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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28일 금요일

조성진 인터뷰 (2019년)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발간하는 『Grand Wing』 2019년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2019년 5월 6일, 독일 베를린 현지 시각 오전 10시.

Q. 예전에 통영국제음악당에서 협주곡도 했고 리사이틀도 했다. 편성에 따라서 느껴지는 홀 음향에 차이가 있었나?

A. 2014년에 협주곡을, 2017년에 리사이틀을 했다. 그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고, 그동안 홀을 보는 관점들이 달라졌기 때문에 자신 있게 답하기는 어렵지만, 딱히 차이를 느끼지는 못했고 두 번 다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향이 좋지 않은 공연장에서 협주곡을 하면 오케스트라 소리가 섬세하게 들리지 않아서 협연에 어려움이 있는데, 통영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했을 때에는 그런 문제가 전혀 없었고, 관객이 찼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리사이틀 때에는 음향뿐 아니라 조명 또한 매우 편안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Q. 통영 공연 프로그램 중에 알반 베르크 소나타가 있는데, 사람들이 그 이름에 지레 겁을 먹을 것 같다. 이 곡은 어떤 매력이 있는 곡인가?

A. 피아노 소나타 Op. 1은 베르크가 젊었을 때 쓴 곡으로, Op. 1(작품번호 1번)이 이렇게 걸작이라는 것이 신기하고, 내 생각에 모든 Op. 1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 같다. 리사이틀 오프닝 곡으로도 좋은 것 같고, 무게감 있는 여러 곡과 궁합이 잘 맞는 것 같다. 이번에 연주할 리스트 소나타와도 어울리고, 조성도 b단조로 같다. 얼핏 무조음악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조성이 있고, 전통적이고 낭만주의적인 면과 현대적인 면이 조화를 이루는 곡이다. 악보를 보면서 들어보면 이 곡이 전통적인 소나타 형식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 더 잘 이해되고, 음악을 들을수록 신비롭고 오묘한 느낌이 든다.

Q. 이 곡의 음반을 들어보면, 악보에 있는 도돌이표를 지키는 연주자가 있고 그냥 생략하는 연주자가 있다.

A. 당연히 지켜야 한다.

Q. 이 곡을 연주할 때 악보를 정확하게 소리로 재현한다는 느낌을 주는 연주자가 있는가 하면, 곳곳에서 악보에 없는 루바토를 사용해서 낭만주의적인 느낌을 좀 더 살리는 연주자가 있다.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나?

A. 베르크는 악보에 세세한 지시를 매우 많이 해놨다. 일단 그걸 모두 살리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막상 무대 위에 오르면 '내 느낌'을 살리는 일도 중요해지는 것 같다. 미츠코 우치다의 연주가 그런 점에서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Q. 이 곡의 클라이맥스라 할 만한 곳에서, 포르테가 네 겹으로 붙어 있고, 그걸 예비하는 과정에서 크레셴도뿐 아니라 제법 긴 호흡으로 아첼레란도가 붙어 있다. 크레셴도의 다이내믹스를 극대화하는 것과 아첼레란도의 속도감을 극대화하는 것,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A. 브람스 교향곡을 들어보면, 지휘자에 따라서 클라이맥스로 오를 때 템포를 늦춰서 거대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베르크 소나타에서는 반대로 템포를 몰아붙이도록 지시했고, 그래서 조금 신경질적인 느낌을 준다. 클라이맥스의 다이내믹스도 중요하지만, 이 곡에서는 클라이맥스 직전까지 템포를 조이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2년 전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유튜브 공연 영상을 봤는데, 악보에 있는 아주 작은 지시까지 완벽하게 지키면서 암보로 연주해서 깜짝 놀랐다. 어떻게 하면 악보의 아주 작은 지시까지 싹 다 외울 수 있나?

A. 딱히 비결이 있지는 않다. 다만, 같은 곡을 여러 번 연주하다 보면 루바토를 썼던 곳에서 다음번에는 더한 루바토를 쓰게 되거나 하면서 매너리즘에 빠질 위험이 있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악보를 본다. 무대에 나가기 전에 손가락을 푸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나는 연주할 곡이 처음 접하는 곡이라는 생각으로 악보를 다시 보는 편이다. 첼리비다케가 그렇게 한다는 인터뷰를 본 일이 있는데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공연이 끝나고 악보를 보면서 연주를 되짚기도 한다.

Q. 이제까지 쇼팽을 너무 많이 연주해서, 이제는 다른 곡을 더 많이 하려는 것 같다.

A. 쇼팽 콩쿠르 우승자 출신이다 보니 쇼팽을 연주해 달라는 요청이 계속 있었고 그 그대에 부응해야 했는데, 2019년부터는 그런 요청을 그다지 받지 않게 되었다. 의식적으로 공연 프로그램에 쇼팽을 빼려는 것은 아니지만, 리사이틀에 쇼팽이 들어가면 다른 곡들과 어울리게 프로그램을 짜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빼버리는 편이 프로그램 구성에 더 자유로워지는 장점이 있다. 또 크리스티안 지메르만도 쇼팽 콩쿠르에 입상했지만 딱히 쇼팽 스페셜리스트로 불리지는 않는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 또 시마노프스키, 야나체크, 메트너처럼 음악가들 사이에서 유명하지만 대중에게 덜 알려진 곡을 관객에게 들려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Q. 모차르트 협주곡 20번 d단조 음반이 작년에 나왔다. 음반 녹음 과정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A. 체력적으로 힘든 녹음이었다. 오케스트라와 스케줄을 조정하다 보니 녹음할 시간이 하루 반나절밖에 안 나와서 종일 녹음을 해야 했다. 장소는 바덴바덴 페스티벌하우스였고, 피아노는 세 가지 선택지 중 오케스트라 음색과 가장 잘 맞는 것을 골랐다.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조금 '고전적인' 소리를 내는 악단이고, 다른 악단이 흔히 A=442Hz로 조율하는 것과 달리 441Hz로 하더라. (편집자주: 현대 오케스트라는 심한 경우 445Hz까지 높이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고른 것은 조금 옛날 피아노, 아주 옛날은 아니지만 15년~20년 정도 된 스타인웨이 피아노였던 것 같다. 그런데 낡은 피아노라 피아노의 터치감이 들쑥날쑥해서 원하는 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오케스트라는 매우 훌륭했고, 모차르트 협주곡을 수없이 연주해 봤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휘자 야니크 네제세갱은 1~2년 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인데, 매사에 긍정적이고, 배려심 많고, 내가 원하는 것을 빠르고 정확하게 감지하는 지휘자다. 이번 음반이 내가 이제까지 녹음한 것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든다.

Q.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도 이 곡을 연주했다. 그때는 악보에 있는 음만 연주했는데, 이번 음반에서는 2악장에서 악보에 없는 장식음을 제법 많이 썼고, 2년 전에 통영에서 모차르트 소나타 연주했을 때도 장식음을 썼다. 모차르트 당시의 연주 관습을 고려했다는 얘긴데, 작곡 당시의 관습을 어디까지 살리느냐 하는 건 연주자마다 판단을 내려야 하는 문제인 것 같다. 음반 녹음 때 장식음을 즉흥적으로 연주했나, 아니면 음 하나까지 사전에 계획했나?

A. 미리 계획하지만 연주할 때마다 상황에 맞게 변화를 준다.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피아노의 상태이고, 그래서 필라델피아에서 공연했을 때는 음반 녹음 때와는 조금 다른 장식음을 썼다. 예를 들어 스타카토 소리가 예쁘게 나지 않으면 그 대신 스케일이나 트릴을 쓰는 식이다.

Q. 오케스트라 투티가 나올 때는 오블리가토 피아노를 생략하고 솔로만 연주했다. 그게 필요 없다고 생각한 이유가 뭔가? 사용한 악기가 모차르트 시대 피아노가 아니었던 것도 이유가 될까?

A. 그리고리 소콜로프 같은 사람은 오블리가토 피아노까지 다 하던데, 투티에서 오케스트라만 소리내는 게 내 귀에는 더 좋게 들린다. 모차르트 시대 피아노로 협주곡을 연주하는 시도는 아직 한 번도 안 해봤지만, 그건 좀 다를지도 모르겠다.

Q. 통영에서 협주곡을 연주하면서 오케스트라 지휘까지 할 예정이다.

A. 지휘라고 하기는 좀 민망하다. 이번에 처음 해보는 시도인데, 특히 쇼팽 협주곡에서 내가 원하는 오케스트라 소리를 직접 만들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돈 크레머가 창단한 악단인 '크레메라타 발티카'와 쇼팽 협주곡 1, 2번을 협연했을 때, 내가 지휘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휘자 없이 공연했었고, 그때 가능성을 처음 생각하게 됐다. 그런데 솔직히 큰 기대는 안 하셨으면 좋겠다.

Q. 본격적으로 지휘자가 될 생각이 있는 건 아닌 건가?

A. 그런 생각은 전혀 없다. 협주곡 할 때 조금 해보는 정도. 아니면 서곡이나 짧은 교향곡 정도는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가 지휘자로 악단을 맡거나 기획사에서 지휘자로 매니지먼트를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Q. 파리에 살다가 베를린으로 옮겼다. 파리와 견주면 베를린은 연주자로 살기에 어떤 장단점이 있나?

A. 파리가 문화 전반적으로 축복받은 곳이라면, 베를린은 음악에 더 집중된 곳인 듯하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외에도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베를린 도이체 심포니 오케스트라,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등 명문 악단이 베를린에는 여럿 있고, 연주 여행을 갔다 돌아와서 그날 열리는 공연을 찾아보면 항상 좋은 게 있다. 음악을 빼고 나면 베를린은, 최근에 사람이 늘었다고는 해도 아직 파리보다 더 한적한 곳이다. 공기도 파리보다 좋다. 날씨는 별로라서, 겨울에는 다른 곳으로 연주하러 다니는 게 낫다.

Q. 음반 녹음이나 그밖에 국내 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계획이 있다면?

A. 음반은 6월과 10월에 나눠서 알반 베르크 소나타와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 리스트 소나타를 녹음할 예정이고 내년 봄에 발매될 것 같다. 베르크 곡이 포함된 제안을 도이치그라모폰에서 받아준 것이 놀랍고 기쁘다. 1월에 마티아스 괴르네와 함께 바그너 베젠동크 가곡집과 한스 피츠너 가곡 중 일부를 녹음했고, 7월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가곡과 한스 피츠너 추가 녹음, 슈베르트 '하프 연주자의 노래' 연작 녹음이 예정되어 있다.

Q. 통영 관객에게 한마디 해달라.

A. 공연 제안을 받아서 기뻤고, 통영에서 거의 일주일을 보낼 수 있어서 기대된다.

2019년 6월 7일 금요일

피아니스트 윤홍천 인터뷰

통영국제음악재단에서 발간하는 『Grand Wing』에 실린 글입니다.


Q. 지난해 소니에서 발매한 음반으로 BBC 뮤직 매거진에서 별 다섯 개를 받았습니다. 그 전에는 모차르트 음반 등으로 에코 음반상을 받는 등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로린 마젤의 발탁으로 뮌헨필과 협연한 일과 음반으로 호평받은 일 가운데 어느 쪽이 커리어에 더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느끼나요?

A. 저는 콩쿠르나 지휘자의 발탁보다는 음반을 통해서 더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2009년부터 꾸준히 음반을 발매하고 있는데 음반이라는 미디어는 라이브 콘서트보다 훨씬 더 편리하고 빠르게 전달될 수 있잖아요. 음반이 많은 곳에 소개되고 좋은 평가를 받게 되면 자연스럽게 연주 기회도 찾아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의 음악을 소개하고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되었죠.

Q. 음반 녹음 과정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이를테면 어디에서 어떤 피아노를 사용했고 엔지니어와 어떤 소통을 했나요?

A. 모차르트 소나타 전곡 녹음 중 마지막 두 개의 음반을 함께 녹음했던 톤마이스터 에카르트 글라우헤(Eckard Glauche)와 함께 작업했습니다. 베를린 반제(Wannsee) 호수에 위치한 안드레아교회(Andreaskirche)라는 곳에서 3일 동안 녹음을 했어요. 저는 몇 년 전부터 벡슈타인 피아노사와 인연을 맺고 있는데 이 녹음에서도 벡슈타인 피아노를 연주했어요.

Q. BBC 뮤직 매거진에서는 연주 못지않게 음반 수록곡 선정을 극찬했습니다. 통영 공연 프로그램 가운데 절반 이상이 그 음반에 있는 곡인데, 그 가운데 슈만의 유모레스크를 고른 의도가 궁금합니다.

A. 이 곡은 꼭 한번 녹음해보고 싶었던 작품이었습니다. 슈만의 걸작 중에서도 가장 안 알려진 곡 중 하나이죠. 이 곡을 공부하는 동안 슈만이 이 작품을 빈에서 보낸 6개월 사이에 작곡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점이 레퍼토리를 선정하는데 영감을 주었어요. 슈만은 28살의 나이로 큰 꿈을 안고 빈을 찾았지만 성공을 얻지 못하고 실망을 안고 떠나야 했죠. 하지만 이 시간이 그에게는 음악적으로는 풍부한 시간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슈베르트의 교향곡 9번의 원본을 우연히 발견하기도 하였죠. 저는 유모레스크가 슈만의 피아노곡 중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한 챕터를 끝내는 듯한 마지막 부분은 끝남의 아쉬움과 희망의 시작을 둘 다 묘사하죠.

Q. 슈만과 슈베르트는 어떤 점에서 비슷하고 어떤 점에서 다른가요?

A. 아주 어려운 질문 같아요. 슈만과 슈베르트는 둘 다 아주 낭만적이고 섬세하죠. 음악이 슈만에게는 그의 인생 철학을 나타내는 도구로 사용되었다면, 쉽게 말해 “컨셉트”가 더 담겨있는 곡을 썼다면 슈베르트는 좀 더 즉흥적이고 순간에 집중하죠. 슈베르트는 아픔을 응시할 수 있었다면 슈만은 그 안에서 미소를 찾고 있었던 것 같아요.

Q. 2011년에 우아한 왈츠 D. 969를 녹음했었습니다. 연주를 들어보면 반복을 일부 생략했던데, 8년이 지난 현재 생각이 그때와 같은지 궁금합니다. 슈베르트의 반복 지시는 단순한 반복이 아니므로 생략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 관해 어찌 생각하나요?

A. 저는 되도록 반복 지시를 지키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음반에 있어서는요. 가끔은 반복 표시를 무시할 때가 있는데 어떤 관습에 의해서, 아니면 음악의 흐름을 위해서 그렇게 하기도 하죠. 2011년에는 저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Q.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D. 664는 어떤 곡인가요?

A. 슈베르트는 D. 664를 마지막으로 몇 년 동안 소나타를 끝까지 완성하지 못했었어요. 이 곡이 어쩌면 그에게는 터닝포인트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다음 소나타부터는 좀 더 교향악적이고 길이도 긴 소나타를 작곡하게 되죠. 베토벤에게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죠.

Q. 소나타 D. 664 1악장 마지막에는 셈여림 표시가 피아니시모인데 음을 7~8개씩 쌓은 화음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게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나요? 그냥 일반적인 감7화음 느낌으로 충분할까요? 어떻게 해야 효과가 극대화될까요? 이곳에서 저음부와 고음부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요?

A. 이 악장에는 ppp 부터 ff까지 아주 폭넓은 셈여림 표시가 되어 있는데 슈베르트로서도 특별한 경우죠. 특히 평온하게 들리는 이 소나타의 분위기 때문에 더 놀라워요. 화음을 연습할 때는 탑을 쌓는 것 같이 아래에서 위까지 모든 음을 들으려고 해요. 모든 음들이 그 위치에 있어야 슈베르트가 묘사하려는 어두운 그림자의 느낌이 나죠.

Q. 미국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독일 하노버 음대, 이탈리아 코모 아카데미 등에서 수학하셨습니다. 각 학교의 장단점이 무엇이며 그곳에서 무엇을 배웠나요?

A.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에서는 변화경 선생님께 배웠는데 선생님을 통해서는 음악 외에도 인간적으로 참 배운 것이 많았어요. 어렸을 때 미국에서 생활했던 것은 저에게 자유롭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던 것 같아요. 독일로 옮겨 갔을 때는 음악의 전통과 역사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았죠. 음악에서는 당연히 인간의 감정을 묘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역사와 시대상 분위기, 또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 음악을 해석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잖아요. 또 실력 있는 피아니스트들이 많이 있던 하노버 음대서는 그 분위기가 경쟁적이기도 했지만 이로 인해 단련되었던 것도 같습니다. 코모 아카데미에서의 경험도 소중했어요. 학교의 분위기를 떠나서 연주가가 꿈인 피아니스트들이 모여서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곳이었어요. 제 개성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죠.

Q.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닐스 묑케마이어, 스베틀린 루세브 등과 협연했고, 독주회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이전 공연에서 통영국제음악당에 관해 느낀 점은 무엇인가요?

A. 한국은 모든 것이 서울에 집중되어있는 경향이 있어서 늘 지방에 좋은 공연장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통영의 공연장은 참 특별한 곳이에요. 음향도 좋고 체계적으로 잘 준비되어 있어서 연주하는 분들이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아름다운 전광은 그 멋을 더하고요. 공연장이 연주자에게 영감을 주는 곳은 흔치 않은데 통영국제음악당이 바로 그런 것 같아요. 닐스와 스베틀린 모두 동감했어요.

Q. 국내 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계획이 있다면?

A. 모든 공연이 다 중요하지만 특히 다음 시즌에 잡힌 베를린 불레즈잘과 함부르크에서의 리사이틀이 많이 기대됩니다.

Q. 통영 관객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A. 통영은 10년 전 윤이상 콩쿠르를 위해 처음 방문했었어요. 오래전부터 저에게는 소중한 인연입니다. 그래서 제가 아는 분들께 많이 소개하고 있고 멀리서나마 늘 응원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좋은 공연으로 자주 찾고 싶습니다.

2018년 8월 29일 수요일

피아니스트 김선욱 인터뷰

통영국제음악재단에서 발간하는 『Grand Wing』에 실린 글입니다.


Q. 통영에서 베토벤 협주곡 5번을 협연할 예정이다. 2013년에 서울시향과 협연한 녹음이 도이치그라모폰에서 나왔었는데, 당시 곡 해석의 틀이 지금까지도 유효한가? 바뀌었다면 어떤 부분이 바뀌었는가?

A. 곡에 대한 해석은 항상 유기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 특히나 마지막으로 연주한 지 4-5년이 흘렀을 때 바라보는 곡에 대한 색다른 매력에 큰 재미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템포 변화와 뉘앙스 차이는 다를 수 있어도 큰 골격과 골조는 비슷한 편이다. 결국 스스로의 음악적 취향과 스타일이 구축되었다는 것인데, 그때부터는 세밀한 표현을 섬세하게 가꾸는 것이 스스로 진화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여태껏 찾지 못한 순간들을 발견하려 노력하고 있다.

Q. 이를테면 2악장에서 왼손 음형을 음반에서보다 좀 더 볼륨 있게 쳐주는 편이 더 베토벤답게 들리지 않을까?

A. ‘베토벤답다’라는 정의는 참 위험한 말이다. 베토벤다운 것은 없다. 베토벤의 악보 기호와 주문을 얼마나 자신의 것으로 완성시켜 설득력 있게 전달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Q. 최수열 지휘자와 전에 협연해 본 일이 있나? 최수열은 어떤 지휘자라고 생각하나?

A. 한국예술종합학교 선배님이다. 같이 연습해 본 적은 있으나 공식적인 무대에 서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휘 실력, 즉 테크닉이야 이루 말할 것 없이 훌륭하고 고전, 낭만 음악뿐만 아니라 현대음악에 대한 관심과 애정, 다양한 포맷의 시도 등 앞으로 우리나라 음악계를 잘 견인하실 것이라 믿고 있다.

Q. 2014년에는 정명훈-서울시향과 함께 진은숙 협주곡을 녹음했었다. 이 곡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작곡가로부터 어떤 조언을 받았으며, 자신만의 의견은 무엇인가?

A. 진은숙 작곡가는 이 곡을 통해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모두 최대한 비르투오식하게 연주하길 바랐다. 곡이 어렵다고 대충 훑는 것이 아니라 최대치의 노력을 다해 연주되길 바랐고 그 열정과 긴장감으로 곡에 숨을 불어넣길 원했다. 결과적으로 처음 연주할 때 굉장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그만큼 연습량을 늘리며 이 곡이 내 것이 되도록 노력했다. 진은숙이라는 작곡가의 시그니처, 즉 찬란한 색채의 화음과 치밀하게 짜여진 구성과 디테일은 왜 진은숙이 세계 최정상의 작곡가인지 증명한다. 단언컨대, 이 협주곡은 2100년에도 꾸준히 연주될 것이다.

Q. 같은 해 같은 곡으로 함부르크에서 NDR 심포니 오케스트라, 2015년 파리에서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과 협연했었다. 그때 얘기가 궁금하다.

A. 이 곡으로 여러 지휘자와 협연했다. 정명훈, 일란 볼코프, 크와메 라이언, 티토 체체리니, 안토니 헤르무스랑 같이 연주했고 이 다양한 지휘자들이 생각하는 이 곡에 대한 아이디어를 습득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협주곡에 대한 경험이 많이 쌓였다. 같이 연주했던 오케스트라들은 모두 다 훌륭했고 열심히 연주했기에 매 순간 기억에 많이 남는다.

Q. 영국 왕립음악원에서 지휘를 전공했고 본머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로 '데뷔'를 앞두고 있기도 하다. 영국 왕립음악원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

A. 내가 배운 콜린 메터스선생님은 영국 왕립음악원에 30여 년 전 처음으로 지휘과가 신설되었을 때부터 지휘과 교수님이었다. 매일 학교에서 지휘과 학생들과 시간을 보냈고 오케스트라 파트를 피아노로 많이 치면서 다른 친구들의 지휘를 도와주기도 했다. 레퍼토리를 다양하게 배울 수 있었고 피아노와 병행하느라 힘들었지만 좋은 추억이었던 것 같다. 거의 매일 5시에 수업이 끝나면 오후 6시부터 9시까지는 피아노를 연습했다. 2020년에 영국 본머스에서 열리는 연주회는 지휘 ‘데뷔’라고 하면 너무 쑥스럽고 그냥 하나의 이벤트로 생각하고 있다.

Q. 음악인으로서 느끼는 런던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A. 일단 내가 현악인이고 오케스트라에서 일하고 있다면 런던에서는 엄청난 레퍼토리를 빠른 시간 안에 습득할 수 있다. 2-3년이면 모든 시대의 곡을 다 연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짧은 리허설 시간 안에서 완성도를 높여야 하기 때문에 기민함이 빠른 속도로 발전할 것이다. 하지만 급여는 다른 나라에 비해 형편없기 때문에 비싼 물가의 런던에서 여유 있는 생활을 유지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오페라, 클래식 연주회, 뮤지컬, 연극 등 다양한 장르를 트렌디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이 런던의 문화적으로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지금은 베를린으로 이사해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고 있다.

Q. 윤이상 작품을 연주해본 일이 있는가?

A. ‘피아노를 위한 5개의 소품(1958)’을 2012년 통영국제음악제에 상주음악가로 있었을 때 연주했었다. 가치 있었던 순간이었다.

Q. 어느 분야이든 존경하거나 흥미를 느끼는 예술가가 있다면?

A. 작품에 시간과 정성을 들이고, 디테일에 집착하며, 스스로 만족하지 않는 예술가들은 모두 다 존경한다. 훌륭한 예술가는 개개인의 독특한 자아가 존재하는데 극한으로 자신을 밀어붙일수록 그 예술가만이 고유한 특징을 드러낼 수 있다고 믿는다. 미술가로는 카스파르 프리드리히, 클림트, 안젤름 키퍼, 라킵 쇼를 좋아하고 노먼 포스터, 프랭크 게리의 건축물도 좋아한다.

Q. 국내 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계획이 있나?

A. 18-19 시즌에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총 5번을 공연한다. 독주회, 듀오 연주 두 번, 그리고 브람스의 실내악 프로젝트 두 번 – 그리고 위그모어에서 내년 1월 독주회를 여는데 한국 작곡가인 신동훈 씨의 신작을 초연할 계획이다.

Q. 마지막으로 통영 관객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A. 오랜만에 통영을 찾아 관객 여러분께 연주를 들려드릴 수 있어 영광으로 생각한다. 6년 만의 방문이고, 또 새로운 홀에서 처음으로 연주한다. 음향, 피아노 등 최상의 조건이라고 많은 동료들이 얘기해주었기 때문에 기대가 무척 크다. 좋은 연주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2018년 1월 31일 수요일

소프라노 황수미 인터뷰

통영국제음악재단에서 발간하는 『Grand Wing』에 실린 글입니다. 출간본과는 사소한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2018년 1월 7일, 독일 현지 시각 오전 11시경 전화 인터뷰.

Q. 통영 공연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16년 샹젤리제 오케스트라와 협연했을 때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A. 통영의 아름다움이 우선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고, 통영국제음악당의 음향이 훌륭해서 노래하기 편했었다. 그때가 통영국제음악당 데뷔 무대여서 긴장되기도 했지만, 직원들이 친절하게 챙겨주셨고, 숙소도 마음에 들었고, 아침에 자전거를 빌려서 해안 도로를 다녔던 것도 멋진 추억으로 남아 있다. 심지어 날씨까지 좋아서 모든 것이 완벽했던 것 같다.

Q. 올림픽 개막 공연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A. 영광으로 생각한다. 사실은 연락을 지난달에 받아서 일정을 조정하느라 정신이 없는 상태다. 아테네에서 열렸던 제1회 올림픽 때부터 공식 찬가로 지정된 곡을 원어인 그리스어로 불러 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악보를 받은 지는 일주일밖에 안 됐다. 이걸 잘 해내려면 남은 시간 동안 열심히 준비해야 할 것 같다.

Q. 연주자로서 자신의 장단점을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을 것 같다. 장점 위주로 자신을 평가한다면?

A. 무대 위에서 드러나는 것보다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을 즐길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은 지루할 수도 있고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려운 과제를 하나씩 해결하면서 받는 쾌감을 즐기는 편이다.

Q.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때 소프라노 임선혜 선생이 평하기를, 포커스가 확실하고 파워 있는 '고음'에 놀랐다고 했다.

A. 그때 마침 브뤼셀에 공연차 왔다가 콩쿠르를 보셨던 것 같다. 칭찬에 감사한다.

Q. 내 생각에 쇤베르크 ‹구레의 노래› 중 숲비둘기(Waldtaube) 역할을 하면 좋을 것 같다. 오케스트라 편성이 워낙 큰 작품이라 성량이 풍부해야 하지만, '비둘기'에 어울려야 하므로 드라마틱 소프라노여서는 안 되고, 고음이 맑고 단단하고 '포커스가 확실해야' 하는 까닭에 이 역할을 잘할 수 있는 소프라노가 흔치 않은데, 이 역할이 누구보다도 잘 맞을 것 같다.

A.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도전해 보겠다. 통영에서 기회를 만들어 주셔도 좋을 것 같다. (웃음)

Q. 진은숙 ‹퍼즐 & 게임›은 다른 방향으로 난이도가 대단하다. 이번에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협연할 이 곡을 전에 들어본 일이 있는가?

A.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뮌헨 공연 실황을 봤었다. 오페라를 모음곡으로 재구성한 ‹퍼즐 & 게임›은 아직 악보를 받아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다.

Q. 작곡가 진은숙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A. 여성 작곡가로서, 또 아시아 작곡가로서 베를린필 같은 특급 악단이 공연하는 작품을 여럿 쓰신 점이 대단하다. 개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왜소한 체격에서 느껴지는 아우라나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 모습 등이 멋있다고 생각한다. 글라인드본 페스티벌에 출연하면서 알게 된 유명한 오페라 연출가 클라우스 구트 선생이 진은숙 차기작 오페라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연출할 예정이라고 말해줬을 때는 같은 한국인으로서 괜히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Q. 크리스티안 요스트 ‹시인의 사랑›은 어떤가?

A. 매니저가 조만간 악보를 챙겨 줄 예정이라 아직 잘 모르겠다. 슈만 원곡은 참 좋아한다.

Q. 여자가 부르는 ‹시인의 사랑›은 흔치 않다.

A. 가사 내용이 남자 가수에게 맞는 곡이기는 하지만, 최근에는 브리기테 파스벤더, 바바라 보니, 크리스티아네 셰퍼 등이 ‹시인의 사랑›으로 호평받았다. 시를 전달하는 일에 남녀를 엄격히 가릴 필요는 없지 않나 싶고, 크리스티안 요스트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시인의 사랑›이라면 더욱 남녀 구분 없이 도전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Q. 통영국제음악제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네 개의 마지막 노래›를 보훔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예정인데, 마지막 곡 '저녁놀 안에서'(Im Abendrot)를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때 불렀었다.

A. 학생 때부터 언젠가는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꿈의 레퍼토리'였고, 특히 리사 델라 카사의 음반을 좋아했다. 그래서 콩쿠르 결선 때 이 곡을 마지막 곡으로 불렀다. 음악이 주는 평안함이 좋았고, 잘해야지 하는 생각보다는 마지막 가는 길이 이렇게 평안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Q. 안나 네트렙코의 초기 목소리를 참고했다고 다른 인터뷰에서 밝힌 일이 있다. 자신만의 발성법을 찾기 전에 흉내 내려 했던 가수가 또 있다면?

A. 미렐라 프레니. 입 모양을 보면 소리가 어떻게 나는지 훤히 다 보일 것 같은 사람이다.

Q. 뮌헨 음대를 졸업했다.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

A. 도시 자체가 참 좋았고,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실제 오페라 극장 오디션과 연계해 실습할 수 있는 시스템이 좋았다. 또 오페라뿐 아니라 리트 및 오라토리오를 복수전공하면서 시야를 넓히기도 했다.

Q. 본 오페라 극장 주역 가수이다. 극장 자랑을 해달라.

A. 플라시도 도밍고, 문서라트 커벌예(몽셰라 카바예), 에디타 그루베로바 등이 공연했었던 전통 있는 극장이고, '베토벤 오케스트라 본'이라는 훌륭한 악단이 극장 오케스트라로 있다. 개인적으로는 파미나, 돈나 안나, 미미, 수산나, 미카엘라 등 배역을 맡으면서 오페라 가수로 성장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4년차인 이번 시즌을 끝으로 독립할 예정이며, 앞으로는 여러 공연장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 자유롭게 출연하게 된다.

Q. 국내 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계획이 있다면?

A. 피아니스트 헬무트 도이치 선생님과 함께 음반 녹음 건으로 음반사와 의견 조율 중인데, 자세한 내용은 아직 말하면 안 될 것 같다. 또 헨델 오페라 ‹리날도›로 앙상블 마테우스와 함께 파리, 빈, 모스크바 등을 순회공연할 예정이다.

Q. 마지막으로 통영 관객에게 한 말씀 해달라.

A. 아름다운 도시에서 다시 노래하게 되어 기쁘고, 좋아하는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싱그러운 봄에 좋은 음악으로 찾아뵙기를 기대한다.

2018년 1월 30일 화요일

크리스토프 에셴바흐: 나의 삶

통영국제음악재단에서 발간하는 매거진 『Grand Wing』에 실린 글입니다. 인터뷰 대신으로 이런 글을 받았는데, 더 긴 글을 요약한 듯한 느낌이네요.


"음악은 사람의 감정 표현이다. 그 감정은 사실 매우 단순한 기쁨과 슬픔과 격정이며, 그 안에 많은 스펙트럼이 있다. 그것이 모두를 포괄한다. 일본인도, 에스키모도, 미국인도, 러시아인도. 이것이 음악의 커다란 장점이다."

모든 공연은 나에게 삶의 하이라이트다. 모든 공연이.

내 음악은 아직도 내 안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이유는 몰라도 나는 그 사실을 안다. 처음부터, 내가 의붓어머니 집에서 생전 처음으로 음악을 들었던 그때부터 음악은 나에게 탐험이었다. 나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탐험이었다. 오늘날까지 변함없다. 음악은 나를 표현하려는 불타는 갈망이다.

왜 그렇게 많은 여행을 해가면서까지 지휘를 자주 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여행이 참 성가신 일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나는 공연을 해야 한다. 내 몸짓으로, 내 연주자들로 음악을 말해야 한다. 나는 그것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 없는 세상은 다른 세상이다. 아버지 없는 세상도 마찬가지다…

어머니는 나를 낳다가 돌아가셨고, 오랜 죄책감에 시달려온 내 인생의 영원한 의문이 되었다. 브레슬라우(브로츠와프) 음대 교수였던 아버지는 나치에 의해 시골로 강제이주했다가 전쟁터로 끌려가셨다. 그리고 수형자 부대에서 작전 중에 돌아가셨다. 나는 할머니와 함께 살다가 1945년 1월 23일 공습을 피해 피난을 가야 했다. 할머니는 1년간의 피난 생활 끝에 돌아가셨다.

열두 달이 지난 1946년 1월 31일, 나의 변함없는 동반자인 질병과 죽음으로 얼룩진 나를 생후 5년간의 암울한 유년기로부터 구한 사람은 어머니의 사촌이었으며 훗날 내 양어머니가 되어주신 발리도레 에셴바흐였다. 내가 겪은 참혹한 일들로 나는 실어증에 빠졌고, 약 1년간의 치료 기간에 생전 처음으로 음악을 들었다. 피아니스트이자 가수, 음악 교사였던 발리도레 에셴바흐는 베토벤, 슈베르트, 쇼팽, 라흐마니노프, 바흐를 밤늦게까지 연주했다. 직접 연주해 보겠느냐는 말에 "예"라고 대답함으로써 나는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오케스트라 연주를 처음 들은 것은 11살 때로, 푸르크벵글러가 지휘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였다. 오늘날까지 나는 그들이 연주했던 거의 모든 음을 떠올릴 수 있고, 저 엄청난 마법사 푸르트벵글러의 멋들어진 모습을 눈앞에 떠올릴 수 있다. 푸르트벵글러는 오케스트라 단원 모두를 불타오르게 해서 엑스터시 상태로 보내버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치른 유일한 '오디션'은 1964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앞에서였다. 흔치 않게도 카라얀은 내 연주를 한 시간이나 들어 줬다. 이후 그는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진행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 녹음에 나를 섭외했다. 그렇게 해서 대단한 친분이 생겼고, 나의 발전에 커다란 도움을 준 배움의 과정이 시작됐다.

나에게 도움을 준 또 다른 위대한 마에스트로는 조지 셸이다. 그는 악보 분석에 관한 획기적이며 또한 상호보완적인 통찰을 나에게 전해 주었다. 그는 내 미국 데뷔를 주선하여 1969년 그가 지휘한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도록 해줬고, 나는 그와 함께 매우 열심히 연습할 필요가 있었다. 피아노 리허설이 업무상 신뢰 관계로 발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가는 모든 도시, 모든 오케스트라 리허설, 리허설에 이은 모든 토론에 그가 나를 초대했다. 나는 그에게 딕션을 배웠고, 프레이징, 명료함, 투명함을 배웠다. 카라얀에게는 색채, 뉘앙스, 분위기 전환을 배웠다. 셸이 그렸다면 카라얀은 칠했다. 안타깝게도 셸은 너무나 이른 1970년에 타계했다.

나는 지휘에 관해 점점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1964년에 치른 시험 이후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생각이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도전하려는 열망이 생겨났다. 그러나 내 몸동작이 지휘에 적절한가? 내가 오케스트라와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가? 내가 생각을 올바르게 전달할 수 있는가?

내 50번째 생일이 계시였다. 또 다른 내 위대한 멘토 레너드 번스타인이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현자가 말하기를 모든 생애 주기는 숫자 7에 기초하며, 7년이 7번 지나면 안식 기간을 가지면서 삶을 돌아보고 열린 생각과 변화를 받아들일 자유를 찾아야 한다 했다. 그래서 나는 충분히 오랜 시간 동안 삶을 돌아보고, 그 의미를 찾고, 마지막 남은 공포와 집착과 걱정을 없애 나갔다. 내 인생의 지평선이 멀리서 손짓하고 있었다...

1980년대에 나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 페스티벌 국제 청소년 오케스트라 및 오케스트라 아카데미를 창립하는 일에 큰 역할을 했다. 더 최근에는 마이클 틸슨 토머스와 함께 삿포로 퍼시픽 뮤직 페스티벌 및 유스 오케스트라의 공동 예술감독이 되었다.

젊은 음악가를 모아 오케스트라를 만들거나 솔로 연주자로서 국제적인 경력을 쌓게끔 하는 일은 모두 한 가지로 귀결된다.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힘을 모아서 느리게 변하는 세상에 맞서게끔 돕는 일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일상의 지루함과 싸울 수 있게 돕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 청춘의 심장에 있는 의기와 결의가 불가능을 이겨낼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엔진이 될 수 있다면, 바로 여기 내가 있다! 나는 내가 100살이 되어서도 여전히 지휘를 하고 있기를 바란다. 내가 99살일 때에도 여전히 새로운 발견에 열려 있을 것이며, 어쩌면 지금보다도 더욱 그러할 것이기에.

2017년 3월 21일 화요일

윤이상의 '라' - 음악적 해탈을 향하여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발간하는 『Grand Wing』에도 실렸습니다.


윤이상 선생에 관한 문헌은 파란만장했던 인생사를 다루는 내용과 음악 전문가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학술적인 내용으로 양극화되어 있습니다. 그분이 남긴 음악을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도움을 주는 글은 그다지 많지 않은 듯해요. 그래서 저는 요즘 하는 말로 '지식 소매상' 노릇을 이참에 직접 해볼까 생각했습니다. 통영국제음악당에서는 윤이상 탄생 100주년을 맞아 윤이상 선생의 여러 작품을 무대에 올리려 준비하고 있지요. 그 프로그램 노트를 요즘 제가 직접 쓰고 있어요.

"감방에서의 지리하고 답답한 긴 하루가 지나가면 취침 나팔 소리가 울린다. 슬픈 멜로디의 나팔 소리, 그리고 깊은 정적이 시작된다. 나는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먼 산 속 절간에서 울려오는 목탁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어느 죄수가 사형될 때 스님이 그 영혼을 인도하기 위하여 염불하며 두드리는 소리라고…."

이수자 여사는 『내 남편 윤이상』이라는 책에서 윤이상의 경험을 이렇게 전합니다.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좋을 듯해요. 윤이상 첼로 협주곡을 들어 보면 인용한 글과 맞아떨어지는 대목이 있고, 프로그램 노트에 저는 이렇게 썼습니다.

"[…] 첼로의 두 번째 '독백'이 이어진다. 베이스클라리넷과 알토플루트가 '취침 나팔' 소리를 내고, 목탁 소리가 들려온다. 마치 배가 물결을 헤치고 나아가듯 미분음으로 미끄러지는 현 소리가 그로테스크하다. 첼로의 세 번째 '독백'이 이어진다."

윤이상은 첼로 협주곡을 기점으로 자신의 작품에 음악 외적인 '메시지'를 담기 시작했습니다. 그 메시지 중에는 정치적인 것도 있지만, 그보다 정신적인 해탈을 추구하는 작품이 많아요. 해탈을 거쳐 다다를 수 있는 이상적 세계, 신의 세계, 도(道)의 세계를 윤이상은 '라'(A) 음에 특별한 상징성을 부여함으로써 표현하곤 했습니다. 제가 쓴 프로그램 노트에서 그것이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지를 조금씩 살펴볼까요?

마지막 단락에서 첼로는 '라'(A) 음을 향한 고행을 시작한다. 길고 처절한 노력 끝에 '솔'에 이르고, 다시 힘을 내서 반음 더 높은 '솔♯'에 이른다. 더 오르지 못하고 '솔♯' 음을 길게 내던 첼로는 마지막 힘을 모아 도움닫기를 한다. 솔♯, 거기서 1/4음 더!
그리고 첼로는 생명을 다한다. 오보에가 첼로를 대신해 '솔♯'에서 '라'로 상승한다. 트럼펫이 '라' 음을 이어받고, 음악이 끝난다. (첼로 협주곡)

곡 전체의 클라이맥스라 할 만한 곳에서 바이올린은 자꾸만 높은 음으로 노래하다가 끝내 '해탈'에 이릅니다. 그러나 여기서 느껴지는 감정은 깨달음을 얻은 환희가 아닙니다. 그냥 세상 번뇌를 다 놓아버리는 것이 '해탈'의 실체인 듯해요. 그렇게 슬픈 카타르시스가 가장 높은 음에서 별빛처럼 아름답게 반짝입니다. 그리고 속세에 찌꺼기처럼 남은 먹먹함이 천천히 음악을 끝맺습니다. (바이올린 소나타)

세 번째 부분에서 독주 클라리넷이 마지막 '독백'에 이어 끝내 '라' 음에 이르는 모습은 통쾌하다. 클라리넷은 마지막 순간 '미' 음에서 빠른 음형으로 순식간에 세 옥타브를 솟구쳐 올라 '라'에 이르고, 짧게 숨을 들이켜면서 단6도 낮은 '도♯' 음으로 매우 여리게 다시 시작했다가 단숨에 '라'로 뛰어올라 어마어마한 크레셴도로 '승리'를 선언한다. (클라리넷 협주곡)

음악학자 볼프강 슈파러가 "짧은 재현부 같은 에필로그"라 표현한 마지막 부분에서는 음들이 마침내 '정상'에 올라 평화를 찾은 듯 보인다. 그에 바로 앞서 제1 바이올린은 작곡가가 해탈을 상징하는 음으로 즐겨 사용하던 '라'(A) 음에 이르고, 강렬한 트릴로 소리친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다다른 곳이 진정한 도(道)의 세계일까?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현악사중주 4번)

이 작품에서 살아 움직이는 개별 음은 헤테로포니(heterophony)라 불리는 동아시아 음악의 생동 원리를 담고서, 폴리포니(polyphony)라 불리는 서양 다성음악의 음 조직 원리 속에 조화를 이룬다. 동動-정靜-동動 세 부분으로 된 짜임새는 서양음악의 세도막 형식과 화합하며, 또한 그 속에서 개별 음이 보이는 음양(陰陽)의 흐름이 조화롭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윤이상류 관악 영산회상(靈山會相)'이라 할 만하다. (클라리넷, 바순, 호른을 위한 트리오)

2017년 2월 16일 목요일

함부르크의 엘프필하모니, 1조 원을 투자할 수 있는 사회

통영국제음악당 매거진 'Grand Wing'과 한산신문에 나란히 실린 칼럼입니다.
본문에서 거의 통채로 인용한 정다샘 님의 칼럼 원문:

https://www.facebook.com/artiseee/videos/1361588493926719/


지난 1월 11일, 전 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이목이 독일 함부르크로 집중되었습니다. 엘베 강을 마주한 곳에 새로운 공연장 엘프필하모니(Elbphilharmonie)가 개관했고,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인 NDR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NDR 엘프필하모니 오케스트라'로 이름을 바꾸어 새 공연장에 상주하게 되었으며, 독일 출신 세계 정상급 현대음악 작곡가인 볼프강 림(Wolfgang Rihm)의 신작이 이곳에서 세계초연되었지요. NDR 방송국이 제작한 공연 실황이 인터넷으로도 중계되었습니다.

개관 첫 공연에서는 벤자민 브리튼, 앙리 뒤티외, 베른트 알로이스 침머만, 롤프 리버만, 올리비에 메시앙 등의 현대음악 사이에 에밀리오 데 카발리에리, 야콥 프레토리우스, 줄리오 카치니 등 16세기 작곡가의 작품이, 그리고 2부에서는 바그너 오페라 《파르지팔》 중 1막 전주곡, 볼프강 림 신작, 그리고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중 4악장이 연주되었습니다. 중간 휴식을 빼고 나면 모든 곡이 끊임 없이 이어지는 짜임새였지요. 탁월한 선곡에 탁월한 연출이었습니다.

영국을 대표하는 일간지 『가디언』은 이 역사적인 사건을 부러움 가득한 문체로 전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음악칼럼니스트 정다샘 씨가 쓴 글을 소개할까 합니다. 사실은 조금만 인용하려고 했다가 글이 너무 좋아서 허락을 받고 거의 그대로 소개하게 되었네요. 언론 보도로 알려진 것처럼, 통영국제음악재단이 요즘 예산 문제로 허덕이는 터라 더욱 가슴에 와 닿는 글이기도 합니다. 이 글 제목 또한 정다샘 씨가 쓴 글에서 따왔습니다.


지난 11일, 독일의 북부 항구 도시인 함부르크에 엘프필하모니(Elbphilharmonie)의 개관 공연이 있었습니다. 엘프필하모니 건축에 함부르크 시가 투자한 금액은 총 7억 8905만 유로, 우리돈으로 거의 1조 원에 육박합니다.

세계적인 경제 불황으로 문화 예술에 대한 지원이 줄어들어가고 있는 요즘, 이렇게 공연장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할 수 있는 독일의 모습은 많은 예술인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습니다. 영국의 가디언 지에도 자조적인 리뷰가 실렸습니다. “과연 영국에서 저 돈을 들여 공연장을 짓는다고 할 때 사람들이 찬성할까? 과연 영국의 여왕이나 총리가 기쁜 마음으로 개관 공연에 참석해서 공연을 다 듣고 있을까? 언론에서 자본가와 엘리트만을 위한 잔치라고 비꼬진 않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며 말이죠.

이 개관 공연에 가우크 대통령의 축하 연설은 물론이고 메르켈 총리 역시 참석하여 공연 전체를 기쁜 표정으로 관람하고 갔다고 합니다. 올해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으로 공격받을 수 있으니 연설만 하고 자리를 떴어도 괜찮았을 텐데, 메르켈이 자리를 지킨 이유를 글쓴이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메르켈 본인이 진정한 음악 애호가이며 문화가 진정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독일에서 이런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게 전혀 지탄받을 일이 아니며 오히려 독일에선 공연을 안 보고 떠나는 게 더 반사회적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독일에서도 이 거대한 프로젝트에 대한 비판이 없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공연장이 ‘자본가와 엘리트’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는 건 확실해보이네요. 기사에 따르면 앞으로 6달 동안의 공연이 모두 매진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함부르크의 모든 어린이들을 올해 안에 공연에 초대하는 것이 목표라고 하네요. 엘프필하모니는 이제 돈 먹는 하마가 아닌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함부르크의 자랑이 되었습니다.

경제적, 문화적 상황이 많이 다른 독일을 우리나라와 직접 비교하는 것은 공평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문화 예술에 얼마나 많은 비용을 투자할 수 있을지, 그에 따른 비판은 얼마나 클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투자의 열매를 즐길 수 있을지는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네요.

2016년 11월 10일 목요일

소프라노 서예리 인터뷰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발간하는 『Grand Wing』에 실린 인터뷰입니다.


Q. 피에르 불레즈와 함께 있는 사진을 페이스북 커버로 자랑스럽게 쓰고 계시네요. 베티나 에르하르트가 감독한 피에르 불레즈 다큐멘터리 주역으로 출연하셨고, 불레즈 작품 중 〈플리 슬롱 플리〉(Pli selon Pli)를 부른 뒤 불레즈에게 극찬을 받은 사연이 국내 언론으로 널리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소프라노 서예리로서 작곡가 불레즈의 음악을 어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불레즈는 처음 접할 때부터 현대음악의 생소함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어요. 일반인들에게 불편한 수준의 아방가르드 양식을 선도하는 작곡가가 아니라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정말 편안하게 해 주는 작곡가입니다. 성악가가 부를 수 있는 음의 높이와 길이, 성량 그리고 호흡을 너무도 정확히 알고 있어요. 이 점은 매우 중요하지요. 일반인들은 작곡가라면 누구나 그 정도는 감안하는 게 아니겠냐고 하시겠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대편성 오케스트라의 뚜띠와 같이 노래를 하게 해 놓았는데 낮은음으로 계속되면 그야말로 중얼거림처럼만 들리고 음을 들을 수 없게 되지요. 도저히 정상적인 발성으로 부를 수 없는 높이로 점철된 음악도 흔하고요. 불레즈는 그런 무리한 작곡이 전혀 없습니다. 좋은 발성 그대로, 편안한 마음으로 표현을 할 수가 있어요. 기교에 신경 쓰느라 가사를 표현할 겨를이 없는, 그런 음악이 아닙니다. 제가 연주 후에 불레즈에게 “당신의 곡은 정말 편안하게 부를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더니 자기가 정말 듣기 원하는 칭찬이라면서 매우 기뻐했습니다. 제가 불레즈의 다른 음악을 들어보아도 기악을 하는 독주자들에게도 편안히 음악을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게 느껴져요. 독주자로서 바로 이 면도 불레즈를 대가로 일컫게 하는 또 하나의 덕목인 것 같이 생각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불레즈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일종의 동양적 정서 같은 것이에요. 정확한 분절과 음높이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서정과 자연으로부터 음을 빌어와 무리가 없이 진행되도록 하는 것이 마치 동양의 작풍 같습니다. 때로는 동양에서 활용되는 음계만을 고집한 작품도 있고요. 악기만 서양악기일 뿐, 누가 들으면 종묘제례악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혹시 궁금해하실 분이라면 다른 곡도 많지만 예를 들어 오케스트라 곡인 〈제의 (브루노 마데르나를 추모하며)〉 ‘Rituel in Memoriam Bruno Maderna’를 한 번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성악가도 그런 동양적인 정서를 느끼면서 노래를 하면 더 효과적인 작품을 만들 수가 있어요. 제 생각에는 불레즈도 제가 그와 같은 서정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말년에 저와 작업을 하고 다른 단체에도 자신의 곡 연주자로서 저를 추천하곤 했습니다. 서양의 성악가들에게 말로 일일이 설명해도 도저히 표현해낼 수 없는 그의 곡만의 방식이 있거든요. 저는 그의 음악만 들어도 어떤 방식으로 노래를 해야 하는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점이 통했던 것 같아요.

인격적으로도 정말 겸손하시고 진지하시면서도 주위를 즐겁게 하실 수도 있는 훌륭한 분이시기에 생각할수록 돌아가신 것이 너무도 안타깝기만 합니다. 지난 세기 서양음악사의 종말을 상징하는 죽음이라고 생각합니다.

Q. 학생 때 피아노를 전공하려고 했다가 성악 전공으로 바꾸셨는데, 그래서인지 다른 가수들에게는 느끼기 어려운 '기악적 감성'이 특히 현대곡을 부를 때 노래에 묻어난다고 느껴집니다. 피아노를 배운 경험 가운데 어떤 부분이 노래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어떤 악기든 연주경험이 성악에는 반드시 도움이 됩니다. 바이올린을 했던 사람은 정확한 음높이에 대하여 나름대로의 집착이 있는 것을 보기도 했습니다. 피아노 연주는 수평적인 멜로디 흐름에 치중하지 아니하고 모든 파트의 음을 수직적으로 바라보는 작업을 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도 거의 직관적으로 계속 진행되어야 하지요. 단순하게 초견으로 악보를 읽는 것에 도움을 받은 것은 물론입니다.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전체적인 작품의 흐름과 함께 표현되는 노래로 만드는 데에 결정적인 도움을 받고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해요. 말씀하신 기악적 감성이라는 것이 그런 게 아닌가 싶은데, 저는 많은 때에 저의 목소리가 하나의 악기와 같다고 여깁니다. 어떻게 곡 전체에 저의 발성이 악기처럼 스며들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합니다. 현대음악 중에는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반주’로서 배경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성악을 ‘독주’라고 분리해서 튀어 드러나도록 노래를 했다가는 망쳐버리는 작품이 많습니다. 처음 현대음악을 부르는 성악도들이 잊기 쉬운 점이에요. 저는 현대곡 연주가 있을 때 오케스트라 측에서 성악파트만 있는 악보를 보내줄 때마다 오케스트라 악기가 모두 표시된 총보를 보며 노래 공부하는 게 훨씬 편하다고 말하여 굳이 총보를 요청해서 봅니다. 그래야 좋은 작품을 같이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악보의 모든 파트를 동시에 바라보는 관심에는 피아노 전공의 경험이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Q. 자신만의 발성법을 찾기 전에 흉내 내려 했던 가수가 있었나요? 자신의 목소리를 찾게 된 과정이나 계기가 궁금합니다. 더 나은 발성법을 고민 중인 성악도들에게 조언 한 마디 부탁합니다.

좋은 발성법을 몇 마디로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화가에게 ‘그리는 법’을 짧게 설명해달라는 것과 같지요. 성악을 시작할 때부터 늙어서 연주를 그만둘 때까지 평생을 생각하고 실험하고 연주하고 교정하는 것이 곧 발성입니다. 다 되었다고 생각될 때도 있지만 한 번 불러보면 곧바로 또 교정할 것이 드러나지요.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성악가가 똑같을 거예요. 자신의 발성법이 완성되었다고 자신할 사람은 그 누구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발성은 우리나라에서는 조수미 선생님, 그리고 외국사람으로서는 그루베로바입니다. 자연스럽고 유연하면서도, 강인한 힘이 그 밑바탕을 이루고 있는 정말 좋은 발성이라고 생각해요. 유연하기만 하면 소리가 민들레 홀씨처럼 하늘로 날아가 버리고, 힘과 박력만을 추구하면 굳은살처럼 딱딱하고 경직된 소리로 변질하기 쉽습니다. 그렇게 되지 아니하고 둘을 모두 균형 있게 갖추는 것이 발성의 최종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좋은 발성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지하는 것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오랜 시간 동안 건강한 목소리로 무대에 서는 것이 모든 성악가의 목표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결코 무리해서 자신의 영역을 벗어난 곡을 함부로 선택해서는 안 됩니다. 저에게도 유혹은 많았지요. 정중하고도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은 새털같이 가뿐한 소리를 가졌는데 바그너 오페라 배역이 들어올 수도 있고, 비브라토의 폭이 크고 메탈릭한 음색을 가진 사람이 몬테베르디의 오페라를 해 달라고 부탁받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들과 하는 작업이라고 해도 쉽게 응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풀룻 연주자에게 튜바 소리를 내 달라고 하는 것처럼 무리한 것이지요. 물론 자신의 소리가 갖지 못한 면을 보완하려는 노력은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 소리의 장점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를 살리기보다, 갖지 못한 단점을 숨기려고 또는 단지 단점을 뛰어넘는 시도를 한다는 차원에서 자기 목소리와 맞지 않는 레파토어, 맞지 않는 분야를 전전하는 것은 성악가로서의 생명을 단축시키는 일일 수도 있으므로 극히 조심해야 합니다.

Q. 가수로서 느끼는 유럽 고음악계, 현대음악계, 오페라 극장의 최신 경향이나 판도를 국내 애호가 및 음악 전공 학생들에게 소개하자면?

이것은 모든 문화계에 공통된 현상 같은데, 소위 ‘유행’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1990년대 초에는 말러, 브루크너 등 대편성 교향곡, 1990년대 후반에는 고음악 원전연주 등과 같은 클래식 계의 키워드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게 없다는 거예요. 한 켠에서는 진은숙의 음악을, 동시에 다른 데에서는 힐데가르트 폰 빙엔, 그 옆에서는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이 아무 특별한 시선을 받지 않고 연주됩니다. 문학이나 미술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거의 모든 문화소비자가 인터넷을 통해서 아무 경계가 없는 대상을 계속 접할 수 있다는 것도 이러한 현상을 부추긴 것 같습니다. 모든 이들이 각자 개성과 취향에 따라, 그것도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않고 문화를 소비하는 것이지요. 그 자체로서는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클릭을 반복하는 문화의 소비형태 때문에, 일정 정도의 참을성을 요구하는 분야는 쇠락해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우려는 생깁니다. 곧바로 흥미를 끌 수가 없는 것이라면 이내 다른 것을 클릭함으로써 외면받게 되지요. 현대음악의 경우에 예전에는 거의 소리가 안 들릴 정도의 조용한 음향으로 1분 이상 지속하면서 시작하는 음악이 많았습니다. 요즘 젊은 작곡가들의 곡은 현란한 음색의 타악기 연주나 특이한 음향으로 시작하는 게 상대적으로 많더군요. 같은 현상을 드러내는 게 아닌가 느껴졌습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예요. 15초 광고와 같이 빨리 흐르는 영상에만 노출되었던 사람이라면 타르코프스키의 ‘구식’ 영화를 도저히 참고 볼 수가 없겠지요.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대중의 성향 변화 때문에 클래식 음악계가 차츰 전반적으로 외면받는 흐름으로 나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습니다.

Q. 요스 판 이메르세일의 '슈베르티아데' 음반 작업에 참여하셨고, 같은 제목으로 열리는 통영 무대에도 서게 되셨습니다. 바리톤 토마스 바우어와도 친하실 텐데요, 이와 관련해 독자들이 흥미로워할 만한 얘기 부탁합니다.

그 사람들 모두 오랜 시간 정말 많은 연주를 같이 다녔기 때문에 가족같이 친한 모임입니다. 음악적으로는 서로를 완전히 믿는 사이라, 리허설 시간이 다른 연주 날과 겹쳐 당신 연주를 미안하지만 못 할 것 같다고 하면 비행기로 곧바로 날아와 리허설 없이 그 상태로 무대에 서라 할 만큼 음악적 신뢰가 두텁습니다. 가는 데마다 반주(?)를 곁들여가며 식사도 자주 함께하고 각자 사는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나누지요. 요스와 토마스는 회와 슈납스(소주)를 너무도 좋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번에 통영으로 함께 가게 된 것을 너무도 기뻐했습니다.

Q. '슈베르티아데' 음반에서 슈베르트 가곡을 부르신 음반을 듣고 있으면 개인적인 추억이 노래에 묻어나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독자들에게 소개해 주실 만한 사연이 있나요?

슈베르트의 가곡을 부르면서 개인적인 추억에 잠시라도 잠길 수 없는 우리나라 성악가가 있을까요? 저도 마찬가지이지요. 피아노과에서 성악과로 옮긴 뒤부터 사춘기 시절 내내 불렀던 것이 슈베르트의 가곡들입니다. 유럽이라는 데를 전혀 몰랐을 때도 그 가곡들을 들으면 독일, 오스트리아의 쓸쓸한 가을겨울과, 유럽 남부의 화사한 햇살이 상상으로 그려졌습니다. 슈베르트의 비극적인 죽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으려 했던 정서가 반복되어 드러나는 것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이후에도 아무리 놓아주려 해도 일 년에 몇 번은 부르게 돼요. 그때마다 어릴 때의 그런 추억들이 생각나곤 합니다. 그런데 슈베르트의 가곡을 추억만으로 부를 수는 없습니다. 연주할 때마다 새로운 것이 드러납니다. 설명은 쉽지 않지만 기교면에서도 부를수록 어렵기도 하고요. 쉽게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정확한 독일어 딕션이나 가사를 통한 감정처리만으로는 완성해낼 수 없는 요소가 너무도 많습니다.

Q. 국내 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계획이 있나요?

자랑이라 하기에는 그렇고, 그냥 제 연주 계획을 말씀드릴게요. 기간으로는 2019년 상반기까지 연주가 잡혀 있습니다. 그냥 생각나는 것만 말씀드리면 슈트라우스 네 개의 마지막 노래 및 가곡들로 씨디 녹음 및 투어가 계획되어 있고, 말러 4번의 연주 및 씨디 녹음도 있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거슈윈의 노래들로 내년 크리스마스를 장식할 예정이고, 빈 필 단원들과 파리 샹제리제 극장에서 말러 뤼케르트 가곡집, 베르크의 일곱 개의 초기 가곡 등을 부르는 계획도 있어요. 현대음악으로는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과 안톤 베버른의 곡들로 불레즈 추모 연주회를 하고, 빈 방송교향악단, MDR 합창단과 함께 불레즈의 〈혼례의 얼굴〉 공연도 있습니다. 쾰른에서 진은숙 선생님의 〈말의 유희〉 연주도 있고요. 한국에서는 내년 10월에 예술의 전당 클래식 스타 시리즈에서 독창회가 있습니다.

Q. 2011년 통영국제음악제 레지던스 아티스트였고, 지난해에는 통영국제음악당 기획공연에 출연하셨습니다. 통영국제음악당 개관 전과 후 모두 통영에서 공연하셨던 만큼 통영과 인연이 남다른 음악가이신데요, 이번 '슈베르티아데' 공연을 앞두고 기대되는 점을 말씀해 주세요.

통영국제음악제는 저의 음악 여정에서 도저히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는 대상입니다. 2005년 스콜라 하이델베르크와 처음 연주하러 왔었는데, 초기부터 자주 초청되었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통영국제음악제가, 곧 저의 현대음악에 대한 식견과 동시에 탄생하였고 또한 발전해왔다고 생각될 정도이니까요. 처음 음악제가 시작되어 제가 참여할 때에는 저 또한 현대음악의 실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음악제의 발전도상에서는 제가 유럽에서 활동 영역을 크게 확장하고 있었고요. 이제는 양쪽 모두 어느 정도 기량이 무르익어 인정받고 있는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쪼록 앞으로도 어느 한쪽 힘을 잃지 않고 둘 다 자신의 모든 역량을 다해 청중들을 크게 만족시키는 음악제와 제 자신으로 남아서 계속 굳은 인연을 이어가길 바래봅니다.

2016년 11월 1일 화요일

태풍 불던 날, 공연기획자의 하루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발간하는 잡지 『Grand Wing』에 실린 글입니다. 약 보름 뒤에 제대로 난리를 겪을 것을 꿈에도 모르고 속 편한 소리를 하고 있는 글 -_-;


출근하자마자 항공사 홈페이지에 접속했습니다. 연주자가 타기로 했던 김포-부산행 항공편이 취소되어 있더군요. 아침에 일어났을 때 비바람 소리가 심상치 않더니, 태풍이 부산 쪽으로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첼리스트 레오나르트 엘셴브로이히와 피아니스트 알렉세이 그리니우크가 인천공항에 도착해 김포 쪽으로 막 출발한 참이었지요.

연주자들을 비행기 대신 기차에 태우기로 하고 서울역으로 이동했습니다. 통영국제음악재단 서울사무국 A대리님께서 고생해 주셨지요. 저는 밴을 타고 진주역으로 가서 연주자를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제가 가진 운전면허로는 1종 차량을 운전할 수 없어서 다른 분이 운전하시기로 했는데, 마침 태풍으로 그분 댁 지붕이 손상되는 바람에 다른 운전자를 섭외해야 했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차량을 점검해 봤더니 기름이 없더군요. 미리 확인하고 주유 카드를 받아두지 않았다면 곤란할 뻔했습니다. 주유소를 찾아 기름을 넣느라 생각보다 시간을 더 허비한 끝에 조금 아슬아슬하게 진주역에 도착했습니다. 아침에는 비바람이 그렇게 몰아치다가 출발 직전에 그치더니, 진주에 도착하니 햇볕이 얼마나 쨍하던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연주자를 태운 기차가 한 시간도 넘게 지연 도착할 예정이랍니다. 태풍 때문에 철로에 문제가 생겼다고요. 오다가 보니 고속도로 일부 구간이 산사태로 막혀 있던 생각도 납니다. 이번 공연을 제안한 일본 기획사를 통해 연주자에게 제 휴대전화 번호를 전달하기는 했지만, 돌발상황이 생긴 참이라 일본에 연락해 연주자들 휴대전화 번호를 받았습니다.

레오나르트 엘셴브로이히와 알렉세이 그리니우크는 기차 안에서 잠들어 있었다는 모양입니다. 전화해도 받지 않더군요. 도착 예정 시각만 생각하고 엉뚱한 곳에 내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그래도 다행히 엇갈리는 일 없이 연주자를 잘 만났습니다. 저는 평소 연주자를 처음 만났을 때와는 조금 다른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드디어 여러분을 만나서 너무 기쁩니다!"

큰일 없이 잘 도착해서 참 다행입니다. 본격적인 재난 상황이었다면 저나 연주자나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요. 하루가 지나 이 글을 쓰는 지금은 피아니스트 알렉세이 그리니우크가 음악당에서 연습하고 있습니다. 첼리스트 레오나르트 엘셴브로이히는 아직 잠을 자고 있어요. 저는 간밤에 잠을 잘못 잤는지 며칠 전부터 목이 뻐근하던 것이 오늘따라 더 아파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순조롭지 못했던 '연주자 수송 작전'을 겪고 나니 예전에 겪었던 일들이 하나씩 떠올랐습니다. 통영국제음악제 폐막 공연 전후로 연주자들이 타야 할 비행기가 줄줄이 결항했던 일, 다른 이동 수단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마산에서 인천으로 가는 버스가 ○○○김밥집 앞을 지나느냐 아니냐를 확인해야 했던 일, 어떤 연주자는 항공 일정이 꼬여서 다른 항공편으로 바꿔야 했던 일, 짐이 공항에 제때 도착하지 않아서 곤란했던 일…

예전에 한 대선배 공연기획자한테 들은 조언이 생각납니다. 공연기획자는 눈은 '하늘'을 보면서도 발은 '땅'에 닿아 있어야 한다고요. 예술을 다루면서도 현실적인 문제를 잘 챙겨야 한다는 뜻입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사실 발이 '땅'에 살짝만 닿아 있어서 현실적인 문제를 완벽하게 준비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요.

무엇보다 감사한 일은 이렇게나 훌륭한 공연장에서 좋은 공연을 만드는 일에 제가 이바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훌륭한 연주를 듣고 있으면 일하면서 힘들었던 것들이 추억 속으로 사라지는 느낌이에요. 자다가 일어나 피아노 앞에 앉은 알렉세이 그리니우크가 연습 중에 때로 실수를 하지만, 가만히 듣고 있으면 본 실력이 대단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 공연도 참 기대됩니다!

2016년 9월 26일 월요일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 인터뷰

통영국제음악당 매거진 『Grand Wing』에 실린 인터뷰입니다. 잊어버리고 있다가 뒤늦게 생각 나서 올립니다.


Q. 2011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 2위에 입상했다. 무엇을 경험했고 무엇을 배웠는가?

이미 국제 콩쿠르는 많이 경험했던 차여서 많이 특별한 것은 없었다. 다만 한국말로 진행이 되는 점이 어색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던 개인적인 느낌이 기억에 남는다. 윤이상 작곡가의 곡을 처음으로 배우는 과정도 재미있었다.

Q. 그때 결선에서 차이콥스키 협주곡을 연주했는데, 작품에 대한 해석이나 관점이 지금에 와서 달라진 점이 있나? 이번 통영 공연에서 '그때와는 다를 테니 기대하시라' 하고 싶은 대목이 있다면?

곡에 대한 해석은 누구와 연주하는지, 최근의 음악적 경험이 무엇인지에 따라 항상 변화하는 것 같다. 다른 오케스트라, 그리고 다른 지휘자와 연주하게 되니 아마도 다른 느낌의 연주가 나오겠다고 예상할 수 있겠다. 2악장에 대한 생각이 주로 변화하는데, 깨끗하고 순수하게 연주할지, 조금 더 우는 느낌이 강하게 연주할 지가 언제나 헷갈리는 부분이다. 변덕스러운 편이라 어떻게 연주할지는 그때 가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Q. 2014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그때 얻은 특전이나 달라진 것들 가운데 어떤 것이 가장 마음에 드나?

모든 것들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거의 인생이 바뀌었다고 해도 될 정도로 많은 주목과 혜택을 받으며 음악인생을 꾸려나가고 있다는 점이 아직도 황홀하다. 풀 시즌이 꽉 찰 정도로 많아진 연주들, 입상에 힘입어 시작하게 된 비영리 재단과 ‘앙코르 체임버 뮤직’이라는 캠프, 그리고 모교를 비롯한 두 학교로의 패컬티 임명까지…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의 전폭적인 지지가 없었다면 모두 불가능한 일들이었다.

Q.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1683년 'ex-Gingold'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을 4년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전에 쓰던 과르네리 바이올린과 번갈아 사용하나? 차이콥스키 협주곡에는 어떤 악기가 더 잘 맞는다고 생각하나?

스트라디바리우스는 현재 사용하지 않는다. 나와 음악적 색깔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어 2위를 입상한 바이올리니스트 테사 라크(Tessa Lark)에게 양보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악기가 발사믹 소스를 가득 친 스테이크라면 스트라디바리우스는 흰 살 생선요리다. 내 연주를 들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조금 더 소리가 진한 과르네리가 나와 궁합이 더 잘 맞는다. 최근에는 나와 동갑인 델핀 프티장에게 활을 주문했는데, 나를 위해 특별히 맞춤 제작된 것이라 오래 전에 잃은 친구를 만난 듯 손에 착착 감겨서 연주하는 것이 아주 즐겁다.

Q. 커티스 음악원과 클리블랜드 음악원에서 공부해본 경험으로 두 학교의 장단점을 비교하자면?

커티스는 나와 맞는 점이 많지 않았다(웃음). 1년도 안채우고 나왔으니까 말이다. 지식을 조금 더 강조하고, 동시에 연주 스타일이 개방적인 클리블랜드가 나와 훨씬 더 잘 맞았다. 나는 도제식 교육을 거부하는 편이다. 내가 이렇게 했으니까 그대로 따라 해보아, 라는 식의 가르침은 와 닿지 않는다. 되려 영감을 줄 수 있는 단어나 표현방식을 제시해 주면 그것을 해석하며 실험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그런 면에서 클리블랜드에 계시던 폴 칸토르 선생님은 물음을 중시하고, 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도 진지하게 답변해 주시던 인생의 유일한 선생님이었다.

Q. '선생님'으로서 학생을 지도하면서 자신이 배우는 것도 있을 것 같다. 연주자로서의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있다면?

가르치는 것은 정말이지 학생보다는 나에게 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기본을 리마인드하고, 새로운 생각을 뽑아내기에 가르치는 것 보다 더 효과적인 방식은 없다고 생각한다.

Q.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이른바 '중2병'에 관해 언급한 일이 있다. '증상'이 어떠했으며 어떤 계기로 극복할 수 있었나?

굳이 말하자면 클래식한 중2병이었다고나 할까. 매일 우울하고 미래가 어둡고 부정적이고 슬픈 음악만 듣는 등 전형적이었다. 부모님으로부터 금전적으로 독립해 보니 내 감상에 빠질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일을 미친 듯이 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다 보니 점점 어른인 척 하는 스킬이 늘었다.

Q. 현재 단기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좀 더 좋은 오케스트라와 하는 연주를 늘리는 것, 비영리 재단과 캠프가 잘 자리잡도록 하는 것, 학생들 인생을 망치지 않는것…. (하아) 어렵다.

Q. 연주자로서 자신의 장단점을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을 것 같다. 장점 위주로 자신을 평가하자면?

리듬에 담겨있는 음악적 언어를 잘 이해하는 것 같다. 선율보다는 리듬이 조금 더 원시적인 본능에 가까운 것 같은데, 그런 리듬의 느낌을 살리는 연주를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좀더 관객과의 소통이 잘 되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내 연주에도 그런 생각들이 묻어 나오는 것 같다.

Q. 2013년 통영국제음악제에 출연했다. 통영국제음악당은 2014년에 개관했고, 도이치 방송교향악단과 협연하는 이번 공연이 통영국제음악당 데뷔 무대인 셈이다. 현재 자신이 기억하는 통영의 이미지를 말한다면?

사실은 외가 쪽이 모두 통영과 고성 출신이다. 어릴때 부터 많이 와보던 곳이라 편안하다고 느낀다. 통영에 오면 음식들이 다 외할머니가 만드시던 음식들이라 이질감 없이 행복하게 지내다가 돌아가게 된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과 바닷가 사람들의 에너지를 좋아하니까, 언제나 즐겁다.

2016년 3월 9일 수요일

'구름'(cloud) 위의 음악, 그리고 공연 예술의 미래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발간하는 잡지 『Grand Wing』에 실으려고 쓴 글인데, 여기에 미리 올려 봅니다.


제가 쓰는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로 '카르미뇰라'를 검색하면, 카르미뇰라의 비발디 '사계' 음반과 소니 전집 음반을 포함해 47가지 음반이 나옵니다. 피아니스트 '에리크 르 사주'를 검색하면 45가지 음반이, '반더러 트리오'는 41가지, '샹젤리제 오케스트라'는 71가지, '줄리아드 스트링 콰르텟'을 검색하면 79가지 음반이 나옵니다. 닐스 묑케마이어, 주세페 안달로로 등 최근에 음악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연주자들의 음반도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올 4월부터 6월 사이에 통영국제음악당에서 공연하는 연주자들입니다. 그러니까 스트리밍 서비스로 음악을 골라 들으며 통영국제음악당 공연을 '예습'할 수 있지요.

제 방에는 CD플레이어 대신 음악 감상용 구형 노트북이 오디오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CD 플레이어를 중고로 팔아버리고 대신 DAC(디지털-아날로그 컨버터)를 샀던 것이 10년이 넘었지요. 재생 목록을 컴퓨터로 매우 손쉽게 편집할 수 있고, 듣고 싶은 음원은 검색만 하면 뚝딱 나옵니다. 스마트폰을 리모컨으로 쓰고요. 제가 'PC 통신'이라 불리던 터미널 서비스로 MP3 파일을 받아 들어보고 충격을 받은 지 약 20년 만에 이렇게 편리해졌네요.

컴퓨터로 음악을 듣게 되면서, 저는 하드디스크에 복제되지 않은 음반은 그냥 없는 음반 취급하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클라우드' 서비스를 사용하면서는 클라우드에 업로드되지 않은 음원을 없는 음원 취급하게 되더군요. 스트리밍 서비스를 사용하게 되면서, 이제는 제가 쓰는 스트리밍 서비스에 없는 음원을 없는 음원 취급할 때가 잦습니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그만큼 압도적으로 편리하기 때문이지요.

이와 관련해 미국의 한 업계 전문가는 앞날을 이렇게 예측했습니다.

  1. 스트리밍 서비스가 대세가 될 것은 확실하다.
  2. 앞으로 업계 판도가 어떻게 바뀔지는 영상 업계가 어찌하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미국에서는 '넷플릭스'라는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가 자체 콘텐츠를 공격적으로 제작 · 발표하면서 사실상 기존의 방송국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3. 녹음을 음반 단위로 하는 사고방식을 버려야 한다.
  4. '당장 안 들을 거면서 일단 사재기'하는 애호가들의 행태가 무의미해진다.
  5. 품이 덜 들어간 실황 음원도 스트리밍 서비스로는 가치 있다.
  6. 다운로드 음원과 스트리밍 음원 출시일에 차별을 두는 전략도 있다.
  7. 메타데이터(meta-data)가 중요하다.
  8. 소셜미디어를 어찌 활용하느냐가 마케팅에 중요한 변수가 된다.

IT 전문가들은 머지않은 미래에 가상현실 기술이 대중화될 것으로 예측하지요. 기술이 발전할수록 현실과 가상현실을 구분하기 어려워질 테고, 공연장에서나 맛볼 수 있는 현장감마저도 언젠가는 가상현실로 구현할 수 있게 될지 모릅니다. 베를린 필하모닉홀과 무지크페라인잘과 라스칼라 오페라 극장에서 하는 공연 실황이 가상현실 형태로 실황 중계된다면 어떨까요? 좌석 수마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할 이유가 없으니 한 공연에 수백만 명이 모이지 말란 법이 없습니다. 공연예술 업계와 음반 업계 모두 기술 발전에 촉각을 곤두세울 일입니다.

'당장 안 들을 거면서 일단 사재기'하는 얘기에 문득 생각난 것이 있습니다. 제 지인이 고전시가 '정읍사'를 패러디한 것인데, 서울 압구정동(행정구역상으로는 신사동)에 있는 유명한 음반 매장을 '떡집'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은쟁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鷗亭압구정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떡집 녀러신고요
어긔야 지른 데 또 지를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산거부터 드르시라
어긔야 내 모아논 푼 바닥날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뒤뚱디리

2015년 12월 1일 화요일

노래하는 배우, 생각하는 음유시인 ―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 인터뷰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발간하는 『Grand Wing』에 실린 글입니다. 인터뷰 뒷얘기는 ☞요기를 참고하세요.


2015년 9월 22일, 영국 시각 오전 9시 30분. 영국으로 전화를 걸어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를 인터뷰했다.

Q. 기타 반주로 특히 다울랜드를 노래한다는 아이디어는 옛날 음유시인이 류트 반주로 노래했던 일을 연상시킨다. 이런 점에서 '현대 류트'라 할 수 있는 기타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A. 노래를 원형에 가깝게 되살리는 일에 기타의 친화성(intimacy)이 매우 유용하다. 현대 피아노는 너무 크고, 말하자면 산업화한 악기다. 겉은 나무이지만 기본적으로 쇠로 된 '괴물'이다(웃음). 물론 슈베르트 시대 피아노는 훨씬 섬세했지만, 슈베르트도 기타를 사용했다. 그가 특별히 기타 음악을 쓰지는 않았더라도 슈베르트 곡이 생전에 기타 반주로 불리곤 했다. 또 기타의 휴대성 덕분에 집 밖이나 다른 사람의 집에 기타를 가져가 함께 노래할 수도 있다. 류트는 리듬적으로 복잡하다고 할 수 있겠고, 매우 아름다운 악기이지만, 기타는 리듬과 셈여림을 다루기 더 쉬운 실용성이 있다. 다만, 기타 소리가 류트의 '원형'과는 다르다는 사실은 특히 다울랜드를 부를 때 단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Q. 슈베르트 시대나 18세기 포르테피아노는 어떤가?

A. 옛날 피아노 소리는 훨씬 부드럽고 다채로웠다. 우리는 현대 피아노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현대 피아노의 큰 음량에 맞추어 그만큼 큰 소리로 노래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한편, 요즘 공연장에는 다들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있으므로 조율이나 관리 등이 표준화되어 있는 점은 장점이다. 그러나 현대 피아노로 페달을 너무 많이 쓰게 되니까 문제다. 그러면 밸런스 문제가 생긴다.

Q. 쉐페이 양을 어떻게 알게 되었나?

A. 음반사(그때는 EMI였고 지금은 워너뮤직)와 런던에 있는 내 기획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래서 브리튼의 《중국 시인들의 노래》와 한스 베르너 헨체, 슈베르트 등을 녹음했다. 쉐페이 양은 같이 일하기 참 좋은 사람이며 훌륭한 음악가다.

Q. 스티븐 고스가 당신과 쉐페이 양을 위해 쓴 《시경》(詩經; 2014)이라는 작품을 소개한다면? ('The Book of Songs'의 번역을 '시경'으로 나중에 고침.)

A. 요즘 그걸 공부하고 있는데 기막히게 아름다운 작품이다. (현대곡이지만) 어렵지 않고, 어떤 곡은 민요풍이다. 가사로 쓰인 시는 이 곡으로 알게 됐는데, 어떤 점에서는 브리튼의 《중국 시인들의 노래》와 비교할 만하다.

Q. 협연하고 싶은 음악가로는 또 누가 있나?

A. 너무 많은데… 올해 협연하고 있는 음악가로 작곡가 토마스 아데스, 피아니스트는 줄리어스 드레이크, 라르스 포크트, 지휘자로는 대니얼 하딩,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사이먼 래틀. 이런 최고의 음악가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Q. 이안 보스트리지의 가장 탁월한 점은 연극적 생동감이 아닐까 한다. 비결이 무엇인가?

A. 음악의 강도(degree of intensity)에 반응하는 것이다. 내가 즐겨 부르는 노래는 그 자체로 강한 음악, 극적인 요소가 있는 음악, 그래서 주의를 끄는 음악이다.

Q. 발성이나 그밖에 '음악적인' 요소에 집중하는 다른 가수와 달리 당신 노래에는 '드라마'가 있다.

A. 드라마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즘 성악가는 대부분 오페라를 주업으로 하는데, 가끔 리사이틀을 하면 뭔가 다른 걸 하게 되고, 그래서 '드라마틱'하지 않게 된다. 나는 가곡이 주업이라 그 속의 '드라마'에 언제나 끌리곤 한다.

Q. 오페라 가수들은 이른바 '마스케라'를 쓴다. 당신 목소리는 그와는 다르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 마스케라를 쓰기는 할 것 같다. [마스케라(maschera)는 일종의 비강공명법으로 벨칸토 창법에 주로 쓰인다. 본디 이탈리아 말로 '가면'이라는 뜻이며, 발성할 때 가면을 쓴 듯한 느낌이 든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마치 머릿속에서 소리가 울리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므로 '두성'(頭聲)이라고도 한다.]

A. 마이크를 쓰지 않는 이상 공연장에 소리를 전달하려면 '울림통'이 있어야 한다. 그게 '얼굴'(웃음) 또는 '머리'라 할 수 있다.

Q. 그렇다면 다울랜드, 바흐, 슈베르트 등을 부를 때 발성의 원칙은 무엇인가?

A. 그건 가사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Q. 가사? 음악 양식(style)이 아니라?

A. 음악 양식일 수도 있겠지만, 어떤 노래가 그 당시 참모습이 어땠는지 아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결국 양식이란 건 상상을 보태서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작곡가마다 분명 다르지만, 다루는 방식이나 부르는 사람에 따라 공통점도 생긴다.

Q. 당신은 역사학 박사이자 옥스퍼드 대학 인문학 교수이다. 예술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그냥 거울처럼 사회를 반영할 뿐이라 생각하나?

A. 상호작용한다고 본다. 예술은 분명 사회에 영향을 끼칠 수 있고, 의제를 설정하거나 정치적 여론 형성에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그러니까 끝없는 상호작용의 연쇄다. 클래식 음악은 지금에 와서는 19세기나 20세기처럼 정치 담론과 특별히 연결된 예술 장르는 아닌 듯하다. 어쩌면 그게 좋을 수도 있는데, 클래식 음악이 딱히 좋은 영향을 끼쳤는지 확신이 안 들기 때문이다. 다만, 클래식 음악, 특히 오페라의 비용이나 위치를 둘러싼 이슈는 유효하다. 즐기는 사람은 적은데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이게 민주사회에서 문제가 된다.

Q. 어느 분야이든 존경하거나 흥미를 느끼는 예술가가 있다면?

A. 시각예술을 감상하거나 책을 읽는 등 다양하게 관심이 많다. 특정한 사람을 꼽기는 어렵고, 그때그때 다르다.

Q. 자신이 녹음한 음반 가운데 어떤 것을 좋아하는가?

A. 음… 사이먼 래틀 지휘, 베를린필과 협연한 브리튼 가곡집을 좋아한다. 몬테베르디 《오르페오》 (에마뉘엘 아임 지휘) 음반과 찰스 매케라스가 지휘한 《이도메네오》도 좋아한다.

Q. 한국이나 한국 관객에 대해 어떤 느낌을 받았나?

A. 젊고 에너지가 넘치는 점이 특별하다. 공연할 때마다 옛날 음악이 아닌 새로운 음악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이 멋지다.

Q. 향후 계획이 있다면?

A. 《겨울 나그네》를 한스 첸더가 오케스트라 곡으로 재창작한 작품을 녹음할 예정이다. 말하자면 창작인 동시에 《겨울 나그네》에 대한 해석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런던에서 공연한 다음 미국과 세계 여러 공연장에서 공연할 생각이다. 몬테베르디 작품을 공연할 계획도 있다.

2015년 7월 21일 화요일

바다와 하늘과 별과 노래:
경계인 윤이상의 뿌리가 자라난 곳

통영국제음악재단에서 발간하는 『Grand Wing』 2015년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예정에 없던 글을 급하게 쓰는 바람에 짜임새가 좀 이상합니다만, 인용문을 좀 줄인 판본을 이곳에 올려 둡니다.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 앨런 길버트가 어느 날 뉴욕필 관객과 대화하는 자리에 나갔습니다. 질문할 기회를 잡은 한 흑인이 물었습니다. '단원 구성에 나타나는 인종 간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뉴욕필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앨런 길버트는 이미 단원 가운데 상당수가 유색인종이라고 답하며, 무엇보다 자신이 아시아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앨런 길버트의 어머니가 일본인으로 현재 뉴욕필 단원이기도 하지요. 그래도 저는 앨런 길버트가 자신은 백인이 아니라고 말한 일이 영 이상합니다. 얼굴을 자세히 보니 동양인 모습이 섞여 있음을 그제야 깨닫기도 했고요. 한국계 어머니를 두었다는 배우 다니엘 헤니 생각도 납니다.

아마도 서양 사람 눈에는 앨런 길버트나 다니엘 헤니가 동아시아 사람처럼 보일 겁니다. 동양 사람이 서양 사람 얼굴을 구분하기 어려워하고 서양 사람이 동양 사람 얼굴을 구분하기 어려워하는 것처럼, 차이를 구분하는 일은 자신이 속한 환경에 따라 달라질 테니까요.

윤이상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얼핏 들으면 그냥 서양 현대음악인데, 서양 사람이 들으면 또 매우 동양적으로 들린다고 하지요. 이와 관련해 미학자 이진 선생은 윤이상 음악 미학의 사상적 뿌리를 말하는 유럽의 시각을 비판하며, 이들이 "근대 이전 동북아시아의 문화적 지형을 상당 부분 단순화해서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를테면 한국 · 중국 · 일본, 그리고 넓게는 베트남과 그 이외 지역에서 나타나는 유교 · 불교 · 도교 사상이 저마다 차이가 있는데, 서양 사람이 이것을 섬세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윤이상 음악에 관해 이것을 뭉뚱그려 설명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순수한 한국 문화'라는 배타적인 시각으로 윤이상 음악을 이해하려는 태도도 잘못일 겁니다. 한국음악뿐 아니라 일본 음악과 중국 음악도 윤이상 음악에 녹아 있거든요.

음악학자이자 국제윤이상협회 회장인 볼프강 슈파러는 도교의 음양 사상과 서양의 변증법이 윤이상 음악 속에 융화되어 있다며, "음양의 변증으로서의 도교주의"로 윤이상 음악 어법을 분석한 바 있습니다. 당대의 첨단 작곡기법인 '클러스터'(Cluster) 기법이 부닥친 문제에 대해 윤이상 음악의 이른바 '주요음향'(Hauptklang) 기법이 정중동(靜中動)이라는 돌파구를 제시하기도 했지요.

음악학자 신인선 선생은 윤이상 음악 어법을 서양음악에서 클러스터 기법이 변화 · 발전해온 주류 음악사 안에서 설명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동아시아 음악의 특수성을 이유로 윤이상 음악을 따로 떼어 설명하려는 태도는 잘못된 오리엔탈리즘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음악학자 윤신향 선생은 "음양의 변증은 동서융화가 아니라, 한정된 음향재료와 작곡자의 내부표상이 대립함으로써 생성되는 동서의 긴장관계를 반영하는 것"이라 반론합니다. "단일의 정체로 화(化)하는 융화와는 달리, 이질적인 요소의 갈등과 상생의 과정을 필연적으로 거친다"라고요.

윤신향 선생은 또한 윤이상 작품에는 작곡가가 서양에서 활동하며 서양 문화에 '융화'가 아닌 '동화'되어 가는 과정이 나타난다고 분석하며, 그것은 동서양의 경계에 있었던 작곡가 윤이상에게 동서양 문화가 대등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두 세계 사이의 진정한 융화는 작곡자의 삶이 음악어휘를 결정할 때마다 그늘처럼 은폐되는 한국적 정신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그곳에서만 가능하다"라고요.

"음악이란 일단 써지고 나면 그것의 발생사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아주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하찮은 것들이 제 음악에서는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적에 밤이면 저는 그물을 끌어올리는 어부들의 노랫소리를 듣곤 했지요. 어부들은 고기들이 튀어오르는 걸 보면 더 목청을 돋우어 노래 부르고 리듬은 더 빨라집니다. 이러한 기억은 제가 합창곡을 쓸 때 떠오릅니다...이러한 것들, 시각적으로 보기에 하찮은 것들은 이내 제 음악적 안테나에 수신되어 음향적인 것으로 변형됩니다. 혹은 예전에 제가 절간에서 사람들이 뜨거운 여름날 분향하는 것을 본 기억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향내는 지금도 내 기억에 남아 있는데, 그 향기는 음향을 생겨나게 할 정도로 기분 좋게 작용합니다. 물론 이 경우 큰 범종들이 내는 소리와 같은 본래의 음향요소도 들어갑니다." ― 홍은미 외, 『윤이상의 음악세계』, 219쪽.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 라이너 자흐트레벤이 윤이상에게 '악보의 무엇이 풍부한 긴장관계를 만들어 내느냐'라고 질문했더니 윤이상 선생이 저렇게 답했다네요. 이에 대해 윤신향 선생은 이렇게 논평했습니다.

"위와 같은 대답은 참으로 의외인 듯하다. 하지만 이 대답은 미적 규범보다 미적 계기를 중시하는 작곡가의 사고방식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는 음정구도의 진행방식이나 관현악법, 또는 다이내믹의 처리방식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고 곧바로 과거로 회귀하여 그때 받은 미적 인상 또는 감각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어부들의 노랫소리이자 단순히 나뭇가지가 부딪치는 소리, 절간의 향내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순음악적이지 않은 요소들이 작곡가의 내적 표상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 윤신향, 『윤이상 경계선상의 음악』, 178쪽.

그러니까 윤신향 선생이 말한 "한국적 정신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그곳"이란, 윤이상 선생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러나 유럽에 간 뒤로는 기억으로만 존재했던 고향 통영일 겁니다. 작곡가의 기억 속 통영의 모습은 다양한 기록으로 남아 있지요. 몇 군데만 추려 볼까 합니다.

"아버지는 종종 밤낚시를 하러 바다로 나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럴 때면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잠자코 배 위에 앉아 배 위에 앉아 물고기가 헤엄치는 소리나 다른 어부들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노랫소리는 배에서 배로 이어져 갔습니다. 소위 말하는 남도창이라 불리는 침울한 노래인데, 수면이 그 울림을 멀리까지 전해주었습니다. 바다는 공명판 같았고 하늘에는 별이 가득했습니다... 밤에 혼자 낚시를 가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갔습니다. 몰래 말이죠. 좋은 곳으로 가려면 5킬로미터나 걸어야 했습니다. 그곳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인데 바다에서 15미터나 떨어져 있었습니다. 나는 운동은 잘하지 못했지만 한 손으로 낚싯대를 들고 등에는 어롱을 짊어지고 이 위험한 벼랑을 대담하게 기어 내려갔습니다. 나한테 중요한 것은 물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혼자서 별이 가득한 하늘 아래 말입니다. 여름에는 하늘에서 수많은 별똥별이 떨어졌습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밤 세계가 나에게는 신비한 매력이었습니다. ― 윤이상 ‧ 루이제 린저, 『상처 입은 용』, 25쪽.

"1917년부터 1930년 사이에 나의 고향 통영에 명창 이화중선이 온 일이 있다. 소식을 들은 인근의 주민들은 이 절세의 명창을 듣기 위해 설레었고 마을은 미리부터 큰 축제의 분위기였다. 당일을 앞두고 멀리에 흩어져있는 섬사람들은 제각기 돛배를 타고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 이때 청중들의 노래에 따라 움직이는 광경이 장관이었다. 노래가 흐르는 동안 일체 숨을 죽이고 있다가 마디마디 미묘한 선율이 굽이쳐 넘어갈 적마다 수천의 청중들이 일제히 좋다 하며 한숨 섞인 탄식을 했던 것이다. 그 좋다 소리가 마치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처럼...

멍석 위에 깨알처럼 앉아 있던 백의의 청중들은 노래의 억양에 따라 일제히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하며 상체를 가볍게 움직였다. 이것은 마치 봄날의 보리밭에 녹색의 보리들이 엷은 바람 따라 온통 물결을 이루는 것 같았다. 이렇게 이명창과 무수한 청중이 완전히 한마음이 되어 그칠 줄을 모르는 절창에 밤은 깊어만 갔다." ― 윤이상이 『한양』에 기고한 글. 이수자, 『내 남편 윤이상』, 100쪽.

2015년 6월 22일 월요일

작품번호에 관하여

클래식 음악 작품을 표기할 때 흔히 '베토벤 교향곡 5번 c단조 Op. 67' 하는 식으로 쓰지요. 여기서 'Op.'는 'Opus number'를 줄인 말로 '작품 번호'라는 뜻입니다. '오푸스'(Opus)는 일, 작업, 노동을 뜻하는 라틴어이고요.

작품번호의 효용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헷갈리지 않게끔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를테면 슈베르트 '미완성 교향곡'은 때로 교향곡 7번으로도, 8번으로도, 9번으로도 표기됐지요. '미완성'이라는 표제가 있어서 그나마 괜찮지만, 표제가 없는 슈베르트 작품은 작품 번호가 빠지면 어느 작품인지 헷갈리기 딱 좋습니다.

작곡가 스스로 '교향곡 1번' 하는 식으로 제목을 체계적으로 붙이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작곡가는 그냥 '교향곡 D장조' 정도로만 쓰기도 했지요. 그래서 나중에 같은 작곡가가 같은 조성으로 교향곡을 또 쓰면 둘을 구분할 방법이 필요하게 됩니다. 유명한 작곡가의 미발표 곡이 나중에 발견되는 일도 있어요.

작품 번호를 'Op.'라고 쓰기도 하지만, 작곡가 사후에 음악학자가 작품 분류를 새로 했다면 번호가 다른 식으로 붙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슈베르트 작품번호는 음악학자 도이치(O. E. Deutsch) 이름을 따서 'D.' 번호를 붙이지요. 그래서 미완성 교향곡은 D. 759입니다. 모차르트 작품번호는 쾨헬(L. von Köchel) 이름을 따서 K., 하이든 작품번호는 호보켄(A. van Hoboken) 이름을 따서 Hob., 바흐 작품번호는 '바흐 작품 카탈로그'를 뜻하는 'Bach-Werke-Verzeichnis'를 줄여서 BWV라고 쓰지요.

모차르트 작품번호는 나중에 개정되어서 원래 번호와 개정 번호를 나란히 쓰기도 합니다. 지난 5월에 있었던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 공연 때 있었던 일인데요, 첫 번째 앙코르곡이 뭐였는지 물어봤더니 행진곡 K. 320이래요. 그런데 K. 320은 이날 연주했던 세레나데 9번 '포스트호른'이거든요. 이상해서 더 알아봤더니 K. 335/320a가 정확한 작품번호이더군요. 모르긴 해도 이 행진곡이 '포스트호른 세레나데'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을 겁니다.

때로는 오푸스 번호 하나에 여러 작품이 있어서 하위 번호를 또 붙이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 c♯단조 '월광'은 Op. 27 No. 2, 소나타 13번 E♭장조는 Op. 27 No. 1이지요. 베토벤은 작품번호를 붙이다 말다 해서 중구난방인데요, 작품번호가 없는 작품에 'WoO'라는 작품번호를 작곡가 사후에 붙이기도 합니다. 작품번호 없음을 뜻하는 독일어 'Werk ohne Opuszahl'을 줄인 말이지요. 또 작곡가 사후에 발견된 작품은 'Op. posth.'라고 쓰기도 합니다. 사후(死後)를 뜻하는 영어(말뿌리는 라틴어) posthumous에서 온 말이에요.

그런가 하면 학자들만 쓰는 작품번호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바그너 작품번호는 바흐 작품번호와 비슷한 WWV를 쓰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진 작품은 제목만으로도 헷갈릴 일이 없어 WWV 번호를 거의 쓰지 않지요. 그러나 바그너 작품 중 유명하지 않아서 헷갈릴 염려가 있는 곡을 다룰 때는 역시 작품번호가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얼마 전에 인터넷으로 본 우스갯소리 하나 소개할게요. 작품번호는 음악이 아닌 작품에도 쓰일 텐데요, 그 가운데 '품번'이라는 줄임말로 통용되는 좀 민망한 장르도 있더라고요.

A: 집에 혼자 있는데 품번 추천 좀.
B: BWV 147.
A: 좋음?ㅋ
B: 최고죠.
A: 언제 나온 거?
B: 고전이긴 한데요..
A: 누구 꺼?ㅋ
B: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A: ?????
B: ?????

2015년 3월 1일 일요일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 인터뷰

통영국제음악재단이 발간하는 잡지 『Grand Wing』에 실린 글입니다.


Q. 시벨리우스 협주곡에 관한 해석이, 이를테면 1982년에 리카르도 무티 ·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음반을 녹음했을 때와 견주어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나.

A. 이 작품을 두 번 음반으로 녹음했는데, 1977년에 로제스트벤스키, 그리고 나중에 무티와 함께 했다. 나는 내 음반을 들어본 일이 한 번도 없어서 만족스러운 답을 할 수 없다. 차라리 이번에 통영에서 연주할 '라이브' 연주가 두 음반과 어떻게 다를지 여.러.분.이. 발견하는 쪽이 흥미로울 듯하다.

[기돈 크레머는 자신의 음반이건 남의 음반이건 거의 듣지 않는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이 정도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 인터뷰는 이메일로 진행되었으며, 기돈 크레머가 답하지 않은 첫 번째 질문은 "나이가 들면서 바이올린 소리가 차분하고 유려하게 바뀐 듯하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였다. 위 답변으로 보아 이 질문은 기돈 크레머에게 마치 '당신의 얼굴이 나이가 들면서 이러이러하게 바뀌었는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와 비슷하게 느껴졌을 듯하다.]

Q. 2012년에 크레메라타 발티카(Kremerata Baltica)를 이끌고 서울에서 공연했을 때, 한 음악평론가는 "왼손 비브라토는 소리를 떠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넓게 공명시키기 위한 것"(박제성)이라는 통찰을 얻었다고 평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바이올린을 배우는 이들에게 조언하자면?

A. 내가 '예쁜 소리'(bella voce)를 위한 '예쁜 소리'라는 개념에 반대한다는 사실을 아마 알 것이다. 나에게 바이올린이란 다른 악기나 목소리와 마찬가지로 어떤 메시지, 때로는 작가(author)의 악보에 (때때로 숨어) 있는 어떤 담화(statement)를 전달하는 '도구'이다.

운지법(fingering)이나 운궁법(bowing)이 다양한 것만큼 비브라토 또한 다양하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아니라, 그것이 음악에 맞느냐이다. 멋지지만 사실은 속 빈 소리를 내는 연주자가 너무나 많다. 비브라토는 단지 수많은 '전달 도구'(carrier)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다양한 '논-비브라토' 또한 마찬가지다.) 연주자가 사용할 수 있는 비브라토가 다양할수록 더욱 흥미로운 연주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 절대로 비브라토를 위한 비브라토를 하지 말라. 언제나 악보와 음악이 먼저다.

Q. 바이올리니스트로서 레퍼토리가 어마어마하기로 유명하다. 현대곡은 주로 살아있는 작곡가와 교류하면서 레퍼토리를 넓혀온 듯한데, 윤이상이나 진은숙 같은 한국 작곡가와 만난 일이 있나.

A. 두 사람을 당연히 알고 음악을 들어본 일도 있으며, 내가 감독하는 음악 페스티벌 프로그램에 위대한 작가(author)인 윤이상의 작품을 넣기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 작품을 직접 연주해 볼 기회는 없었다. [기돈 크레머는 '작곡가'(composer)라는 말보다 '작가'(author)라는 말을 선호하는 듯했다. 음악을 '메시지'나 '담화'로 보는 관점에서 온 표현으로 이해된다.]

언젠가 한국 작품도 연주해 보면 좋겠지만, 흥미로운 작품을 다 연주하기에는 시간이 모자라서 프로그램 성격에 맞는 곡을 고를 수밖에 없다. 현대 작가의 작품을 많이 연주해 왔는데도 다른 많은 작가에게 빚을 진 느낌이다.

요즘 미에치스와프 바인베르크(Mieczysław Weinberg, 1919 – 1996)라는 중요한 작곡가를 발굴하는 중이다. 쇼스타코비치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였던 그를 온 세계에 알리는 일에 열정을 다 바치고 있다. 내 오케스트라인 크레메라타 발티카가 그 일에 도움이 된다.

Q. 음악이 '엔터테인먼트'로 소비되는 일을 싫어한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로저 노링턴은 모차르트가 '엔터테인먼트'를 부정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음악이 즐겁지 않으면 뭔가 잘못된 것이다'가 요즘 좌우명이라고까지 하는데, 노링턴에게 어떤 반박을 하고 싶나.

A. 그 명제를 살펴보자. '즐거움' 그 자체는 아무 문제 없다. 그러나 음악가로서 주된 임무, 즉 관객의 상상력과 감성을 넓히는 일을 내팽개치고 '연예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즐거움'은 흔히 어떤 일의 표면에 놓여 있고 '즉각적 만족'에 가까운 개념이다. 많은 연주자가 유명세를 좇고 '스타'가 되려 한다. 박수와 감탄을 받는 일이 우선적인 목표가 된다. 작곡가도 마찬가지다. 유명해지기를 바라면서 관객과 광고주와 후원자를 기쁘게 하려 노력한다. 나는 그런 일에 절대로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어떤 종류의 음악을 (재즈이건 팝 음악이건) 즐기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당연히 이런 쪽에도 좋아하는 곡은 있다. 다만, 그 바닥을 잘 알아서 어떤 게 돈이 되고 안 되는지 잘 아는 속물들 틈에 끼고 싶지 않다. 나에게 음악은 살아가는 과정 그 자체다. 올바른 가치를 찾는 모험과 위험이 가득한 길이다. 엔터테인먼트는 마음 편하게 웃고 쉬기에는 좋다. 그래서 나도 농담과 유머 따위를 좋아한다. 그러나 편하게 음악을 듣거나 걸작을 놓고 '파도타기'를 하기는 싫다. 그런 것은 대개 우리를 (연주자이건 감상자이건) 더 먼 곳으로 이끄는 음악과는 관계가 없다. 그러나 우리를 끌어올리는 걸작은 정말로 '즐긴다.'

Q. 예술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보나, 아니면 예술은 그저 사회를 거울처럼 반영할 뿐이라 생각하나. 최근에 쓴 글을 보면 음악에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고 믿는 듯하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신문 사설이나 안나 폴리트코브스카야 추모 공연 등으로 사회적 메시지를 표현한 일은 음악으로는 그게 안 되기 때문이 아닌가.

A. 음악가들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이지만) 친구에게, 사회에, 그리고 우리에게 중요한 가치에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가 정치인이 될 필요는 없지만, 불의에 저항하는 선택지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독트린이나 이데올로기에 희생당한 사람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우리는 음악으로 자유를 누리는 만큼 그릇을 키워서 다른 사람과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소리를 빚어낼 수 있어야 한다. 티켓을 살 수 있는 사람만을 위해 멋진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윤리적 책무를 져야 한다. 모두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면, 자기만 아는 제멋대로 연주자를 이렇게까지 자주 만나지는 않게 될 것이다. 훌륭한 인격을 가진 사람은 '표시'가 난다. 더 높은 가치와 공감력으로 일어설 줄 안다. 그래서 잘 '들린다.'

2015년 1월 6일 화요일

경계를 횡단하는 음악가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

통영국제음악재단에서 발간하는 매거진 『Grand Wing』에 실릴 글입니다. 헛소리가 있다거나 맞춤법이 틀렸다거나 등등 마구 지적해 주세요.

* * *

'필립 글래스 전도사'로 유명한 지휘자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 그러나 클래식 음악 애호가 사이에서는 브루크너 전집 음반으로 더 유명하고, 낱장 음반 기준으로는 하이든을 가장 많이 녹음한 지휘자이기도 하다. 하이든 · 브루크너 · 필립 글래스 교향곡 전곡 음반을 모두 녹음한 유일한 지휘자라 자부하는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는 그만큼 고전과 현대를 넘나드는 폭넓은 레퍼토리를 자랑하는 지휘자이다.

미국 출신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로 독일어권에서 더 많이 활동해온 그는 브루크너 오케스트라 린츠, 바덴-뷔르템베르크 국립 오페라 극장, 비엔나 방송교향악단, 베토벤할레 오케스트라, 세인트폴 체임버 오케스트라 등에서 음악감독을 역임했고, 현재 브루크너 오케스트라 린츠 음악감독 지위를 유지하는 가운데 바젤 심포니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을 겸하고 있다.

지휘자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는 놀랍도록 깔끔하게 정돈된 소리를 오케스트라에서 뽑아내는 점이 독특하다. 성부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자칫 혼란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선율을 명쾌하게 다듬는 능력이 탁월하며, 이러한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 사운드'는 모든 작품을 매우 현대적으로 들리게 해서 일부 작품, 특히 브루크너와 바그너 곡에서 관객의 호불호가 나뉘기도 한다.

현대음악에 강점이 있는 지휘자로서 루치아노 베리오, 존 케이지, 윤이상, 필리프 마누리 등 아방가르드 작곡가와도 친분을 나누었지만, 또한 필립 글래스, 아르보 파르트, 아론 코플랜드 등 대중적인 음악 어법을 사용하는 작곡가와 더욱 폭넓게 교류했다. 이렇게 개방적인 성향은 '고음악과 현대음악의 도시'로 유명한 스위스 바젤에서 빛난다.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는 2015 통영국제음악제에서 바젤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모차르트, 베토벤, 스트라빈스키, 힌데미트, 번스타인, 윤이상 등을 피아니스트 파질 사이 및 바이올리니스트 유미 황-윌리엄스 협연으로 공연한다. 또한, 2015 통영국제음악제 레지던스 아티스트로서 다양한 활동이 예정되어 있다.

2014년 12월 18일 목요일

윤이상: 예악(禮樂)

통영국제음악재단에서 발간하는 잡지 《Grand Wing》에 실린 칼럼입니다.



선율과 리듬과 화성은 전통적으로 서양음악을 이루는 3요소로 꼽혀 왔지요. 그런데 20세기 들어서 '음색'이 그 못지않게 중요해졌습니다. 전통적으로 음색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작곡 기법은 관현악법(orchestration), 즉 특정 선율 · 리듬 · 화성에 특정 악기를 지정하고 다른 악기와 섞어 소리를 빚는 방법이었고, 음악학자 달하우스는 현대적인 관현악법의 가능성을 제시한 말러 교향곡 1번과 R. 슈트라우스 《돈 쥬앙》을 가리켜 음악적 모더니즘의 뿌리라고도 했습니다.

1960년대에 오면, 전통적인 화음 개념을 확장한 이른바 음 덩어리(cluster)로 선율 · 리듬 · 화성을 사실상 무력화시키고 음색 또는 '음향'을 전면에 내세운 음악이 나타납니다. 스탠리 큐브릭이 감독한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쓰여서 ― 사실은 감독이 도용해서 ― 더욱 유명한 리게티 《아트모스페르》, 그리고 음악보다 제목이 더 유명한 펜데레츠키 《히로시마 희생자를 위한 애가》 같은 작품이 그렇지요.

음을 덩어리로 쌓아 만든 '음향'으로 음악을 만든다는 아이디어는 작곡가 윤이상이 찾던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응용하면 동아시아 음악의 '음향'을 서양 악기로 표현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윤이상이 만들어 낸 '음향'은 리게티나 펜데레츠키 같은 서양 작곡가들 것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서양음악에서는 개별 음은 고정되어 있어 다른 음과 관계를 맺으면서 음악적 의미가 만들어지지만, 동아시아 음악에서는 음 하나만으로도 그 자체로 살아 움직이면서 음악을 이루거든요. 살아있는 음이 모여 살아있는 화음, 살아있는 음향층을 이루는 것이 윤이상 음악 어법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탄생한 작품이 《예악》(禮樂)입니다. 1966년 독일 도나우싱엔 음악제에서 이 작품이 초연되면서 윤이상은 국제적인 스타 작곡가가 되었습니다. "동양의 사상과 음악 기법을 서양음악 어법과 결합해 완벽하게 표현한 최초의 작곡가"라는 극찬이 따라붙었고, 작품 속에 녹아든 정중동(靜中動) 원리는 '음 덩어리'를 조직하고 움직이는 원리를 고민하던 서양 작곡가들에게 훌륭한 돌파구로 제시되었습니다.

주요음향 또는 중심음향(Hauptklang)이라 불리는 윤이상식 음향은, 그 구성요소 가운데 어느 것을 더 살리고 덜 살리느냐에 따라 한국 전통음악의 음향이 살아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는 점에서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 전통음악을 모르는 서양 지휘자가 윤이상 작품을 지휘하면 그냥 서양음악 맥락에서만 이해할 수 있는 음악이 되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작품을 내놓고 나면 작가는 죽어야 한다'(움베르토 에코)라는 말처럼 그것이 틀렸다고 할 수만도 없겠지요.

다만, 언젠가 롤란드 클루티히(Roland Kluttig)라는 독일 지휘자가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함께 이 곡을 연주했을 때, 그 음향이 종묘제례악이나 수제천에서 들을 수 있는 바로 그것이라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원류'를 모르고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소리를 독일인 지휘자가 만들어 냈던 것이지요. 제가 기억하는 가장 탁월한 《예악》 연주였습니다.

재미난 사실. 《예악》에는 국악기가 하나 쓰입니다. 한국 궁중음악에서 곡의 시작과 끝, 각 절의 끝에 연주되는 악기인 박(拍)이지요. 이 글 초고를 보신 어떤 분이 '공간을 가르며 침묵을 정주(停住)시키'는 악기가 박이라 평하시더군요. 악보를 보면 작곡가는 이것을 채찍을 뜻하는 'Peitsche'라는 독일어로 번역했는데, 그 뒤에 괄호를 치고 'Bak'이라고도 써놓았습니다. 그리고 한국 궁중음악처럼 《예악》 처음과 끝과 중간 중간에 박이 효과적으로 사용됩니다.

2015 통영국제음악제 폐막 공연에서는 크리스토프 포펜이 지휘하는 통영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예악》을 연주합니다. 이들이 빚어내는 음향은 어떤 느낌일까요? 포펜 선생께 미리 《수제천》을 들려드려야 할까 봅니다.

2014년 7월 25일 금요일

재즈 피아니스트 엘다 장기로프 인터뷰

통영국제음악당 매거진 『Grand Wing』에 실린 글입니다.


Q. 새 앨범 《Breakthrough》의 첫 곡 "Point of View Redux"는 피아니스트 엘다 장기로프의 역량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저음으로 으르렁거리는 반복음형부터 오른손으로 마구 쏟아내는 선율까지, 악기에서 참 다채로운 소리를 뽑아내시는데요.

A. 예. 중요하면서도 주목을 덜 받는 게 한 가지 있는데, '프레이징'입니다. 다이내믹스와 시간과 터치를 조절하는 능력이 선명하고 훌륭한 소리를 만들어 내지요. 저는 피아노를 칠 때 고르게 이어지는 소리를 내려고 많이 노력해요. 제 연주를 들어보면 그런 게 느껴질 거라 생각하고요. 그러니까 음악은 표현이 내용만큼이나 중요합니다. 같은 곡을 악보에 옮겨서 다른 연주자에게 주면, 그 연주자가 프레이징을 다르게 해서 소리가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Q. "Point of View Redux"는 사실 이전 앨범에 수록한 곡을 재창작한 것인데요. 어떤 식으로 재창조 작업을 하셨나요?

A. 이 곡은 2005년에 발매한 앨범 《Eldar》에서 따온 것으로 위대한 색소폰 연주자 마이클 브레커를 위한 곡이었지요. 그분과 함께 작업했던 게 저에게 너무나 큰 경험이었기 때문에, 그분이 돌아가셨을 때 뭔가 추모할 만한 곡을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 곡을 새로 써보기로 했고요. 원곡에서 극적인 요소를 따와서 재창조 작업을 거친 게 바로 이거예요. 음악적으로 발전된 곳도 있지만, 인간적인 부분도 있어요. 마이클 브레커 추모곡이니까요.

Q. 전에 《Virtue》라는 앨범을 녹음했을 때 하신 말씀이, 다른 음악가들과 달리 새 앨범을 내고 그걸로 공연하러 다니는 게 아니라, 새 곡을 쓰면 그걸 녹음하기 전에 공연부터 다닌다고요. 이번에도 《Breakthrough》 앨범을 내면서 그렇게 하셨나요?

A. 예. 공연부터 하고 나서 녹음한 게 90%쯤 됩니다. 새 곡을 쓰면 우리 공연 프로그램에 넣고, 거기서부터 프로젝트가 커가지요. 저는 스튜디오에서 곡을 쓰는 걸 안 좋아합니다. 그건 낭비거든요! 준비는 집에서 하고, 스튜디오에 가면 연주만 해요. 보통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한 번 하면, 그걸 곧바로 들어요. 그래서 좋으면 그걸로 가는 것이고, 아니면 다시 녹음하는 거죠.

Q. 새 앨범 제목 《Breakthrough》(혁신)에 어떤 의미가 있나요?

A. 이건 색소폰 연주자 크리스 포터가 참여한 곡 제목이기도 하지만, 음악가라면 늘 어떤 경지에 오르려고 노력하잖아요. 저는 모든 것을 실험으로 시작합니다. 자동항법장치로 항해하는 것처럼 이미 배운 것들로만 연주하기는 쉽죠. 하지만 저는 새로운 것을 잘 배우고 싶어요. 그래서 이 프로젝트를 위해서 새로운 것을 꼼꼼하게 배우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Q. 어떤 것을 배웠나요?

A. 작곡도 많이 했고, 또 클래식 음악에서 많은 것을 배워서 바흐, 브람스,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독주곡 음반도 냈지요. 언제나 느끼지만, 걸작을 익히면 훌륭한 선율과 화성 전개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걸작에는 어떤 '논리'같은 게 있는데, 이를테면 선율의 논리는 주제를 구축하고 클라이맥스로 확장해 나가는 데 있어요. 또 화음이 어떤 식으로 해결되면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게 되고요. 이런 장치를 배우는 일은 음악적 어휘력을 높일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감명을 주는 음악을 만들 수 있게 해줍니다.

Q. 새 앨범을 준비하면서 클래식 음악 말고 또 어떤 음악을 들었나요?

A. 다양하게 들었죠. 빌리 홀리데이를 자주 들으면서 프레이징을 어떻게 하는지를 매우 관심 있게 들었고요. 그래서 빌리 홀리데이가 불렀던 곡 중에서 "Good Morning Heartache"를 녹음하기도 했죠. 빌리 홀리데이가 부른 발라드가 특히 흥미로워서 음반에 실을 곡을 정할 때 많이 참고했어요. 또 재즈 명곡을 녹음하고 싶었는데, 너무 흔한 곡은 싫었거든요. 그래서 결국 어빙 벌린의 "What'll I Do"를 골랐습니다. 선율이 참 아름다워서 저한테 팍 꽂혔지요.

Q. 테크닉이 매우 뛰어난 연주자로 알려졌는데요, 그게 어떤 도움이 되나요?

A. 테크닉은 악기를 익히는 일에 시간을 쏟으면 기본으로 얻어지는 겁니다. 선율과 화성에 관해 이해하는 일도 마찬가지이고, 시간 감각과 음악적 아이디어를 물 흐르듯이 펼치는 능력도 그렇습니다. 저는 하농 같은 걸 반복 연습하면서 시간을 보낸 일이 전혀 없어요. 제 테크닉은 악기 앞에서 진지하게 '연주'를 하면서, 또 어려서부터 재즈 명곡부터 바흐까지, 또는 다양한 음계나 작곡을 배우면서 얻은 것이지요.

사람들이 곧잘 말하기를 "이 음악가는 테크닉이 뛰어나고, 이 음악가는 '독창성'이 있다"라고 하지요. 이건 순전히 편견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언제나 음악을 배우는 사람,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 악기를 연주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을 진심으로 즐기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이 제 음악을 즐기기를 바라는 만큼 저 자신도 음악을 즐기고 싶은 사람이에요. 음악을 향한 열정과 경의가 그걸 가능하게 합니다.

출처: 음악 전문지 『Keyboard』 2013년 6월호
존 레건(Jon Regen) 글 · 김원철 옮김

2014년 7월 20일 일요일

경계를 넘어서는 음악에 관하여

통영국제음악재단 매거진 『Grand Wing』에 '김원철의 박신(剝身) 클래식 ― 클래식 까주는 남자' 시리즈로 연재하는 글 2편입니다.


"상대성 이론은 시공간의 대칭성 위에서 성립되고[…]."

언젠가 과학 수필을 읽다가 이런 알쏭달쏭한 말이 나와서 물리학을 전공한 지인에게 물어봤습니다. 여기서 대칭이라는 말은 일상적인 의미가 아니라 수학적인 개념으로 고등학교 수학 시간에 배웠을 거라고 하더군요. 생각해 보니까 제가 고등학생 때 이걸 배웠… 크흠.

음악에서도 수학처럼 일상적이고 전통적인 개념을 확장해서 쓸 때가 있습니다. 무조음악은 따지고 보면 조성을 확장한 것이라 할 수 있고, 미분음은 음계 개념을 확장했다고 할 수 있겠죠. 현대음악이 아니더라도, 이를테면 베토벤이 교향곡에 합창을 사용한 것처럼 기존 개념을 확장하려는 시도는 늘 있었습니다.

윤이상 작곡가는 전통적인 화음 개념을 확장해서 음을 '덩어리'로 만든 이른바 '클러스터'(cluster) 기법을 알게 되면서 기막힌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이것을 응용해 서양음악으로 한국음악의 '음향'을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음악에서 클러스터를 조직하고 움직이는 원리를 고민하던 서양 작곡가들에게 정중동(靜中動)이라는 멋진 돌파구를 제시하기도 했고요. 이렇게 윤이상 선생은 작곡가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쌓게 됩니다.

윤이상은 "동양의 사상과 음악 기법을 서양음악 어법과 결합해 완벽하게 표현한 최초의 작곡가"라고 평가받습니다. 그러나 음악학자 윤신향은 윤이상 음악에 "융화되지 않는 이중구조"가 있으며, 이것은 유럽에서 활동하던 윤이상에게 동서양 문화가 대등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지적합니다. "두 세계 사이의 진정한 융화는 작곡자의 삶이 음악어휘를 결정할 때마다 그늘처럼 은폐되는 한국적 정신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그곳에서만 가능하다." 윤이상 선생이 통영을 그토록 그리워한 까닭이 여기에 있지 않았을까요.

"한국적 정신유산"과 서양음악 어법 사이에서 길을 찾는 일은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모든 음악가에게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 길은 저마다 다르겠지요. 통영국제음악당 여름 시즌에서 소개하는 음악도 어찌 보면 두 세계의 경계를 뛰어넘는 음악입니다. 국악을 뿌리로 하는 월드뮤직, 태생부터 여러 음악이 섞여 만들어진 재즈, 그리고 남아메리카 이주민이 새롭게 만들어간 전통이 유럽에 역수입된 탱고.

프랑스 사상가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는 구획되고 고정된 '홈 파인 공간'과 새로운 곳으로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는 '매끄러운 공간'을 나누어 설명하면서 사회 변화에 관한 사유를 펼친 바 있습니다. 홈 파인 공간에서 매끄러운 공간으로 나아가는 일은 새로운 홈이 파인 공간, 그러니까 새로운 전통을 만드는 일과도 이어집니다. 익숙한 생각을 넘어서는 열린 마음으로 경계를 횡단하는 음악을 만나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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