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20일 금요일

2018 통영국제음악제 막전막후

해마다 통영국제음악제 기간이면 무대 뒤에서 많은 사연이 생겨나지요. 올해 겪은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개막공연에 출연해야 할 보훔 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 두 명이 공연 당일 아파서 제가 병원에 데려갔던 일입니다. 한 명은 밤늦게 김밥을 먹고 배탈이 난 첼리스트였는데, 다른 한 명이 문제였습니다. 허리가 아파서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상태였거든요. 현악기 연주자였더라면 그 한 사람쯤 빠져도 공연에 큰 지장이 없었겠지만, 하필 그 사람은 타악기 연주자였습니다.

요통 환자가 들것에 실려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되는 동안, 저는 복통 환자와 오케스트라 매니저를 제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따라갔습니다. 요통 환자는 응급실에서 증상을 확인하고, 엑스레이를 찍고, 스테로이드와 진통제 등을 처방받았습니다. 환자는 만성 요통으로 독일에서 치료를 받아온 이력이 있었고, 그날 하필 침대에서 굴러떨어져서 증세가 악화한 상태였습니다. 엑스레이 영상을 판독한 의사는 디스크 탈장을 의심하면서도 엑스레이만으로는 확신할 수 없으니 독일에서 엠알아이(MRI) 검사를 해보라고 권유하더군요.

요통 환자가 치료를 받는 동안 저와 오케스트라 매니저, 그리고 사무실에 있는 동료들은 두 가지를 걱정했습니다. 환자가 이 상태로 오늘 밤 공연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공연이 끝난 뒤에 독일까지 장시간 비행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대타 연주자는 무엇보다 윤이상 ‹광주여 영원히›를 당장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마침 지난해 광주시립교향악단이 이 작품을 연주한 일이 있어서, 사무실에서는 그곳 타악기 연주자에게 연락을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병원에서는 치료가 효과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오전 내내 누워 있던 환자가 힘겹게 일어나 물리치료를 받았고, 그 뒤에 밥을 먹더니, 퇴원해서 그날 저녁에 무대에 올랐습니다! 다음 날 공연 때에는 상태가 훨씬 좋아 보였습니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독일까지 무사히 돌아갔고요. 현대 의료기술이 참 대단하지요! 병원 의료진들이 모두 친절하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공연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으니 참 감사한 일입니다.

환자가 치료를 받을 때 제가 통역을 했고, 의학 용어가 라틴어 또는 영어로 되어 있는 만큼 때로는 의료진이 직접 환자와 소통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몰랐던 의학용어를 익히기도 했는데요, 급성(acute), 만성(cronic), 설사(diarrhea) 등이었지요. 디스크 탈장(Slipped Disc)은 영국의 유명 음악평론가가 말장난처럼 쓰고 있는 웹사이트 이름 때문에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만약을 대비해 주요 병명을 익혀두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위염(gastritis), 장염(enteritis), 편도선염(tonsillitis), 맹장염(appendicitis), 골절(fracture). 또 뭐가 있을까요? 아, 공연장에서 지휘자에게 심근경색(heart attack)이 일어나 심폐소생술(CPR)을 했다는 얘기가 화제가 된 일이 있지요!

그밖에 음악극 ‹귀향›에 소품으로 사용할 활을 구하느라 동료가 백방으로 수소문하던 일, 그 와중에 알게 된 활 판매 업체 '활○당' 이름 때문에 다 같이 웃었던 일, 구하기 힘든 악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골머리를 앓았던 일, 독일인 지휘자에게 굿거리장단을 설명하면서 '태평가'를 불러줬던 일, 올해도 어김없이 새벽에 공항으로 출발하는 연주자를 배웅했던 일, 피곤한 몸으로 연주회장 구석 자리에 앉아 음악을 들으려 노력하며 정신없이 졸았던 일 등이 생각납니다. 지면이 짧으니 더 자세한 사연은 생략할게요.

마지막으로 이번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세계초연된 음악극 ‹귀향›으로 화제가 되었던, 여창가곡 우조 이수대엽 '동짓달'의 절절한 노랫말과 그것을 기막히게 노래한 박민희 선생이 특별히 기억에 남습니다. ‹귀향›의 진정한 주인공은 율리시스도 페넬로페도 아닌 박민희 선생이 아니었나 싶어요!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둘에(베어)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룬 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구비구비 펴리라

시를 쓴 사람이 황진이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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