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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16일 목요일

브람스 소나타 E♭장조 Op. 120-2, 코다이 아다지오, 브루흐 콜 니드라이

브람스: 소나타 E♭장조 Op. 120-2

소나타 f단조와 소나타 E♭장조를 묶은 Op. 120은 브람스의 마지막 실내악곡이자 브람스 후기 음악 양식의 정수가 담긴 걸작이다. 본디 두 곡 모두 클라리넷 소나타였으며, 클라리넷 대신 비올라로 연주할 수 있도록 편곡된 악보 또한 출판되었다.

소나타 E♭장조는 1악장 제1주제를 느리고 포근한 선율로 시작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주제를 이루는 요소들이 정교한 논리로 변형·발전하면서 악곡이 이어지는데, 이것은 쇤베르크가 훗날 발전적 변주(developing variation)라 부른 기법으로 브람스 음악 언어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1악장의 구조 자체는 비교적 깔끔한 소나타 형식으로 귀로 듣고 따라가는 데 그다지 어렵지 않다. 2악장은 겹세도막 형식, 3악장은 변주곡 형식이다. 그리고 브람스 음악 어법의 핵심이 ’발전적 변주’임을 생각할 때, 이 곡의 마지막 악장인 3악장이 변주곡 형식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브람스가 남긴 더 장대한 변주곡도 여럿 있지만, 이 악장은 그리 길지 않으면서도 브람스 변주 기법의 정수를 훌륭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걸작이라 할 만하다.

코다이: 아다지오

헝가리 작곡가 졸탄 코다이가 부다페스트 음악원 재학 시절에 쓴 출세작이다. 코다이는 이후 헝가리 민요를 깊이 있게 연구하고 그 성과를 작곡 활동에도 반영했는데, 이 작품은 그와는 사뭇 다르며 오히려 브람스 음악을 닮았다. 본디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1905년 작품이었고, 작곡가가 1910년에 비올라와 피아노,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편곡을 내놓았다.

A-B-A’ 꼴 세도막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느리고 달콤씁쓸한 선율로 시작했다가 가운데 부분에서는 슬픔이 더욱 커진다. 세 번째 부분에서는 맑게 반짝이는 피아노 아르페지오, 다채롭게 변화하는 셈여림과 빠르기 등과 더불어 마치 눈물이 별빛으로 승화하는 듯 탐미적인 음악적 연출이 두드러진다.

브루흐: 콜 니드라이

“모든 서약, 금기, 맹세, 봉헌, 코남, 코나 또는 그것을 무엇이라 부르건 […] 복되게 우리에게 올지어다.”

모세가 두 번째 십계명을 받아온 날에서 유래했다는 유대인 명절 ‘욤 키푸르’(속죄의 날 또는 신의 날)에 유대인들이 암송하는 전례문 또는 맹세문을 ‘콜 니드레이’(모든 서약)라 부른다. 독일 작곡가 막스 브루흐는 유대인이 콜 니드레이를 암송할 때 사용하는 곡조를 사용해 곡을 썼고, ‘콜 니드레이’(Kol Nidre)를 ‘콜 니드라이’(Kol Nidrei)라고 독일어 식으로 고쳐서 곡 제목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브루흐는 개신교인이었으며, 다만 유대인 음악을 ’색다른 요소’로 활용해 이 작품을 썼다.

콜 니드레이는 엄밀히 말하면 기도문이 아니지만, 이 작품에서 비올라(원곡은 첼로) 소리는 마치 비탄에 잠겨 기도하는 것처럼 들린다. 곡이 후반부에 이르면 마치 하늘에서 한 줄기 빛이 내려오는 듯한 주제가 나타나며, 비올라(첼로)가 그 빛에 이끌리듯 선율을 따라간다.

2017년 10월 8일 일요일

코다이: 첼로 독주를 위한 소나타 Op. 8

"다른 어떤 작곡가도 이 작품과 비슷한 곡을 쓴 일이 없다. […] 목소리를 닮은 놀라운 효과로 독창적이고 독특한 양식을 창조[…] 그런 효과가 아니더라도 이 작품의 가치는 눈부실 만큼 명백하다." (벨러 버르토크)

오페라의 레치타티보를 기악에 응용한 사례는 드물지 않다. 파를란도(parlando), 즉 말하듯이 연주하라는 나타냄말 또한 기악 음악에 때때로 나온다. 그러나 코다이의 첼로 독주를 위한 소나타에서는 '말소리'가 음악에 극적 효과를 더하는 '양념'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말소리'가 그 자체로 음악을 지배한다. 3악장을 빼고 나면 이 곡에서 리듬의 규칙성은 없다시피 하고, 첼로는 마치 배우가 독백하듯 말한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첼로라는 배우가 출연하는 일인극이다.

첼로가 하는 말을 사람이 알아들을 수는 없다. 이때 관객에게 필요한 것은 '목소리'에 실린 감정에 귀 기울이는 일이다. 1악장에서 때때로 음산한 음형이 마치 효과음향처럼 반복되는 가운데 첼로는 분노하고 절규하며 통곡한다. 2악장에서는 탄식하고 흐느낀다. 3악장에서는 뜬금없이 헝가리 민속 음악을 닮은 음형이 나온다. 반복되는 신나는 리듬과 함께 관객은 처음으로 '말소리'가 아닌 '음악'을 듣게 된다. 그러나 처음 나온 음형이 변형되면서 음악에 다시금 말소리가 끼어든다. 웃음을 잃지 않는 저항을 말하는 것일까?

2009년 11월 26일 목요일

2009.10.10. 코다이 《갈란타 춤곡》 / 하이든 트럼펫 협주곡 / 베토벤 교향곡 7번 ― 호칸 하르덴베리에르 / 디에고 마테우스 / 서울시향

디에고 마테우스는 '대타' 지휘자였다. 본디 미코 프랑크가 지휘를 맡기로 했다가 갑자기 아파서 지휘자가 바뀌었단다. 그런데 '대타'치고는 솜씨가 너무 뛰어난데다가 개성이 매우 뚜렷했다. 코다이 《갈란타 춤곡》에서는 악보에서 지시한 메트로놈 값에 견주어 터무니없이 느린 템포로 한 걸음씩 차분히 걷는 듯했으며, 이를테면 마디 180에서 트라이앵글과 글록켄슈필 소리가 아기자기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또 느린 템포를 업고 클라리넷 수석 채재일이 루바토로 잔뜩 멋을 낸 독주를 뽐내기도 했다.

저런 템포로 나중에 가서 어쩌려나 걱정이 들었으나 웬걸, 제대로 빨라지지 않으면 심각한 문제가 생길 만한 곳, 이를테면 마디 209나 마디 236 등에서는 템포가 악보 지시에 맞게끔 아무렇지도 않게 슬쩍 바뀌었다가 다시 마디 336에서 도로 크게 느려졌다. 그러면서 곳곳에 나오는 리타르단도, 아첼레란도, 악센트 따위를 맛깔스럽게 살리는 솜씨가 매우 인상 깊었다. 번스타인이 울고 갈 '고무줄 템포'라 하겠는데, 그래서 작품에 나타나는 처절한 파토스가 빛이 바랜 대신에 블랙 코미디 같은 익살이 살아났다. 글쓴이는 이날 첫 곡만 듣고도 디에고 마테우스를 미코 프랑크보다 윗줄에 놓기로 마음먹었다. 미코 프랑크는 배 좀 아플 테다.

하이든 트럼펫 협주곡을 협연한 호칸 하르덴베리에르는 거친 트럼펫 소리를 부드럽게 다듬는 솜씨가 매우 훌륭했으며, 짧은 프레이즈만으로도 기품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진줏빛으로 그윽하게 울리는 소리 빛깔은 금빛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트럼펫다운' 소리와는 조금 달라서 트럼펫이 아니라 오보에나 클라리넷 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1악장 처음에 마치 오블리가토 악기처럼 주선율을 거든 대목이 색달랐고, 2악장에서는 템포가 너무 느리다고 생각했는지 티 나지 않게 짧은 긴장을 만들어 오케스트라 템포를 끌고 가는 솜씨가 인상 깊었다. 앙코르로 연주한 피아졸라 《Oblivion》에서는 하몬 뮤트(harmon mute)를 써서 마일스 데이비스를 닮은 소리를 뽐내기도 했다.

이날 연주회 주제를 하나만 꼽으라면 '트럼펫'이라 할 수 있겠는데, 베토벤 교향곡 7번에서 트럼펫이 돋보이는 곳은 4악장이다. 그러나 눈에 띄는 트럼펫 솔로 악구는 없고 A, E, F♯ 음이 대부분으로, 베토벤 시대 트럼펫은 구조적으로 낼 수 없는 음이 많았다. 그런데도 트럼펫이 중요한 까닭은 무엇일까? 이 곡에서 트럼펫은 선율이 아니라 리듬을 이끌어가며, 그 때문에 관악기보다 타악기에 가깝다. 4악장 내내 되풀이해 나오는 '♬♪' 리듬과 여린박에 붙은 스포르찬도를 곡이 끝날 때까지 깔끔하게 살리는 일은 일류 오케스트라 단원에게도 쉽지 않다. 명반으로 소문난 클라이버―빈필 음반은 알고 보면 트럼펫 리듬을 숨긴 '편법'에 빚지고 있다.

이날 트럼펫을 연주한 단원은 Jeffrey Holbrook과 Niels E. Heidoe였는데, 모든 곳에서 고른 소리를 내지는 못했으나 전체적으로 매우 훌륭한 연주였다. 지휘자가 4악장 템포를 몹시 빨리 잡고 신나게 달려대는데도 '♬♪' 리듬을 깔끔하게 다스렸으며 스포르찬도 리듬 또한 매우 훌륭했다. 다만, 도돌이표가 있는 마디 12에서는 '♬♪' 리듬을 또렷하게 살리지 않고 전략적으로 팀파니 뒤로 숨는 듯해서 조금 아쉬웠고, 스포르찬도 음형에서는 이따금 센박이 너무 세서 스포르찬도한테 덤비기도 했다.

Jeffrey Holbrook은 빠른 음형을 깔끔하게 연주하는 솜씨가 매우 뛰어난 연주자인데, 그러나 매우 큰 소리는 잘 내지 못하는 듯해 아쉽다. 이를테면 마디 219에서는 호른과 팀파니 소리에 밀려 빛을 잃었고, 마디 341에서는 '♬♪' 리듬도 팀파니와 목관 등에 기댔다. 마디 402에서는 모든 악기가 크레셴도를 하는 동안 트럼펫이 결정적인 '한 방'을 터트리지 못했고, 셈여림표가 마침내 'fff'에 이르렀을 때에는 'ff'에서 한 계단 더 올라서지 못했다.

지휘자 디에고 마테우스는 《갈란타 춤곡》에서 보여준 과장벽을 베토벤 교향곡에서는 함부로 내보이지 못하다가 4악장에서야 참았던 '끼'를 터트렸다. 템포가 빨라도 너무 빨라서 오케스트라가 티 나지 않게 버벅거렸으나 끝까지 큰 실수 없이 호흡을 놓치지 않고 잘했으며, 단원들 얼굴에는 쫓기는 표정이 아니라 신나 하는 표정이 나타났다. 앙상블만을 말하자면 3악장이 가장 훌륭했으나 '감동'을 말하자면 4악장이 앞선 악장을 압도했다.

고백하건대 글쓴이는 이날 지휘자가 바뀌었음은 알았으나 바뀐 지휘자가 누구인지는 몰랐다. 연주를 들으면서 언뜻 번스타인과 두다멜을 떠올렸는데, 디에고 마테우스가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교향악단 악장이라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고 깜짝 놀랐다. 이날 연주회에 숨은 주제를 하나 더 말하자면 '춤곡'이라 하겠는데, 베토벤 교향곡 7번이나 코다이 《갈란타 춤곡》은 알고 보면 라틴 댄스였던 것이다. 이쯤 되면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교향악단이 앙코르로 즐겨 연주하던 곡을 떠올려야 한다. 맘보!

2009년 9월 2일 수요일

2008.12.04. 코다이 갈란타 춤곡 /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 / 라흐마니노프 교향적 춤곡 - 발렌티나 리시차 / 제임스 저드 / 서울시향

2008년 12월 4일(목)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James Judd
협연자 : Valentina Lisitsa

Kodaly, Dances of Galanta
Grieg, Piano Concerto in a, Op. 16
Rachmaninoff, Symphonic Dances, Op. 45



악기는 보통 온도와 습도 변화에 민감하며 옛날 악기일수록 더하다. 이번 연주회는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데다 미리 무대에 나와서 연습하는 관악기 연주자들이 평소보다 많아서 조금 걱정이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코다이 <갈란타 춤곡>에서 호른이 일찌감치 큼지막한 실수를 하더니 플루트가 실수를 이어받고 다른 악기들도 영 제소리를 못 낸다. 지휘자의 해석은 나쁘지 않은 듯했고 뒤로 갈수록 차근차근 긴장감을 쌓아나가는 모습이 멋졌으나 실수가 너무 잦아서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다 함께 헤매는 가운데 클라리넷 수석 연주자 혼자서 평소처럼 야무지게 연주해서 눈에 확 띄었으며 이 곡에서 가장 비중이 큰 악기가 클라리넷이라 더욱 돋보였다. 언젠가 밝힌 바 있듯이 글쓴이는 클라리넷 수석 채재일 씨 팬이다.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한 발렌티나 리시차는 늘씬한 몸매를 보아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어마어마한 힘과 테크닉을 자랑했다. 무시무시한 트릴과 글리산도를 듣고 있자니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이 이렇게 연주하기 어려운 곡이었던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으며, 글쓴이는 음악을 듣기보다는 테크닉을 듣고 있음을 여러 차례 깨닫곤 했다. 이것이야말로 리시차가 가진 장점이자 치명적인 단점이 아닐까. 리시차가 들려준 '음악'은 눈부신 테크닉만한 깊이는 없고 그저 평범하다는 느낌이 들었으며, 그나마 테크닉에 가려버리곤 했다. 이렇게 음악이 아닌 '서커스'를 들려주어서야 듣는이가 받을 수 있는 감동이 얼마나 깊을지는 뻔하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음악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듣는 이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테크닉이야말로 참된 고급 테크닉이 아닐까.

그러나 앙코르에서는 맘먹고 테크닉을 뽐내는 모습이 그것대로 좋았으며 '라 캄파넬라'를 아찔한 빠르기로 연주하는 것을 듣고는 할 말을 잃었다. 관객이 좋다꾸나 손뼉을 쳐주니 빼지도 않고 커튼콜 한 번에 한 곡씩 네 곡이나 연주했는데, 그 모습을 보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자 키신이냐!'

라흐마니노프 <교향적 춤곡> 연주는 악기나 사람이나 이제 몸이 다 풀린 듯 다부졌다. 특히 1악장 중간에 나오는 그윽한 색소폰 선율과 그에 딸린 목관 앙상블이 나무랄 데 없이 훌륭했다. 이 곡에서 은근히 멋지게 나오는 베이스클라리넷도 작품 곳곳에서 돋보였다. 3악장 마디 235 이후 또는 1악장 마디 154 이후부터 긴 호흡으로 긴장감을 쌓아가는 대목이 매우 좋았고 때때로 알맞게 터트려주는 타악기 소리도 멋졌다.

금관도 제법 잘했으나 2악장 처음을 비롯해 금관끼리 화음을 만들어내는 대목에서 데크레셴도-크레셴도가 깔끔하지 못해서 아쉬웠다. 2악장 마디 19에서 독주 바이올린이 루바토로 부드럽게 시작하는 연주를 글쓴이는 싫어하는데, 이날 악장을 맡은 웨인 린(?)은 악보에 있는 음가 그대로 재빠르게 연주해서 썩 마음에 들었다. 다만, 음색이 좀 더 날카로웠으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지휘자 제임스 저드는 국내 악단이 데려올 수 있는 객원 지휘자 가운데 최상급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날 <교향적 춤곡> 해석도 매우 훌륭했으며, 그 가운데 2악장에 해석이 흥미로운 곳이 많았다. 군데군데 루바토를 쓰면서도 느슨해지지 않았고, 그런 가운데 콘트라베이스가 저음을 단단하게 찍어주어 슬프면서도 퇴폐적인 '슬라브 왈츠' 느낌을 잘 살렸다. 프레이즈를 새로 시작하는 곳에서 템포를 크게 떨어트렸다가 아첼레란도를 쓰곤 했던 대목도 참신했다.

2악장 마디 119와 이어지는 대목에서 테누토와 헤어핀(hairpin; <>)을 겹쳐놓은 곳은 보통 리테누토를 써서 템포를 조였다 풀었다 한다. 그러나 제임스 저드는 갑자기 템포를 너무 떨어트린 탓에 이곳에서 템포가 바뀌는 듯 마는 듯했다. '처음 빠르기로 돌아가 조금 덜 빠르게 A tempo poco meno mosso'라는 지시가 있기는 하지만 갑자기 너무 느려지니 지루한 느낌이 들었으며, 마디 47에서 악보에 없는 리테누토를 맛깔스럽게 쓴 일과 어울리지 않아 갸우뚱했다. 아마도 프레이즈를 새로 시작할 때 템포를 떨어뜨린 다음 아첼레란도 쓰는 일에 일관성을 두려고 그러지 않았나 싶었으나 이곳에서만큼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마디 169에서 템포를 떨어뜨렸다가 마디 171에서 다시 조이라는 지시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아첼레란도를 썼는데, 조금 느슨한 느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제법 그럴싸했다.

3악장 마디 162에는 이상한 지시가 붙어 있다. '템포 바꾸지 말고, 그러나 서두르듯이 L'istesso tempo, ma agitato'라니, 템포를 바꾸란 말인가 말란 말인가. 음반을 들어보면 이 대목에서 갑자기 빨라지기도 하고 지루하게 늘어지기도 해서 제임스 저드는 어떻게 할지 관심 있게 들어보았다. 그랬더니 아주 살짝 빨라지는 듯싶었다. 아무래도 이게 정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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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8.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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