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국제음악재단에서 발간하는 『Grand Wing』에 실린 글입니다.
Q. 통영에서 베토벤 협주곡 5번을 협연할 예정이다. 2013년에 서울시향과 협연한 녹음이 도이치그라모폰에서 나왔었는데, 당시 곡 해석의 틀이 지금까지도 유효한가? 바뀌었다면 어떤 부분이 바뀌었는가?
A. 곡에 대한 해석은 항상 유기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 특히나 마지막으로 연주한 지 4-5년이 흘렀을 때 바라보는 곡에 대한 색다른 매력에 큰 재미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템포 변화와 뉘앙스 차이는 다를 수 있어도 큰 골격과 골조는 비슷한 편이다. 결국 스스로의 음악적 취향과 스타일이 구축되었다는 것인데, 그때부터는 세밀한 표현을 섬세하게 가꾸는 것이 스스로 진화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여태껏 찾지 못한 순간들을 발견하려 노력하고 있다.
Q. 이를테면 2악장에서 왼손 음형을 음반에서보다 좀 더 볼륨 있게 쳐주는 편이 더 베토벤답게 들리지 않을까?
A. ‘베토벤답다’라는 정의는 참 위험한 말이다. 베토벤다운 것은 없다. 베토벤의 악보 기호와 주문을 얼마나 자신의 것으로 완성시켜 설득력 있게 전달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Q. 최수열 지휘자와 전에 협연해 본 일이 있나? 최수열은 어떤 지휘자라고 생각하나?
A. 한국예술종합학교 선배님이다. 같이 연습해 본 적은 있으나 공식적인 무대에 서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휘 실력, 즉 테크닉이야 이루 말할 것 없이 훌륭하고 고전, 낭만 음악뿐만 아니라 현대음악에 대한 관심과 애정, 다양한 포맷의 시도 등 앞으로 우리나라 음악계를 잘 견인하실 것이라 믿고 있다.
Q. 2014년에는 정명훈-서울시향과 함께 진은숙 협주곡을 녹음했었다. 이 곡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작곡가로부터 어떤 조언을 받았으며, 자신만의 의견은 무엇인가?
A. 진은숙 작곡가는 이 곡을 통해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모두 최대한 비르투오식하게 연주하길 바랐다. 곡이 어렵다고 대충 훑는 것이 아니라 최대치의 노력을 다해 연주되길 바랐고 그 열정과 긴장감으로 곡에 숨을 불어넣길 원했다. 결과적으로 처음 연주할 때 굉장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그만큼 연습량을 늘리며 이 곡이 내 것이 되도록 노력했다. 진은숙이라는 작곡가의 시그니처, 즉 찬란한 색채의 화음과 치밀하게 짜여진 구성과 디테일은 왜 진은숙이 세계 최정상의 작곡가인지 증명한다. 단언컨대, 이 협주곡은 2100년에도 꾸준히 연주될 것이다.
Q. 같은 해 같은 곡으로 함부르크에서 NDR 심포니 오케스트라, 2015년 파리에서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과 협연했었다. 그때 얘기가 궁금하다.
A. 이 곡으로 여러 지휘자와 협연했다. 정명훈, 일란 볼코프, 크와메 라이언, 티토 체체리니, 안토니 헤르무스랑 같이 연주했고 이 다양한 지휘자들이 생각하는 이 곡에 대한 아이디어를 습득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협주곡에 대한 경험이 많이 쌓였다. 같이 연주했던 오케스트라들은 모두 다 훌륭했고 열심히 연주했기에 매 순간 기억에 많이 남는다.
Q. 영국 왕립음악원에서 지휘를 전공했고 본머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로 '데뷔'를 앞두고 있기도 하다. 영국 왕립음악원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
A. 내가 배운 콜린 메터스선생님은 영국 왕립음악원에 30여 년 전 처음으로 지휘과가 신설되었을 때부터 지휘과 교수님이었다. 매일 학교에서 지휘과 학생들과 시간을 보냈고 오케스트라 파트를 피아노로 많이 치면서 다른 친구들의 지휘를 도와주기도 했다. 레퍼토리를 다양하게 배울 수 있었고 피아노와 병행하느라 힘들었지만 좋은 추억이었던 것 같다. 거의 매일 5시에 수업이 끝나면 오후 6시부터 9시까지는 피아노를 연습했다. 2020년에 영국 본머스에서 열리는 연주회는 지휘 ‘데뷔’라고 하면 너무 쑥스럽고 그냥 하나의 이벤트로 생각하고 있다.
Q. 음악인으로서 느끼는 런던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A. 일단 내가 현악인이고 오케스트라에서 일하고 있다면 런던에서는 엄청난 레퍼토리를 빠른 시간 안에 습득할 수 있다. 2-3년이면 모든 시대의 곡을 다 연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짧은 리허설 시간 안에서 완성도를 높여야 하기 때문에 기민함이 빠른 속도로 발전할 것이다. 하지만 급여는 다른 나라에 비해 형편없기 때문에 비싼 물가의 런던에서 여유 있는 생활을 유지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오페라, 클래식 연주회, 뮤지컬, 연극 등 다양한 장르를 트렌디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이 런던의 문화적으로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지금은 베를린으로 이사해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고 있다.
Q. 윤이상 작품을 연주해본 일이 있는가?
A. ‘피아노를 위한 5개의 소품(1958)’을 2012년 통영국제음악제에 상주음악가로 있었을 때 연주했었다. 가치 있었던 순간이었다.
Q. 어느 분야이든 존경하거나 흥미를 느끼는 예술가가 있다면?
A. 작품에 시간과 정성을 들이고, 디테일에 집착하며, 스스로 만족하지 않는 예술가들은 모두 다 존경한다. 훌륭한 예술가는 개개인의 독특한 자아가 존재하는데 극한으로 자신을 밀어붙일수록 그 예술가만이 고유한 특징을 드러낼 수 있다고 믿는다. 미술가로는 카스파르 프리드리히, 클림트, 안젤름 키퍼, 라킵 쇼를 좋아하고 노먼 포스터, 프랭크 게리의 건축물도 좋아한다.
Q. 국내 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계획이 있나?
A. 18-19 시즌에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총 5번을 공연한다. 독주회, 듀오 연주 두 번, 그리고 브람스의 실내악 프로젝트 두 번 – 그리고 위그모어에서 내년 1월 독주회를 여는데 한국 작곡가인 신동훈 씨의 신작을 초연할 계획이다.
Q. 마지막으로 통영 관객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A. 오랜만에 통영을 찾아 관객 여러분께 연주를 들려드릴 수 있어 영광으로 생각한다. 6년 만의 방문이고, 또 새로운 홀에서 처음으로 연주한다. 음향, 피아노 등 최상의 조건이라고 많은 동료들이 얘기해주었기 때문에 기대가 무척 크다. 좋은 연주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