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상: 현악사중주 3번
윤이상은 베를린 유학 시절인 1959년 졸업 작품으로 현악사중주를 위한 느린 악장을 썼다. 시험이 끝난 뒤에 두 개 악장을 더 작곡해 ISCM 세계현대음악제에 출품했고, 입선 후 초연을 준비하던 중 느린 2악장을 회수해 1악장과 3악장만을 초연했다. 윤이상은 졸업시험을 심사할 교수들의 보수성을 고려해 작곡했던 2악장이 결국 너무 관습적이라 생각했고, 1961년에 이것을 완전히 새로 쓴 다음 1악장과 3악장을 조금 고쳐서 1962년에 초판 악보를 출판했다.
이렇게 탄생한 현악사중주 3번은 윤이상 초기 작품답게 12음 기법을 적극적으로, 그러나 엄격하지 않게 사용한 곡이다. 윤이상은 부분 속에 전체가 있고 전체 속에 부분이 있다는 동양적인 사고방식에 따라 12음 기법을 받아들였다고 하며, 이 작품에서 때로 동양적인 울림이 느껴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작품을 이루는 개별 음은 특히 3악장에서 초기적인 방식으로나마 동아시아 음악의 생동 원리에 따라 살아 움직이고, 그에 따라 나타나는 살아있는 음향층은 후기 작품들을 예견하게 한다.
윤이상: 현악사중주 4번
윤이상은 현악사중주 3번을 쓰던 때로부터 거의 30년이 지나서 현악사중주 4번을 작곡했다. 윤이상은 그동안 작곡가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고, 이른바 '동베를린' 사건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는 경험을 했고, 조국의 민주화를 독일에서 지켜보았으며, 더 한국적인 울림을 담아내는 방향으로 자신의 음악 양식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그렇게 70대에 접어든 작곡가가 평생을 일구어 온 음악 언어의 정수가 이 작품에 녹아 있다.
이 작품은 2개 악장으로 되어 있는데, 작곡가는 1악장이 "길고 현재적인, 일종의 인생사"를 그린 것이라면 그와 대조되는 2악장은 "매우 인간적인" 악장이라 했다. 음악으로 해탈을 추구해 온 윤이상의 다른 작품과 연속선상에서 이 작품을 해석한다면, 1악장과 2악장은 각각 외부 세계의 갈등과 내면세계의 번민을 다루고 있다고 이해할 수도 있겠다.
1악장과 2악장은 모두 개별 음이 고정된 유럽적인 텍스처로 시작한다. 그리고 음악이 흐를수록 음들은 한국적인 생명력을 얻어 살아 움직이고, 더 높은 곳에 이르려 애쓴다. 1악장에서 그 음들은 특히 고음부와 저음부가 이질적인 음형으로 갈등하던 끝에 상생을 추구하고, 2악장에서는 동질적인 몸짓을 보이는 음들이 번민을 이겨내고자 노력한다.
음악학자 볼프강 슈파러가 "짧은 재현부 같은 에필로그"라 표현한 마지막 부분에서는 음들이 마침내 '정상'에 올라 평화를 찾은 듯 보인다. 그에 바로 앞서 제1 바이올린은 작곡가가 해탈을 상징하는 음으로 즐겨 사용하던 '라'(A) 음에 이르고, 강렬한 트릴로 소리친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다다른 곳이 진정한 도(道)의 세계일까?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