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20일 일요일

경계를 넘어서는 음악에 관하여

통영국제음악재단 매거진 『Grand Wing』에 '김원철의 박신(剝身) 클래식 ― 클래식 까주는 남자' 시리즈로 연재하는 글 2편입니다.


"상대성 이론은 시공간의 대칭성 위에서 성립되고[…]."

언젠가 과학 수필을 읽다가 이런 알쏭달쏭한 말이 나와서 물리학을 전공한 지인에게 물어봤습니다. 여기서 대칭이라는 말은 일상적인 의미가 아니라 수학적인 개념으로 고등학교 수학 시간에 배웠을 거라고 하더군요. 생각해 보니까 제가 고등학생 때 이걸 배웠… 크흠.

음악에서도 수학처럼 일상적이고 전통적인 개념을 확장해서 쓸 때가 있습니다. 무조음악은 따지고 보면 조성을 확장한 것이라 할 수 있고, 미분음은 음계 개념을 확장했다고 할 수 있겠죠. 현대음악이 아니더라도, 이를테면 베토벤이 교향곡에 합창을 사용한 것처럼 기존 개념을 확장하려는 시도는 늘 있었습니다.

윤이상 작곡가는 전통적인 화음 개념을 확장해서 음을 '덩어리'로 만든 이른바 '클러스터'(cluster) 기법을 알게 되면서 기막힌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이것을 응용해 서양음악으로 한국음악의 '음향'을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음악에서 클러스터를 조직하고 움직이는 원리를 고민하던 서양 작곡가들에게 정중동(靜中動)이라는 멋진 돌파구를 제시하기도 했고요. 이렇게 윤이상 선생은 작곡가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쌓게 됩니다.

윤이상은 "동양의 사상과 음악 기법을 서양음악 어법과 결합해 완벽하게 표현한 최초의 작곡가"라고 평가받습니다. 그러나 음악학자 윤신향은 윤이상 음악에 "융화되지 않는 이중구조"가 있으며, 이것은 유럽에서 활동하던 윤이상에게 동서양 문화가 대등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지적합니다. "두 세계 사이의 진정한 융화는 작곡자의 삶이 음악어휘를 결정할 때마다 그늘처럼 은폐되는 한국적 정신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그곳에서만 가능하다." 윤이상 선생이 통영을 그토록 그리워한 까닭이 여기에 있지 않았을까요.

"한국적 정신유산"과 서양음악 어법 사이에서 길을 찾는 일은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모든 음악가에게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 길은 저마다 다르겠지요. 통영국제음악당 여름 시즌에서 소개하는 음악도 어찌 보면 두 세계의 경계를 뛰어넘는 음악입니다. 국악을 뿌리로 하는 월드뮤직, 태생부터 여러 음악이 섞여 만들어진 재즈, 그리고 남아메리카 이주민이 새롭게 만들어간 전통이 유럽에 역수입된 탱고.

프랑스 사상가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는 구획되고 고정된 '홈 파인 공간'과 새로운 곳으로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는 '매끄러운 공간'을 나누어 설명하면서 사회 변화에 관한 사유를 펼친 바 있습니다. 홈 파인 공간에서 매끄러운 공간으로 나아가는 일은 새로운 홈이 파인 공간, 그러니까 새로운 전통을 만드는 일과도 이어집니다. 익숙한 생각을 넘어서는 열린 마음으로 경계를 횡단하는 음악을 만나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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