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국제음악당 매거진 『Grand Wing』에 실린 글입니다.
Q. 새 앨범 《Breakthrough》의 첫 곡 "Point of View Redux"는 피아니스트 엘다 장기로프의 역량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저음으로 으르렁거리는 반복음형부터 오른손으로 마구 쏟아내는 선율까지, 악기에서 참 다채로운 소리를 뽑아내시는데요.
A. 예. 중요하면서도 주목을 덜 받는 게 한 가지 있는데, '프레이징'입니다. 다이내믹스와 시간과 터치를 조절하는 능력이 선명하고 훌륭한 소리를 만들어 내지요. 저는 피아노를 칠 때 고르게 이어지는 소리를 내려고 많이 노력해요. 제 연주를 들어보면 그런 게 느껴질 거라 생각하고요. 그러니까 음악은 표현이 내용만큼이나 중요합니다. 같은 곡을 악보에 옮겨서 다른 연주자에게 주면, 그 연주자가 프레이징을 다르게 해서 소리가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Q. "Point of View Redux"는 사실 이전 앨범에 수록한 곡을 재창작한 것인데요. 어떤 식으로 재창조 작업을 하셨나요?
A. 이 곡은 2005년에 발매한 앨범 《Eldar》에서 따온 것으로 위대한 색소폰 연주자 마이클 브레커를 위한 곡이었지요. 그분과 함께 작업했던 게 저에게 너무나 큰 경험이었기 때문에, 그분이 돌아가셨을 때 뭔가 추모할 만한 곡을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 곡을 새로 써보기로 했고요. 원곡에서 극적인 요소를 따와서 재창조 작업을 거친 게 바로 이거예요. 음악적으로 발전된 곳도 있지만, 인간적인 부분도 있어요. 마이클 브레커 추모곡이니까요.
Q. 전에 《Virtue》라는 앨범을 녹음했을 때 하신 말씀이, 다른 음악가들과 달리 새 앨범을 내고 그걸로 공연하러 다니는 게 아니라, 새 곡을 쓰면 그걸 녹음하기 전에 공연부터 다닌다고요. 이번에도 《Breakthrough》 앨범을 내면서 그렇게 하셨나요?
A. 예. 공연부터 하고 나서 녹음한 게 90%쯤 됩니다. 새 곡을 쓰면 우리 공연 프로그램에 넣고, 거기서부터 프로젝트가 커가지요. 저는 스튜디오에서 곡을 쓰는 걸 안 좋아합니다. 그건 낭비거든요! 준비는 집에서 하고, 스튜디오에 가면 연주만 해요. 보통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한 번 하면, 그걸 곧바로 들어요. 그래서 좋으면 그걸로 가는 것이고, 아니면 다시 녹음하는 거죠.
Q. 새 앨범 제목 《Breakthrough》(혁신)에 어떤 의미가 있나요?
A. 이건 색소폰 연주자 크리스 포터가 참여한 곡 제목이기도 하지만, 음악가라면 늘 어떤 경지에 오르려고 노력하잖아요. 저는 모든 것을 실험으로 시작합니다. 자동항법장치로 항해하는 것처럼 이미 배운 것들로만 연주하기는 쉽죠. 하지만 저는 새로운 것을 잘 배우고 싶어요. 그래서 이 프로젝트를 위해서 새로운 것을 꼼꼼하게 배우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Q. 어떤 것을 배웠나요?
A. 작곡도 많이 했고, 또 클래식 음악에서 많은 것을 배워서 바흐, 브람스,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독주곡 음반도 냈지요. 언제나 느끼지만, 걸작을 익히면 훌륭한 선율과 화성 전개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걸작에는 어떤 '논리'같은 게 있는데, 이를테면 선율의 논리는 주제를 구축하고 클라이맥스로 확장해 나가는 데 있어요. 또 화음이 어떤 식으로 해결되면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게 되고요. 이런 장치를 배우는 일은 음악적 어휘력을 높일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감명을 주는 음악을 만들 수 있게 해줍니다.
Q. 새 앨범을 준비하면서 클래식 음악 말고 또 어떤 음악을 들었나요?
A. 다양하게 들었죠. 빌리 홀리데이를 자주 들으면서 프레이징을 어떻게 하는지를 매우 관심 있게 들었고요. 그래서 빌리 홀리데이가 불렀던 곡 중에서 "Good Morning Heartache"를 녹음하기도 했죠. 빌리 홀리데이가 부른 발라드가 특히 흥미로워서 음반에 실을 곡을 정할 때 많이 참고했어요. 또 재즈 명곡을 녹음하고 싶었는데, 너무 흔한 곡은 싫었거든요. 그래서 결국 어빙 벌린의 "What'll I Do"를 골랐습니다. 선율이 참 아름다워서 저한테 팍 꽂혔지요.
Q. 테크닉이 매우 뛰어난 연주자로 알려졌는데요, 그게 어떤 도움이 되나요?
A. 테크닉은 악기를 익히는 일에 시간을 쏟으면 기본으로 얻어지는 겁니다. 선율과 화성에 관해 이해하는 일도 마찬가지이고, 시간 감각과 음악적 아이디어를 물 흐르듯이 펼치는 능력도 그렇습니다. 저는 하농 같은 걸 반복 연습하면서 시간을 보낸 일이 전혀 없어요. 제 테크닉은 악기 앞에서 진지하게 '연주'를 하면서, 또 어려서부터 재즈 명곡부터 바흐까지, 또는 다양한 음계나 작곡을 배우면서 얻은 것이지요.
사람들이 곧잘 말하기를 "이 음악가는 테크닉이 뛰어나고, 이 음악가는 '독창성'이 있다"라고 하지요. 이건 순전히 편견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언제나 음악을 배우는 사람,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 악기를 연주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을 진심으로 즐기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이 제 음악을 즐기기를 바라는 만큼 저 자신도 음악을 즐기고 싶은 사람이에요. 음악을 향한 열정과 경의가 그걸 가능하게 합니다.
출처: 음악 전문지 『Keyboard』 2013년 6월호
존 레건(Jon Regen) 글 · 김원철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