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피아니스트로서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연주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지난 2016년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심사위원으로서 통영에 왔었다. 그때 느낀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은 어땠나?
A.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심사위원으로는 사실 이번이 세 번째 통영 방문인데, 첫 번째였던 2008년 콩쿠르는 통영국제음악당이 아닌 통영시민문화회관에서 열렸다. 2016년에 처음 경험한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은 단순하고 효율적인 설계가 인상 깊었다. 빈에 있는 무지크페라인과 거의 비슷한 소리가 났다.
Q.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다가 오른손에 이상이 생긴 일이 계기가 되어 파리 콘서바토리 교수가 되었다. 그때 이후로 '피아니스트 미셸 베로프'는 어떤 점에서 달라졌나?
A. 근육긴장이상(dystonia) 증세를 일으키는 원인은 여러 가지이지만, 이것을 경험하고 나면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무엇보다 내 몸을 더 '경제적으로' 사용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더 적은 에너지로 더 효율적인 결과를 얻으려 하게 된다. 가르치는 일 또한 큰 도움이 되었고, 나는 피아노 연주에 필요한 모든 변수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됐다. 연주자에게 성장이란 인생 경험의 결과이되, 긍정적인 경험보다 부정적인 경험이 더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힘들었던 이 시기는 한편으로 내게 많은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기회가 되어주었다. 내가 전부터 좋아했던 걸작들을 지휘하는 기쁨을 알게 되었고, 이것이 내 음악 경험을 완성하는 한 가지 방법이 되었다. 지난 시절 거장 지휘자들에게 이런 일은 매우 흔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Q. 파리는 베를린, 런던, 뉴욕 등과 견주어 피아니스트에게 어떤 장단점이 있는 도시인가?
A. 내 생각에는 차이가 없다. 모두 훌륭한 오케스트라와 오페라단과 탁월한 미술관이 있는 곳들이고, 수준 높은 콘서바토리 또는 음악대학이 있는 곳들이다. 그러나 차이가 없다는 말이 다양함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젊은 음악인이 저런 도시 두세 군데에서 몇 달 또는 몇 년쯤 지내보는 일은 분명 좋은 경험이 된다.
Q. 핀커스 주커만이 지휘하는 애들레이드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모차르트 협주곡 17번 G장조 K. 453을 협연할 예정이다. 모차르트의 많은 협주곡 가운데 이 곡을 고른 이유는 무엇인가?
A. 모차르트는 훌륭한 협주곡을 매우 많이 썼고, 그중에 하나를 어쨌든 고르기는 해야 한다. 또 연주 시간이나 리허설 시간도 고려해야 한다. 음악적으로는 이 작품이 목관악기를 중요하게 사용한다는 점과(물론 협주곡에서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3악장 코다에 나타나는 오페라적 특징을 특별히 좋아한다. 이 두 가지는 모차르트 작품세계의 핵심에 닿아 있다.
Q. 드뷔시, 라벨, 메시앙, 스트라빈스키, 무소륵스키, 프로코피예프, 버르토크 등을 녹음한 여러 음반을 남겼고, 또 여러 작곡가의 작품을 무대에서 연주했다. 당신에게 모차르트의 음악은 어떤 의미인가?
A. 물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모차르트는 (다른 점에서도 중요하지만) 그만큼이나 필수적이다.
Q. 모차르트를 연주할 때 악보에 없는 장식음을 덧붙이는 연주자가 요즘에는 제법 흔하다. 연주자에 따라서는 즉흥적인 연결구를 추가하기도 하고, 오블리가토 피아노를 연주하기도 한다. 모차르트 당시의 연주 관습을 오늘날 되살리는 일을 피아니스트로서 어디까지 받아들일 만하다고 생각하나?
A. 나는 어떠한 장식음과 즉흥적 연결구 등에도 완전히 개방적이며, 이때 중요한 것은 취향과 양식이다(이 두 가지는 매우 주관적이다). 그러나 인위적인 소리를 내지 않으려면 모차르트 양식에 오랫동안 빠져들고 난 뒤에 그런 걸 해야 한다.
Q. 이본 로리오는 어떤 스승이었으며 그에게 무엇을 배웠나?
A. 파리 음악원 재학 시절 지도교수는 피에르 상캉이었다. 이본 로리오에게는 몇 번 레슨을 받았고 졸업 후에 메시앙과 함께 자주 만나기는 했지만, 진지하게 뭔가를 말할 정도로 많이 배우지는 못했다. (편집자 주: 이본 로리오는 메시앙의 부인이었으며 위키피디아에는 미셸 베로프가 이본 로리오를 사사했다고 잘못 나와 있다.)
Q. 미셸 베로프라는 이름은 한국에서는 '조성진의 선생님'으로 유명하다. 조성진은 내가 아는 어떤 연주자보다도 악보에 철저하다고 생각하는데, 지난해 당신이 내한했을 때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악보에 충실할 것을 강조하는 것을 보고 조성진이 스승의 영향을 받았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조성진은 처음부터 악보에 철저한 제자였나?
A. 조성진은 언제나 텍스트를 중요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16~17세 때 읽은 것과 60세가 되어 읽은 것은 물론 같을 수 없다. 나는 악보에 있는 리듬, 음색, 분절법 등 기초적인 것들의 중요성을 언제나 강조했다. 그러고도 여전히 해석의 여지는 많이 남아 있다.
Q. 악보에 있는 지시를 어김으로써 결과적으로 더 훌륭한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길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A. 정말로 그렇게 느낀다면 직접 작곡을 하시라. 그러나 대가의 작품을 함부로 하지는 마시라. 우리는 천재 앞에서 더 겸손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들과 관객을 잇는 매개자일 뿐이다. 다시 말하자면, 작품을 이루는 요소들이 아무리 주관적일지라도 언제나 텍스트와 그에 관한 당신의 느낌을 결합할 방법은 있다. 잘 안 된다면 더 노력하라!
Q. 한국에서 피아노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조언 한 가지만 한다면?
A.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유럽에서도, 아니면 파푸아에서도 나는 같은 것을 말할 것이다. 우선 피아노 없이 악보를 공부하고, 소리에 관한 명확한 그림을 머릿속에 그리고, 그것을 가능한 만큼 다듬어(orchestrate) 보라. 그리고 건반 뚜껑을 열고 눈을 크게 떠라! 그리고 옛 거장의 연주를 듣고, 그대로 베끼려 하지 말고, 전통과 새로움 사이에서 균형을 더 잘 잡으려 노력하라. 그리고 내가 앞서 말한 것들을 모두 명심하라.
Q. 통영 관객에게 한마디 해달라.
A. 통영 관객에게 우선 말하고 싶은 것은 위대한 한국 작곡가 윤이상을 기리는 콩쿠르의 심사위원장이 된 일을 내가 커다란 영광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또 젊은 음악인에게는 당대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할 의무가 있으며, 그런 점에서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는 매우 특별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그런 점에서 통영은 놓칠 수 없는 기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