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13일 화요일

오보이스트 잉고 고리츠키 인터뷰

통영국제음악재단 e-매거진에 실린 글입니다.

플로리안 리임 인터뷰, 김원철 옮김


Q. 스위스에서 있었던 한 공연에서 윤이상을 처음 만났고 이후 30여 년을 교류했다고 들었다. 그때 이야기가 궁금하다. 또 윤이상의 음악적 동반자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에 관해 알려달라.

A. 1974년 10월 16일, ‘라디오 베른’ 방송국에서 윤이상 특집 공연이 열렸고 내가 윤이상의 ‘피리’를 연주하게 되었다. 그 전부터 나는 이 곡에 흥미를 느껴 여러 차례 공연했었고, 이날 공연에서 윤이상을 처음 만났다. 불과 3미터쯤 떨어진 곳에 그가 앉아 있어서 무척 떨렸다. 공연이 끝난 뒤 윤이상이 나에게 내 연주에 관해 덕담해 주었고, 이 작품에 관한 내 주된 관심사였던 셈여림에 관해서도 좋게 평가해 주었다. 그는 또한 이 곡의 마지막 부분인 ’느리고, 신비롭게’(langsam, misterioso)에 관해 중요한 말을 했다. 마지막 부분을 내가 연주했던 것보다 더 여린 ‘피아니시모’로 연주하면 좋겠다는 거였다. 작품 해석에 관해 정말로 중요한 말이었다. 윤이상은 이 작품을 초연한 연주자 게오르크 메르바인에게 마지막 부분의 모든 음에 핑거링을 바꿔서 선율과 음색에 변화를 줄 것을 제안했지만(옮긴이 주: 출판된 악보에는 이 대목에 윤이상의 ’오리지널’과 메르바인이 연주한 판본이 나란히 있다.), 그렇다고 여기서 윤이상의 ’피아니시모’ 아이디어가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그날 이후로 나는 때때로 윤이상이 참석한 공연에서 ’피리’를 연주했고, 그와 함께 독일 국내외에서 투어 공연을 다니기도 했다.

Q. 올해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윤이상의 ‘피리’(1971)와 ‘영상’(1968)을 연주할 예정이다. 두 작품 모두 당신이 윤이상을 만나기 전에 작곡되었는데, 나중에 이들 작품에 관해 윤이상과 어떤 대화를 했나?

A. 사실 많은 말을 나누지는 않았다. 윤이상은 연주자에게 많은 자유를 주었고, 그의 작품에 관해서는 서로 다른 많은 해석이 존재하며, 특이 ’피리’가 그렇다. 지금에 와서는 내가 작품의 특정 프레이즈나 효과에 관해 더 많이 질문하지 않았던 일을 후회하지만, 윤이상 생전에 우리는 서로를 직관적으로 매우 잘 이해하는 사이였고 악보에 있는 지시는 매우 명확했다. ’피리’의 마지막 부분에 관해서는 앞서 이미 얘기했다. 다른 얘기를 더 하자면, 이 작품의 악보는 4쪽으로 되어 있고, 그래서 연주를 하려면 악보를 두 차례 넘겨야 한다. 윤이상은 그러지 말라고 했다. 악보를 넘기는 순간에 음악의 긴장감을 잃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나는 페이지를 넘길 필요가 없게끔 악보를 손보았고, 이것을 내 제자들에게도 전수하고 있다.

’영상’에서 윤이상은 비브라토의 형태를 계속 바꿔가면서 연주하게끔 했으며 어떤 지점에서는 모든 성부에 그런 걸 요구한다. 이를테면 논비브라토(non vibrato), 조금 약한 비브라토(poco vibrato), 그냥 비브라토, 조금 센 비브라토(molto vibrato), 조금씩 세지는 비브라토(vibrato poco a poco crescente) 등으로 비브라토의 양상이 변하면서 음색이 매우 다채로워진다. 내가 알기로 윤이상은 이런 기법을 다른 작품에서도 일관되게 사용하지는 않았는데, 내 생각에 이것은 고분 벽화의 압도적인 색채감과 관련 있는 것 같다. 이 곡은 윤이상이 강서고분벽화를 보고 나서 그것을 음악으로 표현한 작품이며, 나 또한 그 벽화를 직접 보았다. 이 작품의 마디 270부터 시작하는 마지막 부분을 리허설할 때 있었던 일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한다. 이 대목을 작곡할 때 윤이상은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는 것이다. 이 마지막 대목에서 리듬과 선율은 방향성을 잃어버리고, 오보에의 질문하는 글리산도와 함께 작품이 끝난다.

Q. 작품을 어떻게 익혔는지 궁금하다. 당신은 ‘윤이상 솔로이스트 베를린’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그래서 이 작품을 여러 번 연주했을 것 같다. 작품에 대한 이해가 처음과 달라진 점이 있나?

A. ’영상’은 성부 넷이 지극히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매우 복잡한 작품이다. 이 괴물 같은 작품을 어떻게 연주해야 할까.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정해져 있다. 당연히 모든 연주자는 자신의 파트를 충분히 이해한 뒤에 합주에 들어가야 한다. 연주자 각자에게 기술적으로 도전이 되는 곡이지만, 그것은 아름다운 도전이기도 하다. 그리고 첫 번째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거다. 당신이 외국에 처음 갔다고 생각해 보라. 조금씩 당신은 그 나라와 거기 사는 사람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때가 되면 연주의 합을 맞춰 보게 된다. 그러나 그 전에 고분 벽화에 그려진 네 마리 신수들의 움직임에 관해 알아야 한다. 그래야 붉은 선 넷이 얽히는 궤적을 발견하고 따라갈 수 있게 된다. 그제야 이 작품을 이해하고 연주할 수 있게 된다. 처음에는 복잡해 보이는 이 작품의 위대한 단순성을 알게 된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Q. 한국 전통악기인 피리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나? 그 소리를 어떻게 느꼈는지 궁금하다. 또 윤이상의 ‘피리’ 악보 첫 페이지에는 ’더블 트릴’을 비롯한 실험적인 연주법에 관한 설명이 있다. 이 작품에서 오보에 연주자에게 요구하는 가장 실험적인 프에이즈나 테크닉에 관해, 그리고 그에 대한 생각을 알려 달라.

A. 물론 피리 소리를 들어 보았고, 악기를 하나 갖고 있기도 하다. 오보에로는 낼 수 없는 깊고 그윽한 소리를 특히 좋아한다. ’피리’는 어쩌면 윤이상의 진심이 가장 잘 담긴 작품 중 하나일 것이다. 그 진심은 무엇보다 동서양 음악이 상생하게끔 하는 것이다. 내 생각에 윤이상은 ’피리’로 그것을 완벽하게 성공했다.

이 곡은 아치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서양음악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 형식을 이루는 벽돌들은 동양적인 성격을 보인다. 끝도 없이 길게 이어지는 듯한 음들이 주로 그러하며, 윤이상은 이것을 ‘주요음’이라 불렀다. 윤이상 음악에 관해 토론하는 학술대회에서 있었던 일을 소개하자면, 윤이상 음악의 이런 길게 이어지는 음에는 리듬이 없다고 어떤 사람이 말했다. 그 사람은 리듬의 실제 의미를 전혀 몰랐던 것이 분명하다. 리듬이라는 말의 뿌리를 따져 보면 고대 그리스어가 나온다. 그 당시 리듬은 움직임을 뜻했다.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했던 말 ’모든 것은 흐른다’(panta rhei)를 아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것이 리듬의 어원이다. 그래서 윤이상 음악의 길게 이어지는 음이 그 음을 따라 흐르는 공기의 움직임이라면, 그 음에도 리듬은 있고, 무엇보다 그 움직임 자체가 리듬이다. 내 생각에, 특히 ‘피리’ 시작 부분에서 끝없이 길게 이어지는 음들은 가장 아름답고, 가장 매혹적이며, 작품 전체에서 가장 기본이 된다. 내가 이 얘기를 윤이상에게 했을 때 그의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맺혔다.

’피리’에 나오는 음렬은 명백히 서양음악의 12음기법이며, 이것이 음형을 지배하는 법칙이 된다. 중간 부분의 장식음들은 그 뿌리가 뒤섞여 있다. 가볍게 유동하는 음과 짧은 글리산도는 동양적인 어법이고, 더블 트릴은 현대 서양의 오보에로만 가능한 기법이다. 이 곡의 첫 세 음이 마지막에 가서 음향적 무(無)로 가라앉는 것은 동서양 음악 세계의 통합을 단적으로 보여주며, 윤이상이 말로 설명한 의도와도 맞아떨어진다.

Q. 윤이상의 ‘이마주’(영상)와 드뷔시의 ’이마주’를 같은 공연에서 들어볼 수 있다는 점이 기대된다. 이 두 작품을 나란히 연주함으로써 어떤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하나?

A. 두 가지 ’이마주’를 한 공연에서 듣는 일은 그 자체로 참신한 생각이며, 두 작품은 완전히 다른 특징을 보인다. 윤이상은 창작력이 절정에 올랐을 때 고분 벽화의 신수들을 묘사한 작품을 남겼고, 자신의 목숨을 그 대가로 치를 뻔했다. 드뷔시의 ’이마주’는 작곡가의 피아노 작품들이 발전한 과정을 보여준다. 윤이상의 초기 작품, 이를테면 초기 가곡들을 아는 사람은 윤이상이 자신의 음악 어법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드뷔시의 회화적 음악 어법을 최소한 건드리기는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Q. 윤이상은 서양 악기로 한국적 정서를 표현했다. 그렇다면 연주자는 한국적인 정서와 뉘앙스를 더 잘 표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이와 관련한 경험이 있다면 알려 달라.

A. 이것은 어렵지만 필요한 질문이므로 가상의 예를 들어서 답해 보겠다. 어떤 연주자가, 여기서는 오보이스트가 바흐의 소나타나 파르티타를 연주하고자 한다면, 그 연주자는 바흐가 다른 악기를 위해 쓴 곡들 또한 익혀야 한다. 그 연주자가 윤이상 작품, 아마도 오보에 독주를 위한 ’피리’를 연주하고자 한다면, 그 연주자는 대체로 비슷한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윤이상이 다른 악기를 위해 쓴 곡을 공부하는 것만으로는 안 되며, 윤이상 작품의 뿌리를 발견할 수 있는 한국 전통음악 또한 공부해야 한다. 연주자는 이런 과정을 거쳐서 ’피리’의 악보를 이해할 수 있게 되고, 현대 오보에로 그것을 기술적·정서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어떤 경우에도 한국의 전통 피리 소리를 그냥 베끼려는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이 음악은 작곡 과정을 거치는 동안 이미 다른 차원에 들어섰고, 연주자는 지성과 영성을 다해 노력해야만 그곳에 다다를 수 있다. 이전 단계를 답습해서는 그곳에 다다를 수 없다. 이미 있던 소재로 새로운 차원을 형성하는 일은 매우 신나는 일이며, ’피리’는 어떤 연주자가 어떤 노력을 기울이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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