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 작품에서 여자가 죽는 데에는 이유가 없다."
- 어느 바그너 환자의 우스갯소리.
2. 산업재해(?) 논리
"노래가 너무 힘들어서 부른 뒤 죽었다."
- 고클래식 guity00님 의견. (2009년 9월 9일)
3. 쇼펜하우어스러운 논리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쇼펜하우어의 사상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에는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궁극적 의지 부정의 상태'가 바그너 식으로 변용(?)되어 나타나며, '사랑을 통해 의지의 완전한 진정에 이르는 구원의 길'은 곧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고 하라: ☞엄선애, "사랑의 죽음"을 통한 구원 - 리하르트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小考, 뷔히너와 현대문학 제 21호.)
다음은 이졸데의 마지막 대사이다.
In dem wogenden Schwall, (Isolde sinkt, wie verklärt, in Brangänes Armen sanft auf Tristans Leiche. Rührung und Entrücktheit unter den Umstehenden. Marke segnet die Leichen. Der Vorhang fällt langsam.) |
파도치는 물결 속에, (이졸데는 변용된 듯 브랑게네 품에서 트리스탄 몸 위로 부드럽게 쓰러진다. 곁에 있는 사람들은 넋을 잃고 바라본다. 마르케는 주검에 축복을 내린다. 막이 천천히 내린다.) |
(김원철 옮김.)
여기서 변용(verklärt; transfiguration)은 곧 '궁극적 의지 부정'을 통한 열반의 상태로 이해할 수 있다.
4. 실증주의적(?) 논리
김원철의 망상 속에서 탄생한 가설이다. 형이상학적 사유, 또는 불교적 해탈에 대한 강변으로부터 벗어나 구체적인 이졸데의 사망 원인을 찾자면 무엇인가 석연치 않다. 그런데 텍스트를 잘 살펴보면 한 가지 확실한 자살 수단을 연상해 낼 수 있다. 그것은 1막에 등장했던 독약이다. 이졸데가 가지고 있던 독약은 브랑게네의 개김(?) 덕분에 아직 사용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고, 3막에서 이졸데가 트리스탄을 찾아 오기 앞서 '수 틀리면 죽자!'라는 심정으로 그것을 품 속에 챙겨 두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음악적인 맥락에서 보면 '궁극적 의지 부정의 상태'가 마침내 시작되는 지점, 노골적으로 말해 성애의 육체적 쾌락이 정점에 이르는 지점은 "Welt-Atems" 부터이다. 이어지는 가사를 보라.
ertrinken, |
빠져들어, |
독일어 실력이 뛰어나거나 또는 독일어 실력이 형편없더라도 독일어 텍스트를 열심히 따라가며 작품을 감상했던 사람이라면 여기서 낱말 두 개를 떠올리는 데에 어려움이 없을 줄로 믿는다. 바로 'trinken'(마시다)과 'Trank'(음료, 약)이다. 독약을 마시고? 옳거니. 그리고? 'unbewußt'는 몰아(沒我)로 풀이할 수 있겠으나 더 따지자면 의식을 잃는다는 뜻이다. 죽었군.
(최종 수정: 2009년 9월 10일)
김원철. 2004.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