타브 하행 음형에서 플루트(바이올린) 소리만 또렷하게 들리고 클라리넷-바순(비올라-첼로)으로 갈수록 음량이 약해진 것은 옥에 티였다. 이것은 악기의 음역에 따른 음향 특성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고음은 좀 더 줄이고 저음으로 갈수록 음량이 커질 필요가 있다.

이날 가장 돋보인 악기는 2악장 첫머리에서 멋진 독주를 들려준 호른이었다. 지휘자는 연주가 끝난 직후 가장 먼저 호른 수석 주자를 일으켜 세웠으며, 호른 파트 전체가 안정된 연주를 들려준 것이 인상적이었다. 다만, 4악장 코다의 템포가 느려지는 부분(마디 472)에서 음량 조절에 실패한 것은 아쉬웠다. <아랑후에즈 협주곡>에서도 호른이 엉뚱하게 돌출된 부분이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매우 훌륭한 연주를 했으면서도 이렇게 옥에 티를 남기는 것은 호른 연주자들의 얄궂은 운명이기도 하다.

이날 연주회는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의 악장인 스베틀린 루세브(Svetlin Roussev)가 데니스 김과 함께 서울시향의 공동 악장으로 선임된 이후 악장을 맡은 첫 정기연주회였다. 그래서인지 현 소리가 좀 달라지기는 했는데, 아직은 두고 볼 일이다. 프랑스인(원래는 불가리아인이라고 한다.)이 한국 악단의 악장을 맡은 것은 리더쉽의 측면에서 단점이 될 소지도 있겠지만, 단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상호 신뢰를 높임으로써 루세브가 지닌 장점이 서울시향에 최대한 발휘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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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7.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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