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28일 금요일

조성진 인터뷰 (2019년)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발간하는 『Grand Wing』 2019년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2019년 5월 6일, 독일 베를린 현지 시각 오전 10시.

Q. 예전에 통영국제음악당에서 협주곡도 했고 리사이틀도 했다. 편성에 따라서 느껴지는 홀 음향에 차이가 있었나?

A. 2014년에 협주곡을, 2017년에 리사이틀을 했다. 그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고, 그동안 홀을 보는 관점들이 달라졌기 때문에 자신 있게 답하기는 어렵지만, 딱히 차이를 느끼지는 못했고 두 번 다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향이 좋지 않은 공연장에서 협주곡을 하면 오케스트라 소리가 섬세하게 들리지 않아서 협연에 어려움이 있는데, 통영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했을 때에는 그런 문제가 전혀 없었고, 관객이 찼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리사이틀 때에는 음향뿐 아니라 조명 또한 매우 편안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Q. 통영 공연 프로그램 중에 알반 베르크 소나타가 있는데, 사람들이 그 이름에 지레 겁을 먹을 것 같다. 이 곡은 어떤 매력이 있는 곡인가?

A. 피아노 소나타 Op. 1은 베르크가 젊었을 때 쓴 곡으로, Op. 1(작품번호 1번)이 이렇게 걸작이라는 것이 신기하고, 내 생각에 모든 Op. 1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 같다. 리사이틀 오프닝 곡으로도 좋은 것 같고, 무게감 있는 여러 곡과 궁합이 잘 맞는 것 같다. 이번에 연주할 리스트 소나타와도 어울리고, 조성도 b단조로 같다. 얼핏 무조음악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조성이 있고, 전통적이고 낭만주의적인 면과 현대적인 면이 조화를 이루는 곡이다. 악보를 보면서 들어보면 이 곡이 전통적인 소나타 형식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 더 잘 이해되고, 음악을 들을수록 신비롭고 오묘한 느낌이 든다.

Q. 이 곡의 음반을 들어보면, 악보에 있는 도돌이표를 지키는 연주자가 있고 그냥 생략하는 연주자가 있다.

A. 당연히 지켜야 한다.

Q. 이 곡을 연주할 때 악보를 정확하게 소리로 재현한다는 느낌을 주는 연주자가 있는가 하면, 곳곳에서 악보에 없는 루바토를 사용해서 낭만주의적인 느낌을 좀 더 살리는 연주자가 있다.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나?

A. 베르크는 악보에 세세한 지시를 매우 많이 해놨다. 일단 그걸 모두 살리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막상 무대 위에 오르면 '내 느낌'을 살리는 일도 중요해지는 것 같다. 미츠코 우치다의 연주가 그런 점에서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Q. 이 곡의 클라이맥스라 할 만한 곳에서, 포르테가 네 겹으로 붙어 있고, 그걸 예비하는 과정에서 크레셴도뿐 아니라 제법 긴 호흡으로 아첼레란도가 붙어 있다. 크레셴도의 다이내믹스를 극대화하는 것과 아첼레란도의 속도감을 극대화하는 것,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A. 브람스 교향곡을 들어보면, 지휘자에 따라서 클라이맥스로 오를 때 템포를 늦춰서 거대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베르크 소나타에서는 반대로 템포를 몰아붙이도록 지시했고, 그래서 조금 신경질적인 느낌을 준다. 클라이맥스의 다이내믹스도 중요하지만, 이 곡에서는 클라이맥스 직전까지 템포를 조이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2년 전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유튜브 공연 영상을 봤는데, 악보에 있는 아주 작은 지시까지 완벽하게 지키면서 암보로 연주해서 깜짝 놀랐다. 어떻게 하면 악보의 아주 작은 지시까지 싹 다 외울 수 있나?

A. 딱히 비결이 있지는 않다. 다만, 같은 곡을 여러 번 연주하다 보면 루바토를 썼던 곳에서 다음번에는 더한 루바토를 쓰게 되거나 하면서 매너리즘에 빠질 위험이 있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악보를 본다. 무대에 나가기 전에 손가락을 푸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나는 연주할 곡이 처음 접하는 곡이라는 생각으로 악보를 다시 보는 편이다. 첼리비다케가 그렇게 한다는 인터뷰를 본 일이 있는데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공연이 끝나고 악보를 보면서 연주를 되짚기도 한다.

Q. 이제까지 쇼팽을 너무 많이 연주해서, 이제는 다른 곡을 더 많이 하려는 것 같다.

A. 쇼팽 콩쿠르 우승자 출신이다 보니 쇼팽을 연주해 달라는 요청이 계속 있었고 그 그대에 부응해야 했는데, 2019년부터는 그런 요청을 그다지 받지 않게 되었다. 의식적으로 공연 프로그램에 쇼팽을 빼려는 것은 아니지만, 리사이틀에 쇼팽이 들어가면 다른 곡들과 어울리게 프로그램을 짜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빼버리는 편이 프로그램 구성에 더 자유로워지는 장점이 있다. 또 크리스티안 지메르만도 쇼팽 콩쿠르에 입상했지만 딱히 쇼팽 스페셜리스트로 불리지는 않는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 또 시마노프스키, 야나체크, 메트너처럼 음악가들 사이에서 유명하지만 대중에게 덜 알려진 곡을 관객에게 들려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Q. 모차르트 협주곡 20번 d단조 음반이 작년에 나왔다. 음반 녹음 과정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A. 체력적으로 힘든 녹음이었다. 오케스트라와 스케줄을 조정하다 보니 녹음할 시간이 하루 반나절밖에 안 나와서 종일 녹음을 해야 했다. 장소는 바덴바덴 페스티벌하우스였고, 피아노는 세 가지 선택지 중 오케스트라 음색과 가장 잘 맞는 것을 골랐다.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조금 '고전적인' 소리를 내는 악단이고, 다른 악단이 흔히 A=442Hz로 조율하는 것과 달리 441Hz로 하더라. (편집자주: 현대 오케스트라는 심한 경우 445Hz까지 높이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고른 것은 조금 옛날 피아노, 아주 옛날은 아니지만 15년~20년 정도 된 스타인웨이 피아노였던 것 같다. 그런데 낡은 피아노라 피아노의 터치감이 들쑥날쑥해서 원하는 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오케스트라는 매우 훌륭했고, 모차르트 협주곡을 수없이 연주해 봤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휘자 야니크 네제세갱은 1~2년 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인데, 매사에 긍정적이고, 배려심 많고, 내가 원하는 것을 빠르고 정확하게 감지하는 지휘자다. 이번 음반이 내가 이제까지 녹음한 것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든다.

Q.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도 이 곡을 연주했다. 그때는 악보에 있는 음만 연주했는데, 이번 음반에서는 2악장에서 악보에 없는 장식음을 제법 많이 썼고, 2년 전에 통영에서 모차르트 소나타 연주했을 때도 장식음을 썼다. 모차르트 당시의 연주 관습을 고려했다는 얘긴데, 작곡 당시의 관습을 어디까지 살리느냐 하는 건 연주자마다 판단을 내려야 하는 문제인 것 같다. 음반 녹음 때 장식음을 즉흥적으로 연주했나, 아니면 음 하나까지 사전에 계획했나?

A. 미리 계획하지만 연주할 때마다 상황에 맞게 변화를 준다.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피아노의 상태이고, 그래서 필라델피아에서 공연했을 때는 음반 녹음 때와는 조금 다른 장식음을 썼다. 예를 들어 스타카토 소리가 예쁘게 나지 않으면 그 대신 스케일이나 트릴을 쓰는 식이다.

Q. 오케스트라 투티가 나올 때는 오블리가토 피아노를 생략하고 솔로만 연주했다. 그게 필요 없다고 생각한 이유가 뭔가? 사용한 악기가 모차르트 시대 피아노가 아니었던 것도 이유가 될까?

A. 그리고리 소콜로프 같은 사람은 오블리가토 피아노까지 다 하던데, 투티에서 오케스트라만 소리내는 게 내 귀에는 더 좋게 들린다. 모차르트 시대 피아노로 협주곡을 연주하는 시도는 아직 한 번도 안 해봤지만, 그건 좀 다를지도 모르겠다.

Q. 통영에서 협주곡을 연주하면서 오케스트라 지휘까지 할 예정이다.

A. 지휘라고 하기는 좀 민망하다. 이번에 처음 해보는 시도인데, 특히 쇼팽 협주곡에서 내가 원하는 오케스트라 소리를 직접 만들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돈 크레머가 창단한 악단인 '크레메라타 발티카'와 쇼팽 협주곡 1, 2번을 협연했을 때, 내가 지휘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휘자 없이 공연했었고, 그때 가능성을 처음 생각하게 됐다. 그런데 솔직히 큰 기대는 안 하셨으면 좋겠다.

Q. 본격적으로 지휘자가 될 생각이 있는 건 아닌 건가?

A. 그런 생각은 전혀 없다. 협주곡 할 때 조금 해보는 정도. 아니면 서곡이나 짧은 교향곡 정도는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가 지휘자로 악단을 맡거나 기획사에서 지휘자로 매니지먼트를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Q. 파리에 살다가 베를린으로 옮겼다. 파리와 견주면 베를린은 연주자로 살기에 어떤 장단점이 있나?

A. 파리가 문화 전반적으로 축복받은 곳이라면, 베를린은 음악에 더 집중된 곳인 듯하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외에도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베를린 도이체 심포니 오케스트라,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등 명문 악단이 베를린에는 여럿 있고, 연주 여행을 갔다 돌아와서 그날 열리는 공연을 찾아보면 항상 좋은 게 있다. 음악을 빼고 나면 베를린은, 최근에 사람이 늘었다고는 해도 아직 파리보다 더 한적한 곳이다. 공기도 파리보다 좋다. 날씨는 별로라서, 겨울에는 다른 곳으로 연주하러 다니는 게 낫다.

Q. 음반 녹음이나 그밖에 국내 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계획이 있다면?

A. 음반은 6월과 10월에 나눠서 알반 베르크 소나타와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 리스트 소나타를 녹음할 예정이고 내년 봄에 발매될 것 같다. 베르크 곡이 포함된 제안을 도이치그라모폰에서 받아준 것이 놀랍고 기쁘다. 1월에 마티아스 괴르네와 함께 바그너 베젠동크 가곡집과 한스 피츠너 가곡 중 일부를 녹음했고, 7월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가곡과 한스 피츠너 추가 녹음, 슈베르트 '하프 연주자의 노래' 연작 녹음이 예정되어 있다.

Q. 통영 관객에게 한마디 해달라.

A. 공연 제안을 받아서 기뻤고, 통영에서 거의 일주일을 보낼 수 있어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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