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월 27일(수) 저녁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바그너,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 1막 전주곡
힌데미트, <화가 마티스>
슈만, <교향곡 4번>
내가 구자범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바그너 가수 사무엘 윤을 통해서였다. 다름슈타트에 구자범이라는 뛰어난 지휘자가 있다고 했는데, 그때는 그저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러다가 2003년 8월 30일에 사무엘 윤 등과 함께 내한하여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반주로 오페라 갈라 콘서트를 열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오케스트라의 연습 부족 탓인지 별볼일없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사무엘 윤이 노래했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중 네덜란드인의 아리아 "때가 되었다. 세월은 흘러 또다시 7년이 지났도다. Die Frist ist um, und abermals verstrichen sind sieben Jahr'"에서는 특히 오케스트라가 악보를 따라가는 데 급급해서 지휘자의 해석이 반영될 여지도 없어 보였는데, 유일하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마지막 총주 도중에 수비토 피아노로 잠시 긴장을 늦춘 다음 다시 크레셴도를 사용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사전에 충분한 음악적 긴장감이 뒷받침되지 않은 탓에 공허한 트릭이 되고 말았다. 그날 내가 쓴 감상문에는 "오케스트라의 역량이 확실하게 받쳐주었다면 어떤 대단한 효과를 거두었을지는 모르겠"다고 쓰여 있다. 그 "대단한 효과"는 약 3년이 지나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 (원래는 작년 4월 9일 부천 시민회관 대공연장에서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5번과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피아노: 주희성)을 연주했다는데, 그날 연주회에는 가지 못했다. 또 그해 5월 31일 교향악 축제에서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연주할 예정이었다는데, 무슨 사정에서인지 지휘자가 바뀌었다. 지난 22일부터 25일까지 예술의 전당에서 있었던 국립오페라단의 <투란도트>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가지 못했다.)
이번 연주회도 사실은 예정에 없던 것으로 정명훈의 입김에 의해 급히 만들어졌다고 한다. 듣자 하니 연주회 프로그램도 구자범이 원한 것이 아니었단다. 결정적으로 연주회장이 저 악명 높은 세종문화회관이다. 단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오케스트라가 최근 개편을 통해 비약적인 연주력 향상을 이룬 서울시향이라는 것이다. 결국 이날 연주는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정교하게 다듬지는 못한 것 같았는데, 그럼에도 많은 부분에서 감탄할 만한 해석을 보여주었으며, (내가 앉았던 자리가 너무 앞쪽이라 부정확한 판단일 수 있지만) 전체적인 밸런스도 매우 뛰어났다. 순간적인 아고긱(Agogik)과 뒤나믹(Dynamik)의 변화들은 3년 전과는 달리 연주의 완성도를 높이는 효과를 거두었다.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 1막 전주곡은 선이 가는 편이었다. 지휘자는 리허설 도중 이 작품은 원래 '작은 마을에서의 전국노래자랑' 얘기이므로 지나치게 장엄하게 연주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는데, 그 말을 듣고 개인적으로 상당한 우려를 가졌지만 결과는 이해할 만한 수준의 '현대적' 해석이었다. 다만, 저 주장에 대해서만 굳이 반박을 하자면 이렇다. 바그너는 '작은 마을에서의 전국노래자랑'에 빗대어 독일의 예술과 장인 문화의 전통과 독일 민족을 얘기한 것이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초등학교 교실을 배경으로 한 성장소설이라고만 말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마이스터징어'는 작품 전체를 보면 확실히 그랜드 오페라는 아니다. ('악극' 얘기는 넘어가기로 하자.) 그러나 발터의 우승이 결정되고 한스 작스가 장인 가수들의 전통과 '독일의 진실한 정신'과 '위대한 독일 예술'을 얘기할 때의 음악은 매우 장엄하다. 이것이 1막 전주곡에 링크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무리일까?
기름기를 뺀 해석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대위 선율이 실내악적으로 얽히는 부분의 앙상블이 정교해야 한다. 이날 연주는 과연 내가 이제까지 들어본 국내 오케스트라에 의한 '마이스터징어' 가운데 최고라 할 만큼 좋았다. 파트별로 긴밀하게 교환하는 호흡과 안정된 밸런스가 돋보였고, 목관악기군과 현악기군이 주고받는 부분의 이음매도 자연스러웠다. 이른바 '다비트 왕 모티프'가 재현되는 "Sehr gewichtig."(마디 196)에서 템포가 잠시 느려졌다가 다시 빨라지는 이른바 '왕자병 템포'는 독특한 방식으로 바그너다운 것이었다. 세 번의 C 장조 화음으로 된 콘서트 버전의 통상적인 축제적 끝맺음 대신 마지막 화음을 길게 늘여 이어지는 1막의 교회 오르간을 연상시킨 시도도 참신했다.
한편, 급히 마련된 연주회의 서곡에 불과한 작품에 많은 연습 시간을 투자했을 리는 없으니 뛰어났던 앙상블의 상당 부분은 서울시향 단원들의 기본 테크닉에서 우러나왔을 것으로 추측된다. 지휘자가 작은 부분까지 꼼꼼히 다듬지는 못했음은 마디 178에서 팀파니 주자가 저지른 사소한 실수에서도 짐작할 수 있었다. 여기서 팀파니의 첫 타격이 갑자기 두드러졌다가 급히 음량을 줄이는 모습을 보였는데, 팀파니의 음량이 큰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트럼펫이 그에 대등한 음량을 내지 못했던 것이 문제가 된다. 이것은 트럼펫 또는 팀파니의 단순 실수일 수도 있지만, 정황을 보아 두 연주자 사이에 사전 이견 조율이 부족했던 탓이 아닐까 싶다.
국내 오케스트라가 바그너를 연주할 때 항상 드러나는 문제는 현악기군의 이른바 '안전빵 보잉'이다. 이날 연주에서는 그나마 내가 들어본 중에서는 양호한 수준이었으나 만족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바이올린은 특히 곡의 후반부에서 더 강하게 긁어대었으면 좋았을 것이고, 마디 18-25와 마디 [] 등에서는 마르카토의 느낌을 더 살려서 관악기군과 주법상의 동질성을 높였으면 싶었다.
힌데미트의 <화가 마티스>는 이번 연주회에서 시향 단원들에게 가장 큰 도전이었을 것이다. 제한된 시간에 수준 높은 연주를 이끌어내야 했을 지휘자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어쩌면 단원들로 하여금 이 작품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만드는 것은 일개 객원지휘자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시향의 연주는 전체적으로 균형잡혀 있었으나 음악적 긴장감이 썩 높지는 않았다. 연습기호 2에서는 글로켄슈필 소리가 너무 크다고 느꼈다. 연습기호 11을 여는 두터운 화음은 앞뒤 부분과의 음량 대비가 약했다. 이 부분은 텍스쳐의 일탈적 변화를 동반한 데다가 메조포르테가 피아니시모에 둘러싸인 형국이라 상대적으로 크게 두드려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2악장은 투명하게 정제된 연주였으며 포르티시모로 치달을 때에도 낭만주의적 과장은 없었다.
3악장 연습기호 1의 "Sehr lebhaft" 직전 32분음표는 악마적인 느낌을 살리기 위해 가능한 한 날카롭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만(특히 바이올린과 비올라) 시향은 그냥 부드럽게 처리했다. 이것은 내가 들어본 다섯 종의 음반 가운데서도 썩 만족스러운 것은 없고 그나마 블롬슈테트-샌프란시스코심포니(데카)의 연주가 나은 편이다. 아무래도 앙상블을 맞추기가 힘들기 때문일까? 시향의 연주에서는 대신 바이올린 및 비올라와 나머지 악기군 사이에 주고받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점은 좋았다. "Sehr lebhaft"에서는 트럼펫 소리가 너무 커서 주선율을 침해했으며, 이 때문에 첼로는 바로 앞 마디의 C♮로부터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못했다.
연습기호 13에서는 현악기군이 충분히 강력하지 못한 탓에 상승 음형을 끝맺는 바이올린 트릴의 절정감이 부족했다. 이것은 상당 부분 연주회장 탓이기도 하다고 생각되며, 연습기호 16에서 현에 의한 점층효과가 크지 못했던 것도 마찬가지다.
연습기호 27 "Sehr lebhaft"에서는 템포가 충분히 빠르지 못했다. 푸가토의 정교함을 살릴 목적이었다면 이는 서울시향의 연주력이 부족함을 반증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호른과 클라리넷이 멈춤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나온 것은 썩 좋았다. 연습기호 35에서는 결정적인 순간에 실수가 있었는데, 힌데미트가 단 하나의 악기로 곡의 긴장감을 극에 이르도록 했던 탓에 그 실수는 가히 치명적이었다. 차마 그 악기의 이름을 여기에 쓰기는 미안하지만, 언제든 이런 실수가 일어날 수 있고 그것이 매우 큰 실수인 만큼 반면교사로 삼기 위해서라도 정황을 기록해둘 필요는 있겠다. 바로 뒤에 두 가지 악기에 의해 동형진행처럼 나타나는 부분에서도 실수가 있었다.
슈만 교향곡 4번 (작성중)
이번 연주회 프로그램은 어쩐지 지휘자 콩쿠르에 쓰일 법한 구성이다. 오케스트라의 기능성을 잘 살릴 수 있는 작품, 리듬과 음색에 대한 지휘자의 감각을 시험할 수 있는 작품, 그리고 쉽고도 어려운 낭만주의 작품. 정명훈이 어떤 식으로든 구자범을 시험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어떤 면에서는 박사 학위보다 학사 학위의 권위가 더 큰 대한민국에서 구자범의 특이한 이력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지휘자로서의 활동에 커다란 장애가 될 수 있다. (이미 독일에서 성공한 그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신경 쓸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는데 어쩌면 가장 큰 도움을 줄 사람이 정명훈이기도 하다. 정명훈은 구자범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렸을까? 내가 정명훈이라면 A 학점에 준하는 평가를 내리겠다.
2006년 2월 28일 씀.
2006년 3월 6일 고침.
김원철. 2006.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