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발언의 자유, 종교의 자유, 그리고 범죄적인 폭압 정부의 횡포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것, 이것이 새로운 유럽의 기초가 될 것입니다. 저항 운동을 도와주십시오, 전단을 돌리십시오!"
나치 정권을 비판하던 저항조직 '하얀 장미'(Die Weiße Rose)가 배포한 전단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1941년부터 1943년까지 활동했던 이들은 뮌헨 대학에서 이 마지막 전단을 돌리다가 체포되었고, 재판 끝에 사형당했습니다.
'하얀 장미'라는 이름은 소설 제목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하얀 장미' 핵심 인물인 한스 숄, 소피 숄 남매는 나치 정권의 비밀경찰 '게슈타포'의 심문을 받으면서 소설 '하얀 장미'에 나오는 등장인물 이름을 가명으로 둘러대기도 했다네요.
작곡가 카를 오르프는 종전 직후 나치에 부역한 혐의로 체포되었다가 자신이 '하얀 장미' 창단에 참여했다고 주장해 풀려났습니다. '하얀 장미' 단원으로서 사형당한 쿠르트 후버 교수가 마침 오르프의 친구였다지요. 오늘날 학계에서는 대개 오르프의 주장을 거짓으로 보고 있습니다.
숄 집안의 맡딸 잉에 숄은 부모님과 함께 연좌제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가 끝내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종전 후 한스 숄, 소피 숄 남매의 활동을 책으로 엮었습니다. 제목은 '하얀 장미'(Die Weiße Rose)였지요. 한국에서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하얀 장미'는 이후 유럽 사회에서 시대의 양심을 상징하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하얀 장미를 소재로 하는 영화, 연극, 다큐멘터리, 소설, 심지어 일본에서는 만화까지 나왔다네요. 이 가운데 2005년에 개봉된 영화 '소피 숄의 마지막 날들'은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에 관해 김혜리 평론가가 『씨네21』에 쓴 글이 멋져서 조금만 인용할게요.
"아무도 감히 눈물을 보이지 않는 이별 의식이 끝나고 형리가 다가온다. 소피 숄은, 그녀의 이념을 하얀 강보에 싼 아기처럼 자랑스레 품에 안고 단두대를 향한다. 관객이 마지막으로 소피와 눈을 맞추는 순간 스크린 속 세계의 불이 꺼지고 어둠 뒤에서 칼날이 곡한다. 생에 대한 주체의 완전한 지배와 결단력을 증명하는 그녀의 죽음에 서린 아름다움은, 자살의 매혹과 닮은 데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소피 숄의 이야기에 드리운 가장 눅진한 슬픔이기도 하다. 그녀의 삶은, 더럽혀질 시간조차 갖지 못했다."
작곡가 한스 베르너 헨체는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위한 '하얀 장미를 추모하며'(1965)를 썼고, 한국 출신으로 독일에서 활동하는 작곡가 박-파안 영희 선생은 '하얀 장미'가 돌린 유인물과 그들이 재판소에서 남긴 변론 등을 가사로 하는 성악곡 〈봉화〉(Flammenzeichen)를 썼습니다. 박-파안 영희 선생은 올해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자신의 신작 현악사중주곡 〈크고 높은 바다 위의 수평선〉의 아시아 초연을 참관하고 윤이상 작곡가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심포지엄에 참여하기도 하셨지요.
작곡가 우도 침머만은 1967년 오페라 '화이트 로즈'를 발표했다가 1986년에 이 작품을 개작해서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 오페라가 오는 6월 16~17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한스 요아힘 프라이 연출, 토마스 케르블 지휘, TIMF앙상블 연주로 공연됩니다. 한스 숄과 소피 숄 남매의 고뇌와 용기를 작곡가 우도 침머만은, 그리고 연출가 한스 요아힘 프라이는 어떻게 표현했을까요? 이번 공연을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