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22일 금요일

피아니스트 니콜라이 루간스키 인터뷰

서울시립교향악단 매거진 『SPO』에 실린 글입니다.
서울시향 블로그 게시글: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6627279


2019년 10월 7일 월요일, 모스크바 시각 오후 1시. 올 11월에 서울시향과 협연할 피아니스트 니콜라이 루간스키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짧지 않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간단한 인사말 정도를 의도한 마지막 질문을 했을 때, 그가 뜻밖에 길고 진지한 답변을 해서 나는 놀랐다. 이때 인터뷰를 녹음하던 녹음기가 오작동해서 답변의 일부가 소실되었으나, 루간스키가 한 말의 요지는 세월이 흘러도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은 언제나 변함없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음악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은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가 했던 말 곳곳에서 느껴졌다. 어떤 것에 깊이 몰입하면서 심지어 영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어쩌면 러시아 사람들의 기질인 것 같다는 생각을 루간스키의 말을 들으면서 해 보았다.


Q. 지난 2005년에 분디트 웅그랑시(Bundit Ungrangsee)가 지휘한 서울시향과 쇼팽 협주곡 2번을 협연했었다.

A. 8월 말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옛날 일이 아닌 듯한데 2005년이라니 놀랍다. 서울시향의 연주가 훌륭했던 기억이 나고, 그래서 이번에 프로코피예프를 협연할 일이 기대된다.

Q.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2번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A.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피아노 협주곡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프로코피예프는 20세기 작곡가인데도 이 작품은 매우 낭만주의적이고 비극적이며, 드라마틱하고 힘이 넘친다. 프로코피예프는 페달을 사용한 방식 등이 매우 낭만주의적이면서 한편으로는 피아노를 타악기처럼 다루는 등 새로운 연주법을 도입했고, 이 곡에는 여러모로 현대적인 음악 어법이 19세기 음악 양식 속에 녹아 있다. 때로는 라흐마니노프의 영향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물론 프로코피예프가 이 말을 들었다면 화를 냈을 것 같다(웃음). 그러나 프로코피예프가 이 작품을 쓸 당시에 라흐마니노프 음악 양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은 분명하며, 그 이후에는 좀 더 독자적인 양식을 발전시켰다.

Q. 이 작품과 관련한 개인적인 추억이 있다면?

A. 내가 28살쯤이었을 때 이 곡을 처음 공연했다. 아마도 오스트리아 그라츠(Graz)에서 연주했던 것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지금도 연주할 때마다 내게 큰 도전이 되는 난곡이다. 처음 익힐 때 나는 27살이었는데,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이나 브람스 협주곡 2번보다 어렵다고 느꼈지만, 결국 8일 만에 악보를 외우고 ‘가슴으로’ 연주할 수 있었다.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은 3일 만에 익혔다.) 처음 공연했을 때 연주를 꽤 잘했던 것 같고, 그래서 지금 생각하면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젊어서 그럴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곡을 한국에서 연주하는 것은 처음이라서 이번 공연이 기대된다.

Q. 이 곡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대목이 있다면?

A. 이 작품의 모든 곳을 좋아해서 한 군데만 꼽기는 어렵다. 시작 부분의 신비롭고 영적인 느낌은 프로코피예프를 제법 아는 사람도 깜짝 놀랄 만큼 뜻밖이며 매우 아름답다. 1악장 카덴차는 아마도 모든 피아노곡을 통틀어 가장 힘 있고 거대한 카덴차일 것이다. 중간 악장과 피날레 악장도 마찬가지로 훌륭하다. 4악장에서 타악기 느낌이 강한 앞부분을 지나 중간 부분에 이르면 전형적인 러시아 민요풍 선율과 그 변형이 참 아름답게 흐른다. 4악장 카덴차는 1악장만큼은 아니지만 매우 드라마틱한 클라이맥스를 이끌어낸다.

Q. 만약 프로코피예프를 실제로 만난다면 어떤 질문을 하고 싶나?

A. 프로코피예프 본인은 정말로 이 곡을 연주할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웃음). 협주곡 2번보다는 가장 어려운 협주곡 4번이 가능한지 특히 궁금하다. 피아노 협주곡 4번은 왼손으로만 연주하게 되어 있는데, 그렇게 하기에는 나에게도 너무나 어려운 곡이다. 인터넷을 검색해 봐야 하겠지만, 아마도 프로코피예프는 생전에 협주곡 4번을 직접 연주한 일이 없을 것이다. 만약 있다면 그 경험에 관해 들어보고 싶다. 그리고 프로코피예프는 체스 실력이 뛰어났으므로 체스에 관한 얘기를 들어보고도 싶다.

Q. 지휘자 안드레이 보레이코(Andrey Boreyko)와 예전에 협연한 적이 있나?

A. 그와는 여러 번 협연했다. 첫 번째는 아마도 콜마르(Colmar)에서 열렸던 스피바코프 페스티벌에서였고 그 뒤로 독일, 이탈리아를 비롯해 유럽 곳곳에서 다시 만났다. 아르메니아 예레반에서는 여러 번 협연했는데, 신기하기도 러시아에서 협연한 일은 없다. 3년 전 브뤼셀에서 벨기에 국립 오케스트라와 브람스 협주곡 1번을 협연했던 일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서울시향과 협연하는 이번 공연은 유럽이 아닌 곳에서 보레이코와 협연하는 첫 번째 공연이다.

Q. 안드레이 보레이코는 어떤 지휘자라고 생각하나?

A. 훌륭한 지휘자다. 매우 열정적이고 감수성이 풍부하다. 음악을 무성의하게 대하는 일이 결코 없고, 인생의 다양한 감정을 음악에 담아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지휘 테크닉에 관해서는 내가 지휘자가 아니라서 별로 할 말이 없다.

Q. 세계 여러 공연장에서 공연해 왔다. 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을 말한다면?

A. 하나만 꼽기는 어렵다.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바우, 빈 무지크페라인과 빈 콘체르트하우스, 뉴욕 카네기홀,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 대공연장,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니아 홀, 필하모니 드 파리 등이 특히 훌륭했다.

Q. 차이콥스키 음악원에서 타티아나 니콜라예바를 사사했다. 그는 어떤 선생님이었나?

A. 선생님이기 이전에 위대한 피아니스트였고, 모범이 되는 예술가였으며, 매우 폭넓은 레퍼토리를 가졌고 스스로 작곡을 하기도 했다. 내가 13살, 14살, 또는 15살이었을 때 그분은 몇 주일씩 연주 여행을 다니느라 나를 혼자 내버려 두기 일쑤였고, 그런 점에서 타티아나 니콜라예바는 흔히 생각하는 선생님과는 달랐다. 뭐랄까, 예술가로서 본받아야 할 모범이면서 조언자라 할 수 있는 분이었다. 그런데 그분이 내게 해 준 조언은 몇 년 앞을 내다본 것들이었다.

Q. 니콜라예바에게 어떤 것을 배웠나?

A. 그는 음악에 관한 호기심이 많고 열린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다. 언제나 새로운 연주법을 고민하고 새로운 음반을 듣거나 새로운 악보를 공부했다. 그런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본받은 것이야말로 가장 큰 배움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Q. 현재 차이콥스키 음악원 교수이다. 그곳의 장점은 무엇인가?

A. 나는 세르게이 도렌스키(Sergei Dorensky) 교수님을 보조하는 사람이다. 도렌스키 선생님은 스타니슬라프 부닌, 데니스 마추예프 등을 가르친 훌륭한 분이다. 나는 그분을 도와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있지만, 사실 연주 여행을 다니느라 내 제자를 따로 가르치지는 못한다.

Q. 그렇다면 교수 입장에서 학교 자랑을 하기보다 그곳 학생이었을 때를 생각해 본다면?

A. 차이콥스키 음악원은 훌륭한 음악가를 양성하는 데 필요한 총체적인 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곳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훌륭한 것은 차이콥스키 음악원 대공연장에서 훌륭한 공연을 자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곳은 러시아에서 가장 훌륭한 공연장이며, 내가 학생이었을 때에는 그곳에서 거의 매일 공연을 봤다.

Q. 한국에서 피아노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달라.

A.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을 되도록 많이 듣고, 언제나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라.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에 대한 열정이다.

Q. 취미가 무엇인가?

A. 일이 없을 때 여러 가지를 하지만, 굳이 취미라 할 만한 것들을 꼽아 보자면 우선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3개국어를 하는데(러시아어, 독일어, 영어), 물론 가장 익숙한 언어는 러시아어다. 그 밖에 탁구, 배드민턴, 체스 등을 좋아한다.

Q. 한국 팬들이 관심 가질 만한 앞으로의 일정을 알려달라.

A. 파리, 브뤼셀, 예레반, 몬트리올, 취리히, 워싱턴, 런던, 베를린 등에서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또 아르모니아 문디(Harmonia Mundi) 레이블로 라흐마니노프 전주곡과 베토벤 후기 소나타 등이 음반으로 발매될 예정이다.

Q. 한국 관객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A. 한국에서 공연할 때 객석의 열띤 분위기가 좋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관객들이 언제나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하기를 바란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서 많은 것이 바뀌지만, 음악은 여러분이 16세일 때도, 40세일 때도, 80세가 되었을 때도 변함없이 인생의 중요한 의미를 간직할 것이다. 여러분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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