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6일 목요일

함부르크의 엘프필하모니, 1조 원을 투자할 수 있는 사회

통영국제음악당 매거진 'Grand Wing'과 한산신문에 나란히 실린 칼럼입니다.
본문에서 거의 통채로 인용한 정다샘 님의 칼럼 원문:

https://www.facebook.com/artiseee/videos/1361588493926719/


지난 1월 11일, 전 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이목이 독일 함부르크로 집중되었습니다. 엘베 강을 마주한 곳에 새로운 공연장 엘프필하모니(Elbphilharmonie)가 개관했고,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인 NDR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NDR 엘프필하모니 오케스트라'로 이름을 바꾸어 새 공연장에 상주하게 되었으며, 독일 출신 세계 정상급 현대음악 작곡가인 볼프강 림(Wolfgang Rihm)의 신작이 이곳에서 세계초연되었지요. NDR 방송국이 제작한 공연 실황이 인터넷으로도 중계되었습니다.

개관 첫 공연에서는 벤자민 브리튼, 앙리 뒤티외, 베른트 알로이스 침머만, 롤프 리버만, 올리비에 메시앙 등의 현대음악 사이에 에밀리오 데 카발리에리, 야콥 프레토리우스, 줄리오 카치니 등 16세기 작곡가의 작품이, 그리고 2부에서는 바그너 오페라 《파르지팔》 중 1막 전주곡, 볼프강 림 신작, 그리고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중 4악장이 연주되었습니다. 중간 휴식을 빼고 나면 모든 곡이 끊임 없이 이어지는 짜임새였지요. 탁월한 선곡에 탁월한 연출이었습니다.

영국을 대표하는 일간지 『가디언』은 이 역사적인 사건을 부러움 가득한 문체로 전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음악칼럼니스트 정다샘 씨가 쓴 글을 소개할까 합니다. 사실은 조금만 인용하려고 했다가 글이 너무 좋아서 허락을 받고 거의 그대로 소개하게 되었네요. 언론 보도로 알려진 것처럼, 통영국제음악재단이 요즘 예산 문제로 허덕이는 터라 더욱 가슴에 와 닿는 글이기도 합니다. 이 글 제목 또한 정다샘 씨가 쓴 글에서 따왔습니다.


지난 11일, 독일의 북부 항구 도시인 함부르크에 엘프필하모니(Elbphilharmonie)의 개관 공연이 있었습니다. 엘프필하모니 건축에 함부르크 시가 투자한 금액은 총 7억 8905만 유로, 우리돈으로 거의 1조 원에 육박합니다.

세계적인 경제 불황으로 문화 예술에 대한 지원이 줄어들어가고 있는 요즘, 이렇게 공연장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할 수 있는 독일의 모습은 많은 예술인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습니다. 영국의 가디언 지에도 자조적인 리뷰가 실렸습니다. “과연 영국에서 저 돈을 들여 공연장을 짓는다고 할 때 사람들이 찬성할까? 과연 영국의 여왕이나 총리가 기쁜 마음으로 개관 공연에 참석해서 공연을 다 듣고 있을까? 언론에서 자본가와 엘리트만을 위한 잔치라고 비꼬진 않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며 말이죠.

이 개관 공연에 가우크 대통령의 축하 연설은 물론이고 메르켈 총리 역시 참석하여 공연 전체를 기쁜 표정으로 관람하고 갔다고 합니다. 올해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으로 공격받을 수 있으니 연설만 하고 자리를 떴어도 괜찮았을 텐데, 메르켈이 자리를 지킨 이유를 글쓴이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메르켈 본인이 진정한 음악 애호가이며 문화가 진정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독일에서 이런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게 전혀 지탄받을 일이 아니며 오히려 독일에선 공연을 안 보고 떠나는 게 더 반사회적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독일에서도 이 거대한 프로젝트에 대한 비판이 없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공연장이 ‘자본가와 엘리트’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는 건 확실해보이네요. 기사에 따르면 앞으로 6달 동안의 공연이 모두 매진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함부르크의 모든 어린이들을 올해 안에 공연에 초대하는 것이 목표라고 하네요. 엘프필하모니는 이제 돈 먹는 하마가 아닌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함부르크의 자랑이 되었습니다.

경제적, 문화적 상황이 많이 다른 독일을 우리나라와 직접 비교하는 것은 공평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문화 예술에 얼마나 많은 비용을 투자할 수 있을지, 그에 따른 비판은 얼마나 클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투자의 열매를 즐길 수 있을지는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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