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13일 일요일

애플 홈팟(HomePod) 리뷰

총평

  • 가격을 생각하면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탁월한 음질
  • 기존에 쓰던 오디오의 보조 용도로 생각하고 샀다가 오히려 기존 오디오가 보조 시스템으로 전락
  • 대형 기기에서나 기대할 만한 극저음에 경악. 애플 너네는 도대체 뭔 짓을 한 거냐.
  • 하이엔드 오디오에 근접한 저음에 비하면 중고음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가격 생각하면 역시 대단한 음질.
  • 고역대가 화려하게 뻗어나오기 때문에 전체적인 음색은 오히려 밝다는 느낌이 있음
  • 음역 밸런스, 마이크로다이내믹스, 매크로다이내믹스 등등 여러 측면에서 균형 잘 잡힌 시스템
  • 대편성 관현악곡을 재생할 때, 대형 기기와 비교하면 '정보량'(?)에서 상대적 약점이 있는 듯
  • 전반적인 음색의 '어쿠스틱한' 느낌이 모자란 것도 단점. 그래서 대중음악을 예전보다 더 자주 듣고 있음.
  • 말러 교향곡 같은 거대편성 작품을 대민폐 수준의 굉음으로 듣는 사람이라면 재생 볼륨을 100%로 해도 소리가 작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 단점. (대중음악이라면 50% 볼륨으로도 이웃집에서 험악한 얼굴로 찾아오는 수가 있을 듯)

구입 계기

아마존 에코를 샀다가 그 조악한 음질로 자주 음악을 듣게 되면서 귀차니즘의 위력을 실감. 그때 페이스북에 쓴 글:

그런데 다시 말하지만 사람이 앉으면 눕고 싶다고, 이번에는 이걸로 애플뮤직을 듣고 싶었습니다. 폰이나 컴으로 손품(?)을 조금만 팔면 음질 좋은 오디오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데, 그게 귀찮아서 아마존 에코의 조악한 소리로 음악을 듣게 되더라고요. 아마존 뮤직 유료 계정이 없어서 편의성이 확 떨어지는데도 그렇던데요. 그 음질로 클래식 음악은 못 듣겠고, 현대음악은 더더욱 못 듣겠고, 록이나 재즈 정도라면 딱히 그쪽 마니아는 아닌지라 얼렁뚱땅 소리만 나도 들을 만했습니다.

그러다가 조금 전부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플 홈팟은 음질 좋다던데, 이참에 서브 오디오로 하나 사면 어떨까? 두 개 사야 스테레오가 된다지만 일단 하나만 사서 어떤지 볼까 싶어서 중고장터에 가봤다가 나님은 이미 질렀…;;

제가 예전에 홈팟에 관해 이런 글을 썼는데요:

https://www.facebook.com/wagnerian/posts/1879625012063170

이때까지만 해도 간과했던 것이 바로 귀차니즘의 강력함입니다. 직접 경험해 보기 전에는 정말 몰랐어요. 그리고 이제는 장담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십여 년이 지나면 전통적인 개념의 '오디오'를 쓰는 사람은 요즘 세상에 빈티지 오디오 쓰는 사람처럼 보일 겁니다.

첫인상

  • 일단 하나만 사서 소리 어떤지 들어볼까 했는데, 한 시간쯤 음악 들어 보고는 바로 중고장터에 가서 하나 더 지름
  • 하나만으로는 원래 쓰던 오디오와 직접 비교하기 어렵지만, 지금 들리는 소리만 봐서는 하나 더 사서 스테레오 페어링시켰을 때 과연 기존 오디오보다 못하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
  • 극저음 재생 능력은 기존 오디오(북셸프 스피커)를 능가하는 듯. 저음이 너무 크게 나와서 중고로 팔았다는 사람이 있던데, 소리의 밸런스는 큰 문제 없고 단지 극저음을 제대로 재생하는 오디오를 들어본 일이 없는 사람이라 그랬던 듯.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라면 스피커 스탠드를 반드시 사용해야 하겠고, 까딱 잘못하면 아래층 사람이 험악한 표정으로 찾아오는 수가 있겠음
  • 그러나 방음 대책이 잘 된 공간에서 대편성 관현악곡을 무지막지한 볼륨으로 듣는 사람은 음량이 조금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음. 말러 교향곡 8번 리카르도 샤이 판을 틀었는데 음량을 최대로 해도 좀… 하나 더 사서 스테레오 만들면 알맞은(?) 음량이 나올지 어떨지 과연?
  • 바닥에 대충 놔도 소리 괜찮게 남. 접지는 애초에 불가, 극성은 IEC 표준을 가정하고 그냥 꽂음. 케이블질 사실상 불가. 에이징이 의미 있을 것인지 의문. 싸고 좋은 오디오 사서 최적 세팅하느라 관련 지식 열공했던 지난날이 허무합니다…
  • 처음에는 에어플레이 재생만 되고 자체 음악 재생이 안 되는 듯해서 뭐 이런가 했는데, 애플 홈 앱으로 홈팟 설정 들어가서 애플 계정 로그아웃했다가 다시 로그인하니 자체 재생 잘됨
  • 애플 홈팟 하나만으로 음악 듣기에 가장 좋은 것은 사실 성악 독창인 듯합니다. 사람 목소리가 스피커 두 대에서 날 때 생기는 음향적 아티팩트(artifact) 때문에 성악 전공자들은 일부러 음악을 스테레오가 아닌 모노로 듣는다고도 하던데요, 애초에 스피커 한 대에서 소리가 나니까 그런 게 거의 없어지네요. 기존 스테레오 오디오로 들으면 피아노 반주 소리가 더 입체적이고 풍성하게 들리는 반면, 홈팟으로 들으면 가수의 발성과 딕션이 더 명확하게 인지됩니다. 이거 신기한 경험이로군요.

스테레오 페어링 후

  • 스피커 스탠드를 홈팟이 차지하고 기존에 사용하던 북셸프 스피커(모니터오디오 S2)는 방 바닥으로 좌천. 홈팟의 소위 '캘리브레이션' 기능도 만능은 아니고, 스피커 스탠드 위에 올렸을 때 가장 훌륭한 소리를 들려 줌.
  • 스피커 스탠드 위에 북셸프 스피커, 그 위에 두꺼운 책을 올리고 그 위에 홈팟을 올려 봤더니 홈팟의 저음이 줄면서 상대적으로 고음 과잉이 됨. 바닥이 홈팟의 진동을 단단히 견디지 못해서 이런 게 아닐까 추측.
  • 북셸프 스피커를 맨바닥으로 내리고, 공간 제약을 고려해 벽에 바짝 붙이고, 그에 따른 저음 과잉 문제를 해결하고자 스피커 뒷면 덕트를 막았더니, 여전히 고음이 부족하기는 해도 그럭저럭 들어줄 만한 소리가 남. 이제 기존 오디오는 어디까지나 보조용이라.
  • 홈팟도 이른바 '에이징'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결론. 처음에는 기존 오디오와 비교하면 장단점이 있는 정도였다가 갈수록 기존 오디오를 압도하는 음질로 변해감.
  • 전반적인 음색의 '어쿠스틱한' 느낌이 모자란 단점이 있는데, 기존 오디오에 물려 있는 Calyx M의 성능이 끝판왕급인 것도 이유일 듯.
  • 홈팟 두 대로 스테레오 페어링했을 때, 아이튠즈로 홈팟 재생하는 건 문제 없으나 맥OS 기본 오디오장치로 페어링 된 홈팟이 인식되지는 않고 두 대가 따로 인식됨. 아이폰은 문제 없음.
  • 그래서 엉뚱하게도 아이튠즈가 가장 훌륭한 동영상 재생 소프트웨어로 등극. 10초 전으로 돌아간다거나 하는 것도 말로 하면 된다고라! 이걸로 재생이 안 되는 동영상 포맷은 MP4 영상으로 변환하고(최근에 지른 맥미니 신제품이 겁내 빨라서 변환하는데 몇 분 안 걸림;), 자막이 필요하거나 또는 소리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영상만 그냥 기존 시스템으로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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