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조성진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조성진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9년 7월 17일 수요일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장식음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올 9월 통영국제음악당에서 4일간 열리는 '조성진과 친구들' 페스티벌의 티켓이 예매 개시 당일 순식간에 매진된 일이 최근 화제가 되었습니다. 지난 2017년에 있었던 조성진 피아노 리사이틀 때도 올해와 마찬가지로 1분여 만에 매진됐었고, 한발 늦게 문의 전화를 주시는 분도 많았지요.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인기가 참 대단합니다.

2017년 리사이틀에서는 조성진이 곡마다 선보인 연주법이 애호가와 전공자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기억나는 것 가운데 하나는 드뷔시 '영상'(Images) 2권 중 '잎새로 흐르는 종소리'(Cloches à travers les feuilles)입니다. 어떤 연주자는 이 곡의 '종소리'를 매우 또랑또랑하게 살리기도 하지만, 이날 조성진은 흔히 생각하는 종소리답지 않고 흐릿하게 들리게끔 했지요. '잎새로 흐르는 종소리'의 프랑스어 제목이 청자와 종 사이에 있는 나무가 종소리를 걸러낸다는 뉘앙스를 주는 까닭일 겁니다.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2번 F장조 K. 332 연주에서는 조성진의 장식음 사용이 화제가 됐습니다. 이 곡을 연주해 보았거나 음반을 여러 차례 들어서 음 하나하나가 귀에 익은 관객은 이날 조성진의 연주에서 예상치 못한 음이나 짧은 멜로디가 때때로 나왔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을 텐데요, 19세기 이전에는 연주자가 임의로 악보에 없는 장식음을 추가해 연주하곤 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악보에 있는 음만을 연주한다는 사고방식은 19세기 중반에 나타났고, 20세기에 이것이 완전히 굳어졌다가 20세기 후반에 고음악을 재발굴하는 과정에서 장식음을 사용하려는 연주자도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조성진이 모차르트 연주에 장식음을 사용했다는 것은 한때 '원전'(原典) 또는 '정격'(正格; authentic) 연주라 불렸고 요즘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연주(Historically Informed Performance) 또는 '역사주의 연주'라 부르는 학구적 흐름을 조성진이 일부 받아들였다는 뜻입니다. 이 흐름은 초기에 심한 저항을 받았지만, 음악학자들이 제시하는 객관적인 증거가 쌓이면서 요즘은 고음악 전문 연주자가 아니더라도 그 성과를 일부 받아들이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조성진이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 d단조를 야니크 네제세갱이 지휘한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함께 녹음한 음반에서도 악보에 없는 장식음이 2악장에 다채롭게 나오지요. 지난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나간 조성진이 같은 곡으로 악보에 있는 음만을 연주했던 것과 견주면 완전히 달라진 연주입니다. 그리고 조성진은 이 곡을 오는 9월 22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협연하며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 지휘를 겸할 예정입니다.

장식음은 연주자가 미리 계산해서 연주하기도 하고, 그냥 즉흥적으로 연주하기도 합니다. 조성진은 이것을 어찌했는지 궁금해서,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발간하는 『Grand Wing』에 실린 인터뷰 때 물어봤었습니다. 답이 그럴싸하더군요.

"(장식음을) 미리 계획하지만 연주할 때마다 상황에 맞게 변화를 준다.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피아노의 상태이고, 그래서 필라델피아에서 공연했을 때는 음반 녹음 때와는 조금 다른 장식음을 썼다. 예를 들어 스타카토 소리가 예쁘게 나지 않으면 그 대신 스케일이나 트릴을 쓰는 식이다."

피아니스트이자 음악학자인 로버트 레빈은 음반을 녹음할 때에도 언제나 장식음을 즉흥적으로 연주하고, 협주곡의 카덴차도 즉흥적으로 연주하기로 유명합니다. 또 고음악 전문 지휘자이자 건반악기 연주자인 리처드 이가는 올 초 서울시향을 지휘 및 협연했을 때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4번 c단조 K. 491의 카덴차를 즉흥으로 연주했고, 장식음 사용은 물론 연주 시작에 앞서 짧은 전주를 붙이거나 악장과 악장 사이를 즉흥연주로 연결하기도 했다지요. 요즘은 콩쿠르에서 악보에 없는 장식음을 과감하게 연주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던데요.

악보에 있는 음만을 연주한다는 사고방식이 20세기에 완전히 굳어졌다고 앞서 말씀드렸지만, 이 말은 사실 틀렸습니다. 재즈와 대중음악은 즉흥성을 지켜 왔잖아요!

2019년 6월 28일 금요일

조성진 인터뷰 (2019년)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발간하는 『Grand Wing』 2019년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2019년 5월 6일, 독일 베를린 현지 시각 오전 10시.

Q. 예전에 통영국제음악당에서 협주곡도 했고 리사이틀도 했다. 편성에 따라서 느껴지는 홀 음향에 차이가 있었나?

A. 2014년에 협주곡을, 2017년에 리사이틀을 했다. 그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고, 그동안 홀을 보는 관점들이 달라졌기 때문에 자신 있게 답하기는 어렵지만, 딱히 차이를 느끼지는 못했고 두 번 다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향이 좋지 않은 공연장에서 협주곡을 하면 오케스트라 소리가 섬세하게 들리지 않아서 협연에 어려움이 있는데, 통영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했을 때에는 그런 문제가 전혀 없었고, 관객이 찼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리사이틀 때에는 음향뿐 아니라 조명 또한 매우 편안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Q. 통영 공연 프로그램 중에 알반 베르크 소나타가 있는데, 사람들이 그 이름에 지레 겁을 먹을 것 같다. 이 곡은 어떤 매력이 있는 곡인가?

A. 피아노 소나타 Op. 1은 베르크가 젊었을 때 쓴 곡으로, Op. 1(작품번호 1번)이 이렇게 걸작이라는 것이 신기하고, 내 생각에 모든 Op. 1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 같다. 리사이틀 오프닝 곡으로도 좋은 것 같고, 무게감 있는 여러 곡과 궁합이 잘 맞는 것 같다. 이번에 연주할 리스트 소나타와도 어울리고, 조성도 b단조로 같다. 얼핏 무조음악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조성이 있고, 전통적이고 낭만주의적인 면과 현대적인 면이 조화를 이루는 곡이다. 악보를 보면서 들어보면 이 곡이 전통적인 소나타 형식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 더 잘 이해되고, 음악을 들을수록 신비롭고 오묘한 느낌이 든다.

Q. 이 곡의 음반을 들어보면, 악보에 있는 도돌이표를 지키는 연주자가 있고 그냥 생략하는 연주자가 있다.

A. 당연히 지켜야 한다.

Q. 이 곡을 연주할 때 악보를 정확하게 소리로 재현한다는 느낌을 주는 연주자가 있는가 하면, 곳곳에서 악보에 없는 루바토를 사용해서 낭만주의적인 느낌을 좀 더 살리는 연주자가 있다.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나?

A. 베르크는 악보에 세세한 지시를 매우 많이 해놨다. 일단 그걸 모두 살리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막상 무대 위에 오르면 '내 느낌'을 살리는 일도 중요해지는 것 같다. 미츠코 우치다의 연주가 그런 점에서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Q. 이 곡의 클라이맥스라 할 만한 곳에서, 포르테가 네 겹으로 붙어 있고, 그걸 예비하는 과정에서 크레셴도뿐 아니라 제법 긴 호흡으로 아첼레란도가 붙어 있다. 크레셴도의 다이내믹스를 극대화하는 것과 아첼레란도의 속도감을 극대화하는 것,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A. 브람스 교향곡을 들어보면, 지휘자에 따라서 클라이맥스로 오를 때 템포를 늦춰서 거대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베르크 소나타에서는 반대로 템포를 몰아붙이도록 지시했고, 그래서 조금 신경질적인 느낌을 준다. 클라이맥스의 다이내믹스도 중요하지만, 이 곡에서는 클라이맥스 직전까지 템포를 조이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2년 전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유튜브 공연 영상을 봤는데, 악보에 있는 아주 작은 지시까지 완벽하게 지키면서 암보로 연주해서 깜짝 놀랐다. 어떻게 하면 악보의 아주 작은 지시까지 싹 다 외울 수 있나?

A. 딱히 비결이 있지는 않다. 다만, 같은 곡을 여러 번 연주하다 보면 루바토를 썼던 곳에서 다음번에는 더한 루바토를 쓰게 되거나 하면서 매너리즘에 빠질 위험이 있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악보를 본다. 무대에 나가기 전에 손가락을 푸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나는 연주할 곡이 처음 접하는 곡이라는 생각으로 악보를 다시 보는 편이다. 첼리비다케가 그렇게 한다는 인터뷰를 본 일이 있는데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공연이 끝나고 악보를 보면서 연주를 되짚기도 한다.

Q. 이제까지 쇼팽을 너무 많이 연주해서, 이제는 다른 곡을 더 많이 하려는 것 같다.

A. 쇼팽 콩쿠르 우승자 출신이다 보니 쇼팽을 연주해 달라는 요청이 계속 있었고 그 그대에 부응해야 했는데, 2019년부터는 그런 요청을 그다지 받지 않게 되었다. 의식적으로 공연 프로그램에 쇼팽을 빼려는 것은 아니지만, 리사이틀에 쇼팽이 들어가면 다른 곡들과 어울리게 프로그램을 짜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빼버리는 편이 프로그램 구성에 더 자유로워지는 장점이 있다. 또 크리스티안 지메르만도 쇼팽 콩쿠르에 입상했지만 딱히 쇼팽 스페셜리스트로 불리지는 않는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 또 시마노프스키, 야나체크, 메트너처럼 음악가들 사이에서 유명하지만 대중에게 덜 알려진 곡을 관객에게 들려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Q. 모차르트 협주곡 20번 d단조 음반이 작년에 나왔다. 음반 녹음 과정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A. 체력적으로 힘든 녹음이었다. 오케스트라와 스케줄을 조정하다 보니 녹음할 시간이 하루 반나절밖에 안 나와서 종일 녹음을 해야 했다. 장소는 바덴바덴 페스티벌하우스였고, 피아노는 세 가지 선택지 중 오케스트라 음색과 가장 잘 맞는 것을 골랐다.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조금 '고전적인' 소리를 내는 악단이고, 다른 악단이 흔히 A=442Hz로 조율하는 것과 달리 441Hz로 하더라. (편집자주: 현대 오케스트라는 심한 경우 445Hz까지 높이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고른 것은 조금 옛날 피아노, 아주 옛날은 아니지만 15년~20년 정도 된 스타인웨이 피아노였던 것 같다. 그런데 낡은 피아노라 피아노의 터치감이 들쑥날쑥해서 원하는 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오케스트라는 매우 훌륭했고, 모차르트 협주곡을 수없이 연주해 봤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휘자 야니크 네제세갱은 1~2년 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인데, 매사에 긍정적이고, 배려심 많고, 내가 원하는 것을 빠르고 정확하게 감지하는 지휘자다. 이번 음반이 내가 이제까지 녹음한 것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든다.

Q.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도 이 곡을 연주했다. 그때는 악보에 있는 음만 연주했는데, 이번 음반에서는 2악장에서 악보에 없는 장식음을 제법 많이 썼고, 2년 전에 통영에서 모차르트 소나타 연주했을 때도 장식음을 썼다. 모차르트 당시의 연주 관습을 고려했다는 얘긴데, 작곡 당시의 관습을 어디까지 살리느냐 하는 건 연주자마다 판단을 내려야 하는 문제인 것 같다. 음반 녹음 때 장식음을 즉흥적으로 연주했나, 아니면 음 하나까지 사전에 계획했나?

A. 미리 계획하지만 연주할 때마다 상황에 맞게 변화를 준다.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피아노의 상태이고, 그래서 필라델피아에서 공연했을 때는 음반 녹음 때와는 조금 다른 장식음을 썼다. 예를 들어 스타카토 소리가 예쁘게 나지 않으면 그 대신 스케일이나 트릴을 쓰는 식이다.

Q. 오케스트라 투티가 나올 때는 오블리가토 피아노를 생략하고 솔로만 연주했다. 그게 필요 없다고 생각한 이유가 뭔가? 사용한 악기가 모차르트 시대 피아노가 아니었던 것도 이유가 될까?

A. 그리고리 소콜로프 같은 사람은 오블리가토 피아노까지 다 하던데, 투티에서 오케스트라만 소리내는 게 내 귀에는 더 좋게 들린다. 모차르트 시대 피아노로 협주곡을 연주하는 시도는 아직 한 번도 안 해봤지만, 그건 좀 다를지도 모르겠다.

Q. 통영에서 협주곡을 연주하면서 오케스트라 지휘까지 할 예정이다.

A. 지휘라고 하기는 좀 민망하다. 이번에 처음 해보는 시도인데, 특히 쇼팽 협주곡에서 내가 원하는 오케스트라 소리를 직접 만들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돈 크레머가 창단한 악단인 '크레메라타 발티카'와 쇼팽 협주곡 1, 2번을 협연했을 때, 내가 지휘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휘자 없이 공연했었고, 그때 가능성을 처음 생각하게 됐다. 그런데 솔직히 큰 기대는 안 하셨으면 좋겠다.

Q. 본격적으로 지휘자가 될 생각이 있는 건 아닌 건가?

A. 그런 생각은 전혀 없다. 협주곡 할 때 조금 해보는 정도. 아니면 서곡이나 짧은 교향곡 정도는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가 지휘자로 악단을 맡거나 기획사에서 지휘자로 매니지먼트를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Q. 파리에 살다가 베를린으로 옮겼다. 파리와 견주면 베를린은 연주자로 살기에 어떤 장단점이 있나?

A. 파리가 문화 전반적으로 축복받은 곳이라면, 베를린은 음악에 더 집중된 곳인 듯하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외에도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베를린 도이체 심포니 오케스트라,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등 명문 악단이 베를린에는 여럿 있고, 연주 여행을 갔다 돌아와서 그날 열리는 공연을 찾아보면 항상 좋은 게 있다. 음악을 빼고 나면 베를린은, 최근에 사람이 늘었다고는 해도 아직 파리보다 더 한적한 곳이다. 공기도 파리보다 좋다. 날씨는 별로라서, 겨울에는 다른 곳으로 연주하러 다니는 게 낫다.

Q. 음반 녹음이나 그밖에 국내 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계획이 있다면?

A. 음반은 6월과 10월에 나눠서 알반 베르크 소나타와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 리스트 소나타를 녹음할 예정이고 내년 봄에 발매될 것 같다. 베르크 곡이 포함된 제안을 도이치그라모폰에서 받아준 것이 놀랍고 기쁘다. 1월에 마티아스 괴르네와 함께 바그너 베젠동크 가곡집과 한스 피츠너 가곡 중 일부를 녹음했고, 7월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가곡과 한스 피츠너 추가 녹음, 슈베르트 '하프 연주자의 노래' 연작 녹음이 예정되어 있다.

Q. 통영 관객에게 한마디 해달라.

A. 공연 제안을 받아서 기뻤고, 통영에서 거의 일주일을 보낼 수 있어서 기대된다.

2017년 3월 22일 수요일

피아니스트 조성진 인터뷰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발간하는 『Grand Wing』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지면이 모자라 일부 내용이 삭제되었던 것을 여기에서는 초안 그대로 올립니다.


2017년 3월 6일 월요일, 프랑스 파리 현지시각 오전 10시 15분

Q. 2014년에 통영국제음악당에서 공연했던 일을 기억하는가?

A.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차이콥스키 협주곡 1번을 협연했었다. 공연장 음향이 아주 좋았고, 피아노도 훌륭했고, 분장실 유리창으로 보이는 경치가 아름다웠던 기억이 난다.

Q. 연주회장 음향이 어땠는지 좀 더 말해 달라.

A. 솔직히 국내 공연장 중 음향이 가장 좋은 곳 가운데 하나라 생각한다. 울림이 딱 적당했고, 연주회장 크기도 적당해서 독주회를 하기에도 훌륭할 것으로 기대된다.

Q. 미셸 베로프 선생이 지난해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심사위원으로 왔었다. 그 얘기를 해주던가?

A. 통영 간다는 얘기 정도만 했었다. 콩쿠르에 참가했던 동창이 입상하지 못해 아쉽기도 했다.

Q. 미셸 베로크 선생님께 주로 토론식으로 수업을 받았다고 말한 일이 일다. 선생님께 배운 것이 있다면?

A. 선생님께 배웠던 곡 가운데 드뷔시와 프로코피예프 작품들이 가장 좋았다. 드뷔시 곡은 선생님께서 시범 연주를 해주시기도 하고, 페달링이나 프레이징에 관해 조언을 많이 들었다. 내가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 한국에서는 선생님과 대화를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지만, 프랑스에 와서 그런 성격이 많이 바뀐 덕분에 선생님께 더 많은 것을 여쭤볼 수 있었다.

Q. 하마마쓰 콩쿠르 우승했을 당시만 해도 때때로 쭈뼛거리는 듯한 성격이 연주에 드러난다고 느꼈는데, 요즘 연주에서는 그런 느낌이 사라졌다. 성격이 바뀐 계기를 미셸 베로프 선생님이 제공한 것인가?

A. 그보다는 프랑스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바뀌었던 것 같다.

Q. 통영에서 모차르트 소나타 K. 332와 드뷔시 《영상》, 그리고 쇼팽 발라드 전곡을 연주할 예정이다. 드뷔시와 쇼팽을 고른 이유는 짐작이 되고, 모차르트 곡을 골랐던 이유가 궁금하다. (조성진은 도이체그라모폰에서 드뷔시 곡을 녹음할 계획이며, 그에 앞서 이번 주부터 여러 공연장에서 연주할 예정이다.)

A. 드뷔시와 쇼팽이 잘 어울리는 것처럼, 모차르트와 쇼팽 또한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쇼팽은 모차르트를 매우 존경했었고, '돈 조반니' 주제로 변주곡을 작곡하고 모차르트의 '벨칸토'를 받아들이는 등 음악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쇼팽이 음악에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도 어찌 보면 모차르트 오페라를 닮았다.

Q. 모차르트 곡 가운데 소나타 K. 332를 고른 이유는 무엇인가?

A.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 모차르트 소나타 중에서 하나 골랐을 뿐이다. K. 332는 하마마쓰 콩쿠르 때에도 연주했던 곡인데, 이번에 새로 연주하면서 해석이 어떻게 달라질지 나 자신도 기대된다.

Q. 바흐 곡은 무대에서 거의 연주하지 않는 것 같다. 평소에도 즐겨 연주하지 않는 편인가?

A. 바흐 평균율을 즐겨 연주하고, 프랑스 모음곡이나 파르티타도 가끔 연주한다. 그러나 리사이틀 프로그램에 넣기는 참 까다롭다고 느낀다.

Q. 공연장마다 피아노와 공간의 음향 특성이 다르다. 그때마다 어떻게 적응하는가?

A. 악기가 마음에 안 들면 아무리 연습을 하고 '마인드 컨트롤'을 해도 한계가 있는 것 같다. 피아노 액션을 가지고 다녔으면 싶을 때도 있을 정도다. 그런 점에서 조율사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연주회장 음향도 마찬가지다. 소리가 건조하게 들리는 편이라면 차라리 페달을 많이 쓴다거나 하는 식으로 대응할 수 있고, 템포도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다. 그 반대가 되면 템포를 빨리하기 곤란해진다.

Q. 프랑스 집에 가와이 피아노가 있고, 한국 집에 야마하 피아노가 있다고 들었다. 연주회장에는 대부분 스타인웨이가 있는데, 그밖에 좋아하는 피아노 브랜드가 있는가?

A. 우선 스타인웨이를 선호하는 편이고, 공연장에 따라서는 스타인웨이보다 파지올리가 더 좋은 소리를 내는 곳도 있었다.

Q. 더 옛날 피아노를 쳐본 일이 있는가? 베히슈타인, 뵈젠도르퍼, 또는 19세기식 포르테피아노는?

A. 베히슈타인을 공연장에서 쳐본 일은 없지만, 옛날식 뵈젠도르퍼를 연주한 일은 있다. 바흐나 하이든을 연주하기에 참 좋은 피아노라고 생각한다. 더 옛날 피아노는 박물관에서 잠깐 만져본 적이 있는 정도다. 19세기식 살롱에서 이를테면 쇼팽 마주르카를 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Q. 얼마 전 서울에서 있었던 독주회 때, 쇼팽 연주는 모든 사람에게 찬사를 들었지만 슈베르트 소나타 D. 958 연주는 호불호가 갈렸었다. 본인 스스로 자신의 연주에 얼마나 만족했는가?

A. 연주회장에 소리의 울림이 많았고, 객석에 관객이 찼을 때도 그다지 달라지지 않아서 썩 만족할 만한 소리가 나지 않았다. 둘째 날에는 다른 피아노로 바꾸고 악기 배치와 연주법도 조금씩 바꿨는데, 둘째 날 연주가 더 마음에 들었다.

Q. 그날 연주를 직접 들어보지 못해서 유튜브에 있는 프랑스 공연 실황을 들었다. 그 연주와 전반적인 해석의 기조가 비슷했는가?

A. 달라졌다. 머리 페라이아에게 레슨을 받은 일이 계기였고, 서울에서 좀 더 드라마틱하게 연주했었다.

Q. 이를테면 2악장 첫째 주제를 여리게 노래하듯 연주했다. 나라면 화음을 좀 더 꾹꾹 눌러 소리를 만들겠다는 생각이 들던데, '칸타빌레'가 되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A. 예를 들어 예상치 못한 C장조 화음이 나오는 곳이라면 그 화음을 강조해야겠고, 중간에 조성이 D♭ 단조가 되는 곳에서는 왼손 화음을 좀 더 볼륨 있게 쳐 줘야 느낌이 살아난다. 그러나 가곡을 닮은 곳은 가곡처럼 연주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슈만 가곡에서 피아노가 때때로 강한 자기주장을 하는 것과 달리, 슈베르트 가곡에서는 피아노가 성악과 같은 화성, 같은 선율의 틀 안에서 주로 움직인다.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에서도 그런 곳이 있다. 또 한편으로는 특정 작곡가에게 편견을 갖지 않는 태도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슈베르트답다는 것은 무엇인가? 모차르트가 '돈 조반니'를 발표했을 때, 그 작품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모차르트답지 않다고 받아들여졌었나? 마찬가지로 슈베르트 곡에서 베토벤이 보일 수도 있고, 슈베르트가 베토벤보다 더 드라마틱하거나 더 관현악적일 수도 있다.

(내가 들었던 프랑스 공연 실황 영상에서 조성진은 악보의 세세한 지시를 깜짝 놀랄 만큼 충실하게 지키고 있었다. 악보의 아주 작은 부분까지 모조리 외우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은 연주였다. 조성진의 슈베르트 해석이 철저하게 악보를 근거로 한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

Q. 평소에 연습을 4시간 정도 한다고 예전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 시간에 집중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가?

A. 딱히 비결은 없고, 자연스럽게 집중이 되는 편이다. 물론 피곤하거나 딴생각이 날 때도 있지만, 그럴 때는 연습을 중단한다.

Q. 도이체그라모폰에서 쇼팽 음반을 녹음했고, 이번에 드뷔시를 녹음할 예정이다. 향후 계획은?

A. 6월에 드뷔시를 녹음할 예정이고, 그 이상은 아직 말하면 안 될 것 같다.

Q. 통영 관객들에게 한 말씀 해달라.

A. 통영에서 독주회 제의가 왔다고 프랑스 매니저에게 연락을 받았을 때 단숨에 승낙했다. 2014년에 통영에서 공연했을 때 너무 좋아서 꼭 다시 가고 싶었고, 그래서 이번 공연이 많이 기대된다.

2011년 3월 16일 수요일

일본 클래식 음악계 잇따른 악재

※ 지난 11일 대지진이 일본을 강타한 당일 소식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일본 지진, 음악회는 그래도 열리더라」

11일부터 연주회를 취소했던 BBC 필하모닉은 일본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영국으로 돌아갔습니다. (☞ 『가디언』 기사 보기)

도쿄 신 국립극장(New National Theatre Tokyo)은 오페라 《마농 레스코》 등 예정된 공연을 취소했습니다. (☞ 극장 공식 홈페이지 공지문 보기(영어) ☞일본어 공지)

최근 식도암 수술과 허리 수술을 받은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는 오는 8월 무대에 복귀할 예정이었으나 내년 1월로 일정을 연기했습니다. (☞ AFP 기사 보기)

11일 베르디 《운명의 힘》을 공연했던 피렌체 마지오 무지칼레(Maggio Musicale Fiorentino)는 남은 일정을 취소하고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가수 두 명이 계약을 취소하고 도망가 버린 상태에서도 오페라단 측은 공연을 강행하려 노력했으나, 끝내 피렌체 시장이 복귀 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 참고)

체코 필하모닉은 13일까지 직접적인 지진 피해가 없는 곳에서 공연했으나 도쿄 공연 등 남은 일정을 취소하고 복귀했습니다. 체코 정부가 직접 복귀 명령을 내렸고, 이 과정에서 군용기까지 동원된 소개작전이 펼쳐졌다고 합니다. 지휘자는 정명훈이었는데 한국에 돌아왔다는 소식은 아직 없는 듯합니다. (☞ 『연합뉴스』 기사 ☞ 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 블로그)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13일 도쿄 공연을 끝내고 이튿날 하마마쓰 아카데미에 참석했습니다. 귀국 예정일은 22일입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앤 아키코 마이어스(Anne Akiko Meyers)도 일정을 취소했습니다. 마이어스는 3월 24~25일에 KBS 교향악단과 협연할 예정입니다.

11일 신 일본 필하모닉을 지휘해 말러 교향곡 5번 등을 공연한 대니얼 하딩은 그 뒤로 리허설이 잇따라 취소되어 끝내 일본을 떠나야 했습니다.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공연할 예정입니다. 그러나 지휘자 앙드레 프레빈은 공연 기간 중 인터뷰 등 일본에 도움이 될 만한 정치적 행보를 거부했습니다. 이에 대해 음악 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는 "지휘자가 하는 일은 이끄는 일이다. 그가 대재앙 속에서 이끄는 일을 할 수 없다면 지휘자 노릇도 하지 말아야 한다. 부끄러운 줄 알라."라며 모질게 비판했습니다. (☞ 원문 보기)

베를린필은 일본 일정을 강행한다고 현지 시각으로 지난 14일 밝혔습니다. (☞ 『베를리너 차이퉁』 기사 보기)

뒤셀도르프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3월 26일 톤할레(Tonhalle Düsseldorf)에서 연대(solidarity) 공연을 연다고 밝혔습니다. 사도 유타카 지휘로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연주할 예정입니다. 뒤셀도르프는 독일에서 일본인이 가장 많은 도시라고 합니다. (☞ 원문 보기)

나중에 붙임: 뒤셀도르프 공연에 한국인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윤태현)이 솔로를 맡는다고 합니다. 바그너 좋아하시는 분들은 다들 아시는 분이죠? ^^

▲ 베를린필과 사이먼 래틀이 일본에 보내는 메시지

글 찾기

글 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