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13일 목요일

《트리스탄과 이졸데》 음반 리뷰: 구달-웨일즈 내셔널 오페라 1980-1 DECCA

지난 2003년 ☞프리챌 바그네리안(옛 하이텔 바그네리안, 지금은 ☞네이버 바그네리안) 게시판에 올렸던 글입니다. 2004년에 제 홈페이지로 가져오면서 ☞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를 적용했습니다.

옛날 글 다시 보니 참 부끄럽네요. 그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올립니다. ^^


DECCA
[4 CD] 443682-2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WAGNER: Tristan und Isolde

Tristan - John Mitchinson
Isolde - Linda Esther Gray
Brangaene - Anne Wilkens
Marke - Gwynne Howell
Kurwenal - Phillip Joll
Melot - Nicholas Folwell
Hirt - Arthur Davies
Steuerman - Geoffrey Moses
Stimme eines jungen Seemans - John Harris

Reginald Goodall (conductor)
Welsh National Opera


 녹음: 1980-81 Stereo, Digital
장소: Unknown
 

 
고클래식에서 음반 정보를 퍼왔습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레지널드 구달





1막



전주곡에서 저 유명한 '트리스탄' 화음이 처음으로 등장할 때 오보에가 강조된 것은

좋은데, 다른 악기들보다 살짝 늦게 나오기 때문에 역시 뵘의 연주와 같은 충격은

없습니다. 크레셴도의 폭 역시 좁습니다. 느린 템포로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잘 살리고

있지만, 그 대신에 퇴폐적인 맛은 없습니다.



젊은 선원의 노래는 별로입니다. 전주곡에서부터 듣는 사람의 호흡을 압도하지

못하니까 이 중요한 대목에서 이 모양입니다.



이졸데의 "Brangäne, du? Sag', wo sind wir?" 직후부터 나오는 현의 멜로디와

관련한 상징성에 대해서는 뵘 편에서 제멋대로 규정한 바 있습니다.

구달이 만들어내는 물살은 썩 좋습니다. 비록 뵘이나 푸르트벵글러 등의 깊은

맛을 내기에는 이 영국 출신(아마도) 지휘자로서는 역부족으로 보입니다만,

적어도 특유의 리듬감은 1막 내내 잘 살리고 있습니다.



가수들은 별로라고 생각합니다. 이른바 '딕션'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잘 모르는

저로서도 비독일계 가수들이 바그너를 부를 때 생기는 비극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졸데 역의 린다 에스더 그레이로부터는 닐손이나 플락스타트의 템포 데 루바토의

묘미를 느낄 수 없습니다. 특히 트리스탄 역의 존 미친슨은 제가 무지 싫어하는,

비브라토 심하게 하다가 음정이 마구 흔들리는 발성을 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관현악은 꽤 좋은 편입니다. 구달은 음향적인 역량의 부족을 느릿한 템포와

훌륭한 디테일로 충분히 보상하고 있습니다. 쿠르베날이 마침내 트리스탄을 이졸데

앞으로 데려왔을 때 나오는 분노한 이졸데의 모티프(파 솔 시b 라b -

미b 미b 레  레b 레b 파b)는 얼음장과도 같이 싸늘한 눈빛을 연상시키는데,

구달의 연주는 썩 좋은 편입니다. 바이올린을 좀 더 강조했으면 더욱 좋았겠습니다.

그러나 선원들의 "호! 헤! 하! 헤!"는 두 사람의 심리상태를 반영하지 못하고

촐랑대는 것처럼 들립니다. 직후에 순간적으도 몹시 빨라지는 템포도 불만인데,

제 생각에는 여기서 트리스탄의 심리상태를 반영하는 것보다 도취적인 리듬을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약을 나눠 마시고 서로 쳐다보는 대목에서

현악기들이 만들어내는 트레몰로는 푸르트벵글러 판에 비길 만합니다. 선원들이 국왕

만세를 외치는 부분에서도 음향적인 아쉬움이 있지만 예의 리듬은 잘 살리고 있습니다.





2막



전주곡 시작 부분에서의 신기한 '이졸데 리듬'에 대해서는 뵘 편에서 자세하게 기술한

바 있습니다. 이 리듬에 대한 배신(!)을 제외한다면 다른 부분은 썩 좋습니다.

현악기들의 3연음도 뵘을 제외한 다른 녹음들에 비하면 잘 들리는 편입니다.

특히 목관 악기들의 데크레셴도를 동반한, 마치 바다 속 세계를 보여주는 듯한

음향효과가 현악기들의 디테일에 힘입어 잘 살아나고 있습니다. 구달의 음향효과는

물과 관련한 것들은 뵘의 그것에 꽤 근접하고 있는데, 섬나라 사람의 타고난 감각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수들의 노래는, 1막에서는 독특한 리듬을 타는 것이 뛰어난 관현악에 미치지 못했던

것에 비해 2막에서는 정적인 성격이 강화되어서인지 꽤 괜찮게 들립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만난 직후의 고음처리도 매우 좋습니다. 이졸데를 맡은 린다 에스더 그레이의

날카롭게 질러대는 고음은 다른 가수들이 흉내 내기 힘들어 보입니다.

"O sink hernieder" 대목에서 구달은 역시 뵘과 같은 음향보다는 푸르트벵글러 같은

서정성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디테일이 잘 살아서 푸르트벵글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좋은 음향을 내주기도 합니다. 다른 녹음에서는 잘 안 들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합니다.



브랑게네의 두 차례의 아리오소 역시 서정성은 좋지만 시선의 이동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이는 현악기들의 도취적인 음향을 살리는 데에 실패한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가수의 내공 부족으로 인한 오버랩 효과의 실패에 더욱 큰

원인이 있습니다. 여기서 하프 소리는 다른 어떤 녹음보다도 또렷하고 영롱하게 들립니다.

이에 비하면 다른 녹음들에서 하프 소리가 있었나 싶습니다.



마르케 왕 등이 등장하는 대목에서 브랑게네의 비명 소리가 매우 사실적입니다.

음악적인 내공이 부족하면 이런 거라도 잘해야 합니다. 마르케 왕의 등장을 알리는

트럼펫 연주 뒤에 나오는 음향효과는 푸르트벵글러의 것을 그대로 흉내 낸 것 같습니다.

저음군과 고음군이 한 박자씩 주고받기만 하기 때문에 단순하게 들립니다.

푸르트벵글러만큼의 풍성한 저음의 울림을 만들어내지는 못하는 대신 디테일이 잘

살아서 그래도 푸르트벵글러보다는 낫습니다.



마지막 관현악 관현악의 총주는 절반의 성공입니다. 트럼펫 등은 잘했는데, 그 전에

다른 악기들이 굼뜨는 템포로 박력 없이 연주했기 때문에 '카메라 워크'의 효과가

반감되었습니다.





3막



전주곡 별로입니다. 뵘과 비교하면 화음의 밸런스를 잘 살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묵직한 저음이 없는 것이 용서가 안 됩니다. 잉글리쉬 호른의 솔로는

음색은 좋은데 셋잇단음을 스타카토로 연주하라는 악보 상의 지시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이것을 빼버린 탓에 뵘이나 푸르트벵글러의 연주에서 느끼수 있는 묘한

정서가 반감되고 그저 유려하기만 합니다. 현악기들은 그나마 스타카토를 제대로 살려서

연주하는군요. 템포도 적당합니다.



뿔피리 소리 바뀔 때, 소리가 매우 멀리서 작게 들립니다. 아티큘레이션이 너무 좋아서

잉글리쉬 호른이 아니라 트럼펫이 아닌가 의심스럽기도 한데, 확실한 것은 모르겠지만

잉글리쉬 호른 맞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 부분에서 소리가 작은 것은 제 취향에

맞지 않습니다. 이어서 이졸데가 등장할 때까지의 연주는, 물론 제 취향 문제이겠지만,

트리스탄의 광분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느긋한 템포 등이 딱 푸르트벵글러입니다.

이것은 쿠르베날의 전투장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린다 에스더 그레이의 사랑의 죽음은 별로입니다. 크레셴도의 묘미도 별로이고,

특유의 리듬과 아첼레란도를 표현하는 데에도 실패했습니다. 관현악도 비슷한

스타일인 푸르트벵글러의 것에 도저히 미치지 못합니다.



2003년 7월 24일 씀.

정보공유라이선스

김원철. 2004.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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