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그네리안 김원철의 바이로이트 여행기 (1)
☞ 바그네리안 김원철의 바이로이트 여행기 (2)
▶ 상황 14.
표도 구했겠다, 이제 뭘 좀 먹어야겠군.
오른쪽에 있는 건 호텔에서 운영하는 비싼 거라니까 왼쪽 우체국 주변을 살펴볼까.
기념품 가게에 있는 음반을 둘러보고 있는데 앗, 아까 그 아주머니다.
"저 위쪽에 멋진 곳이 있는데 가볼래요?"
"네!"
박물관 비슷한 곳인가 본데 사진은 찍으면 안 된다고 당부하신다.
오르막길을 걷다가 경치가 좋아서 사진을 찍었다.
☞ 김원철 옛날 홈페이지 대문에 있는 그 사진이다.
바이로이트 축전극장을 '푸른 언덕(Der Grüne Hügel)'이라 부르는 까닭을 아시겠는가?
"이곳에서 시간은 공간으로 바뀐다 zum Raum wird hier die Zeit."
"그 표 친구한테 얻은 건데, 제가 다른 사람한테 넘긴 일을 그 친구가 알면 슬퍼할 거예요. 끝나고 표를 다시 줄 수 있나요?"
"그럼요."
1막 끝나고 극장 입구에서 표를 사진으로 찍어놨다.
암시장 때문에 표에 이름이 새겨져 있단다.
그 때문에 내 표가 아닌 게 표시나니 안드레아스를 잘 따라다니라신다.
"그 표가 사실은 우리 둘째한테 갈 거였는데 마침 계약 때문에 못 왔어요. 타악기 연주자거든요."
이건 성배의 은총이 틀림없군요! 맏이인 안드레아스는 경제학 전공이란다.
배가 고픈데 저쪽에 비싼 데 말고 좀 싼 데는 없을까 여쭤보니 비스킷 같은 걸 주신다.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아서 숙소에 와서 먹었는데 초콜릿이다.
나는 원래 향정신성 식품을 먹지 않지만, 이건 귀인께서 주신 것이니 고맙게 먹었다.
그러고 보니 이날은 점심도 저녁도 제대로 된 음식을 못 먹었군.
숙소에서 먹기 전에 찍은 사진
▶ 상황 15.
"아직 시간이 있는데 숙소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오는 게 어때요?"
독일은 관객이 다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라 정장 안 입으면 큰일 나는 줄 아는 모양이다.
한국은 관객이 젊은 덕분인지 옷차림이 자유로워서 나는 거기까지는 생각 못했다.
처음부터 바이로이트에 올 생각이었다면 정장을 준비해 왔겠지만,
드레스덴 젬퍼오퍼까지만 생각하고 편하게 입고 왔다. 힙색(hip sack)의 압박.
"뭐, 괜찮아요. 저는 여행자라 이거예요. 안 들여보내 주면 못 알아듣는 척하죠. (간사한 목소리로) 앗, 스미마셍!"
이미지 출처는 디시인사이드
아주머니 웃느라 정신을 못 차리신다.
한국과 일본을 구분하시는 분이라 뉘앙스를 제대로 알아들으신 듯했다. ㅡ,.ㅡa
왜 바이로이트와 드레스덴을 차별하느냐면, 음, 이건 상징적인 문제잖아.
김원철은 연주회장에 정장 입고 간 일이 <니벨룽의 반지> 한국 초연 때랑
바그너 가수 사무엘 윤 내한 연주회 때밖에 없다.
한 번은 친구 넘이 덥다고 반바지, 민소매 셔츠, 맨발에 샌들 3종 세트를 하고 왔는데
예술의 전당에서 그냥 들여보내 주더라. 나는 그넘한테 아는 척하지 말라고 말해 줬다.
▶ 상황 16.
경치가 좋아서 헬렐레하다가 박물관인지 뭔지는 안 들어가고 그냥 내려왔다.
앗, 그런데 저 벤치에 앉아있는 사람은?
"방금 지나친 저 사람 혹시 마에스트로 피에르 불레즈 닮지 않았어요?"
"정말이네요. 마에스트로일지도 몰라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불레즈 맞다. 되돌아가서 물어볼 걸 그랬나? 사인이라도...
아니면 사진을 찍은 다음, "마에스트로 불레즈와 함께 음악의 미래에 대하여 토론하였..."
▶ 상황 17.
저 유명한 공연 시작 알림 팡파르. 막마다 잘 알려진 선율을 연주한다.
15분, 10분, 5분 앞서 연주하는데, 세 번을 연주할 때까지 기다렸다가는 늦는다.
자리가 빽빽해서 늦게 들어가면 앉아있던 사람들 모두 일어서야 한다.
나는 안드레아스를 따라가느라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알고 보니 바이로이트에는 객석 중간 통로가 없단다.
그래서 뒤늦게 들어가려면 줄 끝에서부터 주루룩 다 일으켜 세우는 거다.
그리고는 캐관광(?) 사태!
유튜브에 찾아보니 있다!
옷차림이 아무래도 걱정되셨는지 직원한테 물어봐 주신다. 괜찮다네.
안드레아스와 함께 입장.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 문 잠그는 '철커덕' 소리는 생각보다 작다.
※ 여기서 잠깐!
바이로이트에서는 공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문을 안에서 잠근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폐인스러운' 시스템이다.
이것 참 부럽단 말이지.
늦으면 그냥 끝이다. 공연이 시작되면 어떤 일이 있어도 문이 열리지 않는다.
...는 거짓말이고, 열릴 때가 있다. 바로 응급 환자가 생겼을 때다.
관객이 대부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라 공연 보다가 숨 넘어가시는 분들 더러 있단다.
이런 일이 아니라면 떼 써도 안 열어준다.
공연 끝나고 관객들 날뛰는 장면.
막은 아직 닫혀 있다. 소름 돋는 고요함이 극장을 휘감는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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