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큐브닷컴에서 블로거닷컴으로 옮겼더니 태그(Label)를 클릭하면 글 목록 없이 본문이 바로 나오네요. 그래서 글 목록을 따로 정리해 봤습니다.
2011년 1월 4일 화요일
2010년 12월 31일 금요일
2010년 클래식 음악계 주요 사건 (해외) ②
노먼 레브레히트가 꼽은 주요 사건에 이어 제가 몇 가지 사건을 더 꼽아 봤습니다. 트위터로 떠들고 말았더니 정리하기 쉽지 않네요.
1. 평론가 도널드 로젠버그 필화 사건
제 블로그에 따로 쓴 글이 있으니 참고하세요:
http://goo.gl/Hw2Ny
도널드 로젠버그는 그 뒤로 클리블랜드 오페라 경영난을 다룬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http://goo.gl/SuKHp
2. 플레트뇨프 아동 성추행 혐의 → 무혐의 판결
러시아 마피아와 태국 군부가 짜고 모함을 했다고. 판결 나기도 전에 플레트뇨프를 죄인 취급했던 사람들은 반성 좀 하시라.
http://www.artsjournal.com/slippeddisc/2010/12/breaking_news_mikhail_pletnev.html
3. 작곡가 마크 앤서니 터니지, 비욘세를 표절하다
현대음악 평론가 러더포드-존슨, 마크-앤서니 터니지의 신작 《Hammered Out》 도입부가 비욘세의 〈Single Ladies〉 표절이라며 의혹 제기. 그런데 문제가 된 대목이 초연 예정인 오페라 《Anna Nicole》 클라이맥스에서도 쓰였다네요. 대중음악 표절하는 클래식 음악가라니 -_-;; http://bit.ly/c0po6m
『가디언』 기사 http://bit.ly/9gxa0U 터니지는 '숨은 인용'이라며 물타기 시도. 저작권 협의 또는 계약서 인증 얘기는 당연히(?) 없었습니다.
『Sunday Telegraph』 기사 http://bit.ly/bvTXGH
러더포드-존슨은 뒤이어 소셜미디어 시대 게이트키핑(gatekeeping) 관점에서 사건을 고찰했습니다. http://bit.ly/cWY8bI
마크-앤서니 터니지는 현대음악(?) 작곡가치고는 매우 유명하며, 영국 음악계에서 팍팍 띄워 주는 작곡가입니다. 서울시향이 트럼펫 협주곡을 연주한 일도 있지요. http://goo.gl/kuSrl
4. 지휘자 세대 교체 바람
야니크 네제-세갱,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되다 http://goo.gl/qXaQ
지휘자 키릴 페트렌코, 2013년부터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음악감독 된다… 현 음악감독은 켄트 나가노. 그런데 2013년부터 바이로이트에서 《니벨룽의 반지》 지휘하기로 했는데 어쩔껴? http://bit.ly/bFsHLC
게르기예프가 키운 지휘자 투간 소키예프, 베를린 도이체 심포니 상임지휘자로 결정. 현 툴루즈 카피톨 국립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1977년생. http://bit.ly/bljC01
기억나는 굵직한 사건만 해도 이렇습니다. 또 뭐가 있었더라…
5. 〈케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 운동
존 케이지 《4분 33초》를 크리스마스 차트 1위로 만들자는 운동으로 지난해 크리스마스 차트에서 TV 프로그램 《X-Factor》 '버프'를 받은 곡을 물리치고 록 밴드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이 발표한 《Killing in the Name》가 1위를 차지한 사건에서 아이디어를 따왔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딴지일보 기사를 참고하세요: http://goo.gl/MVTR
그래서 《4분 33초》는 영국 크리스마스 차트 21위를 기록했습니다. BBC 제1 라디오는 관계자가 말하기를, "20위 안에 들었으면 전곡 방송했을 거라능." http://bit.ly/fWR9eJ
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는 음악을 설치미술 개념으로 사용한 작품이 터너 상을 받았다는 소식에 분개, 존 케이지가 원조임을 주장하며 자신이 《4분 33초》 연주로 터너 상에 도전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이후 트위터로 "리허설중임다. 방해하지 마셈." "열광적인 반응임다. 앙코르 요청 받았다능." 등 트윗을…^^ http://goo.gl/0qvlB
6. 이스라엘 바그너 협회 창립
카타리나 바그너가 이스라엘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바이로이트에 초청하고 이스라엘에 방문하려고도 했으나, 그 사실이 이스라엘 언론에 미리 폭로되면서 격렬한 반대 여론에 부딪혔습니다. 그 뒤로 이스라엘에서 바그너 협회가 생기고 법무부 허가까지 받았다네요. http://goo.gl/tmjmW 그런데 이스라엘 체임버 바이로이트 초청은 밀어붙일 모양이더군요.
이런 얘기가 나오면 곧잘 오보가 나오는데, '이스라엘에서 바그너 음악 연주된 적 없다'라는 '카더라'는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단지 바그너 오페라 '전막'이 연주된 일은 없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바그너 곡이 연주된 사례 모음 참고: http://goo.gl/QRyR
7. 쇼팽 콩쿠르 논란
☞ 심사위원 푸총(Fu T'song)이 니콜라이 코쟈이노프와 김다솔에게 2차 예선 100점 만점에 10점 줬다
※ 올해의 부고
볼프강 바그너, 향년 90세. http://bit.ly/dx17w4
테너 페터 호프만, 향년 66세, 파킨슨씨 병. http://bit.ly/g1H9ZO
오페라 연출가 크리스토프 슐링엔지프, 향년 49세, 폐암.
작곡가 구레츠키, 향년 76세, 지병
http://johnsonsrambler.wordpress.com/2010/11/12/henryk-mikolaj-gorecki-1933-2010
지휘자 찰스 매케러스, 향년 84세, 암 http://bit.ly/daN31C
소프라노 조운 서덜랜드, 향년 83세.
음악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는 트위터에서 조운 서덜랜드 타계 떡밥 반응이 생각보다 미지근하다고 불만. '그런데 김희철이 누구이기에 계속 1등 먹나요?'
지휘자 바르샤이, 향년 86세. 죽기 전에 바흐 《푸가의 기법》 편곡을 끝냈다고. http://goo.gl/nQHsu
EMI 클래식스 사장이었고 워너 클래식스를 만든 Peter Andry, 향년 70세, 암 http://goo.gl/5WbbG
메시앙 부인 이본느 로리오(Yvonne Loriod), 향년 86세. http://bit.ly/dyiZfb
루마니아 출신 소프라노 Roxana Briban 자살 추정, 향년 39세. 오페라단 잘리고 우울증. 사망 당일 페이스북에 '라 트라비아타' 동영상을 올렸는데 자신이 연기한 비올레타 죽는 장면 http://bit.ly/g0ba2v
2010년 6월 26일 토요일
작곡가별 정치성향 떡밥: 엉터리 분석은 까야 제맛
▲ 작곡가별 정치 성향. 출처: http://politicalcompass.org/composers
오늘 트위터 모임 ☞〈오푸스당〉에서 작곡가별 정치성향 떡밥이 나왔습니다. 위 그래프는 BBC Music Magazine 1997년 기사를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조사를 어떻게 했는지 몰라도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는군요. "재미로 해봤다"(largely for amusement)라고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두기는 했지만, 그래프를 동원해서 뭔가 학술적 근거가 있는 듯한 인상을 주므로 멋모르고 속는 사람이 적지 않으리라 예상됩니다. 엉터리 분석은 까야 제맛!
먼저, ☞내용타당도부터 의심스러운 데가 많습니다. '바그너=히틀러'라는 편견만으로 원래 좌파였던 바그너를 '수구 꼴통'으로 낙인찍는 일이 옳은지는 제쳐놓고라도, 포스트모더니즘의 음악적 조상이라고까지 할 만한 스트라빈스키가 저렇게까지 '보수적인' 작곡가인가, 프로코피예프가 소스타코비치보다 훨씬 더 좌파 성향이 강하다고 보는 근거는 무엇인가 등등, 의심하려면 끝도 없지요.
그러나, 그냥 다 맞다 쳐줍시다. 이 글에서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내용타당도는 무시한 다음 숫자만 놓고 따져보기로 합니다. 분포를 슬쩍 보니 어디서 본 듯한 패턴이네요.
▲ ©한겨레21. 출처: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26850.html
김문수, 서정갑, 나경원 등등이 모두 '왼쪽'에 치우쳐 있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1차원적 분포를 보이는 대목이 작곡가 떡밥과 닮았습니다. 이게 왜 문제인지를 〈아이추판다〉님이 깔끔하게 보여주셨네요.
©아이추판다 http://nullmodel.egloos.com/3111903
수치를 보고 대충 때려 맞혀서 그래프를 그렸다고 합니다. 비슷하게 나오죠? 이 수치를 가지고 ☞주성분 분석(Principal Component Analysis)을 해서 회전시켰더니 이렇게 나오더랍니다.
©아이추판다 http://nullmodel.egloos.com/3111903
보시다시피 주성분1을 따라 확연히 좌우로 구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주성분1이 전체 분산의 91%를 차지하는 반면, 주성분2는 9% 밖에 차지하지 않는다. 주성분2를 날려버리고 1차원으로 만들어도 정보가 별로 손실되지 않는다. 물론, 이렇게 하면 서정갑과 공병호의 차이를 무시하게 되겠지만.. 뭐 솔직히 무시해도 별 상관없지 않나?
그러니까 원 그래프가 2차원 그래프인 척하고 있지만, 사실은 1차원만으로 설명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런 결과가 나오는 이유는 일단 한겨레21과 P&C정책개발원이 설문을 잘못 만들었기 때문이다. 내용이나 표현이나 문제가 좀 있다. 다만, 좌-우의 상대적 위치를 변별하는데는 큰 문제가 없는 것 같다. 좌편향적인 답변을 유도한다는 지적도 있는데, 모든 사람이 좌편향된다면 상대적인 좌-우에는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별 문제가 아니다. 어쨌거나, 이 결과만으로는 현대 정치가 2차원이라는 블런델-고스초크 모델을 한국에 적용하기 어렵다.
이걸 그대로 따라 해봤습니다. 수치를 대충 때려 맞혔는데, 비슷하게 나오죠?
©김원철
주요인 분석해서 Biplot을 그렸습니다. 솔직히 그래프는 잘 몰라서 맞게 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왜 아이추판다님 것처럼 깔끔하게 안 나오는지… ㅡ,.ㅡa
©김원철
어쨌거나 숫자만 가지고 얘기하겠습니다. 〈주성분 1〉이 전체 분산에서 약 94%나 차지한다고 나옵니다. 6%밖에 안 되는 〈주성분 2〉는 있으나 마나. 두 가지 차원이 사실은 거의 같은 방향성을 보인다는 사실이 빨간색 화살표로도 나타나지요?
그러니까 작곡가별 정치성향이랍시고 그려놓은 그래프는 1차원적인 내용을 2차원처럼 보이게 만들었을 뿐이라는 뜻입니다. 이걸 조사한 사람이 '좌파―우파'가 '자유주의―권위주의'와 어떻게 다른지 이해하지 못하고 엉터리로 만들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으리라 짐작됩니다.
이제 근본적인 얘기를 해봅시다. '좌파―우파'는 무엇이며 '자유주의―권위주의'는 또 무엇일까요?
참고: capcold, ☞ 〈THE 간단 좌파우파 문답〉 http://capcold.net/blog/2200
2009년 11월 1일 일요일
안인희 ― 『게르만 신화·바그너·히틀러』 (서울: 민음사, 2003).
안인희 ― 『게르만 신화·바그너·히틀러』 (서울: 민음사, 2003).
※ 2003년 민음사 〈올해의 논픽션상〉 수상작 역사와 문화 부문
▶ 글쓴이
안인희.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독문학을 공부했고, 1986~1987년에 독일 밤베르크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1990년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 표지의 저자 소개 중에서.
▶ 목차
I. 게르만 신화와 영웅전설
1. 보물 이야기
2. 기사 이야기
3. 사랑 이야기
4. 가수들
5. 북유럽의 신화
6. 니벨룽겐의 노래
II. 신화를 다루기 위하여
1. 신화와 원형
2. 이야기의 구조
III. 바그너의 세계: 신화를 문학과 음악으로
1. 낭만주의 문학
2. 바그너의 생애
3. 음악연극 작품으로 본 바그너 사유의 길
4. 니체의 바그너 비판
IV. 히틀러: 신화와 예술을 직접 현실로
1. 시대적 배경
2. 히틀러의 세계관
3. 예술과 정치
▶ 서평
이른바 ☞'바그네리안(Wagnerian)'이라는 말은 바그너가 마니아를 끌어들이는 예술가임을 알려준다. 그러나 마니악한 취미일수록 진입 장벽이 높은 법. 바그너 진입 장벽으로는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독일어, 반음계적 화성, 그리고 히틀러. '히틀러의 음악가' 바그너를 올바로 알려면 '히틀러의 나라' 독일을 알아야 한다. 글쓴이는 이런 말로 책을 연다.
독일 사람들은 예전에 자신들의 나라를 "시인과 철학자들의 나라"라고 부르곤 했다. (…) 그러나 이런 모든 자부심은 단 한마디 앞에서 어이없이 스러지고 만다. "히틀러."
'바그너=히틀러'라는 편견은 어쩌면 가장 고약한 바그너 진입 장벽일지 모른다. 그 장벽이 고약한 까닭은 작품 바깥에서만이 아니라 작품 속에서도 찾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바그너의 작품에는 제3제국의 국가 행사를 연상시키는 장면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사실은 히틀러가 바그너에게서 차용한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히틀러 시대에 대해 철저히 비판적인 교육을 받고 자란 오늘날의 세대들이 제3제국 시대의 제의를 연상시키는 장면들을 소화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여전히 열렬한 "바그너 숭배자(Wagnerianer)"들이 존재하지만, 상당히 많은 독일인들이 처음부터 바그너의 작품에 거부감을 보인다. 우리는 오히려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공연에서 정통적인 바그너 공연을 더 쉽게 볼 수 있다. (341쪽)
더군다나 그 편견은 날조된 괴담을 등에 업고 ― 이를테면 아우슈비츠에서 바그너 음악을 연주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한다 ― 바그너를 듣는 이를 겨냥해 '파시스트'라는 인종주의적 혐의를 덮어씌우기도 한다. 이러한 편견과 괴담 맞은편에는 '홀로코스트 부인주의'가 있겠으나, 객관성을 좇는 전통적인 바그너 연구가의 입장은 "히틀러가 혼자 미쳐서 바그너 가지고 소란을 떤 것이지, 바그너 자신은 히틀러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라는 정도다(☞박원철 서평에서 인용). 그러나 안인희는 새로운 프레임으로 '편견'과 '편들기'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고자 했다.
이 책은 게르만 신화 → 도이치 낭만주의 → 바그너 → 히틀러로 이어지는 문화사적 흐름을 짚으며 바그너―히틀러 관계를 둘러싼 객관적인 지식을 쌓도록 도와준다. 이 흐름을 꿰뚫는 모티프는 "붕괴와 몰락"이며, 북유럽 신화와 엮어 말하자면 '라그나로크(Ragnarök)'이다. 이 모티프는 책 내용뿐 아니라 디자인으로도 나타나는데, 디자이너 ☞유지원은 한때 ☞바그네리안 동호회 회원이었으며 알 만한 사람은 아는 그 유지원이다.
박원철이 서평에서 지적했듯이, 바그너―히틀러 관계를 둘러싼 안인희의 논리에는 빈틈이 많다. 그러나 대안적 주장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으며, 논리적 완결성은 남은 과제로 여겨야 하지 않을까 싶다. 더군다나 그 빈틈은 책 한 권으로 메울 수 있다고 믿기 어렵다.
그래도 한 가지 아쉬운 곳을 말하자면, 이야기를 '히틀러'에서 끝내며 "그렇다면 과연 오늘날에는 어떤가 하는 것"은 읽는이 몫으로 떠넘긴 대목이다.
도이치 민족은 오랜 세월을 두고 유럽 역사의 피해자였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어느 날 가해자의 모습으로 역사에 등장했다. 한 민족의 오래 묵은 억울함이 어떤 과정을 거쳐 끔찍한 역사를 만들어냈는지 이 책에서 관찰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남은 질문은, 그렇다면 과연 오늘날에는 어떤가 하는 것으로 넘어간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독자 여러분의 몫으로 남겨두기로 한다. (343쪽)
글쓴이가 읽는이 몫으로 남겼으니 책을 읽은 내가 찾은 '모범답안'을 알려주겠다.
그리고 바그너에게 책임을 묻는 그 행위를 확대해서 이스라엘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거론하는 지점까지 나아가야한다. 말하자면 나치에게 책임을 묻는 행위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행하는 만행에 대한 책임을 묻는 행위와 함께 이루어져야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책임을 묻는다'는 윤리적 행위를 가능하게 만드는 정당성이다.
이것은 독일에서 독일 문학을 공부하면서 독일 사람에게 정서적 동질감을 키웠을 글쓴이가 감히 하지 못했던 말이라 헤아릴 수 있겠는데, 그 속내는 박노자가 쓴 글에 비추어 엿볼 수 있다.
대부분 ‘근대성’이란 것을 말할 때, 그 특징으로 “의문을 갖고 논리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합리적 사고”를 든다. 이 측면에서 ‘근대의 요람’임을 자랑하는 서구나 미국의 대중적 역사 기억은 과연 근대적일까. ‘합리성’을 내세워 다른 지역의 문화를 평가절하하는 구미에서조차 비판적 분석이나 다른 역사적 사건과 비교할 수 없는 공공(公共)의 역사적 기억의 ‘성역’(聖域)이 있다. 다름이 아닌 홀로코스트(Holocaust), 즉 제2차 세계대전 때 유럽의 약 600만명의 유대인이 파쇼에 의해 대학살된 사건이다.
이는 세계사에서 전대미문의, 미증유의 사건이라는 전제, 인류가 저지른 어떤 가혹행위와도 견줄 수 없다는 테제, 히틀러가 자행한 범죄 가운데서 가장 흉악하다는 주장 등을 업고 아무런 비판 없이 ‘기존 사실’로 받아들인다. 어릴 때부터 교과서와 영화 등의 매체로부터 주입된 홀로코스트에 대한 거의 종교적인 외경(畏敬)도 한몫하지만, 홀로코스트에 대해 그 뜻을 약간이라도 상대화시키는 듯한 기미를 공석에서 보이면 곧장 ‘홀로코스트 부인주의자’(Holocaust-denier)의 딱지를 지닐 수도 있다. 딱지가 붙으면 더 이상 학술·대중 매체에서 발언권을 갖기가 힘들다. 마치 중세 유럽의 지식인들이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한 예리한 발언으로 독신죄(瀆神罪; 기독교의 신을 모욕하는 죄목)에 걸려 사회로부터 ‘출척’(黜陟)당한 전근대적인 현실을 방불케 한다.
이 책은 독일·오스트리아 문화사를 바탕으로 한 바그너 입문서라 할 수 있다. 입문서로 이 책에 매길 수 있는 가장 큰 값어치는 번역서가 아니라는 데 있다.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 박원철 서평에서 잘 드러난다.
처음 책을 들었을때, 한참동안 저자가 누군인지 찾고 있었습니다.
안인희라는 이름을 보았지만, 번역자인줄 알았지 설마 우리나라 사람이 "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라는 주제를 감히 건들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던 거지요.
바그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그 뒤에 박준용의 ☞ 『바그너 오딧세이』 (서울: 씨디가이드, 2002)를 읽으면 더욱 좋겠고, 포이어바흐·니체·쇼펜하우어를 아우르는 철학적인 내용을 알려면 브라이언 매기가 쓰고 김병화가 옮긴 ☞ 『트리스탄 코드』 (서울: 심산, 2005)를 읽어도 좋겠다. 미학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김문환이 쓴 본격 학술서인 ☞ 『총체예술의 원류』 (서울: 느티나무, 1989)―나중에 바뀐 제목은 『바그너의 생애와 예술』―를 추천할 만하다.
2009년 10월 15일 목요일
바그너 색깔론 ― 이택광 떡밥
이택광 블로그에서 ☞'이택광 빠' 선언을 하고 나니 이택광 블로그에 바그너 관련 글이 올라왔다. 이거 나 보라고 쓴 듯하다. ㅡ,.ㅡa
☞ 이택광, 〈이스라엘과 바그너〉
이 글은 김원철이 이제껏 읽어본 ☞바그너 색깔론 떡밥 가운데 가장 편견 없고 논지가 명쾌하며 무리한 주장도 없다. 그러나 글이 짧은 만큼 자세한 사실 관계를 담아내지 못했고, 따라서 바그너를 헐뜯는 사람과 감싸는 사람이 모두 오해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투덜댈 수 있을 듯하다. 그래서 나는 자칭타칭 바그네리안으로서 이 글에 보충 설명과 지엽적인 반론, 그리고 내가 바그너를 듣는 행위 변명을 겸하는 '댓글'을 쓰려고 한다.
먼저 알아둘 사실이 하나 있다. 바그너는 애초에 사상적·정치적 일관성이 없는 인간이라서 이를테면 바그너를 파시즘의 조상이라 규정하고 나면 이내 바그너가 사실은 좌파였다는 반론과 함께 수많은 증거를 만나게 된다. (바그너가 좌파였다는 얘기를 처음 듣는 사람은 ☞ 〈바그너 색깔론 떡밥: "Richard Wagner in the year 2000" 부분 번역〉을 참고하시라.) 바그너에게서 굳이 일관성을 찾자면 두 가지를 들 수 있겠다. 하나는 기회주의, 다른 하나는 19세기 천재 담론에 바탕을 둔 자뻑 망상, '나 바그너를 숭배하라!'
바그너의 반유대주의 혐의는 "K. Freigedank"("자유로운 생각")이라는 필명으로 내놓은 ☞〈음악 속 유대주의〉(Das Judenthum in der Musik)라는 글에서 비롯한다. 이때 바그너를 감싸는 근거로 바그너의 수많은 유대인 친구들과 ☞《파르지팔》을 초연한 유대인 지휘자 등이 불려 나오는데, 이 또한 기회주의로 설명할 수 있다.
〈음악 속 유대주의〉에 나오는 '유대인'의 정체는 알고 보면 두 사람으로 줄일 수 있다. 젊은 바그너에게 수많은 도움을 주었던 마이어베어(Giacomo Meyerbeer, 1791―1864), 그리고 바그너가 평생 열등감에 시달렸던 '엄친아' 멘델스존.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바그너보다 먼저 성공한 유대인 음악가로 바그너 출세길에 걸림돌이 되었다는 데 있다. 바그너는 당시 독일에 창궐하던 반유대 정서를 이용하여 이 두 사람을 타격했고,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그러나 바그너는 은인을 배신한 고약한 마음씨와 '듣보잡이 진중권 물어뜯는 듯한' 찌질함을 함께 드러내고 말았다. 무엇보다 이 글에 나타난 인종주의는 유대인 친구들을 읊어대는 정도로는 변명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바그너의 반유대주의를 파시즘으로 곧바로 이어 말하는 일은 잘못이다. 인종주의와 파시즘이 무관하다는 얘기가 아니라 둘 사이를 이어주는 중간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또 바그너의 반유대주의는 바그너 후손의 명백한 나치 부역 행위와도 곧바로 이어지지 않는다. 적지 않은 사람이 이런 잘못을 저지르곤 하는데, 그와 달리 이택광이 반유대주의까지만 거론한 대목은 참으로 적절하다.
사상이 불순한(?) 예술가가 내놓은 작품이 훌륭할 리 없다는 순진한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을 설득하기는 이택광 말마따나 "멸치를 고래라고 설득시키는 일보다 더 어려울" 터이니(☞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그냥 내버려 두는 게 속 편할지도 모르겠다.
진짜 황당한 부류는 바그너를 들으면 파시스트가 될 거라고 공포를 조장해대는 사람인데, 나는 이와 관련해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콜럼바인》을 빌어와 비꼬기도 했다. 그런 주장이 콜럼바인 총기 난사 사건 원인을 마릴린 맨슨에게 뒤집어씌우는 짓거리와 마찬가지로 참된 원인을 은폐할 뿐이라는 얘기다. (자세한 내용은 ☞ 〈볼링 포 히틀러 (Bowling for Hitler)〉 참고. 괜히 흥분해서 무슨 소린지도 모르고 지껄여댄 대목도 더러 있으니 적당히 걸러서 읽으시라. ㅡ,.ㅡa)
이택광은 모든 예술행위는 정치적이며, 순수예술 또한 마찬가지라 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작품을 내놓고 나면 작가는 죽어야 한다.'(움베르토 에코)라는 말이 시사하듯이 그 정치성이 평면적이지 않다는 사실 또한 지적할 필요가 있다. 바그너와 관련지어 말하자면 "바이마르 공화국 좌파 지식인들과 독일민주주의공화국 바그너 학자들이 바그너를 사회주의 유토피아의 예언가로 선언"(☞참고)했던 사실에서도 이것이 잘 드러난다. 내 주변을 돌아보아도 바그네리안으로 소문난 사람들 가운데 계급 이익에 충실한 몇몇 사람을 빼고 나면 대체로 진보 세력에 호의적이다. (김원철은 진보신당을 지지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예술가나 예술 작품 자체가 아니라 예술가 및 작품을 둘러싼 담론이라 하겠는데, 이런 맥락에서 텔아비브에서 처음으로 바그너 음악을 지휘한 사람이 유대인이면서 그 누구보다도 자주 바그너 작품을 지휘한 다니엘 바렌보임이라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참고: ☞〈‘행동하는 음악가’ 다니엘 바렌보임〉. 바렌보임과 에드워드 W. 사이드가 나눈 대화를 담은 『평행과 역설』이라는 책도 있는데, 한글 번역이 엉망진창이라 도무지 읽을 수가 없다. ㅠ.ㅠ)
그리고 이택광은 바그너와 관련해 매우 훌륭한 정치적 담론을 내놓았다.
그리고 바그너에게 책임을 묻는 그 행위를 확대해서 이스라엘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거론하는 지점까지 나아가야한다. 말하자면 나치에게 책임을 묻는 행위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행하는 만행에 대한 책임을 묻는 행위와 함께 이루어져야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책임을 묻는다'는 윤리적 행위를 가능하게 만드는 정당성이다.
이택광이 인상적인 대목이라며 인용한 동영상은 ☞《라인의 황금》 피날레, 불레즈 지휘에 셰로(Patrice Chéreau) 연출 ☞바이로이트 실황이다(☞ DVD 정보 참고). 내가 보기에 이 영상물에서 가장 멋진 대목은 ☞《신들의 황혼》 피날레다. 처연한 음악(이른바 '희생' 모티프), 흰색과 붉은색의 강렬한 대비, 객석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담담한 눈빛을 보시라.
제 목:이 모든 일이 어떻게 해서 일어나게 되었는 줄 ... 관련자료:없음 [6905] 보낸이:이정환 (andie ) 2002-01-14 17:10 조회:48
[이 모든 일이 어떻게 해서 일어나게 되었는 줄 아십니까?]
불레즈의 신들의 황혼 맨 끝장면을 보면 라인의 처녀들이 브륀힐데가 돌려준 반지를 들고 환호하며 다시 라인강으로 사라지고 발할성은 불타오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대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다. 객석에는 등을 보인채... 그들은 발할이 타오르면서 라인강의 모티브가 서정적으로 흐르면 모두들 하나 둘 씩 천천히 일어나면서 몸을 돌려 관객석을 바라다 본다.
담담하고 처연한 표정으로 ... 그들은 이렇게 관객들에게 묻는 듯 하다.
이 모든 일이 어떻게 해서 일어나고 끝 맺음하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라고....
*내가 예전에 말했듯이 반지의 주제는 사랑이다. 누구보다 바그너에 열광했던 히틀러는 기실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 바로 링의 전체를 가로지르는 일관된 주제. 즉, 진실되고 희생적인 사랑없이는 이 세상은 결코 평화로울수도 정의로울수도 없다라는 것을 ... 히틀러의 방법론은 어디에도 사랑이나 배려 정의가 없었다. 이 것이 그를 엄청난 전화로 몰고 갔고 결국은 비참하게 종말을 맞게 한다!
베를린이 함락되고 히틀러가 자살하던 날,
독일방송은 모든 정규방송을 중단한채, 하루종일 '신들의 황혼'을 틀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것은 매우 상징적이고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독일은 결국 그 허위로 세워진 발할의 붕괴를 겪었고, 그 폐허에서 라인강의 기적을 일구며 결국 민족의 재통일마저 이뤄냈다. 아직도 여러 문제가 있다고는 하지만, 독일의 유럽공동체내에서의 위치는 일본의 아시아에서의 리더십 부재와의 현실 (솔직히 일본이 그 가진 돈과 힘만큼 아시아의 맹주행세를 할수 있는가? 어림 없는 얘기다. 일본은 불분명한 전후처리로 인해 아시아에서 아직도 왕따 신세다) 과는 대조될만큼 독일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고, 그러한 변화를 다른 유럽 국가들로부터 인정받고 있다.
바그너를 들으면서 특히 링을 들으면서(아니 이제부턴 보고 들으면서 ^^; 홈씨어터 5.1채널 쥑입니다요) 아직까지도 열린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바그너 텍스트의 위대함에 경탄을 금치 못하겠군요!
정말 반지 시리즈는 음악과 극 그리고 모든 그 이후 예술의 방향을 다시 점검하게 한 위대한 걸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바그네리안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반지는 오늘도 나에게 묻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어떻게 해서 일어나게 되었는 줄 아십니까' 라고....
바그네리안 앤디.
― 하이텔 '바그네리안' 게시판에서 퍼옴.
이 글과 관련해 김원철이 추천하는 글:
☞ 박노자, 비극의 상업화, 홀로코스트. 한겨레21, 2002.11.28.
☞ 이진, 이 고리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 시트콤 속의 바그너
2008년 6월 30일 월요일
바그너 색깔론 떡밥: "Richard Wagner in the year 2000" 부분 번역
아래 글은 "Richard Wagner in the year 2000: Is an End in Sight to the Misconceptions? - A Lecture"라는 글 가운데 일부입니다. 누가 쓴 글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첨부한 파일은 영어 원문입니다. 옛날에 하이텔 바그네리안 회원들이 조금씩 나눠서 전문을 번역했는데, 제가 번역한 곳을 조금 손보아 여기에 올립니다. 번역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나중에 시간 날 때 새로 고쳐야겠습니다. (일단은 말로만..;;)
글을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바그너는 원래 좌파였고 진중권이나 유시민 같은 이미지였습니다. 바그너가 니체랑 친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고, 나중에 니체가 바그너를 욕했던 것도 '진중권인 줄 알았더니 김문수더라' 이런 맥락이었습니다. 히틀러 때문에 왜곡된 요즘 이미지는 김문수도 아니고 조갑제죠. -_-; 글쓴이는 바그너가 출세하고 나서도 여전히 좌파였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글쎄요, 저는 별로 동의하지 않지만 뭐 그런 주장도 있군요. 코지마가 쓴 일기에 나온다는데 저는 안 읽어봐서...
*
바그너가 비스마르크, 제국주의, 내면지향적 독일문화와 독일다운 모든 것을 비난했던 것은 '바이로이트 에세이'에서도 알 수 있지만 제대로 알려지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아직도 바그너를 오해하고 오용하는 까닭을 여기에서도 찾을 수 있다. 당대와 그 이후 세대를 거의 광신적으로 숭배하는 사람과 비방하는 사람으로 양분시킨 작곡가는 바그너뿐이다. 또 동서고금을 통틀어 바그너만큼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위한 제물 역할을 한 사람도 없다. 바그너는 당대뿐만 아니라 아직도 정치적으로 특별한 사람이다. 이것은 단지 그의 악명 높은 반유대주의 때문만은 아니며, 바그너의 반유대주의는 아돌프 히틀러의 반유대주의와는 커다란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또 1945년 이후에 바그너의 이름이 많은 경우에 아돌프 히틀러라는 이름과 뗄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은 히틀러의 무식하고 멍청한 바그너주의 때문이다. 비교적 최근인 1997년에 Joachim Köhler는 500페이지나 되는 그의 저서 <바그너의 히틀러>에서 역사가 어떤 식으로 왜곡될 수 있는지를 기막히게 보여주었다! 바그너와 히틀러 사이의 역사적인, 즉 연대기적인 관계를 따지자면 제목은 차라리 “히틀러의 바그너”로 하는 것이 합당하다. 그러나 모든 오해의 뿌리로 돌아가 보자. 바그너를 그토록 매혹적으로 만드는 것은 단지 그의 말글 및 철학적 견해가 가지는 모순과 그의 작품이 가지는 다면성과 넓이 때문이다. 바그너 작품에서 공통분모를 뽑아낼 수는 없다. 억지로 해봐야 축소 왜곡이 될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바그너는 오용될 수 있고, 언제나 그렇게 오용되어왔다. 좌익과 우익을 막론한 이데올로기의 상징물이 되었으며 모든 모순점들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버렸다.
빌헬름 2세 시절, 바이마르 공화국, 제3제국(나치), 그리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 동안의 독일 공화국은 모두 저마다 필요에 따라 바그너를 재단했다. 그의 특이하고 사교성 없는 성격, 그의 철학적 정치적 생각, 그의 예술적 이상향, 그의 음악과 그의 극장은 리하르트 바그너에 대한 예술적 역사적 의의를 끊임없이 재검토하고 재분류하게 했다.
바그너는 동시대인들로부터 의심을 샀는데, 그 원인은 그가 생애의 절반 이상 중산층의 대단한 골칫거리였고 이는 그가 부유했던 초로기에 접어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가 1844년 드레스덴 반란의 핵심적 역할을 했고 한때는 수배대상이었던 혁명가라는 세간의 평은 그를 평생토록 물고 늘어졌다. 그러나 그는 또한 유난히 수다스럽고 분별없으며 뻔뻔스러운 방식으로 자신을 설명하는 에세이 폭격으로 당시 사람들에게 맞받아쳤다. 19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바그너가 무정부주의자, 위험한 혁명가, 거들떠볼 가치도 없는 이상주의자, 그리고 뻔뻔스런 허풍쟁라 생각했다. 이 때문에 그의 악극은 당시에도 끊임없는 논쟁거리였다. 그가 쓴 글 “미래의 음악”은 글 속에 나오는 유토피아와 마찬가지로 심한 비웃음을 받았다. 바그너는 항상 넘치는 논쟁거리를 제공했다. 그 소재는 초기 프랑스 사회주의와 Young German 운동으로부터 고무된 그의 진보적인 생각이었는데, 이는 일련의 에세이에 잘 나타나 있으며 그의 악극에도 반영된 것이다. 심지어 바그너가 예술가로 명성을 얻고, 제2회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이후에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황제의 눈에 띄었으며, 대부호로서 호사스러운 삶을 누리게 되어 그때까지 그의 생애 대부분을 그늘 지우던 경제적 문제에서 해방되었을 때에도, 심지어 그때에도 그는 초기 사회주의자들, 특히 푸르동과 또한 바쿠닌과 Max Stirner로부터 영향 받은 사회 문화적 유토피아에 대한 생각에 진실했고, 이는 1883년 그가 죽을 때까지 그러했다. 코지마의 일기에 모든 의심을 떨치는 증거가 있다. 그의 사회주의 이상향, 부르주아에 반대하면서 그 자신이 부르주아였던 사실, 그리고 독일인에 대한 그의 회의적인 시각 등에도 그는 이내 “가장 독일적인” 작곡가로 선언되었다. 이것은 니체가 이마 가장 지각 있게 예견한 바 있다. “독일인은 그들이 숭배할 수 있는 바그너를 창조하였다.”
리하르트 바그너 자신은 어떠한 형태로든 분류되기를 거부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가 죽은 뒤에는 다양한 파벌들이 그를 이용해 먹었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좌파 지식인들과 독일민주주의공화국의 바그너 학자들은 바그너를 사회주의 유토피아의 예언가로 선언하였고, 나치주의자들과 파시스트들은 그를 아리안적이고(Aryan) 반유대주의적인(anti-Semitic) 세계관의 선구자로 보았다.
2006년 2월 11일 토요일
시트콤 속의 바그너
- SiteLink #1 : http://groups.google.com/group/humanities.music.composers.wagner/browse_thread/thread/f38dd8943d44b28b/599f8ffb6b220a74?hl=ko#599f8ffb6b220a74
HBO라는 TV 채널에서 방영하는 "Curb Your Enthusiasm"이라는 프로그램
중 한 에피소드에 관한 이야기.
래리 데이비드는 유대인이고 부인은 유대인이
아니다. 하루는 친구가 만든 영화 시사회에 참석했는데, 래리는 극장 로비에서 부인에게
"지크프리트 목가"를 흥얼거려준다. 며칠 있으면 부인의 생일이라 바그너가
부인 코지마의 생일 선물로 이 작품을 연주했던 일화를 말해준다. (사실은 그게 아니고
크리스마스였단다.) 부인은 감동하고 래리는 "지크프리트 목가"를 다시
흥얼거리는데, 갑자기 웬 유대인 남자가 와서는 '당신 유대인 맞아?" 하고 소리지른다.
그리고는 히틀러 얘기와 아우슈비츠 수감자들이 "마이스터징어" 음악에
맞추어 가스실로 행진했다는 얘기를 하기 시작한다. (Derrick Everett에 따르면 날조된
얘기라고 한다.) 그 남자는 래리에게 바그너를 좋아하다니 괘씸한 유대인이라고 욕한다.
얼마
후 래리는 그 남자의 밉살스런 딸에게 할로윈 사탕을 주지 않았다가 집안이 엉망이
된다.
래리는 부인의 생일을 위해 현악육중주단을 고용해 집 앞마당에서 "지크프리트
목가"를 연주시킨다. 부인은 코지마가 했던 것처럼 침실에서 나와서는 래리의
낭만적인 선물에 감동한다. 그러나 음악이 흐르는 동안 래리의 친구가 찾아와 골프를
치러 가네 마네 하면서 부인과 다툰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래리가 새벽 4시에
그 유대인 남자의 집으로 소규모 밴드를 데리고 가서 "마이스터징어" 전주곡을
연주시킨다.
(댓글로 달린 바그너-히틀러 얘기도 흥미로운데 시간 나면 자세히
읽어봐야겠다.) Wagner in a Si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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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for those who keep track of Wagnerian appearences in
contemporary culture: I recently watched an episode of HBO's "Curb Your Enthusiasm" that I'd Explaining Larry David and "Curb Your Enthusiasm" isn't easy. It's a In this Wagner episode, Larry and his wife are attending a premiere of Soon, Larry gets his house toilet papered because he refuses to give For Larry's wife's birthday, he hires a string quintet to play At the end, he gets even with the Jewish guy by bringing a small ba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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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ue, 07 Feb 2006 10:49:51 -0800, Praetorius wrote: The urban legend again (yawn). In fact, there is no evidence that the > Larry resumes humming the "Siegfried Idyll" and is rudely interrupted > by another Jewish man screaming "Are you a Jew?" at him. The man > brings up Hitler and the inmates of Auschwitz being marched off to > gas chambers to "Meistersinger". He calls Larry a "bad Jew!" (sort of > like, 'bad dog') for liking Wagner. camp orchestra at Auschwitz played Wagner, or even that they were asked to do so, or that they could have done so if they had been asked. The story is a malicious fiction. To put it bluntly: a lie, and one that I am tired of hearing. To those who are about to send me hate mail: to deny the urban legend Lies are lies. Regardless of whether they come from David Irving (is he Just my 2 cent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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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rick Everett" news:pan.2006.02.07.19.02.04.16826@yahoo.com... - 따온 텍스트 숨기기 - - 따온 텍스트 보기 - > On Tue, 07 Feb 2006 10:49:51 -0800, Praetorius wrote: Absolutely right - this lunacy about Wagner and the Nazis will never end I >> Larry resumes humming the "Siegfried Idyll" and is rudely interrupted > The urban legend again (yawn). In fact, there is no evidence that the > To those who are about to send me hate mail: to deny the urban legend > Lies are lies. Regardless of whether they come from David Irving (is he > Just my 2 cents. > -- fear esp. when you trying to reason with brick walls. Richar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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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least this sitcom handles it with a good dose of iron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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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loch" news:1139345868.442754.125350@g43g2000cwa.googlegroups.com... > At least this sitcom handles it with a good dose of irony :-) Yes it made the irate customer at the movie theatre look like a fool - he was. Richar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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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2/7/06 2:02 PM, Derrick Everett, at sparafucile1...@yahoo.com, wrote the
following: [snip] > The urban legend again (yawn). In fact, there is no evidence that the [snip] > camp orchestra at Auschwitz played Wagner, or even that they were asked to > do so, or that they could have done so if they had been asked. The story > is a malicious fiction. To put it bluntly: a lie, and one that I am tired > of hearing. Was there really an orchestra at Auschwitz? That doesn't fit with my idea Dick Partrid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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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l there is a lot of mirth here at someone's expense. Surprise
surprise it's not the Germans, who through the Nazification of Bayreuth, and the publication of the Bayreuther Blatter etc, gave rise to the so called Wagner-Nazi connection. This tired old horse needs a rest. I say "yawn" on the subject of Jews who wouldn't listen to Wagner. (anyway the number there is way overstated, I believe). One could discuss the German's prime culpability in creating that connection, but that would require a measure of subtlety and historical understanding, when it's so much easier and convenient to focus on someone hyperventilating in a movie theatre. Ralp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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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I said, "Curb Your Enthusiasm" isn't a show for the easily offended.
And it is a comedy that takes some getting used to. In one episode, I'm not sure most viewers appreciated the Wagnerian references in this I've been aware that the "Meistersinger" prelude (is it a prelude or an Interestingly, that while Woody Allen has used Wagner/Jewish jok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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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etorius wrote: > As I said, "Curb Your Enthusiasm" isn't a show for the easi |
2005년 8월 17일 수요일
볼링 포 히틀러 (Bowling for Hitler)
볼링 포 히틀러 (Bowling for Hitler)
고클래식에서 다음 글을 읽고 괜히 열받아서 한 마디 씀:
서경식, 서경식의 '디아스포라 기행'<6> 바그너와 김지하. 프레시안 2005-08-11 오전 11:57:06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30050811113951&s_menu=%B9%AE%C8%AD
TV를 보니 콜럼바인 참사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헤비메탈이죠. 폭력 영화. 사우스 파크. 비디오 게임. 마약. 마릴린 맨슨, 마릴린 맨슨..." 콜럼바인 참사의 주역인 에릭과 딜란의 집에서 록가수 마릴린 맨슨의 CD가 발견됐다고 하던데, 정말 마릴린 맨슨 때문일까? 그 사건을 수사중인 '스티브 데이비스' 보안관에게 물어보았다.
"걔들이 그날 아침 볼링을 했대요. 그거 밖엔 몰라요!"
- 마이클 무어, <볼링 포 콜럼바인> (DVD 소개말 중에서.)
1. 바그너가 '음악에 있어서의 유대성'[음악 속의 유대주의]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2. 바그너가 나치에 부역했다.
(나중에 덧붙임: 이 명제는 거짓임. 나치는 바그너 생전에 없었을 걸? 근데 내가 왜 이 말을 했을까...OTL 하여간 바그너의 후손들은 나치에 부역한 것 맞음)
3. 히틀러가 바그너에 심취했다.
그러므로 바그너의 음악에 "나치를 매료하는 요소, 국수주의나 파시즘에 이어지는 요소가 있음에 틀림없다."
글쓴이가 사용한 논리의 빈약함과 심지어 전제 자체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습니다만, 애초에 색안경을 벗을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 구구절절 떠들기 귀찮으니 생략하겠습니다. 박원철님 말씀대로 바그너의 업보이려니 하지요.
저는 그보다 글쓴이의 예술론에 아연했습니다.
예술은 감상자와 대등한 관계를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은 예술은 "파시즘에 바람직"하다. 예술을 감상할 때에는 "개인의 취향이나 취미, 의심이나 비판, 위화감이나 저항, 그와 같은 감정을" 절대로 포기하지 말아야 하며, 결코 예술에 "몸을 맡"기거나 해서는 안 된다.
이런 식으로 예술에 대해 함부로 재단하려는 프로크루스테스적인 태도야말로 '파시즘에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요?
글쓴이의 논리를 확장하면, 예술은 감상자와 대등해야 하기 때문에 감상자에게 무엇을 가르치려 들어서는 안 되고, 따라서 어느 정도는 공부가 필요한 클래식 음악은 그래서 좋지 않다? 더군다나 클래식 음악 중에서도 절대적으로 많은 학습량이 필요한 바그너는? 그 때문에 글쓴이는 호기심에 공연을 한 번 보기는 하되 피상적인 상식들만 나열하고 있었던 것입니까? (글쓴이에게 '음악'에 대해 객관적으로 말하려면 음악 기초이론을 조금 공부하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만약 콩나물 대가리에 알레르기가 있다면 최소한 <제3제국과 음악> 같은 책뿐만 아니라 <게르만 신화·바그너·히틀러> (안인희, 서울: 민음사 2003) 같은 책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사실은 바그너의 음악과 문학, 무대예술, 사상과 개인사까지 두루 공부하는 것이 좋겠지만, 거기까지는 바라지도 않겠습니다. 다만, 플롯을 작위적으로 해석한 것을 가지고 바그너를 비판하는 근거로 삼는 궁색한 논리는 그만 봤으면 좋겠습니다.)
또 글쓴이는 같은 논리로 HOT(요즘 유명한 가수가 누구인지 모르겠습니다만)에 열광하는 중고등학생들이 얼마 안 가서 파시즘에 부화뇌동할 것이라고 걱정해야 하겠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걸 어쩝니까, 아마도 글쓴이의 사상적 고향으로 보이는 '운동권' 쪽에서도 비슷한 '파시즘적' 선동 예술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복수에 빛나는 총탄으로 이제 고인 눈물을 닦아다오 마침내 올려진 승리의 깃발 힘차게 펄럭여다오."
"그래 너희들은 외세와 자본이 있고 폭력집단 경찰과 군대 있지만, 우리에겐 신념과 의리로 뭉친 죽음도 함께하는 동지가 있다. 보아라 연대의 깃발, 들어라 단결의 함성. 너희의 마지막 발악, 투쟁으로 화답하리라."
음악 자체가 가진 리듬과 화성 등의 선동성도 만만치 않지만, 이런 노래를 집회 현장에서 수많은 사람이 목놓아 부를 때 생기는 선동 효과가 얼마나 컸던지는 글쓴이도 잘 알 것이라 믿습니다.
서양의 선동적 예술의 전통은 그리스 비극과 바쿠스 축제(카니발), 중세 기독교의 건축과 음악 등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바그너는 예술의 선동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람이었고, 히틀러와 그 일당이 그것을 현대적 선동기법으로 확립시켰습니다. 그것은 다시 레닌 등을 거쳐 공산주의 선동기법이 되었고, 마침내 한국 운동권의 선동기법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선동적인 예술은 위험한 것입니까? 나치가 선동기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위험한 것입니까?
과학기술은 위험한 것입니까? 과학기술이 살인에 이용되기 때문에 위험한 것입니까?
바그너 마조히즘에 절어 있는 저는 파시스트입니까?
* * *
댓글 모음:
말씀하신대로 과거 운동권(현재는 모르지만)의 문화 자체가 매우 전체주의적이고 군사문화적이었던 것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런 사실들 속에서 소규모 문화운동이나 여성운동이 전혀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된 것도 사실이고, 운동권 내부에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추잡한 문제들도 또 적당히 권위의 체계를 이용해 덮어졌던 것도 사실이라고 봅니다. 말하자면 반성이라는 것이겠죠. 운동권이든 아니면 이미 백년도 더 된 음악가든. 그것을 의심하고, 그것이 어떤 문화에서 나와 어떤 문화를 만들어냈는가를 비판적 안목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저 글에서 받는 느낌이기를 바라며 퍼왔습니다. | 05/08/17 17:23 |
바그너 - 박원철님 바그네리안 - 김원철님 우연하게도 두분 성함이 같은데, 두분 모두 바그너 음악을 매우 좋아하시는 듯. | 05/08/17 17:40 |
"게다가 교양 있는 백인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관객들이, 오늘날의 이른바 '아우슈비츠 이후의 세계'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바그너에 도취되어 있는 것도 나에게는 섬뜩한 것이다. 또한 백인들과 마찬가지로 도취되어있는 일본인 관객의 대부분이 아마도 이와 같은 위험성에 무지할 것이 불안해 견딜 수없는 것이다." 또, 저는 글에서 '운동권 노래'를 비판하는 뜻으로 인용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선동성이 음악을 비판하는 잣대가 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지요. 오히려 이미 낡아버린 선동 기법을 반성 없이 우려먹고 있는 요즘 운동가들이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 05/08/17 17:55 |
http://busantheater.co.kr/movieinfo/now_news_view.asp?idx=MI0000105020&rnum=4m_id=M000016482&mi_type=01 | 05/08/17 18:58 |
바그너 자신의 '음악에 있어서의 반유대주의' 논문 사건은 이 사람이 철저한 반유대주의자였다는 증거라기보다는 개인적인 경험에 기초한 상대적 박탈감과 경쟁의식, 분노 등에 근거한 무자비한 비난과 확인 사살에 더 가깝지 않았나 싶습니다. 바그너의 심란한 인간성을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한 사례이긴 하죠. (생각해 보면 진짜 못돼먹은 사람이란 말이죠 바그너는) 바그너가 분명 자신의 미학을 정당화하기 위해 대립항으로서의 유대 음악을 비판한 것은 사실이지만, '파르지팔'을 바이로이트에서 초연한 헤르만 레비는 랍비의 아들이잖아요. 문제는 바그너의 며느리 비니프레트 바그너나 그 사위 리처드 체임벌린, 손자 빌란트 바그너와 볼프강 바그너가 나치즘이나 히틀러 개인과 어떤 관계에 있었느냐 하는 점이 더 크겠죠. 그들이 나치와 관계를 맺을 때 바그너의 예술을 십분 활용한 것 역시 사실이고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단지 '업보'라고만 할 수 있을까요? 바그너의 예술이 나치 시대에 적극적으로 활용된 것은 바그너 예술에 이미 그런 요소가 있었기 때문이잖아요. 나치가 베에토펜이나 바그너를 써먹은 정도와 모차르트나 슈베르트를 써먹은 정도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고요. | 05/08/17 20:10 |
이 동호회에서도 이전에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저 고이즈미 총리는 바이로이트에서 탄호이저를 관람했죠. 그 기회에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도 슬쩍 바이로이트를 찾았고요. 독일 연방 대통령이나 바이에른 주 총리 등등이 바이로이트를 찾은 것은 그 이전부터 자주 있었던 일이지만, 주축국이었던 두 나라의 - 그것도 한 사람은 안그래도 역사 인식이 심각하게 문제 있는 사람이죠 - 총리가 나치의 성지였던 곳을 희희낙낙 찾아갔다는 것에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어쩌면 그런 '예술적 문제'에 대한 관대함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더군요. 그건 거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맞먹는 '정치적 행동' 이었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죠. 바그너의 예술 작품을 좋아하는 것과, 그것 때문에 그의 작품이 역사적으로 오용되어 온 것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가 아닐까요? 그런 면에서 바그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취향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이나 불쾌한 감정을 갖는 것은 그다지 부자연스럽다거나 애써 부인해야 할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 항상 그렇더군요. | 05/08/17 20:17 |
| 한아루미님의 덧글에 부침 | |||||||
| 글쓴이 | 김원철 (wagnerian) | 날짜 | 2005년 8월 18일 0시 29분 | 추천 | 3 | 조회 | 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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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가 나치에 부역했으며 나치가 바그너의 예술을 정치적으로 활용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요, (1) 우선 나치가 이용해 먹은 것은 한아루미님 말씀처럼 베토벤의 음악 역시 만만치 않으니 굳이 바그너만을 문제 삼을 것은 없겠습니다. 만약 베토벤의 음악이 파시즘을 담고 있으며 베토벤의 음악이 멀쩡한 사람을 파시스트로 만든다거나 <시계태엽 오렌지>의 주인공처럼 만든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그 사람과는 상종을 하지 않겠습니다. (2) 바그너가 나치에 부역했으니 바그너는 나치주의자다? 그것이 사실인지는 제가 바그너 본인이 아니라 잘 모르겠습니다만, 바그너 개인사를 살펴보면 차라리 바그너를 기회주의자라고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바그너는 무정부주의자이면서 바쿠닌-푸르동 계열의 낭만적 사회주의자이기도 했습니다. 한 사람이 무정부주의자이면서 사회주의자이면서 나치주의자일 수가 있습니까? 이런 엽기적인 변덕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은 '기회주의'뿐입니다. <음악 속의 유태주의>도 마찬가지로 설명됩니다. 바그너가 그 논문에서 공격하고 있던 '유태인'이란 멘델스존과 마이어베어였다는 것이 음악사가들의 정설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사실 그 당시에 바그너가 유태인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고 하거든요. 다만 멘델스존과 마이어베어 등이 자신의 출세길에 걸림돌이 되었을 뿐이라는 것이지요. (3) 어쨌거나 바그너의 인격은 그다지 본받을 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술작품에는 작가의 얼이 담겨있으니 치사한 인격을 가진 예술가의 작품은 감상해선 안 된다는 식의 논리는 곤란합니다. 바그너의 음악이 어떻게 사람을 파시스트로 만드는지, 어설픈 추측만 늘어놓지 말고 객관적으로 설명해 보란 말입니다. 마릴린 맨슨의 음악이 어떻게 살인을 부추기는지 설명하란 말입니다. 콜럼바인 총기난사사건의 범인은 사건 당일 아침에 볼링을 쳤다니까요? 볼링 참 위험천만한 스포츠죠? (4) 바이로이트를 나치의 상징물처럼 여기는 태도 또한 공감할 수 없습니다. 야스쿠니 신사와 같은 무게를 가지는 곳은 아우슈비츠나 뉘른베르크 재판장 아닙니까? 그런 논리라면 푸르크벵글러의 베토벤 교향곡 9번 바이로이트 녹음을 들을 때에도 죄책감을 느껴 줘야 하는 겁니까? 역사 앞에 죄를 물어야 할 대상은 나치 정권이지 바그너가 아닙니다. 면죄부가 웬 말입니까? 히로시마 원폭과 관련해서 아인슈타인에게 면죄부를 주네 마네 한다면? (5) 나치가 바그너의 음악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사실은 지식인이라면 알아야 할 상식입니다. 20세기 과학기술이 대재앙을 만들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예술과 과학에 책임을 물으려는 태도는 차라리 진짜 원인을 은폐하려는 비겁한 술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살인사건의 원인을 마릴린 맨슨에게 덮어씌우는 사람들처럼 말이지요. (6) 텔아비브에서 바그너를 연주한 유/태/인/ 다니엘 바렌보임이야말로 존경받아 마땅한 이 시대의 지성인입니다. | |||||||
| 김원철님의 덧글에 부침 | |||||||
| 글쓴이 | 한아루미 (rumi82) | 날짜 | 2005년 8월 18일 1시 16분 | 추천 | 3 | 조회 | 1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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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로 지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제 글이 좀 두서없기는 합니다. 아마도 덧글 형식이어서 더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각각에 대해서 간단히 답변해 보겠습니다. (2) 바그너 자신은 나치주의자가 아닙니다. 그 점은 저도 분명히 언급했습니다. 바그너에게 나치의 죄과를 물을 수는 없을지도 모르지요. 그럼 비니프레트 바그너나 빌란트 바그너, 볼프강 바그너는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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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의 며느리와 후손들이 골수 나치주의자였던 것은 아마도 맞지 싶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유로 (3)과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은 바르지 않다는 것이 제 댓글의 요지였습니다. 과학기술 얘기를 끌어들인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었고요. (악용 가능성에 대한 인식과 대비는 필요하지만, 살인 기술이 싫다고 석기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죠.) 이에 대해서는 한아루미님께서도 동의한다 하셨으니, 의견차이가 생기는 부분은 바이로이트를 나치의 성지로 보는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인데요... 제 의견을 철회한 생각은 없지만, 아이고, 귀찮으니 이에 대해서는 발뺌하고 도망가겠습니다. ^^ 붙임. 저는 바렌보임의 행동을 예술지상주의적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행동의 정치적 정당성을 지지한다는 말이었답니다. 저는 '엔카'라는 일본의 음악 장르를 몹시 싫어하지만, 냉정하게 따지면 음악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서 오는 정서가 '엔카'라는 음악 장르를 용납하기 힘들게 합니다. 바렌보임은 그러한 정서적 반감을 떨쳐버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요. | 05/08/18 02:02 | ||||||
(3)이 '바그너의 예술에는 파시즘적 요소가 있다'는 주장을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역시 서로 의견 조정이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저 역시 그 주장과 '바이로이트는 나치의 성지였다'는 주장을 철회할 생각은 없으니까요. :-) 바렌보임에 대해서는 거의 같은 의견인 것 같습니다. | 05/08/18 12:41 | ||||||
다만, 그런 식이라면 베토벤의 교향곡에서 파시즘적 요소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고, 그것을 이유로 베토벤이나 바그너, 또는 마릴린 맨슨의 작품이 위험하다고 주장한다면 너무나 터무니없다는 것이 제 주장이었습니다. | 05/08/18 15:07 | ||||||
| 한아루미님의 덧글에 부침 | |||||||
| 글쓴이 | 박원철 (wagner) | 날짜 | 2005년 8월 18일 10시 10분 | 추천 | 3 | 조회 | 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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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토론들입니다. 미세하게 서로의 강조점들이 다른 부분을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가벼운 댓글 속에서 이미 바그너 연구와 관련해서 말 많이 나오는 거의 대부분의 주제들이 궁극적으로는예술과 정치의 한계점 문제 등등.....
1. 바그너 음악속에 있는 파시즘적 요소에 대해서.
공동체라는 단어와 회복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이미 "선동"이라던가 "파시스트적 요소"야
광복절 지난지 며칠도 안되었는데 고이즈미를 옹호(?)하는 듯한 말을 하게 돼서 현재도 고문직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말씀하신 주축국의 두 지도자들이 바이로이트에 있다는 묘한 느낌은 저도 느끼는바 돌아오는 것은 많이 퇴색되었다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3. 히틀러와 바그너
최근에 히틀러의 비서였던 여자가 책을 펴낸 일이 있습니다. 이 책을 바탕으로
언젠가 누군가가 히틀러에게 바그너의 마이스터징거가 어떻냐고 물었답니다. 이에 대해 히틀러는 별 생각없이 "응, 아주 좋아"라고 대답을 했고, 그 이후로는 그가 어디를 가던 마이스터징거만 나오더라는 히틀러의 증언(?) 내용을 싣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게 권력이고, 바이로이트가 나찌의 총본산처럼 떠오르게 되는데는 실제로 전쟁중에는 바이로이트에서도 마이스터징거만 죽어라고 했다는 .....
4. 아무튼 바그너는 참 시끄러운 예술가입니다. 죽은 지 약 120년 밖에 안 되었음에도 이미 온갖 논쟁과 신화의 한복판에 서 있으니 말입니다.
-- 박원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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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이 사람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도 총리 자격이 아니라 개인적인 입장으로 갔다는 둥 괘변을 늘어놨었죠. Untergang은 그 비서의 책도 참고가 되었지만 같은 제목의 요아킴 페스트의 책이 더 중요한 텍스트가 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 메커니즘의 작동하여 시너지 효과가 있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지만, 히틀러가 바그너의 광팬이었던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은 사실이죠.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이 마이스터징어만으로 운영된 것은 아마 1942년부터일 텐데 (정확하지 않습니다. 1941년이나 1943년일 수도 있습니다) 그건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합니다. 첫째는 전쟁이 어려워지면서 다른 많은 작품들을 상연할 형편이 못 되었고, 둘째는 마이스터징어가 히틀러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일 뿐 아니라 나치즘을 가장 잘 구현한 바그너의 작품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죠. | 05/08/18 12:49 | ||||||
가끔은 만약 히틀러가 다른 작곡가를 좋아했었으면, 오늘날 세계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혹은 오늘 우리는 그 세계를 어떻게 해석하려 했을까? 상상을 해 보곤 합니다. 커피 한 잔 앞에 놓고 떠들기 좋은 주제이지요. 기록을 찾아보니, 마이스터징거만 상연된 것은 1943년과 44년 두해 뿐이었습니다. 푸르트뱅글러와 아벤트로스(Hermann Abendroth)가 지휘를 했었고, 이것이 푸르트뱅글러의 유일한 바이로이트 악극 지휘 기록(51년 베토벤 제외)입니다. 전쟁중에는 마이스터징거만 한듯한 잘못된 정보를 드려서 죄송합니다. 지적하신 대로 선전 효과가 가장 높은 작품이어서 선택되었으리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또 유일한 해피 엔딩이라는 것도 고려되었겠지요. 혹시 마이스터징거 이외의 작품들, 즉 반지에서의 나찌즘적 요소라던가, 파르지팔에 나타난 히틀러의 형상 같은 주제의 글을 보신 분 계신가요? 개인적으로는 왜 모든 바그너-나찌 이야기는 맨 마지막에 마이스터징거로 돌아가는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별로 바그너스럽지 않은 작품이라고 보고 있습니다만 .....) | 05/08/18 14:23 | ||||||
| 역사적 정황 | |||||||
| 글쓴이 | 송원섭 (carl0326) | 날짜 | 2005년 8월 18일 8시 11분 | 추천 | 1 | 조회 | 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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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에 대해 나치적이라던가, 혹은 바그너가 나치에 부역했다던가 하는 말들은 말 그대로 보다는 역사적 정황과 그 흐름으로서 의미있을 수 있는 말입니다. 독일에서 이 나찌라는 것이 만들어진 것이 20 세기가 시작되고 한참 지나서이고, 바그너는 20 세기 시작되기 한 20 년 전에 죽은 사람이니까 말입니다. 말 그대로의 '부역'이라고 한다면 바그너는 하고 싶어도 못했을 것입니다. 또 친나치적이냐 반나치적이냐 하는 말도 바그너 자신에 대해서라면 의미가 없습니다. 나치당이 존재하지도 않고 나치즘이 존재하지도 않는데 그에 대해 친-반을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그너는 나치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나 치즘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생각할 때 아마도 가장 중심적인 반인륜적 주장은 인종차별주의였을 것입니다. 사실 이런 인종차별주의야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있을 것인데, 1900 년대 초반에 이르면 이런 것이 여러가지 주장들과 함께 과학으로부터도 충분히 뒷받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19 세기 후반에 불기 시작한 우생학의 유행은 세계 여러 나라에 영향을 주었고, 좀 더 나은 인종을 계속 태어나게 함으로써 더 우수한 국가를 만들고 더 우수한 세계를 이룩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연결되어진 것이 사실입니다. 이 시대에 바그너는 인종차별적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주장을 펼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그가 나치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미국이 20 세기 초에 우생학이라는 학문의 와중에 파생된 생각들 때문에 행했던 여러가지 범죄행위들을 보게되면 정말 황당한 것도 있습니다. 과부3대라고 유명한 사례가 있죠. 한 여자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를 낳고 남편이 곧 죽었고, 아이가 커서 결혼을 했는데 딸을 하나 낳고 또 과부가 되었습니다. 문젠 이 딸이 커서 결혼을 할 때가 되자 논란이 된 것입니다. 이 여자의 피에는 과부가 되는 유전자가 들어있음에 틀림없다는 것이죠. 그러니 후세를 위해 이 여자가 아이를 낳지 못하게 불임을 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던 것입니다. 이 주장 때문에 법정까지 갔는데 불행한 결말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런 조금쯤 황당한 우생학의 열풍 속에서 나치는 인종차별에 의해 열등한 종족은 멸종시켜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었고, 유럽에 퍼져 있던 유태인에 대한 불쾌감 뿐만 아니라, 그들을 노골적으로 비하했던 많은 사람들의 주장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유태인 대학살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바그너가 이들에 의해 이용되었다기 보다는 바그너가 바로 나치즘이 가능할 수 있도록 바탕을 깔아 놓는데 일조했다는 생각은 틀림없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에 비하면 베토벤은 '이용당했다'라는 말이 어울리겠죠.
문제는 그의 주장이 어땠다는 사실과 그의 음악을 완벽하게 분리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인데, 음악은 예술의 양식상 주장을 싣는 것이 그리 용이한 분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분리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자신의 주장을 자신의 음악에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기 때문이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경계심과 비판이라는 것은, 일제에 강점되어 30 년이 넘게 통치를 당해본 우리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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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토를 달아보면, 일단 바그너라는 사람의 주장은 "일관된 하나의 정신으로 끝까지"가 없습니다. 반-유대주의 주장도 실은 1850년대의 몇몇 논문의 이야기입니다. 주변의 친구들이 유대인이었고, 그의 음악을 만들어 주는 사람들이 유대인이었습니다. 후기 작품인 반지나 파지팔에서 반-유대주의적인 색채를 찾을 수 있을까요? 저는 못 찾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때가 되면 바그너라는 사람에게 반-유대주의는 별 중요한 의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9세기 중반, 당시 분위기가 당연히 반-유대주의였기에 기회주의자인 바그너가 잘난척하려고 쓴 논문들 아닌가 하는 것이 제 솔직한 판단입니다. 한가지 더, 정말 패러독스인 것은 2차대전 이전까지 바그너 음악의 팬중 많은 사람이 유대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시오니즘의 주창자중 하나인 Theodor Herzl이 탄호이저 공연중 시오니즘의 실마리를 발견했다는 그의 일기 이야기는 현재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비밀입니다. 즉, 우리가 걱정하는 반-유대주의 사회 분위기속에서 진작 유대인들은 바그너를 즐겼다는 거지요. 우리가 상상하기에는 유대인들과 바그너가 머리 터져라 싸웠을 듯 한데 말이지요. | 05/08/18 11:15 | ||||||
| 05/08/18 12:19 | |||||||
| 05/08/18 12:26 | |||||||
| 05/08/18 14:00 | |||||||
| 새메모에 연이은 글 | |||||||
| 글쓴이 | 장정일 (xtopa) | 날짜 | 2005년 8월 18일 12시 44분 | 추천 | 1 | 조회 | 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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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도배를 방지하기 위해 2회 이상 새메모가 금지 되어, 이어 씁니다.
그러니 바그너 당시의 유태인이 바그너를 반대하지 않고, 도리어 바그너악극을 즐긴 이유는 대리만족 때문이기도 하겠죠. 바그너의 민족주의 영웅주의 신화회귀담을 보면서 조상들의 옛 영화를 생각하며 시오니즘을 꿈꾸었을 공산도 있죠. 우리는 시오니즘이 팔레스타인 땅에 현재와 같은 조그마한 이스라엘 국가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흔히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정작 시오니스트들의 꿈은 이것보다 더 크죠. 중동 전체가 고대 이스라엘의 땅이라고 믿는게 그들의 생각이고, 그걸 복구해야한다는게 시오니즘의 최종 목적이라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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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장정일님이 말씀해주신 "바그너의 과도하고 반성없는, 민족주의/영웅주의/신화 회귀적 특성이 더 문제라는 것을 암시해줍니다"라는 구절에서 그 답을 찾았다고나 할까요. 가끔씩은 바그너라는 인물이 벌려 놓은 (그리고 그는 책임지지 않는) 온갖 쓰레기 같은 발언에 우리 모두가 낚시당했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유럽 지성사(知性史)가 그런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합니다만...... | 05/08/18 13:52 | ||||||
| 05/08/18 14:55 | |||||||
| 05/08/18 15:01 | |||||||
| 걍 지나가다가... | |||||||
| 글쓴이 | 이종훈 (acadia70) | 날짜 | 2005년 8월 18일 14시 24분 | 추천 | 0 | 조회 | 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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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그냥 지나가는 사람입니다만..
김 대중씨 대통령 되고..사회 분위기가 과거 7.80년대와는 달라지자 김지하씨도 소위 "생명사상"이라는 걸 들고 나오죠.자신 말로는 감옥에 있을때 창살에 날라온 씨앗이 싹이 터서 자라는 걸 보고 뭔 대오각성한 것처럼 말씀하시는데..김대중씨하고는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죠... "생명과 자치(1994)""예감에 가득찬 숲그늘(1999)", 강연 모음집 『율려란 무엇인가..이런데 보면 잘 나오죠.
건 데 출옥후 지금 이승헌씨가 원장으로 있는 단학선원하고 김지하씨가 연결됩니다.단학선원은 요즘의 禪,단전호흡 관련단체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국제적으로도 제법 인지도가 있는 단체인데...그런 단체의 확장전술인 유명인 포섭작전에 걸려든 것일 수도 있죠. 여튼 제가 잠깐 관련되어 봐서 아는데..그 단학선원의 강령이 소위 삼일신고,한단고기,홍익인간,동방의 등불...한민족은 선민족,인류를 구원할 사명을 가진 민족..이런 것이죠.
김지하씨는 시인답게 어둑어둑한 그늘,햇빛에 대비되는 달빛,울나라 전통음률..소위 "율려"하는 것이죠..이라며 위의 사상을 음악,예술의 영역까지 확장을 하는데요. 바그너의 무한선율하고 연결시키자면..뭐..그다지 못할 것도 없죠. 결국 김지하씨도 단학선원과는 연을 끊고 독자적 길을 갔지만..그 과정도 명예훼손이니 말이 많았죠..심지어 테러협박에 시달리기도 하고요.. 초기에는 단학선원의 강령에 깊히 경도 되었던 건 사실이죠.
뭐 별 중요한 얘기는 이니겟습니다만, 여튼 신경식이라는 분의 글이 쓸데없이 바그너를 신화화(mystification) 하거나, 혹은 반대로 구체적인 내용없이/ 개인적인 느낌만을 근거로 잘못 전달하는 (misreprentation)하는 황당하거나 쓰레기 글은 아니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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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가는 글입니다... 조금은 다른 이야기지만 저도 고클에서 '음악은 당연히 감상자의 감상이 제일 중요한것이고 그것이 음악이
본질' 이라는 식의 언급에 상당히 놀랬던 적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음악, 특히 클래식이라 불리는 것은 상당한 시일에
걸쳐서 공부하고 노력해도 좀체로 그 본질을 보여주지 않는 대표적인 '학문'인것 같은데, 요즘 사람들은 더 자세히, 정확하게
알려고 하지는 않고 일단 자신이 알고 있는 한에서 그것이 전부인것 마냥 재단해버리는 경우가 많은것 같습니다... 좌우지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알지 못하면서 결론부터 내리는 것은 쉽고 빠르지만 알팍한거 좋아하는 요즘 사람들이 행하는 대표적인 오류인거 같습니다... 거꾸로 음악을 알면 알게 될수록 무언가 결론을 내리기가 더욱 힘들어지고 정말 음악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라는 생각만 강해지더군요... 2005/08/17 18: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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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를 인용한 이유를 이해 못 하는 분이 있을까 봐 링크 하나 덧붙입니다. http://busantheater.co.kr/movieinfo/now_news_view.asp?idx=MI0000105020&rnum=4m_id=M000016482&mi_type=01 2005/08/17 19: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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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eidias님, 좋은 덧글 고맙습니다. 갑자기 오래된 우스갯소리 하나가 생각나는군요. 학사 학위: '나는 내 전공에 대해 다 알아!' 하는 사람에게 주는 것. 석사 학위: '나는 내 전공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구나!' 하는 사람에게 주는 것. 박사 학위: '사실은 나만 모르는 게 아니었구나!' 하는 사람에게 주는 것. 교수: '그렇다면 이거 가지고 사기 쳐 먹어도 되겠구나'! 하는 사람이 택하는 직업. 2005/08/17 19: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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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바그너에대해 눈꼽만치도 모릅니다만, 제 느낌을 몇자 적습니다. 예술감독님과 국장님이 이번 바이로이트 축제에 다녀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