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번호의 효용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헷갈리지 않게끔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를테면 슈베르트 '미완성 교향곡'은 때로 교향곡 7번으로도, 8번으로도, 9번으로도 표기됐지요. '미완성'이라는 표제가 있어서 그나마 괜찮지만, 표제가 없는 슈베르트 작품은 작품 번호가 빠지면 어느 작품인지 헷갈리기 딱 좋습니다.
작곡가 스스로 '교향곡 1번' 하는 식으로 제목을 체계적으로 붙이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작곡가는 그냥 '교향곡 D장조' 정도로만 쓰기도 했지요. 그래서 나중에 같은 작곡가가 같은 조성으로 교향곡을 또 쓰면 둘을 구분할 방법이 필요하게 됩니다. 유명한 작곡가의 미발표 곡이 나중에 발견되는 일도 있어요.
작품 번호를 'Op.'라고 쓰기도 하지만, 작곡가 사후에 음악학자가 작품 분류를 새로 했다면 번호가 다른 식으로 붙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슈베르트 작품번호는 음악학자 도이치(O. E. Deutsch) 이름을 따서 'D.' 번호를 붙이지요. 그래서 미완성 교향곡은 D. 759입니다. 모차르트 작품번호는 쾨헬(L. von Köchel) 이름을 따서 K., 하이든 작품번호는 호보켄(A. van Hoboken) 이름을 따서 Hob., 바흐 작품번호는 '바흐 작품 카탈로그'를 뜻하는 'Bach-Werke-Verzeichnis'를 줄여서 BWV라고 쓰지요.
모차르트 작품번호는 나중에 개정되어서 원래 번호와 개정 번호를 나란히 쓰기도 합니다. 지난 5월에 있었던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 공연 때 있었던 일인데요, 첫 번째 앙코르곡이 뭐였는지 물어봤더니 행진곡 K. 320이래요. 그런데 K. 320은 이날 연주했던 세레나데 9번 '포스트호른'이거든요. 이상해서 더 알아봤더니 K. 335/320a가 정확한 작품번호이더군요. 모르긴 해도 이 행진곡이 '포스트호른 세레나데'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을 겁니다.
때로는 오푸스 번호 하나에 여러 작품이 있어서 하위 번호를 또 붙이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 c♯단조 '월광'은 Op. 27 No. 2, 소나타 13번 E♭장조는 Op. 27 No. 1이지요. 베토벤은 작품번호를 붙이다 말다 해서 중구난방인데요, 작품번호가 없는 작품에 'WoO'라는 작품번호를 작곡가 사후에 붙이기도 합니다. 작품번호 없음을 뜻하는 독일어 'Werk ohne Opuszahl'을 줄인 말이지요. 또 작곡가 사후에 발견된 작품은 'Op. posth.'라고 쓰기도 합니다. 사후(死後)를 뜻하는 영어(말뿌리는 라틴어) posthumous에서 온 말이에요.
그런가 하면 학자들만 쓰는 작품번호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바그너 작품번호는 바흐 작품번호와 비슷한 WWV를 쓰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진 작품은 제목만으로도 헷갈릴 일이 없어 WWV 번호를 거의 쓰지 않지요. 그러나 바그너 작품 중 유명하지 않아서 헷갈릴 염려가 있는 곡을 다룰 때는 역시 작품번호가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얼마 전에 인터넷으로 본 우스갯소리 하나 소개할게요. 작품번호는 음악이 아닌 작품에도 쓰일 텐데요, 그 가운데 '품번'이라는 줄임말로 통용되는 좀 민망한 장르도 있더라고요.
A: 집에 혼자 있는데 품번 추천 좀.
B: BWV 147.
A: 좋음?ㅋ
B: 최고죠.
A: 언제 나온 거?
B: 고전이긴 한데요..
A: 누구 꺼?ㅋ
B: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A: ?????
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