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17일 월요일

2005.10.20. 지휘자 이윤국을 주목하라! (서울바로크 합주단 / 트리스탄과 이졸데 1막 전주곡)

서울바로크합주단 창단 40주년 특별정기연주회
2005년 10월 20일(목) 저녁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 리더: 김 민 / 객원지휘: 이윤국
- 베이스: 연광철 / 바이올린: 김홍준 / 비올라: 윤진원
   W.A.Mozart - Serenade No.6 in D Major K.239
   W.A.Mozart - Aria for Bass, K.612 "Per Questa Bella Amno" (베이스:연광철)
   K.Atterberg - Suite for Violin, Viola and String Orchestra Op.19 No.1
                       (바이올린: 김홍준 / 비올라: 윤진원)
   W.A.Mozart - Aria for Bass, K.541 "Un Bacio di mano" (베이스:연광철)
   W.A.Mozart - Aria of Leporello,"Madaminal, il catalogo e questo" (베이스:연광철)
                      -Intermission-
   R.Wagner - Opera 'Tristan and Isolde' 중 전주곡
   R.Wagner - Konig Markes Klage, "Tatest du's wirklich?" (베이스:연광철)
   A.Piazzolla - Tre Minutos con la Realidad
                       Concierto para Quinteto
                       La Muerte de Angel



내가 이날 연주회에 간 것은 순전히 연광철의 바그너를 듣기 위해서였다. '연광철'과 '바그너' 이 두 단어의 결합이라면 다른 것은 아무래도 좋았고,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나는 덤으로 이윤국이라는 뛰어난 지휘자를 발견하는 횡재를 했다. 이윤국은 모차르트를 연주할 때부터 크고 명쾌한 비팅으로 작품의 주요 포인트를 매우 잘 살려내더니, 바그너를 할 때에는 소편성으로 바그너를 연주할 때 생기는 난점을 효과적으로 해결하기도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트리스탄과 이졸데> 1막 전주곡을 연주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긴 호흡으로 거대한 크레셴도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성급하거나 불필요한 아고긱과 뒤나믹의 변화는 자칫 음악의 흐름을 망쳐 버리기 쉽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큰 폭의 크레셴도를 감당할 만큼 큰 편성의 오케스트라가 꼭 필요하다. 이윤국은 서울바로크합주단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위험천만한 모험을 했는데, 표현할 수 있는 셈여림의 한계를 빠른 템포 변화와 거친 호흡 조절로 보충한 것이다. 결국, 지휘자는 전체적인 해석의 틀이 특이하기는 해도 작품 속에서 '드라마'를 살리는 데에는 성공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지휘자의 해석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을 유지해서 나름대로 상당한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이른바 '트리스탄 코드'를 중심으로 하는 세 번의 동형진행에서는 크레셴도와 디미누엔도의 낙차가 큰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이날 연주에서는 그냥 부드럽게 처리했다. (물론 편성이 따라주지 않기도 했다.) 다만 마디 10에서 스포르찬도를 나름대로 살린 것은 좋았다. 마디 17에서는 첼로의 주선율 연결이 자연스럽지 못했는데, 나의 외람된 의견으로는 지휘자와 악단 사이에 사인이 안 맞아서 첼로의 반응이 살짝 늦은 탓에 일부 악기가 데크레셴도를 과하게 했거나 심지어 소리가 멈추어버린 뒤에야 첼로 소리가 나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한다.

마디 23부터 45까지 악보에 복잡하게 나타나는 지시들은 주로 템포 및 셈여림과 관련한 것인데, 내가 여기서 받는 느낌은 마치 주저하는 듯한 심리상태다. 그런데 이윤국은 템포의 변화를 매우 빠르고 크게 함으로써 차라리 격렬한 마음을 억제하려고 노력하는 듯한 느낌을 전달했다. 마디 47 이후부터는 불규칙한 아고긱의 변화가 정리되며 리듬 패턴이 고정되는 양상을 보이는데, 지휘자는 상당히 빠른 템포로 밀어붙였다. 그런데 마디 52에서는 '너무 서두르지 말 것(Ohne zu eilen!)'이라는 지시가 있고, 마디 63에서는 '절대 서두르지 말 것(Niemals eilen!)'이라고 되어 있다. 지휘자는 결국 바그너의 지시를 무시한 셈이지만, 편성의 제약을 고려하면 이는 차라리 영리한 해석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마디 47부터 끝까지 지휘자가 악단으로부터 이끌어낸 고양감은 소편성 치고는 대단한 것이었다. 다만, 클라이맥스에서 폭발력이 약했던 것은 어쩔 수 없었으리라.

전주곡의 끝을 2막 브랑게네의 비명 직전으로 연결한 재치는 썩 마음에 들었다. 현의 재빠른 보잉 변화도 좋았다. 거친 리듬과 함께 등장한 연광철의 노래가 끝난 뒤에는 3막 마지막 부분(In dem wogenden Schwall, in dem tönenden Schall, in des Weltatems wehendem All)으로 자연스럽게 건너뛴 아이디어도 좋았다.

연광철의 노래는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독일 음악평론계의 황제라는 요아힘 카이저는 연광철을 일컬어 '바그너가 찾던 바로 그 목소리'라 했던가. 모차르트를 노래하던 담백하고 섬세하면서도 힘차고 단단한 목소리는 바그너를 할 때에는 전혀 다른 목소리가 되어 비탄에 빠진 마르케 왕을 훌륭하게 표현했다.

<니벨룽의 반지> 한국 초연의 대단원이 끝나던 날, 나는 지인과 함께 바그너 자력 연주의 가능성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못해도 좋으니까 <파르지팔> 같은 작품을 무대에 올려만 달란 말이야." 나는 이 말에 대해 바그너를 하겠다고 덤비는 지휘자가 없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윤국이라면 어떨까? 그가 제대로 된 편성으로 바그너를 연주하는 것을 듣고 싶다. 이날처럼 변칙적인 아이디어를 쓰지 않고도 바그너를 잘할 수 있을까? 한국인 바그너 지휘자의 탄생을 기대해도 좋을까? 피아졸라의 탱고를 매우 잘했는데다 앙코르도 피아졸라의 작품으로 한 것을 보면 그의 취향이 그쪽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가 바그너를 본격적으로 지휘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괜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그의 지휘자로서의 능력이 뛰어난 것은 분명하다. 이윤국은 내가 주목해야 할 지휘자 1순위가 되었다.

2005년 10월 30일 씀.

고클래식 댓글:

streicher: 특히 모차르트와 전고전시대의 작품 해석에 능통한 지휘자로 알려져 있죠. 10년 전에 C.P.E.바흐와 W.F.바흐의 신포니아를 녹음한 음반(Naxos)이 그라모폰 에디터스 초이스로 선정된 바도 있습니다. 지난 달에 부천에서 부천필을 두 차례 지휘하여 모차르트의 교향곡과 협주곡을 들려 주었는데, 악단의 규모도 30명 정도로 줄여서 템포도 전체적으로 빠르게 설정하여 연주하였고, 비브라토도 극단적으로 자제한다든가 보잉도 빠르게 짧게 하는 등 시대악기 연주를 연상시키는 절충주의적인 해석을 선보였죠. 악보도 직접 들고 와서 며칠 동안 단원들을 한 명 한 명 코치를 했다는데, 아마도 부천필 단원들로서는 상당히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자주 초빙한다면 국내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여러 가지로 많이 배울 수 있겠지요. 참, 피아졸라를 상당히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부천에서 있었던 두 번의 연주회에서 앙코르 곡으로 모두 피아졸라를 들려 주었고, 편곡도 직접 했다는군요... :-)05/10/31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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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gnerian: 그렇군요..;; 어째 모차르트를 잘하더라니... -_-; 연광철의 모차르트도 정말 좋았고, 특히 "Madaminal, il catalogo e questo"가 끝장이었답니다.05/10/31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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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5.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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