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21일 화요일

윤이상의 '라' - 음악적 해탈을 향하여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발간하는 『Grand Wing』에도 실렸습니다.


윤이상 선생에 관한 문헌은 파란만장했던 인생사를 다루는 내용과 음악 전문가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학술적인 내용으로 양극화되어 있습니다. 그분이 남긴 음악을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도움을 주는 글은 그다지 많지 않은 듯해요. 그래서 저는 요즘 하는 말로 '지식 소매상' 노릇을 이참에 직접 해볼까 생각했습니다. 통영국제음악당에서는 윤이상 탄생 100주년을 맞아 윤이상 선생의 여러 작품을 무대에 올리려 준비하고 있지요. 그 프로그램 노트를 요즘 제가 직접 쓰고 있어요.

"감방에서의 지리하고 답답한 긴 하루가 지나가면 취침 나팔 소리가 울린다. 슬픈 멜로디의 나팔 소리, 그리고 깊은 정적이 시작된다. 나는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먼 산 속 절간에서 울려오는 목탁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어느 죄수가 사형될 때 스님이 그 영혼을 인도하기 위하여 염불하며 두드리는 소리라고…."

이수자 여사는 『내 남편 윤이상』이라는 책에서 윤이상의 경험을 이렇게 전합니다.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좋을 듯해요. 윤이상 첼로 협주곡을 들어 보면 인용한 글과 맞아떨어지는 대목이 있고, 프로그램 노트에 저는 이렇게 썼습니다.

"[…] 첼로의 두 번째 '독백'이 이어진다. 베이스클라리넷과 알토플루트가 '취침 나팔' 소리를 내고, 목탁 소리가 들려온다. 마치 배가 물결을 헤치고 나아가듯 미분음으로 미끄러지는 현 소리가 그로테스크하다. 첼로의 세 번째 '독백'이 이어진다."

윤이상은 첼로 협주곡을 기점으로 자신의 작품에 음악 외적인 '메시지'를 담기 시작했습니다. 그 메시지 중에는 정치적인 것도 있지만, 그보다 정신적인 해탈을 추구하는 작품이 많아요. 해탈을 거쳐 다다를 수 있는 이상적 세계, 신의 세계, 도(道)의 세계를 윤이상은 '라'(A) 음에 특별한 상징성을 부여함으로써 표현하곤 했습니다. 제가 쓴 프로그램 노트에서 그것이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지를 조금씩 살펴볼까요?

마지막 단락에서 첼로는 '라'(A) 음을 향한 고행을 시작한다. 길고 처절한 노력 끝에 '솔'에 이르고, 다시 힘을 내서 반음 더 높은 '솔♯'에 이른다. 더 오르지 못하고 '솔♯' 음을 길게 내던 첼로는 마지막 힘을 모아 도움닫기를 한다. 솔♯, 거기서 1/4음 더!
그리고 첼로는 생명을 다한다. 오보에가 첼로를 대신해 '솔♯'에서 '라'로 상승한다. 트럼펫이 '라' 음을 이어받고, 음악이 끝난다. (첼로 협주곡)

곡 전체의 클라이맥스라 할 만한 곳에서 바이올린은 자꾸만 높은 음으로 노래하다가 끝내 '해탈'에 이릅니다. 그러나 여기서 느껴지는 감정은 깨달음을 얻은 환희가 아닙니다. 그냥 세상 번뇌를 다 놓아버리는 것이 '해탈'의 실체인 듯해요. 그렇게 슬픈 카타르시스가 가장 높은 음에서 별빛처럼 아름답게 반짝입니다. 그리고 속세에 찌꺼기처럼 남은 먹먹함이 천천히 음악을 끝맺습니다. (바이올린 소나타)

세 번째 부분에서 독주 클라리넷이 마지막 '독백'에 이어 끝내 '라' 음에 이르는 모습은 통쾌하다. 클라리넷은 마지막 순간 '미' 음에서 빠른 음형으로 순식간에 세 옥타브를 솟구쳐 올라 '라'에 이르고, 짧게 숨을 들이켜면서 단6도 낮은 '도♯' 음으로 매우 여리게 다시 시작했다가 단숨에 '라'로 뛰어올라 어마어마한 크레셴도로 '승리'를 선언한다. (클라리넷 협주곡)

음악학자 볼프강 슈파러가 "짧은 재현부 같은 에필로그"라 표현한 마지막 부분에서는 음들이 마침내 '정상'에 올라 평화를 찾은 듯 보인다. 그에 바로 앞서 제1 바이올린은 작곡가가 해탈을 상징하는 음으로 즐겨 사용하던 '라'(A) 음에 이르고, 강렬한 트릴로 소리친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다다른 곳이 진정한 도(道)의 세계일까?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현악사중주 4번)

이 작품에서 살아 움직이는 개별 음은 헤테로포니(heterophony)라 불리는 동아시아 음악의 생동 원리를 담고서, 폴리포니(polyphony)라 불리는 서양 다성음악의 음 조직 원리 속에 조화를 이룬다. 동動-정靜-동動 세 부분으로 된 짜임새는 서양음악의 세도막 형식과 화합하며, 또한 그 속에서 개별 음이 보이는 음양(陰陽)의 흐름이 조화롭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윤이상류 관악 영산회상(靈山會相)'이라 할 만하다. (클라리넷, 바순, 호른을 위한 트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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