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1일 화요일

노래하는 배우, 생각하는 음유시인 ―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 인터뷰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발간하는 『Grand Wing』에 실린 글입니다. 인터뷰 뒷얘기는 ☞요기를 참고하세요.


2015년 9월 22일, 영국 시각 오전 9시 30분. 영국으로 전화를 걸어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를 인터뷰했다.

Q. 기타 반주로 특히 다울랜드를 노래한다는 아이디어는 옛날 음유시인이 류트 반주로 노래했던 일을 연상시킨다. 이런 점에서 '현대 류트'라 할 수 있는 기타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A. 노래를 원형에 가깝게 되살리는 일에 기타의 친화성(intimacy)이 매우 유용하다. 현대 피아노는 너무 크고, 말하자면 산업화한 악기다. 겉은 나무이지만 기본적으로 쇠로 된 '괴물'이다(웃음). 물론 슈베르트 시대 피아노는 훨씬 섬세했지만, 슈베르트도 기타를 사용했다. 그가 특별히 기타 음악을 쓰지는 않았더라도 슈베르트 곡이 생전에 기타 반주로 불리곤 했다. 또 기타의 휴대성 덕분에 집 밖이나 다른 사람의 집에 기타를 가져가 함께 노래할 수도 있다. 류트는 리듬적으로 복잡하다고 할 수 있겠고, 매우 아름다운 악기이지만, 기타는 리듬과 셈여림을 다루기 더 쉬운 실용성이 있다. 다만, 기타 소리가 류트의 '원형'과는 다르다는 사실은 특히 다울랜드를 부를 때 단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Q. 슈베르트 시대나 18세기 포르테피아노는 어떤가?

A. 옛날 피아노 소리는 훨씬 부드럽고 다채로웠다. 우리는 현대 피아노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현대 피아노의 큰 음량에 맞추어 그만큼 큰 소리로 노래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한편, 요즘 공연장에는 다들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있으므로 조율이나 관리 등이 표준화되어 있는 점은 장점이다. 그러나 현대 피아노로 페달을 너무 많이 쓰게 되니까 문제다. 그러면 밸런스 문제가 생긴다.

Q. 쉐페이 양을 어떻게 알게 되었나?

A. 음반사(그때는 EMI였고 지금은 워너뮤직)와 런던에 있는 내 기획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래서 브리튼의 《중국 시인들의 노래》와 한스 베르너 헨체, 슈베르트 등을 녹음했다. 쉐페이 양은 같이 일하기 참 좋은 사람이며 훌륭한 음악가다.

Q. 스티븐 고스가 당신과 쉐페이 양을 위해 쓴 《시경》(詩經; 2014)이라는 작품을 소개한다면? ('The Book of Songs'의 번역을 '시경'으로 나중에 고침.)

A. 요즘 그걸 공부하고 있는데 기막히게 아름다운 작품이다. (현대곡이지만) 어렵지 않고, 어떤 곡은 민요풍이다. 가사로 쓰인 시는 이 곡으로 알게 됐는데, 어떤 점에서는 브리튼의 《중국 시인들의 노래》와 비교할 만하다.

Q. 협연하고 싶은 음악가로는 또 누가 있나?

A. 너무 많은데… 올해 협연하고 있는 음악가로 작곡가 토마스 아데스, 피아니스트는 줄리어스 드레이크, 라르스 포크트, 지휘자로는 대니얼 하딩,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사이먼 래틀. 이런 최고의 음악가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Q. 이안 보스트리지의 가장 탁월한 점은 연극적 생동감이 아닐까 한다. 비결이 무엇인가?

A. 음악의 강도(degree of intensity)에 반응하는 것이다. 내가 즐겨 부르는 노래는 그 자체로 강한 음악, 극적인 요소가 있는 음악, 그래서 주의를 끄는 음악이다.

Q. 발성이나 그밖에 '음악적인' 요소에 집중하는 다른 가수와 달리 당신 노래에는 '드라마'가 있다.

A. 드라마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즘 성악가는 대부분 오페라를 주업으로 하는데, 가끔 리사이틀을 하면 뭔가 다른 걸 하게 되고, 그래서 '드라마틱'하지 않게 된다. 나는 가곡이 주업이라 그 속의 '드라마'에 언제나 끌리곤 한다.

Q. 오페라 가수들은 이른바 '마스케라'를 쓴다. 당신 목소리는 그와는 다르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 마스케라를 쓰기는 할 것 같다. [마스케라(maschera)는 일종의 비강공명법으로 벨칸토 창법에 주로 쓰인다. 본디 이탈리아 말로 '가면'이라는 뜻이며, 발성할 때 가면을 쓴 듯한 느낌이 든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마치 머릿속에서 소리가 울리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므로 '두성'(頭聲)이라고도 한다.]

A. 마이크를 쓰지 않는 이상 공연장에 소리를 전달하려면 '울림통'이 있어야 한다. 그게 '얼굴'(웃음) 또는 '머리'라 할 수 있다.

Q. 그렇다면 다울랜드, 바흐, 슈베르트 등을 부를 때 발성의 원칙은 무엇인가?

A. 그건 가사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Q. 가사? 음악 양식(style)이 아니라?

A. 음악 양식일 수도 있겠지만, 어떤 노래가 그 당시 참모습이 어땠는지 아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결국 양식이란 건 상상을 보태서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작곡가마다 분명 다르지만, 다루는 방식이나 부르는 사람에 따라 공통점도 생긴다.

Q. 당신은 역사학 박사이자 옥스퍼드 대학 인문학 교수이다. 예술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그냥 거울처럼 사회를 반영할 뿐이라 생각하나?

A. 상호작용한다고 본다. 예술은 분명 사회에 영향을 끼칠 수 있고, 의제를 설정하거나 정치적 여론 형성에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그러니까 끝없는 상호작용의 연쇄다. 클래식 음악은 지금에 와서는 19세기나 20세기처럼 정치 담론과 특별히 연결된 예술 장르는 아닌 듯하다. 어쩌면 그게 좋을 수도 있는데, 클래식 음악이 딱히 좋은 영향을 끼쳤는지 확신이 안 들기 때문이다. 다만, 클래식 음악, 특히 오페라의 비용이나 위치를 둘러싼 이슈는 유효하다. 즐기는 사람은 적은데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이게 민주사회에서 문제가 된다.

Q. 어느 분야이든 존경하거나 흥미를 느끼는 예술가가 있다면?

A. 시각예술을 감상하거나 책을 읽는 등 다양하게 관심이 많다. 특정한 사람을 꼽기는 어렵고, 그때그때 다르다.

Q. 자신이 녹음한 음반 가운데 어떤 것을 좋아하는가?

A. 음… 사이먼 래틀 지휘, 베를린필과 협연한 브리튼 가곡집을 좋아한다. 몬테베르디 《오르페오》 (에마뉘엘 아임 지휘) 음반과 찰스 매케라스가 지휘한 《이도메네오》도 좋아한다.

Q. 한국이나 한국 관객에 대해 어떤 느낌을 받았나?

A. 젊고 에너지가 넘치는 점이 특별하다. 공연할 때마다 옛날 음악이 아닌 새로운 음악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이 멋지다.

Q. 향후 계획이 있다면?

A. 《겨울 나그네》를 한스 첸더가 오케스트라 곡으로 재창작한 작품을 녹음할 예정이다. 말하자면 창작인 동시에 《겨울 나그네》에 대한 해석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런던에서 공연한 다음 미국과 세계 여러 공연장에서 공연할 생각이다. 몬테베르디 작품을 공연할 계획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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