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2월 27일(화) 오후 7시30분
세종 체임버 홀
Violin Sonata No. 3 in d minor, Op. 108 (21')
String Quintet No. 1 in F Major, Op. 88 (26')
String Sextet No. 1 in Bb Major, Op. 18 (33')
Op. 108: Marko Komonko(vn), Park, Jong-Wha(pf)
Op. 88 : Violin 임가진,유미나 / Viola 진민호, 안톤 강 / Cello 강찬욱
Op. 18: Violin 데니스 김, 김효경 / Viola 헝웨이 황 , 임요섭 / Cello 박은주, 김민경
한국의 음악계에서 오케스트라 단원을 바라보는 '전통적인' 시각은 그들이 독주자로 성공할 능력이 없어서 오케스트라를 한다는 것이다. 스타 시스템과 콩쿠르 위주의 교육제도 때문에 이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하며, 심지어 오케스트라 단원 자신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듯하다. 이것은 물론 한국만의 문제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선진국에서는 유명 오케스트라 단원이 독주자나 실내악 활동을 겸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 모양이니 오케스트라 단원의 위상이 한국보다는 훨씬 높다 하겠다. 이런 현실에서 서울시향의 브람스 실내악 시리즈가 가지는 의의는 실로 크다. 실내악 연주회는 단순히 시향 단원들의 직업 만족도를 높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실질적인 연주력 향상을 가져올 것이다. 그것은 첫째로 현재의 열악한 음향 환경에서 수많은 사람이 모였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쾌적한 조건에서 파트별로 호흡을 맞출 기회가 제도적으로 확보되고(세종문화회관 체임버 홀의 음향은 꽤 훌륭했다), 둘째로 지휘자에 의존하던 작품 해석을 스스로 해보는 경험을 바탕으로 지휘자의 의도를 능동적으로 이해하게 될 것이며, 무엇보다 연주자 개개인이 주인공이 될 기회와 연주자 간에 더욱 친밀해진 교감을 통해 단원들 스스로 음악을 진심으로 즐기는 방법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날 연주에서는 아무래도 이들이 실내악 전문 연주자가 아닌 탓인지 다소 미숙함을 보이기도 했다.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3번 Op. 108을 연주한 Marko Komonko는 긴장이 심했는지 특히 초반에 실수가 많았고, 전체적으로 자신감이 부족해 보였다. 곡 해석이 특별히 모난 곳은 없었지만 4악장 마디 104에서 스타카토 음형을 또렷하게 살린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이어지는 레가토 음형과의 구분도 필요하겠지만 이를 위해서는 데타셰로도 충분하다. 문제의 스타카토 음은 내림박이기도 하거니와 다섯 마디에 이르는 딸림화음의 긴장감이 마침내 해결되는 음이기 때문에 종지감(終止感)을 충분히 살리려면 지나치게 짧게 연주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본다. 게다가 레가토 음을 시작하는 E 음은 비화성음은 아니지만 선율 진행상 보조음(neighboring tone)에 가깝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아쉬움이 많았던 연주였지만, 실내악 시리즈는 이제부터 시작이니 앞으로 더 나아진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또 있을 것이다.
글머리의 논점에 비추어 가장 큰 칭찬과 격려를 보내고 싶은 연주자들은 현악 오중주 1번 Op.88을 연주한 임가진 등이었다. 물론 이들의 앙상블이 썩 훌륭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으며, 이날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훌륭한 연주를 들려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은 때때로 어수선한 앙상블과 다소 밋밋한 곡 해석을 뜨거운 열정으로 보완했다. 이들의 연주에는 실황 연주에서만 느낄 수 있는 현장감이 생생하게 살아있었고, 특히 제1 바이올린과 첼로의 교감이 보기 좋았다. 두터운 화음이 강조되는 부분(이를테면 1악장 마디 20)에서 템포를 일시적으로 늦추곤 했던 것은 갑자기 눈에 띄게 변한 템포가 음악적 긴장감을 떨어뜨렸던 까닭에 그 자체로는 공감하기 어려웠지만, 그것을 기회로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마음을 새로 모으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이들은 진심으로 자신의 연주를 즐기는 듯했고, 얼굴에는 웃음이 걸려 있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앙상블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을 기회는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날의 초심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다.
현악 육중주 1번 Op.18을 연주한 데니스 김 등은 각 파트의 수석급 연주자들로 과연 서울시향의 뛰어난 앙상블에 이들의 역할이 컸음을 이날 연주로 새삼 알 수 있었다. 세련된 바이올린과 열정적인 비올라의 대립구도가 흥미진진했으며, 특히 유명한 2악장이 인상적이었다. 다만, 임가진 등보다 열기는 부족했으니 두 팀이 서로 장점을 본받으면 좋겠다. 해석상의 옥에 티 한 가지를 지적하자면, 스타카토 음형의 분절적 느낌을 맥락에 따라 좀 더 다채롭게 표현했더라면 더욱 훌륭한 연주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브람스 작품의 스타카토는 보통은 데타셰 주법으로 부드럽게 넘어가는 것이 좋은 경우가 많은데, 앞서 지적한 바이올린 소나타 3번의 경우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때로는 스타카토를 또렷하게 표현하는 것이 더 어울릴 때도 있다. 이를테면 1악장 발전부 렌틀러(ländler) 주제 직전의 스타카토 음형(마디 190)이 그렇다. 이날 마디 189에서 템포를 살짝 늦추면서 마디 190으로 이어지며 데타셰로 부드럽게 넘어간 것은 앞 마디의 으뜸화음이 이어지면서 화성적 긴장이 해소되는 국면인데다가 데크레셴도까지 동반했다는 점에서 일견 타당하다. 그러나 마디 190의 스타카토가 지나치게 불명확하면 마디 188에서 190에 이르는 동안 음가(音價)가 점점 늘어나면서 자칫 음을 질질 끄는 느낌이 들 수 있다. 또한, 마디 189에서 텍스처가 갑자기 엷어진 것은 오히려 음악적 긴장감을 살짝 높임으로써 전체적인 이완이 지나치지 않도록 조절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음악적 긴장이 극에 달했을 때 갑자기 텍스처를 엷게 함으로써 특별한 효과를 일으키는 것은 19세기 이후의 작품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마디 190의 스타카토 음형은 데타셰 주법을 사용하더라도 분절적인 느낌을 충분히 살리는 것이 좋으며, 템포 변화도 주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2악장 마디 79는 2악장 전체의 클라이맥스로 볼 수 있으므로 스타카토 음형을 좀 더 날카롭게 처리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4악장에서는 첼로와 바이올린이 같은 모티프를 연주하면서도 첼로(마디 3 등)는 스타카토를 또렷이 처리했지만 바이올린(마디 19 등)은 부드럽게 넘어감으로써 일관성을 잃었던 것이 옥에 티였다.
지난 정기연주회 리뷰를 쓰면서 나는 서울시향이 타성에 젖어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그래서 단원들에게 그들이 연주하는 작품을 진심으로 사랑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런데 브람스 실내악 시리즈야말로 현재 서울시향에 가장 훌륭한 처방일지 모른다. 서울시향의 브람스 시리즈에 실내악이 들어간 것은 브람스가 기본적으로 실내악 작곡가이기 때문일 것인데, 어쩌면 시향의 공연기획자는 지금의 상황마저 예견했던 것은 아닐까. 실내악 시리즈의 시작은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시향은 진정한 기본기를 쌓아나갈 것이다.
김원철. 2007.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