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바그너 날씨네!"(It's Wagner weather!)
플로리안 리임 통영국제음악재단 대표님 말씀입니다. 통영국제음악제 폐막공연이 열리기 한 시간쯤 전부터 천둥 번개가 쳤지요. 콘서트 형식으로 연주된 바그너 오페라 '발퀴레' 1막에 걸맞은 날씨였고, 꽤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는 천둥소리가 무시무시했습니다. 2019 통영국제음악제 주제였던 '운명'과 어울리기도 했지요. 공연을 끝내고 돌아가시는 테너 김석철 선생은 안개 자욱한 통영의 해돋이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바그너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분위기 통영 아침이네요. 어제는 완벽한 발퀴레 날씨였는데 ㅎㅎ"
언제나 그렇듯이, 올해 통영국제음악제도 많은 사연을 남기고 끝났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일은 '로스 로메로스' 기타 콰르텟 가운데 셀린 로메로가 갑자기 쓰러졌던 일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아르디티 콰르텟의 리허설을 챙기느라 현장의 급박함을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스마트폰 메시지로 전해지는 내용이 심상치 않더군요. 플로리안 리임 대표님이 관객들에게 알린 것처럼, 환자는 병원에서 뇌졸중 진단을 받았다고 합니다.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병명에 비하면 실제 증상은 그나마 가벼운 편이었던 모양이라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환자는 장시간 비행이 가능할 만큼 치료를 잘 받고 공항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로스 로메로스' 공연에서는 결국 셀린 로메로가 빠진 채 3명만 출연하게 되었지요. 가장 유명한 기타리스트 페페 로메로가 전설적인 명인의 솜씨를 똑똑히 보여준 공연이었습니다.
제가 담당한 공연 중에서는 '바흐와 룸바'와 관련해 황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베이시스트 에딕손 루이스가 공연 마지막 곡이었던 'J.S.를 위한 룸바흐'의 음원을 전해 주며 악보에 없는 휘파람이 있으니 타악기 연주자가 듣고 '연주'할 수 있게 해달라더군요.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베이시스트 에딕손 루이스에게 받아서 타악기 연주자 채형봉 선생에게 전달한 악보는 5악장까지였는데, 음원은 6악장까지 있었습니다. 공연 이틀 전이었지요. 부랴부랴 6악장 악보를 받아서 전달했더니, 6악장에 악기 표기가 명확하지 않은 곳이 있다더군요. 저도 악보를 확인해 봤더니, 6악장 제목이 '콩가'인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콩가는 그냥 악장 제목이고 실제로 콩가라는 악기가 나오는 건 아니에요."
"다른 악기가 또 새로 나오지 않는 게 맞나요?"
"음… 아마도?"
"작곡가한테 확인해 주세요. 통영은 서울이 아니에요. 갑자기 없는 악기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요."
다행히 추가 악기가 필요하지는 않았습니다. 휘파람은 작곡을 전공한 분께 부탁해서 악보로 옮겼는데, 그에 앞서 음원의 몇 분 몇 초쯤에 휘파람이 나오는지 정확히 확인하려고 악보를 보면서 음악을 들어 봤더니, 귀로 듣기로는 마냥 신나는 악곡의 리듬이 실제로는 얼마나 기상천외하게 꼬여 있는지 머리가 어질어질하더군요.
타악기 연주자 채형봉 선생도 어렵다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고, 막판에 6악장을 새로 익히기도 벅차서 휘파람까지는 안 되겠다고 하시더군요. 결국 휘파람은 에딕손 루이스가 불었습니다. 사실은 작곡가가 에딕손 루이스한테 휘파람을 불게 했었다가 베이스 연주와 동시에 전혀 다른 리듬으로 휘파람을 불기가 어려워서, 세계초연 때에는 작곡가이자 타악기 연주자인 곤살로 그라우가 직접 휘파람을 불었었다고 하더군요.
이날 에딕손 루이스가 세계초연한 호소카와 도시오 신작 '작은 에세이'도 기억에 남습니다. 작곡가와 연주자가 같은 공간에 있다 보니 작곡가가 영감을 받아서 곡을 써주기로 한 모양인데, 처음에는 호소카와 선생이 예술감독으로 있는 다케후 국제음악제에서 초연하기로 했다가 통영 공연 직전에 곡이 완성되어서 그냥 통영에서 세계초연하기로 했다네요. 곡을 들어 보니 윤이상 선생을 오마주한 의도가 뚜렷이 느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통영이라는 공간이 작품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겠지요!
바쁘게 일하는 중에 강원도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얼핏 들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하마터면 큰 재난이 될 뻔했던 모양이더군요. 빠른 진압에 성공했다니 천만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