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24일 목요일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Dennis Russell Davies) 인터뷰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발간하는 『Grand Wing』에 실린 인터뷰입니다. 통영국제음악제 기간에 맞춰 나온 거였는데, 이제 보니 이걸 블로그에 안 올리고 있었네요.


2015년 1월 23일, 오스트리아 시간 오전 8시. 이메일 인터뷰에 응할 시간이 없다는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인터뷰하기로 했다.

Q: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 소리는 놀랍도록 깔끔하게 정돈된 느낌이 독특하다. 오케스트라 소리를 빚어내는 철학은 무엇인가.

A: 나는 작곡가가 무엇을 의도했는지 알아내려고 노력한다. 내가 작곡가의 대변인이라고 여긴다. 작곡가의 의도를 재현하려 노력한다. 동시에, 오케스트라가 만드는 소리를 듣고, 무엇을 어떻게 연주하는지를 듣는다. 그리고 오케스트라가 최고 수준으로 연주할 수 있도록 돕는다.

[ 너무 모범답안이라 재미가 없다. 좀 더 캐묻기로 했다. ]

Q: 이를테면 브루크너나 바그너를 지휘할 때 마치 현대곡처럼 들리는데?

A: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선 나는 오케스트라가 브루크너나 바그너 또는 윤이상을 연주할 때, 작곡가가 악기마다 어떤 소리를 내도록 지시한 방식 때문에 생기는 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오케스트라는 고유한 특징과 소리가 있다. 모든 피아노가 고유한 소리와 그에 맞는 연주법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피아니스트로서 나는 내가 연주하는 악기에 적응하려 노력한다. 지휘자로서도 나는 악기에 적응하려 노력하는데 그게 오케스트라이다. 그와 동시에, 나는 오케스트라 연주자가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 내도록 긍정적으로 비판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나는 레퍼토리가 무엇이고 그 작품의 양식이 어떤가에 따라 오케스트라가 다른 소리를 낸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연주자들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 가운데 일부이다.

Q: 성부가 복잡하게 얽혀 있을 때, 주선율을 얼마나 강조하고 부선율을 얼마나 살리는지는 지휘자마다 다르다. 당신은 주선율을 뚜렷하게 살리는 편인데, 이와 관련한 의견은 무엇인가.

A: 지휘자가 중요한 까닭은 실제로 악기를 연주하지 않으면서도 개별 악기 소리를 다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연주자는 대부분 자기 악기 소리만 듣는다. 지휘자가 하는 일은 연주자 사이, 악기 사이, 악기군 사이에 균형을 잡는 일이다. 지휘자가 작곡가의 양식, 그 작곡가가 사용한 음악 언어를 이해한다면, 올바른 균형을 찾아내야 한다. 때로는 부선율이 또렷하게 들리게끔 하면 흥미롭다. 그러나 부선율은 부선율로 남아야 한다. 부선율이 가장 중요한 선율이 될 수는 없다.

Q: 시노폴리가 지휘하는 말러 교향곡을 들어본 적 있는가?

A: 없다.

Q: 시노폴리는 말러 교향곡에서 극단적으로 모든 선율을 동등하게 다루었다.

A: 먼저, 시노폴리 씨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 안타깝다. 그의 연주를 들어본 일은 없지만, 나는 그가 뛰어난 음악가이자 훌륭한 지휘자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그는 그렇게 생각할 자격이 있다. 나는 관객이 결국 나를 생각하기보다 음악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Q: 당신은 주선율과 부선율을 확실히 구분한다는 점에서 이를테면 바렌보임과 비슷하지만, 다른 점에서 바렌보임과는 전혀 다르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A: 나는 바렌보임을 매우 존경한다. 그러나 나는 그가 뭘 하는지 모른다. 나는 그가 뛰어난 음악가라 알고 있고 피아니스트로나 지휘자로나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의 연주를 듣지 않는다. 내 연주만 해도 너무 많고, 내 일을 하느라 다른 지휘자와 엮일 일이 없다. 그럴 시간도 없다.

Q: 현대 작곡가들과 두루 교류해 왔는데, 그러한 경험이 자신의 음악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A: 나는 운 좋게도 수많은 작곡가와 친분을 쌓았다. 나는 그들의 음악에 감동했기에 그 음악을 연주했고, 그들이 나에게 감사를 표하고 멋진 대화를 나누곤 했다. 살아있는 작곡가와 자주 일해 보니 살아있지 않은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할 때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이를테면 필립 글래스의 악보를 읽으면서 내가 작곡가와 나눴던 문답과 토론이 베토벤의 악보를 읽으면서도 매우 비슷하게 일어날 법하기 때문이다. 작곡가가 악보에 표기할 수 있는 내용이 매우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작곡가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쓰려고 최선을 다하지만, 의도한 소리를 어떻게 연주할지 정확하게 쓰기란 어렵다. 그래서 연주자가 필요하다. 연주자가 없으면 음악도 없다.

Q: 윤이상 작곡가와도 친분이 있었던 듯하던데?

A: 맞다. 나는 윤이상 씨를 존경했고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그분의 여러 작품을 연주했다. 또 그분의 마지막 3년 동안 자주 만나서 대화를 나누었다.

Q: 윤이상과 관련한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

A: 윤이상 씨는 매우 따듯한 사람, 생각이 매우 시적(詩的)인 사람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의 음악은 그가 자신의 문화 속에서 들었던 소리와 유럽 문화에 적응하면서 들었던 소리를 반영한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한국 음악과 유럽 음악을 독특하게 결합한 것이다. 그의 음악은 또한 그의 인품을 반영한다. 그는 여러 해 동안 유럽에서 살면서도 고향에 강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다른 문화, 다른 국가의 사람들이 음악을 통해 서로 알아가도록 하고자 마음을 썼다.

Q: 윤이상이 시적(詩的)이라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A: 음악을 들으면 알게 된다. 윤이상은 자신이 느끼고 경험한 것, 주위에서 듣는 소리의 인상 등을 음악으로 표현한 사람이다.

Q: 한국 전통음악, 특히 궁중음악을 들어본 일이 있는가?

A: 그렇다. 듣고 감탄했다. 그 음악에 관해 더 잘 알았으면 좋았겠지만, 매우 아름다웠다고만 말해야겠다.

Q: 제목을 기억하나?

A: 못한다.

Q: 이번 통영국제음악제 개막공연에서 연주할 윤이상 바이올린 협주곡 3번은 어떤 작품인가.

A: 내가 캘리포니아 산타크루즈에서 열리는 카브릴로(Cabrillo) 음악제 음악감독이었을 때, 70세 생일을 맞은 윤이상을 객원작곡가로 초빙했다. 이 음악제에서 바이올린 협주곡 3번이 연주되었다. 내가 지휘하지는 않았지만, 음악을 듣고 매우 감동했다. 통영국제음악제에 초청받으면서 유미 황-윌리엄스에게 이 곡을 협연하자고 제안했더니 기꺼이 승낙했다.

Q: 협연을 맡을 바이올리니스트 유미 황-윌리엄스의 매력은 무엇인가.

A: 훌륭한 연주자다. 악기를 처음 배운 게 9살 때였고, 미국 필라델피아에 와서 학교에서 바이올린을 배울 당시부터 남다른 재능으로 금세 뛰어난 음악가가 되었다. 그런 점이 참 대단하고, 통영에 함께 가게 되어 기쁘다.

Q: 음악가마다 독특한 색깔이 있는데, 바이올리니스트 유미 황-윌리엄스의 색깔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유미 황-윌리엄스는 매우 아름답게 연주하고 매우 다양한 음악에 관심이 있다. 독주자로서 또 훌륭한 오케스트라의 악장으로서 얻은 오랜 경험으로 작품을 해석한다. 그렇게 폭넓은 경험을 가지고 무대에 오른다.

[ 음악가는 보통 음악에 관해 언어로 표현하는 일에 서투르다. 말하기 어려운 것을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일까. 더 캐묻고 싶었으나 영어 실력이 모자라서 이렇게밖에 못했다. ]

Q: 윤이상 바이올린 협주곡 3번 악보를 보거나 지휘를 할 때 어떤 상상을 하는가?

A: 나는 음악을 그런 식으로 대하지 않는다. 내가 악보에서 읽어내는 것은 어떻게 소리 낼 것인가이다. 음악을 듣고 뭔가를 생각하거나 상상하는 일은 매우 개인적이다. 나는 그런 걸 하지 않는다. 내가 하는 일은 작곡가가 의도한 소리를 재창조하는 것이다.

[ 음악가의 상상은 음악적(추상적)일 수도, 음악 외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는 음악 외적인 요소가 자신의 음악에 끼어드는 것을 경계하는 듯했다. 이와 관련해 두 가지를 더 캐묻기로 했다. ]

Q: 윤이상이 이 작품에서 표현하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A: 내 생각에 윤이상이 의도한 바가 있다면, 그것은 음악을 넘어선 무엇이다. 다른 국가와 국민이 서로 이해하고 화합하는 일은 윤이상의 크나큰 소망이었다. 이 작품은 예컨대 일본인 바이올리니스트를 위해 쓴 곡이다. [주: 아키코 타츠미가 협주곡 1번과 2번을 초연했으며, 베라 베스가 3번을 초연했다. 데이비스가 착각한 것으로 추정]. 윤이상은 한국과 일본이 친밀한 관계를 맺는 일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 윤이상은 음악으로 전 인류의 평화에 이바지하고자 했다.

Q: 최근에 기돈 크레머와 이메일 인터뷰를 했는데, 그가 생각하는 음악이란 ‘메시지’이며 연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carrier)라 했다. 이와 관련해 의견이 있는가?

A: 다시 말하지만, 나는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다. 누군가 음악을 듣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된다면 멋진 일이다. 그러나 내 의도는 작곡가가 원했던 바대로 연주하는 것이다. 나는 음악이 말하는 바를 찾으려 노력한다. 언어나 그림이나 철학을 찾는 게 아니라 소리를 이끌어내려 한다.

Q: 한국 작곡가 가운데 아는 사람이 또 누가 있나?

A: 최명훈이라는 재능 있는 젊은이가 있다. 대구 MBC 전임작곡가이고, 내가 음악감독으로 있는 오스트리아 린츠 오페라 극장에서 신작을 준비하고 있다.

Q: 작곡가 진은숙을 아는가?

A: 들어본 적 있다.

Q: 또 다른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할 계획이 있는가?

A: 기회가 되면 하고 싶다.

Q: 이번 공연 프로그램은 양식적으로 매우 다양하면서도 어떤 일관된 '메시지'가 느껴진다.

A: 메시지는 없다.

Q: 질문을 바꿔 보자. 이 작품들을 관통하는 일관성은 무엇인가?

A: 세 작품이 매우 달라서 잘 어울리며, 그래서 흥미로운 프로그램이라 생각한다. 마치 식사와 같다. 메인 요리만 먹을 수는 없다. 애피타이저도 먹어야 하고 디저트도 먹어야 한다.

[ 모차르트와 윤이상과 번스타인의 음악에서 굳이 일관성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냥 다양성을 의도한 것이라는 대답이 신선하다. 하이든과 브루크너와 필립 글래스를 포함하는 방대한 레퍼토리를 자랑하는 이 사람이야말로 다양성을 말할 자격이 있다. ]

Q: 번스타인 교향곡 2번에 관한 의견이 궁금하다.

A: 이 작품은 사실 협주곡이다. 교향곡이지만, 사실은 피아니스트를 위한 작품이다.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대등한 관계라는 점에서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과도 닮았다. W. H. 오든의 걸작 시 “불안의 시대”에서 영감을 받아 쓴 곡이며, 그 시와 연계되는 감성의 흐름이 있다. 관객이 그걸 알면 흥미롭겠지만, 꼭 알 필요는 없다.

Q: 질문은 여기까지다.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A: 통영에 갈 날이 기다려진다. 새로 지은 통영국제음악당이 훌륭하다고 들었고, 또 내가 윤이상을 매우 존경하기 때문에 통영국제음악제에 출연하게 된 일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글: 김원철 (통영국제음악재단 공연기획팀)

글 찾기

글 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