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6일 월요일

바그네리안 김원철의 바이로이트 여행기 (2)

<신들의 황혼 Götterdämmerung> 공연 입장권.

<니벨룽의 반지>는 원래 <라인의 황금>을 첫날 낮에 공연하고 그날 밤부터 '3부작'이라서 <신들의 황혼> 표는 "R3"라고 쓰여 있다. 아래쪽에 쓰여 있는 "Ursula Danzer"가 표 주인 이름이다. 여자 이름이라 표를 제대로 확인했으면 내가 원래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이 바로 들통날 뻔했다. 그런데 이 표를 나한테 판 아주머니 이름은 이게 아니었는데..^^;

지난 글 읽기:

☞ 바그네리안 김원철의 바이로이트 여행기 (1)



▶ 상황 12.

택시 타는 곳에 있던 '표 구함' 남녀는 안 보인다. 극장 오른쪽 식당 쪽으로 가볼까.
앗, 온몸으로 교양을 뿜어내는 어떤 아주머니가 다가와서 '표 구해요?' 한다.

"네! 표 있어요?"


옆에 있는 '엄마 친구 아들' 포스를 뿜어주시는 총각이 아들인데,
기차에서 내가 표 구한다고 돌아다니는 걸 봤단다. @.@;;
극장 앞에서 사진만 찍고 끌낭을 끌고 내려가는 모습까지 다 봤단다. 아하하. ;;
(끌낭 = 배낭에 바퀴가 달려서 캐리어로 변신하는 넘.)

숙소부터 잡아놓은 다음 1막 끝나고 나오는 사람들한테
'신공'을 펼칠 거라고 말했더니 그게 기특해 보였나 보다.

"어머나, 숙소도 안 잡고 왔단 말이에요?"
"네. 원래 드레스덴으로 갈 거였는데 그냥 무작정 왔어요."
"내가 기회를 주고 싶어요. 내 표로 한 막씩 보기로 해요. 젊은 친구가 2막 보고 내가 3막 보고."
"고맙습니다! 아주머니도 지각해서 서막과 1막을 놓치셨나 봐요?"
"네. 2분 앞서 도착했는데 안 되더군요."

(아마도 팸플릿 파는 곳에서 표를 찾느라 시간이 걸렸나 보다.
설마 2분 전에 이미 입장 불가일까?
객석이 좁아서 자리 찾으려면 사람들 전부 일으켜 세워야 한다니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저런요! 그런데 덕분에 저한테 행운이 왔네요."
"그러게요. 자리가 좋아요. 2층 맨 앞자리거든요?"
"로제(Logé)요?"
"맞아요. 150유로짜리니까 한 막에 50유로씩으로 계산해서 50유로만 내요."

좋은 자리라 비싸다는 얘긴데, 사실은 '반지' 한국 초연 때보다도 싸다!



※ 여기서 잠깐! 바이로이트 축전극장 좌석 체계를 알아보자.

파케트(parquet)는 1층으로 가장 좋은 자리,
로제(logé)는 발코니 자리로 극장에 따라 다르지만 여기서는 중간 등급,
갈레리에(gallerie)는 가장 싼 꼭대기 자리다.

Arthur Rachkam (1911)
얘는 <라인의 황금>에 나오는 로게(Loge).

프랑스 말인 듯하니 바이로이트에서만 쓰는 말은 아니지 싶은데
외국에 처음 나가서 가본 극장이 바이로이트 축전극장이라 내가 뭘 아나.
김원철은 저 말을 바그네리안으로 소문난 어떤 분이 쓴 글을 보고 외워두었다.


그런데 표를 보니 "logé"가 아니라 독일어로 "Balkon"이라고 쓰여 있잖아?
크게 왼쪽/오른쪽을 나누어 오른쪽(Rechts)이고,
첫째 줄(Reihe 1) 열한 번째 자리(Platz 11) 되겠다.

파케트에는 엉덩이 쪽에만 얇은 쿠션이 있고
갈레리에는 그냥 딱딱한 의자라는 '전설'이 내려오던데...
나는 쿠션이 좋다는 '로제'에만 앉아봐서 그 무시무시한 의자를 겪어보지 못했다.
옛날에는 에어컨도 안 나왔다는데...-_-;;
무엇보다 바그너 오페라는 여차 하면 5시간을 넘어간다.
쉬는 시간까지 합치면 오후 4시에 시작해도 밤늦게나 끝난다.
그야말로 '폐인 정신'으로 똘똘 뭉친 극장 되겠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혹시 모르니까 다른 표를 계속 구해볼게요. 이왕이면 3막이 좋잖아요?"
"그러면 기회를 주는 김에 확실히 드릴게요. 3막까지 보세요."
"앗, 정말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지금 당장 100유로 드릴게요!"
"하하, 그래요. 그럼 있다가 여기서 얘랑 만나요."
"네. 이 친구 이름이 뭐예요?"
"얘는 안드레아스예요."
"안드레아스로군요. 아주머니는요?"
"안나 마리예요."

한 번에 못 알아들으니 '앤 마리아'라고 영어식으로도 말해주신다.
그런데 '마리'가 성이란 말이야? 그럼 저 친구는 안드레아스 마리?
처음에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못 했다.
더군다나 '마리'가 사실은 가운데 이름이라는 생각도 못 했다.
이 아주머니 성을 나중에야 알고 기절하는 줄 알았다.

▶ 상황 13.

1막이 끝났다.
좋다고 난리 치는 소리와 발 구르는 소리가 극장 밖에서도 또렷이 들린다.
연주회장에서 관객이 이렇게까지 미쳐 날뛰는 소리를 태어나서 처음 들어봤다.
예술의 전당에 정명훈이 떠도 객석이 뜨거워지지만 이렇게 미쳐 날뛰지는 않는다.
여기가 극장이야 축구 경기장이야? @.@;;

움짤 출처는 디씨 클갤

이봐요들, 나도 좀 들어가자고요. 거참 끊임없이 나오니 들어가 볼 수가 있나.
앗, 기회다! 어어, 가수들 다 들어가버렸네. 이씽.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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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그네리안 김원철의 바이로이트 여행기 (3)
☞ 바그네리안 김원철의 바이로이트 여행기 (4)
☞ 바그네리안 김원철의 바이로이트 여행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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