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1998년 4월에서 8월 사이에 작곡되었다. 도나우싱엔 음악제의 위촉을 받았고, 아르디티 콰르텟에게 헌정되었다.
'말 없는 꽃들'이라는 제목은 일본 전통 예술에서 따왔다. 첫 번째는 '이케바나'라는 일본 전통 꽃꽂이다. 이케바나를 위해 꽃은 실내 꽃꽂이용으로 잘린다. 잘린 까닭에 꽃은 오랫동안 피어있지 못하고, 그렇게 죽음을 붙잡아 배경으로 삼는다. 꽃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죽는다.
서양 예술이 시간의 흐름에 대항하며 '내면성'을 창조하려 노력해 왔다면, 이케바나 꽃은 시간과 함께 죽는 아름다움, 짧은 삶의 서러움, 개화의 섬세함과 아름다움, 무(無)에서 왔다가 무로 돌아감을 담아낸다.
소리 또한 고요에서 왔다가 돌아간다. 나는 새로 태어나 매우 짧은 삶을 사는 소리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했다. 시간을 견디거나 거스르게끔 건축된 소리가 아니라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소리를 표현하는 음악도 있어야 한다. 나는 일본 철학자 니시타니 켄지가 이케바나에 관해 쓴 글을 읽고 이런 아이디어를 얻었다.
두 번째로는 노(能)라는 무대예술을 만든 제아미 모토키요가 쓴 책 『가덴쇼』(花伝書)에서 영감을 얻었다. 노(能) 연기자에게 최고의 찬사는 꽃을 닮았다는 말이다. 제아미는 노를 익히는 연기자의 수준에 따라 꽃 이름을 달리 붙였다. 노 공연에서 음악은 힘차고 활기 있는 연주와 더불어 마치 수직적인 소리가 시간 자체를 잘라내듯 움직인다. 여기서 고요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며, 소리는 마치 꽃이 고요 속에 개화하듯 존재한다. 그것은 진공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좋은 공연에서 노 연기자는 어둠 속에서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나의 세 번째 현악사중주곡 "말 없는 꽃들"은 일본 전통 예술의 시공간에 관한 이러한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한편, 나는 안톤 베베른의 《6개의 바가텔》과 루이지 노노의 《디오티마의 고요한 파편》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나는 예술적 토양이 다른 두 세계에서 창작된 음악의 세세한 차이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두 예술 형식의 뿌리에서는 찾을 수 없는 공통 요인을 드러내고자 했다. 나는 베베른이나 노노의 소리에서 고요의 화원에서 피어나는 꽃을 듣는다.
내 음악은 텅 빈 시공간에 쓴 붓글씨다. 그 음악을 이루는 소리는 붓글씨의 획 또는 점 모양을 한다. 그 획들은 고요의 종이에 그은 것이다. 종이의 여백은 획이나 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 작품의 양식은 노(能) 공연에서 완급 조절을 뜻하는 '조하큐'(序破急)를 바탕으로 한다.
글: 호소카와 도시오
옮김: 김원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