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7일 금요일

피아니스트 윤홍천 인터뷰

통영국제음악재단에서 발간하는 『Grand Wing』에 실린 글입니다.


Q. 지난해 소니에서 발매한 음반으로 BBC 뮤직 매거진에서 별 다섯 개를 받았습니다. 그 전에는 모차르트 음반 등으로 에코 음반상을 받는 등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로린 마젤의 발탁으로 뮌헨필과 협연한 일과 음반으로 호평받은 일 가운데 어느 쪽이 커리어에 더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느끼나요?

A. 저는 콩쿠르나 지휘자의 발탁보다는 음반을 통해서 더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2009년부터 꾸준히 음반을 발매하고 있는데 음반이라는 미디어는 라이브 콘서트보다 훨씬 더 편리하고 빠르게 전달될 수 있잖아요. 음반이 많은 곳에 소개되고 좋은 평가를 받게 되면 자연스럽게 연주 기회도 찾아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의 음악을 소개하고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되었죠.

Q. 음반 녹음 과정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이를테면 어디에서 어떤 피아노를 사용했고 엔지니어와 어떤 소통을 했나요?

A. 모차르트 소나타 전곡 녹음 중 마지막 두 개의 음반을 함께 녹음했던 톤마이스터 에카르트 글라우헤(Eckard Glauche)와 함께 작업했습니다. 베를린 반제(Wannsee) 호수에 위치한 안드레아교회(Andreaskirche)라는 곳에서 3일 동안 녹음을 했어요. 저는 몇 년 전부터 벡슈타인 피아노사와 인연을 맺고 있는데 이 녹음에서도 벡슈타인 피아노를 연주했어요.

Q. BBC 뮤직 매거진에서는 연주 못지않게 음반 수록곡 선정을 극찬했습니다. 통영 공연 프로그램 가운데 절반 이상이 그 음반에 있는 곡인데, 그 가운데 슈만의 유모레스크를 고른 의도가 궁금합니다.

A. 이 곡은 꼭 한번 녹음해보고 싶었던 작품이었습니다. 슈만의 걸작 중에서도 가장 안 알려진 곡 중 하나이죠. 이 곡을 공부하는 동안 슈만이 이 작품을 빈에서 보낸 6개월 사이에 작곡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점이 레퍼토리를 선정하는데 영감을 주었어요. 슈만은 28살의 나이로 큰 꿈을 안고 빈을 찾았지만 성공을 얻지 못하고 실망을 안고 떠나야 했죠. 하지만 이 시간이 그에게는 음악적으로는 풍부한 시간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슈베르트의 교향곡 9번의 원본을 우연히 발견하기도 하였죠. 저는 유모레스크가 슈만의 피아노곡 중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한 챕터를 끝내는 듯한 마지막 부분은 끝남의 아쉬움과 희망의 시작을 둘 다 묘사하죠.

Q. 슈만과 슈베르트는 어떤 점에서 비슷하고 어떤 점에서 다른가요?

A. 아주 어려운 질문 같아요. 슈만과 슈베르트는 둘 다 아주 낭만적이고 섬세하죠. 음악이 슈만에게는 그의 인생 철학을 나타내는 도구로 사용되었다면, 쉽게 말해 “컨셉트”가 더 담겨있는 곡을 썼다면 슈베르트는 좀 더 즉흥적이고 순간에 집중하죠. 슈베르트는 아픔을 응시할 수 있었다면 슈만은 그 안에서 미소를 찾고 있었던 것 같아요.

Q. 2011년에 우아한 왈츠 D. 969를 녹음했었습니다. 연주를 들어보면 반복을 일부 생략했던데, 8년이 지난 현재 생각이 그때와 같은지 궁금합니다. 슈베르트의 반복 지시는 단순한 반복이 아니므로 생략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 관해 어찌 생각하나요?

A. 저는 되도록 반복 지시를 지키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음반에 있어서는요. 가끔은 반복 표시를 무시할 때가 있는데 어떤 관습에 의해서, 아니면 음악의 흐름을 위해서 그렇게 하기도 하죠. 2011년에는 저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Q.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D. 664는 어떤 곡인가요?

A. 슈베르트는 D. 664를 마지막으로 몇 년 동안 소나타를 끝까지 완성하지 못했었어요. 이 곡이 어쩌면 그에게는 터닝포인트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다음 소나타부터는 좀 더 교향악적이고 길이도 긴 소나타를 작곡하게 되죠. 베토벤에게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죠.

Q. 소나타 D. 664 1악장 마지막에는 셈여림 표시가 피아니시모인데 음을 7~8개씩 쌓은 화음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게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나요? 그냥 일반적인 감7화음 느낌으로 충분할까요? 어떻게 해야 효과가 극대화될까요? 이곳에서 저음부와 고음부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요?

A. 이 악장에는 ppp 부터 ff까지 아주 폭넓은 셈여림 표시가 되어 있는데 슈베르트로서도 특별한 경우죠. 특히 평온하게 들리는 이 소나타의 분위기 때문에 더 놀라워요. 화음을 연습할 때는 탑을 쌓는 것 같이 아래에서 위까지 모든 음을 들으려고 해요. 모든 음들이 그 위치에 있어야 슈베르트가 묘사하려는 어두운 그림자의 느낌이 나죠.

Q. 미국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독일 하노버 음대, 이탈리아 코모 아카데미 등에서 수학하셨습니다. 각 학교의 장단점이 무엇이며 그곳에서 무엇을 배웠나요?

A.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에서는 변화경 선생님께 배웠는데 선생님을 통해서는 음악 외에도 인간적으로 참 배운 것이 많았어요. 어렸을 때 미국에서 생활했던 것은 저에게 자유롭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던 것 같아요. 독일로 옮겨 갔을 때는 음악의 전통과 역사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았죠. 음악에서는 당연히 인간의 감정을 묘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역사와 시대상 분위기, 또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 음악을 해석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잖아요. 또 실력 있는 피아니스트들이 많이 있던 하노버 음대서는 그 분위기가 경쟁적이기도 했지만 이로 인해 단련되었던 것도 같습니다. 코모 아카데미에서의 경험도 소중했어요. 학교의 분위기를 떠나서 연주가가 꿈인 피아니스트들이 모여서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곳이었어요. 제 개성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죠.

Q.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닐스 묑케마이어, 스베틀린 루세브 등과 협연했고, 독주회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이전 공연에서 통영국제음악당에 관해 느낀 점은 무엇인가요?

A. 한국은 모든 것이 서울에 집중되어있는 경향이 있어서 늘 지방에 좋은 공연장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통영의 공연장은 참 특별한 곳이에요. 음향도 좋고 체계적으로 잘 준비되어 있어서 연주하는 분들이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아름다운 전광은 그 멋을 더하고요. 공연장이 연주자에게 영감을 주는 곳은 흔치 않은데 통영국제음악당이 바로 그런 것 같아요. 닐스와 스베틀린 모두 동감했어요.

Q. 국내 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계획이 있다면?

A. 모든 공연이 다 중요하지만 특히 다음 시즌에 잡힌 베를린 불레즈잘과 함부르크에서의 리사이틀이 많이 기대됩니다.

Q. 통영 관객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A. 통영은 10년 전 윤이상 콩쿠르를 위해 처음 방문했었어요. 오래전부터 저에게는 소중한 인연입니다. 그래서 제가 아는 분들께 많이 소개하고 있고 멀리서나마 늘 응원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좋은 공연으로 자주 찾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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