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25일 화요일

윤이상 솔로이스츠 베를린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이 사람들 독합니다… 독해요… 무슨 연습을 하루 웬종일…"

공연 리허설을 마치기로 했던 시각보다 두 시간이 훌쩍 지났을 때, 그걸 보다 지친 제가 업무용 단체 메시지 창에 쓴 말입니다. '윤이상 솔로이스츠 베를린'은 국제윤이상협회 회원들과 지금은 해체된 '윤이상 앙상블 베를린' 단원들이 모여서 만든 단체입니다. 이번에 새로 만든 악단이라 연습 욕심을 내는 것도 이해는 됩니다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지독하게 연습하는 것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지요. 단체 연습이 없을 때에도 혼자서, 또는 둘이서 하루 종일 연습하는 연주자도 있었습니다.

윤이상 솔로이스츠 베를린 단원 중에는 윤이상 선생과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윤이상 음악 언어를 익혔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일수록 연습 욕심을 많이 내더군요. 작곡가와 친분을 맺고 교류했던 연주자들이 한 사람씩 사라질수록 그 작곡가가 잊힐 위험이 커지는 것이 특히 20세기 이후 작곡가들의 운명이고, 20세기 중후반에 활동했던 대작곡가들이 조금씩 잊히기 시작하는 요즘 추세에 윤이상 선생도 예외일 수 없지요. 그래서 이분들이 자꾸만 욕심을 냈던 까닭이 이해되기도 합니다.

음악학자 볼프강 슈파러는 윤이상 곡을 연주할 때 필요한 기술적인 문제에 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연주자에게 엄청난 기량을 요구한다. 여러 음향층이 때로 동시에 울리며, 연주자들의 상호관계 속에서 그 음향층이 형성되어야 한다. 특히 세부 지시와 장식음들의 차별점 때문에 ‘얼마나’에 관한 정보가 필요하다. 얼마나 크게, 얼마나 세게,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길고 짧게, 얼마나 극단적인 대비를 사용해 연주해야 할까? 필요한 것은 악보 속의 계층에 관한 이해, 주선율과 부선율, 특별히 여리거나 센 음 덩어리, 능동적이거나 수동적인 음향층, 공격하거나 반응하거나 중립적인 음향층에 관해 전체적으로 조망하면서 소리를 구조화하기이다."

윤이상 음악 언어의 뿌리 중 절반은 베를린/유럽에, 나머지 절반은 통영/한국에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통영국제음악재단이 해야 할 일은 독일의 '원류'를 조금이라도 더 한국에 가져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윤이상 솔로이스츠 베를린을 통영국제음악제에 초청했고, 또 윤이상 음악 언어에 조예가 깊은 리코딩 엔지니어 볼프강 피베크(Wolfgang Vieweg) 선생을 통영에 초청해 공연 실황을 녹음하기도 했습니다.

윤이상 솔로이스츠 베를린이 이번에 통영에서 연주한 곡들은 편성이 제각각이었지요. 볼프강 슈파러 선생이 프로그램을 짰는데, 아마도 편성에 맞는 곡을 편의에 따라 선택하기보다 윤이상 음악의 정수를 보여줄 수 있는 방향에 집중하다 보니 이렇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데 연주자들이 한꺼번에 움직이지 않게 되다 보니, 복잡하게 꼬여 있는 편성만큼이나 정해진 시간에 리허설을 할 수 있게끔 하는 일이 만만치 않더군요. 공식 리허설이 없을 때 개인 연습을 하겠다는 연주자까지 헤아리니 복잡도는 더 높았습니다. 지면이 짧으니 자세한 얘기는 생략할게요.

통영국제음악제 얘기를 쓰려다가 윤이상 솔로이스츠 베를린 얘기를 잔뜩 하고 말았네요. 올해 통영국제음악제에서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고, 기상 악화로 취소되는 항공편들 때문에 동료들이 비상 체제로 움직이는 일이 올해에도 있었습니다. 가장 사연이 많았던 공연은 아마도 윤이상 오페라 '류퉁의 꿈'이었을 겁니다. 제가 그 많은 사연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담당자가 때때로 사무실에서 불을 뿜는(?) 모습을 보았던 기억은 선명합니다.

마지막으로 흥미로운 얘기 두 가지만 할게요. 첼리스트 옌스 페터 마인츠는 종이 악보 대신에 태블릿 컴퓨터를 사용했습니다. 블루투스 페달로 악보를 넘기고, 태블릿 전용 펜으로 메모를 했지요. 지난해 통영국제음악제에 출연했던 카잘스 콰르텟과 같은 기종, 같은 악보 앱을 사용하더군요. 백스테이지에서 우연히 만나 인사를 나눴던 피아니스트 장이브 티보데는 참 유쾌한 사람이었는데, 의외로 한국 음식을 도통 먹지를 못해서 음악당에 있는 레스토랑 '아르테'에 하루 종일 죽치고 있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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