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국제음악당에서 발간하는 『Grand Wing』에 실린 인터뷰입니다.
Q. 2016년 통영국제음악제, 그리고 통영에서 나란히 열린 ISCM 세계현대음악제에서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지휘하셨습니다. 그때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의 음향 특성을 어떻게 느끼셨나요?
저는 통영이 연주자에게 상당한 만족감을 주는 홀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주자가 무대로 나갈 때 또 무대에 설 때 주는 중압감 또한 적당한 긴장과 집중을 유발하는 매력을 주는 홀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규모의 오케스트라가 무대에 펼쳐 졌을 때 물론 악기군마다 세밀하게 서로 듣는 게 쉽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지휘자의 포디움에서 연주자와의 시차 또 음향이 객석에서 반사되어 돌아오는 시차 또한 좋아서 고도의 집중과 음악적인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훌륭한 홀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객석에서 아직 감상을 못해봐서 올해 국제 음악제에 좋은 공연 감상하러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Q. 경기필이 '무직페스트 베를린'에 초청받아 오는 9월 윤이상 ‘예악’과 ‘무악’ 등을 연주할 예정입니다. 이번 통영 공연 프로그램과 거의(?) 같은 듯한데요, 무직페스트 베를린 초청 경위와 곡 선정 의도가 궁금합니다.
사실 저에게는 무직페스트 베를린에 초청 받았다는 게 기적과도 같은데요, 아시아 오케스트라 최초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페스티벌이 아시아 오케스트라에 가지는 관심도가 높지 않아 윤이상이라는 이름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고 사실상 세팅이 된 페스티벌 프로그램에 저희 쪽에서 끈질기게 구애해서 이뤄진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의 매니저의 역할이 컸습니다.
프로그램 선정은 페스티벌 측의 요청이 반영이 되었습니다. 독일에서는 예악과 무악을 윤이상의 대표적인 곡으로 보고 있고 윤이상의 동양적 사상과 음악을 서양적 기법으로 표현한 것을 지켜가고 있는 그의 제자 호소카와의 곡과 리게티를 프로그래밍했습니다.
Q. 윤이상 작품 중에는 음악 외적인 '메시지'를 담은 것도 있고, 특정한 심상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도 있고, 그냥 추상적인 작품도 있습니다. 그 가운데 추상적인 작품에 더 끌리는 편인가요?
저는 워낙 메시지가 있는 음악에 더 강력하게 끌리는 편입니다. 하지만 윤이상 작품의 경우 심포니를 비롯하여 소규모의 타악기와 절묘한 화음이 어우러진 합창곡들 그리고 한국의 악기를 서양의 기법으로 소규모 편성의 곡들 또한 매력을 느낍니다.
Q. 윤이상 작품 가운데 예전에 지휘하셨던 곡은 어떤 곡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윤이상 작품은 아직 연주해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베를린에서 공부할 때 학교에서 윤이상 페스티벌이 3일정도 개최됐는데 그때 그의 음악을 듣고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번에 그의 곡을 제대로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Q. ‘예악’과 ‘무악’은 같은 작곡가가 썼지만, 작곡 시기도 다르고 음악 양식도 조금 다른 듯합니다. 그럼에도 두 작품의 감상 포인트는 비슷할까요? 관객들이 각각 어떤 부분에 귀를 기울이면 좋을까요?
1966년 도나우에슁엔 페스티벌 위촉 작품으로 초연된 예악은 윤이상의 커리어에 커다란 성공을 가져왔습니다. 향악에서 영감을 받아 이 곡은 오케스트라의 다섯 그룹을 합쳐 색채감이 짙은 음악을 만들어냅니다. 예악은 윤이상이 Hauptton이라는 작곡 기법을 발전시키고 그것이 빛을 발한 곡이라 이것이 감상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Hauptton 기법이라는 것은 중심이 되는 음에서 꾸밈음, 비브라토, 엑센트, 클리산도 등을 이용해 발전시켜 선율 하나 자체가 살아있는 존재가 되는 기법입니다. 이것들이 겹쳐지면 윤이상이 추구하는 유동적이고 영원히 이어지는 음악을 만들어냅니다. 참고로 그는 자신의 작품들을 연이어서 연주할 수 있다고 했고 실제로 그의 심포니 5개를 묶어서 연주하면 마치 하나의 거대한 심포니가 탄생하는 것 같다고 어느 학자가 말하더군요. 100주년에 그런 기획적인 퍼포먼스를 볼 수 있으면 의미가 깊을 것 같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무악에서는 그 전의 윤이상에게 볼 수 없었던 역동적인 리듬을 곡의 토대로 사용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1967년 감옥생활을 2년간 한 그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정치적이고 휴머니즘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추상적으로 단지 궁중의 춤을 표현한 것이 아닌 춤추는 '아시아' 옆에 관망하는 '유럽' 이라는 대상을 집어넣어서 몹시 흥미롭습니다. 역시 그의 작품에 중요하게 등장하는 콘트라스트인데요, 아시아가 춤을 출 때 유럽은 그들의 고유의 춤을 춘다는 설정인데 아시아로 표현된 목관 악기와 유럽으로 표현된 오케스트라가 대치하고 소통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동서양을 음악으로 엮어서 휴머니즘적인 유토피아를 그려간 그의 변화된 세계관을 볼 수 있습니다.
Q. 리게티 ‘론타노’를 윤이상 곡들과 나란히 프로그램에 넣으신 것을 보면, 윤이상의 음악 언어를 1960년대 유럽 아방가르드 음악, 이른바 '클러스터' 기법의 발전과정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듯합니다. 베를린 사람들에게, 그리고 통영 사람들에게 윤이상 음악의 어떤 측면을 강조해 들려주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예악의 성공 이후 사람들이 윤이상을 리게티의 후임자로 생각했습니다. 아방가르드 음악 클러스터 기법의 영향을 받은 것을 예악에도 나타나있지요. 하지만 저는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변화하고 더 새로운 것을 찾아 그만의 Hauptton기법을 발전시킨 윤이상을 기법의 현미경으로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한때 세계 음악계의 중심에 있었던 그러나 지금은 잊혀져 가는 그의 이름을 다시 불리게 하고 싶고 공연을 찾아주시는 분들에게는 한국인이 연주하는 윤이상 음악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사실 윤이상 곡들을 공연하고 레코딩한 것은 주로 해외 연주자들이었습니다.
저희가 아직 리허설 들어가지 않았고 저 또한 윤이상 곡을 처음 접해 보는 것이라 아직 구체적인 그림은 그려지지 않지만 한국의 음악을 표현한 작곡가를 한국 오케스트라가 한국의 정서로 들려주고 싶다는 데에 저는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Q. 작곡가 호소카와 도시오는 윤이상의 제자였다고 알려졌습니다. 호소카와의 음악은 윤이상 음악과는 어떤 점에서 비슷하고 어떤 점에서 다른가요? 이번에 연주하실 ‘탄식’이라는 작품에 대해서도 소개해 주세요.
호소카와의 음악은 동서양을 잇는 가교라고 불리는데 이것은 윤이상에게서 근본적인 영향을 받았습니다. 동양의 사상과 전통의 숨결을 서양의 악기에 불어넣은 것입니다.
그는 가가쿠 음악과(궁중음악) 불교음악을 토대로 하여 오케스트라에 새로운 기법으로 일본의 음색을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윤이상의 음악이 타오이즘을 바탕으로 한 음과 양의 조화 즉 다양한 콘트라스트가 섞여서 다이나믹한 면을 양성하는 흘러가는 음악을 추구했다면 호소카와의 음악에서는 쉼과 침묵 그리고 울리지 않는 잔향들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자연의 소리를 추구했습니다.
탄식이라는 작품은 작곡가가 2011년 3월 11일에 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쓰나미가 일어난 후 바닷가에서 아이의 시신을 찾는 어머니의 사진을 보고 작곡을 했습니다. 게오르크 트라클(Georg Trakl)의 시를 토대로 2013년에 작곡된 이 곡은 4곡으로 이루어져 있고 운율이나 메트룸(metrum) 등이 아닌 언어 자체의 아름다움과 비탄에 잠긴듯한 어두운 분위기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조명한 작품입니다.
Q.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은 어떤 연주자라고 생각하시나요?
김수연은 테크닉보다 음악을 보게 하는 연주자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원하는 게 확실하고 깊은 감성을 보여주어 믿고 찾을 수 있는 연주자이지요. 통영에서 같이 베토벤 협주곡을 선보이게 되어 기쁩니다.
Q. 부산 출생이시라고 들었습니다. 부산의 바다와 통영의 바다는 어떻게 다른가요? 부산과 통영의 바다는 음악적으로도 각각 다른 영감을 주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태종대에 자주 갔습니다. 유명한 자갈밭과 바위가 많은 풍경과 그 바위 위로 높게 부서지는 파도가 아직 선하네요. 은빛으로 잔잔한 통영의 바다와는 조금 다른 느낌인 것 같습니다. 드뷔시의 바다를 연주한다면 두 바다 중에서는 부산 바다를 먼저 상상하겠네요.
Q. 마지막으로 통영 관객들에게 한 말씀 부탁합니다.
통영은 좋은 홀, 훌륭한 기획들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번 공연이 대부분 현대 곡으로 이루어져 쉽지 않겠지만 통영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만든 윤이상 작품을 들을 수 있는 기회이니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